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23
#23. 희롱
“어이! 빨리빨리 안 다녀? 빠져가지곤!”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선 노먼이, 차에서 내리는 퍼킨스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눈썹을 한껏 추켜세운 퍼킨스가 노먼의 빙글거리는 얼굴을 보곤 픽 웃었다.
“미안해. 검식 팀에 뭐 좀 넘기고 오느라.”
예상했던 것과 상이한 반응에, 노먼의 눈이 약간 커졌다. 퍼킨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현장에서 혈흔을 발견했어. 사건과 연관이 있을진 모르겠고. 결과가 나오면 그쪽에서 알려주겠지.”
단순하게 설명하는 퍼킨스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노먼은 그의 행동에서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읽어냈다.
“뭔 일 있어?”
“무슨 일?”
“왜 이렇게 우울해?”
퍼킨스가 노먼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의 파트너는 뭘 오해한 건지 퍼킨스의 얼굴부터 몸 곳곳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야야, 어딜 봐.”
퍼킨스가 노먼의 눈 앞에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고개를 치켜든 파트너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며, 퍼킨스가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냥, 퇴근도 못 하고 밤새도록 탐문할 생각하니 기운 빠져서 그래.”
노먼은 퍼킨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탐문수사를 한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이렇게 침울해하는 퍼킨스는 오랜만이었다. 노먼은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퍼킨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코너는?”
“네가 올 때까지 먼저 살펴보고 오겠다 했어.”
노먼의 대답에 퍼킨스가 황당해했다.
“뭔 놈의 기계가 성격이 그렇게 급해?”
“내 말이.”
“피터보로 474번가로 오라고 했잖아. 정확한 위치가 어디야?”
노먼이 팔을 뻗어 그들 주위의 넓은 공터를 가리켰다.
“주소상으로는 여기야. 그런데 보다시피, 아무것도 없어.”
퍼킨스는 알 만 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런 류의 클럽을 드러내놓고 운영하진 못하겠지. 누군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찾기도 어려울테고.”
“밤에 다시 와야 하나?”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대강이라도 둘러보자고. 어차피 그 안드로이드도 데려 가야 하니까.”
노먼이 수긍하며 ARI를 꺼내 들었다. 이제 뭐만 하면 습관적으로 안경부터 빼내는 모습에, 퍼킨스가 혀를 찼다.
“그 녀석이 지금 어디 있을 줄 알고?”
“뭐 전송받을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위치 찾으려면 온라인에 접속해야 할 텐데. 그 자체가 데이터 전송 아닌가?”
“접속 안 해도 다 찾는 방법이 있지. ARI를 뭐로 보고.”
퍼킨스는 노먼이 그 안경을 쓰고 웃을 때 묘하게 더 재수 없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순한 눈매가 가려진 탓인가 인상이 다섯 배는 차가워진 노먼이, 얼굴을 돌려 주변 골목과 상점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퍼킨스도 그를 따라가며 술집처럼 보이는 간판과 건물을 살폈다. 이쪽 구역에서 가장 큰 유흥가답게,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대다수의 상점이 문을 닫았고 영업 하는 곳이라곤 식당과 카페, 옷 가게가 전부였다.
노먼은 팔을 들어 허공을 휘젓기도 하고 가끔은 휴대폰에 무언갈 검색하기도 하며, 여기저기 기웃대고 거침없이 발을 옮겼다. 퍼킨스는 그 꼴이 마치 개가 코를 박고 킁킁대면서 자신의 영역을 탐색해 나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목줄만 없다 뿐이지, 노먼의 뒤에서 느긋하게 걸으며 그가 또 이상한 곳으로 튀어 나갈까봐 유심히 지켜보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사냥견을 훈련시키는 견주 같다고 생각했다. 웃긴 건, 노먼은 훈련이 되었다기엔 말을 더럽게 안 듣는 버릇없는 개였고, 퍼킨스는 처참하게 실패한 주인이라는 점이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퍼킨스가 실소했다. 노먼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보면 어쩌면 개보단 고양이가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둥의 실없는 상상을 하며, 퍼킨스는 파트너를 따라 느릿하게 발을 옮겼다.
한참 동안 노먼이 하는 양을 구경하던 퍼킨스는 그가 무슨 단서를 쫓아가는 중인지 대강 알아챘다. 노먼은 한갓진 골목만 골라 돌아다녔고, 그중에서도 넓은 부지를 가진 건물을 위주로 살폈다. 지하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계단과 문을 유심히 바라봤고 가끔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바닥에 남은 발자국을 관찰했다. 둘은 어느덧 대로를 지나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왔다. 퍼킨스는 주변에 널린 성인용품 상점과 전면 유리로 된 텅 빈 건물에 의자 몇 개가 바깥쪽을 향해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밤이라면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고 때문에 골목의 분위기는 몹시 스산했다.
노먼은 이제 더 꼼꼼하게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퍼킨스도 그의 보폭에 맞춰 걸음을 늦추었다. 텅 빈 차 몇 대가 도로 한 편에 주차되었고 그 사이를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 퍼킨스의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약간 쉰 듯한 낮은 음성이 조곤조곤 무언갈 읊조리는 소리가 들리자 퍼킨스가 옆에 있는 인간을 툭툭 쳤다.
“어딜 싸돌아 다니나 했더니, 저기 있네.”
노먼이 상체를 조금 젖혀 퍼킨스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옆으로 돌아선 안드로이드는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전봇대에 가려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거리가 있는지라 대화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안드로이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동시에 기둥 너머로 손 하나가 뻗어 나왔다. 그 손이 향하는 곳을 본 퍼킨스가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지금 저거…….”
하지만 퍼킨스가 말을 끝맺기도 전, 노먼이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코너는 노먼과 헤어진 후, 골목 여기저기를 바쁘게 쏘다니는 동시에 머릿속으론 인터넷에 게시된 글을 쭉 훑어보았다. 갬빗 스윙어라는 키워드 자체는 꽤 많았으나 섹스 클럽과 관련된 게시물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갬빗과 스윙어를 따로 검색했을 때는 체스와 골프, 혹은 음악 밴드 관련 정보만 떠오를 뿐이었다. 코너는 몇 번에 걸쳐 복잡하게 숨겨진 링크를 타고 들어가 검색 엔진에는 걸리지 않는 어떤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곳에서 또다시 키워드를 입력했고, 검색 결과에 드디어 유의미해 보이는 게시글 하나가 걸렸다.
[어제 갔다온 따끈한 갬빗 후기]
시간을 보니 3시간 전에 생성된 링크였다. 코너가 그 게시물에 접속을 시도했으나 일부 