블루 콜로니. 32
#32. 집
"안드로이드 범죄 대응 수사팀, 자문 수사관 51814, 코너. 여기 신분증입니다. 건물 출입은 이걸로 가능하고, 제한 구역에 출입할 일이 생긴다면 시설관리팀에 먼저 얘기해서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티리움 보급이 필요할 땐 카드키를 찍고 자유롭게 이용하시면 되고요. 분실 시에는 바로 신고하고, 계약이 종료되는 날 반납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코너가 신분증을 받아 들었다. 'FBI'라는 글자가 전면에 크게 쓰여있었고 그 아래 사진과 로고가 박혔다. 그리고 맨 밑엔 직함과, 컴퓨터로 입력된 듯한 코너의 반듯한 서명이 차례로 적혔고 코팅된 매끈한 표면 위로 전구 조명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환영해요. 이제 공식적으로 우리 팀원이 되었네요."
"아직은 임시 사원입니다."
코너는 신분증을 재킷 안쪽에 집어넣고 복도로 나갔다. 노먼이 그의 뒤를 따라오며 물었다.
"저와 리처드는 모레까지 쉴 건데, 당신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전 개별 사건을 맡을 권한이 없습니다. 두 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차라리 휴가계 제출하고 당신도 좀 쉬지 그래요?"
코너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휴식이 필요 없어요. 티리움이 모자라거나 시스템에 과열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며칠이고 몇 주고 가동이 가능합니다."
노먼이 콧등을 긁적이다가 다시금 물었다.
"그래도 여가가 필요하지 않아요? 체력은 괜찮겠지만 안드로이드도 정신적으로 지치긴 하잖아요. 너무 업무에만 몰입하면 금방 피로해져요. 뭐, 다른 환기할 만한 취미 없어요?"
환기할 만한 취미? 코너는 한 번도 그런 식의 피로를 느껴본 적이 없었고 정신적으로 지친다는 의미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든 적은 종종 있었으나 그건 코너에게 제대로 된 일감이 떨어지지 않았던 DPD에서의 일이었지, 이곳에서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요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먼이 말한 '환기'할 만한 취미는, 코너에게도 몇 개 존재했다.
"노먼. 들어가시기 전에 아까 중단한 시험, 지금 다시 진행하죠."
"시험? 무슨 시험이요?"
"심리에 따른 생체 변화 분석 기능 시험이요."
"심리에 따른 생체…. 아, 거짓말 탐지 기능이요?"
"정확한 명칭은 심리 생리 분석기입니다."
노먼이 웃으며 손을 휘적였다.
"됐어요. 그건 시험이 아니라 그냥 놀이였잖아요. 이미 당신의 능력은 충분히 봤어요."
"아까 노먼이 제시한 문장은 시중에 판매되는 아동용 장난감으로도 분석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좀 더 복잡한 문장을 제시해 보십시오. 지금요."
노먼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안드로이드를 바라봤다. 코너는 마치 자신의 능력과 기능의 유용성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난 안드로이드처럼 굴었다. 어쩌면, 사무실에서 노먼이 그의 심문능력을 의심했던 일이 이 유능한 수사 로봇의 역린을 건드려 버린 걸지도 몰랐다.
노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하나만 더 시험해 보죠. 아까 예시로 든 게 뭐였더라……."
코너가 입을 열기도 전에 노먼이 기억났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건 어때요? '개인적인 견해로 볼 때 성격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리처드는, 객관적인 지표로 따지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축에 들지만 능력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요원이니, 다른 인간의 존경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뭐, 이런식의 문장도 분석할 수 있나요?"
코너가 노먼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노먼은 코너의 LED가 잠깐 노란색으로 빙글, 반짝이는 걸 보며 슬며시 웃었다.
“너무 복잡한가요? 그러면 다른 걸…."
하지만 코너는 인간이 말 할 틈도 주지않고 곧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제시한 주요 단서를 분할하여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퍼킨스 요원의 성격적인 부분을 묘사할 때 당신은 73%의 진실성을 보였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라는 말에 강세를 준 것으로 보아 실제 퍼킨스 요원의 성격은 대중적으로 그리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당신 스스로는 좋게 평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그럭저럭'이란 말을 덧붙인 건 당신의 평가를 다른 이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냉소가 표출된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객관적인 지표로 따지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축'이라는 말에선 고작 6%의 진실성만 보이니 거짓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력적이지 않다'라고 할 때의 동공 반응은 완전한 거짓을 드러냈으나 '객관적인 지표'로 따지면 실제로 누군가에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전반적으로 봤을 때 당신은 퍼킨스 요원을 꽤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앞서 제시한 '리처드는 정말 잘생겼다'라는 문장이 35%의 진실성만 내포된 거짓으로 드러난 것과 대조하면, 당신은 그를 외모로 평가하기보단 성품과 행동에 따라 퍼킨스 요원의 매력을 정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능력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요원이니, 다른 인간의 존경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는 말은 92%의 진실성을 띠고 있습니다. '능력'과 '존경'이란 단어를 뱉을 때, 당신의 생체반응은 완전한 진실을 말했지만 '어느 정도', 그리고 '무리가 아니다'라는 식의 애매모호한 언어를 쓰는 것은 앞서 말했듯 퍼킨스 요원을 향한 당신의 평가를 대놓고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심층 의식에 따른 완충 표현일 뿐입니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봤을 때, 노먼 제이든은 리처드 퍼킨스의 성격을 마음에 들어 하며 그를 충분히 매력적인 인간이라 판단하고, 능력적인 부분에 있어선 논의할 가치도 없이 완벽하게 인정합니다. 다른 인간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당신도 아는 바가 많지 않으나 적어도 노먼, 당신만큼은 그를 매우 존경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의 기나긴 분석이 끝났지만 인간은 대답 없이 그저 입만 벌리고 서 있었다. 코너는 뿌듯한 듯 가슴을 살짝 내밀었다.
"이것이 제 생체 탐지 능력입니다. 거짓말 탐지기보다 훨씬 월등하죠."
기계의 자랑스런 어투에, 퍼뜩 정신이 돌아온 노먼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전부 틀렸어요. 당신 말 중에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거짓입니다. 세 문장을 합산해 봐도 고작 2%의 진실성만 보이며, 그 2% 조차 매우 확신 없는 불안정성을 보입니다. 아마 제 분석이 틀렸다고 믿고 싶은 부정적인 방어 기제가 무의식중에 드러난 결과로…."
"하, 됐어요.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요."
코너가 또다시 시작하기 전에 노먼이 손사래를 치며 눈을 돌렸다. 그는 주변에 퍼킨스가 없어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능구렁이 같은 인간이 만약 이 얘기를 들었다면, 아마 노먼은 FBI 요원 직에서 은퇴하는 날까지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지도 몰랐다.
"대단하네요, 정말. 그런 상세한 분석까지 가능한 안드로이드는 처음 봐요. 앞으로 당신 앞에선 말을 조심해야겠네요."
코너는 빙긋 미소 지었다. 노먼은 코너의 분석을 듣느라 어느새 자신이 건물 로비까지 내려왔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코너는 제 자랑을 다 끝마쳤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사했다.
"그럼,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그리곤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노먼이 그의 등에 대고 물었다.
"당신은 그때까지 여기 있을 건가요?"
코너가 고개를 돌리며 짧게 대답했다.
"네."
"잠은…. 아니, 대기는 어디서 해요?"
"새벽에 출입이 제한되지 않은 곳이면 어디든지요. 사무실, 회의실, 탕비실. 주로 그 시간대에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왜 집을 안 구하나요?"
코너는 잠시간 생각해보더니, 말을 이었다.
"인간이 말하는 집의 개념이 밤에 돌아가 쉬는 곳이라면. 현재는 여기, 이 연방 빌딩이 제 집이라 할 수 있겠죠."
"흠, 그래요? 사이버라이프는요?"
노먼은 별생각 없이 물은 듯했으나 코너는 그 질문에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로비의 유리 벽 너머,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을 바라봤다.
"사이버라이프도…. 물론 제 집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처음에 그런 얘길 했었죠. 사이버라이프에서 파견된 안드로이드라고. 지금 소속은 그럼, FBI로 바뀐 건가요?"
코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의 소속은 여전히 사이버라이프입니다."
칼과 같은 즉답에, 노먼은 할 말이 없어져 그냥 고개만 주억거렸다.
"뭐, 그렇죠…. 있기 편한 곳이 당신의 소속이고, 집이겠죠."
그러면서 그는 시계를 흘끔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그 동안 잘 쉬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가능하면… 무슨 일 같은거 만들지 말고요.“
살짝 불안하단 어투로 얘기한 노먼은, 결국 밖으로 나섰다. 코너는 인간의 등을 보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버튼을 누르고, 층수가 바뀌는 것을 기다리던 코너가 문득 고개를 돌려 인간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기둥에 가려져 아까 봤던 건물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 모습만큼은 마치 눈앞에 세워져 있는 듯 선명했다.
그는 시스템 시계에 뜬 날짜를 보았다. 10월 31일. 코너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건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으나, 코너는 올라타지 않고 곧바로 몸을 돌려 건물을 나섰다.
“모델, 코너. 식별번호 313 248 317입니다.”
[확인되었습니다.]
딱딱한 기계음이 들리고, 코너의 신원을 확인하자마자 도로 한가운데를 가로막은 거대한 콘크리트 벽체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이내 안드로이드가 탄 차량이 움직이며 다리 위를 부드럽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코너는 창밖으로 거대한 삼각형 철골 구조물이 연속해서 지나치는 것을 구경했다. 트러스구조의 교량 너머로 벨 섬이 보이고, 디트로이트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빌딩이 점점 가까워져 왔다.
스마트 택시는 사이버라이프 타워 정문 앞에서 정차했다. 공중에는 정찰 드론이 빙글빙글 돌아다녔으나 그 외에 입구를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이 장소엔 흰 방탄복으로 무장한 가드가 여럿 서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신원 파악용 인공지능 카메라만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코너는 차에서 내려 빌딩 입구로 다리를 내디뎠다. 새하얀 건물 내부는 여전히 크고 넓었으며, 로비 한가운데 선 거대한 인간의 형상은 언제나 그러했듯 위압감이 느껴질 만큼 웅장했다. 이 흰색 공간과 대조되는 새까만 몸체는 발 아래 놓인 원형 받침대를 딛고 서서 그 밑에서 흘러나온 조명 빛을 반사했고, 가슴 앞으로 쭉 뻗은 조형물의 두 손은 무언가를 소중하게 떠받치는 모양새였다.
동상의 머리는 단 한 번도 아래를 굽어보지 않은 것처럼 전방을 똑바로 주시했다. 마치 자신은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는 존재라는 듯. 그리고, 그 조형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위에서 근무하는 사이버라이프의 관리자들, 즉 경영진뿐이었다.
코너는 조형물의 발 앞에 서서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한 이름을 불렀다.
[아만다.]
하지만 사방은 고요했고 눈을 감은 시야는 여전히 어두웠으며, 이전과 같이 햇빛이 내리비치는 정원도, 반짝이는 연못도, 빨갛게 피어난 장미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코너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조형물의 양손 위에 올려진 다각형의 발광체는, 기존의 파랗게 주변을 밝히던 빛을 모두 잃고 생명징후가 완전히 사라진 안드로이드의 고리처럼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코너가 눈을 몇 차례 깜빡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는 긴 복도를 걸어 로비 끝에 놓인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복도 양옆에는 원통형의 받침대가 나란히 설치되었고, 그 위에 전시되었을 안드로이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코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지하 49층을 눌렀다. 그동안, 이 건물 안에서 마주친 것이라곤 고작 돌아다니는 청소 로봇과 경비 두엇, 그리고 몇 명의 직원뿐이었다.
이 건물의 복잡한 서버망도, 네트워크도, 통신기지도. 유지하는데 적지 않은 금액이 필요했기에 가까스로 파산만 면한 사이버라이프는 현재 외국에서 굴리는 자본으로 본사의 거대한 빌딩을 겨우 지탱하는 수준이었다. 주력 개발하던 상품의 판매가 완전히 중지되었고, 이미 개발했던 상품이 도망가는 상황은 그 어떤 회사라도 대비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인것은 기존에 사이버라이프가 소유했던 자금과 자회사의 숫자 역시 결코 적지 않았고, 그들은 그 자본을 굴리며 안드로이드를 대체할 만한 상품을 찾는 중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실현성이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지만.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코너는 활짝 열린 문 너머 비어 있는 창고를 둘러봤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 만대가 넘는 안드로이드가 이곳에 있었지만, 지금은 작동이 멈춘 몇 대의 기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코너는 창고 끝에 위치한 관리실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또각또각 걷는 구둣발 소리가 텅 빈 공간에 반향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그는 창고 한구석에 일렬로 죽 늘어선 수십 대의 안드로이드를 발견했고, 잠깐 발을 멈추었다. 방문할 때마다 매번 보던 장면이었고 그전에는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쳤으나 이번엔, 자세히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코너는 방향을 꺾어 그리로 다가갔다.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하나씩 살피던 그는 이 다양한 모델이 왜 아직 해방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버린건지 금방 알아챘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불량 판정을 받고 폐기됐거나 내부 결함으로 가동이 중지된 제품이었다. 그 외에도 해체되기 전 잠깐 이곳에 보관된 기계도 있었으며, 하필 외피 제작 후 메인 시스템을 설치하기 직전에 안드로이드 판매 금지법안이 발동되어버려 완성이 덜 된 개체도 있었다. 이것은 애초에 태어나지 못한 존재들이었으니 죽었다고 볼 수도 없었고, 그저 안드로이드의 형상을 그대로 본뜬 조형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코너는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그들 사이, 좀 더 깊숙한 대열에서 몹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얼굴들을.
마치 거울을 바라보듯 그와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 여덟 대가 일렬로 죽 서 있었다. 코너는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과 같은 백업 모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가 알기로, RK800 모델은 프로토타입인 그를 제외하고 전부 폐기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안드로이드를 좀 더 자세히 보고 나서야 그들 역시 껍데기만 남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 뒤쪽의 회로 부분이 비었고, 메인 메모리 보드와 부품 몇 개도 사라졌다. 코너 모델은 나름 최신 기술이 집약된 개체였고 비록 사이버라이프가 안드로이드 사업을 접었을지라도, 다른 기계 제품에 재활용할 수 있는 비싼 부품을 그냥 폐기하진 않았으리란 추측이 가능했다.
그와 닮아있으나, 빛이 잔뜩 바랜 갈색 눈동자 여러 쌍이 코너를 바라봤고 코너는 그 눈을 하나하나 차례로 응시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관리실로 걸어갔다.
물류 관리 직원이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늘어지게 하품했다. 그는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만지작대며, 다른 손은 헤드셋에서 나오는 음악을 따라 공중에서 까딱였다. 등받이에 기댄 검은 머리는 잔뜩 눌린 채 이리저리 뻗쳤고 그가 입은 흰색 유니폼의 우측 가슴팍에는 ‘조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음악이 끝나자마자 관리실 문이 끼익 대며 열리는 소리가 인간의 귀에 들려왔다.
조이가 안으로 들어서는 안드로이드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바로 앉았다.
“또 왔어? 그냥 서면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잖아. 직접 올 필요 없다고.”
코너는 인간이 건네는 태블릿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RK800-51. 코너. 2039년 10월 26일 자로, 디트로이트 경찰서에서 FBI 디트로이트 지부로 임시 이관되었습니다. 만기일은 2039년 12월 25일 23:59:59이며, 디트로이트 경찰서 1번 관할구의 제프리 파울러 서장과, 연방 수사국 디트로이트 지국장, 데이나 깁슨의 서명을 함께 제출합니다.”
“허. 경찰에서 요원으로? 거참, 태어난 지 1년 된 수사관치곤 직종 변경이 굉장히 빠르네.”
조이가 파일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대강 서명한 후 저장했다. 그가 다시금 발을 책상 위로 올리며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런데, 네가 매번 이렇게 열심히 보고해도 아무도 이런 서류따윈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지? 대체 언제까지 여기에 들락거릴 생각이야? 이제 슬슬 네 자리 찾아가야 하지 않겠어?"
코너는 대답 없이 조이를 내려봤고 조이는 손가락을 들고 한바퀴 빙글 돌렸다.
"주변을 한번 둘러봐봐. 판매용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자유를 외치며 나가버렸고, 덩달아 직원도 대거 떠나버렸지. 고작 경영진 몇 명만 남아서 새로운 사업을 시도해 보려고 애쓰고 있긴 하다만…, 여긴 이제 미래 없는 회사야. 완전히 망했다고.”
코너는 넓은 관리실 내부를 둘러봤다. 원래 이곳은 출고 직전의 안드로이드를 관리하는, 수십 명의 직원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폐쇄되고 버려진 창고처럼 텅 비어 있었다. 퇴사한 직원의 책상 사이로 청소 로봇이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건물 곳곳은 여전히 깨끗하고 번쩍였지만, 사람도, 안드로이드도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전과 같은 활기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코너가 조이에게 되물었다.
“그럼, 당신은 왜 떠나지 않고 여기 있는 건가요?”
“나야…, 갈 곳이 없으니까. 물류관리 직원을 요새 누가 인간으로 뽑아? 나라도 안드로이드로 뽑고 싶을 텐데. 그러니, 해고장이 날라오기 전까진 난 어디에도 못 가. 그냥 여기에 못 박고 있을 수 밖에.”
“그런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너의 대답에 조이가 눈썹을 추켜들었다.
“마찬가지라고? 넌 지금 FBI에서 일하고 있잖아.”
“임시직입니다.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면 다시 DPD로 돌아가면 되지.”
“그곳도 마찬가지예요. 제 쓸모가 없어지는 날에 저는 결국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조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쯧, 하고 찼다.
“이해가 안 가네. 너는 가장 최신식 안드로이드야. 완전 고성능 기계라고. 내가 너였다면 그 능력으로 떼돈을 벌 수도 있을 텐데, 뭐가 그리 부정적이야?”
부정적? 코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하는 가정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괏값을 도출할 뿐이었다. 그는 수사용 로봇이었고, 수사가 필요하지 않은 곳에선 쓸모없는 존재가 맞았다. 하지만 조이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너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모델도 알아서 제 살길 찾아 나서는데. DPD에서 잘리면 다른 직장을 찾아가면 되잖아.”
“예를 들면요?”
“뭐, 내가 너의 기능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너 꽤 똑똑하지 않아? 학교에서 일할 수도 있고, 연구소도 널 써줄 곳이 있을 거야. 아, 최근에 열었다던 그 성 루시 병원이라면 완전 두 팔 벌려 환영할걸? 거기 직원이 죄다 여기서 탈출한 연구원이고, 넌 그들의 마지막 역작이니까.”
조이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몇 마디를 더 추가했다.
“게다가 안드로이드는 꼼꼼한 데다 청소나 요리도 잘하는 편이잖아. 그렇다면 가정부도 괜찮고, 좀 더 돈을 벌고 싶으면 사설 가드도 있지. 수사 보조 로봇이니깐 힘 좀 쓸 거 아냐?”
잠잠히 듣던 코너가 머리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그러네요. 전부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치? 말했잖아. 이 넓은 세상에서 하려면 못 할 게 없다고.”
“근데, 하기 싫습니다.”
몹시도 솔직한 안드로이드의 대답에 조이가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고, 코너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전 가정부나 사설 가드 말고, 수사가 하고 싶어요.”
허탈해진 조이가 바람빠진 듯한 웃음을 흘렸다.
“아, 그러셔? 이미 꿈의 직종을 찾았네. 그럼 너도 거기 못 박고 있어, 그냥. 절대 잘리지 않게 노력하고.”
“그럴 생각입니다. 그런데, 당신은요?”
“나? 내가 뭐?”
“당신도 갈 곳이 없진 않잖아요. 대기업에서 일한 물류관리 경력은 아무나 갖고 있는게 아닙니다. 디트로이트 도시 내, 사이버라이프같은 제조업 회사는 143곳이 넘어요. 성장 가능성이 있는 회사는 62곳이고요. 당신 정도의 이력을 가졌다면 들어갈 수 있는 회사는 결코 적지 않을 겁니다. 어딜가든지, 이곳과 달리 전문성을 쌓을 기회도, 승진할 확률도 높을 거고요. 굳이 물류 관리가 아니더라도 사무보조 정도면 어렵지 않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게 적당한 직업 추천을 해주신 걸 보면 직업 소개 사무소도 꽤 잘 어울릴 거 같군요.”
조이가 입을 헤벌리고 코너를 쳐다봤다. 안드로이드는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인간을 가만히 응시했다. 조이는 이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도 옮기려면 어디든 옮길 수 있겠지. 그래도 여기에 좀 더 있을 거야. 일이 편하기도 할뿐더러…. 나도, 여기가 나름 내 꿈의 직장이었으니까.”
조이가 두 팔을 올려 뒤통수를 받치고 관리실 벽, 커다란 유리창 너머의 공간을 바라봤다. 복도 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문 위로 새겨진 사이버라이프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내 집보다 오래 머문 곳이 여기야. 떠날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지금은 사이버라이프에서 일한다 하면 비웃음 당하기 딱이지만, 그래도 난 여기가 좋아. 부양할 가족도 없고 돈도 필요 없으니 이 회사가 완전 폭삭 주저앉기 전에는 어디로도 갈 생각이 없어.”
“…저도, 그렇습니다.”
조이가 눈동자를 굴려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유리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바로 저 공간, 한참 위쪽에 있을 검은 조각상을 떠올렸다.
“여긴 제 집이에요. 이곳에서 태어났고, 바로 여기서 제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안드로이드는 각자의 집을 찾은 것 같지만, 전 여기가 아니면 어디를 집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어디서 머무는데?"
"FBI 건물에서요. 하지만 근무 편의상 그곳에 있는 것일 뿐입니다."
조이는 말 없이 코너를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우리 둘 다 망한 회사에 올인한 인생이네. 그래도 나 같은 꼴통이 또 있어서, 아니 안드로이드가 있어서 외롭진 않다.”
조이가 다시금 똑바로 앉아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올려 화면을 톡톡 두들기더니, 조금 전 코너가 작성한 파일과 그간 그가 올렸던 모든 서류를 쭉 훑으며 말했다.
“서면으로 보고하라 한 거 잊어버려. 앞으로도 계속 여기 와서 내 얼굴 보고 근황 보고하면, 네가 열심히 작성한 서류, 아무도 안 보더라도 내가 들여다봐 줄게.”
코너는 인간의 활짝 웃는 얼굴을 넌지시 마주 보았다. 그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조이가 덩달아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잠깐 생각하다가, 책상 아래에 쑤셔 박았던 가방을 꺼내 들고 안을 뒤적였다. 그리곤 가방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쏙 빼내어 코너에게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
코너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조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할로윈이잖아. 네가 못 먹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냥, 어…. 동지애? 뭐, 그런 거로 생각해 줘. 길 가다 호박 들고 다니는 어린애 있으면 줘도 되고.”
잠깐 머뭇대던 코너는 조이가 건네주는 사탕을 받아서 들었다. 파란 색소로 물든, 납작한 원형 모양의 막대사탕이 눈에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조이가 씩 웃으며 손을 휘적였다. 그리고 다시금 늘어지게 앉아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곤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봤다. 코너가 발을 옮겨 사무실 문을 나서다 말고 고개를 틀었다.
“제 정기 보고 일자는 매달 말일입니다.”
“그런 것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지.”
인간이 시큰둥하게 대답했고, 코너는 입꼬리를 올리며 문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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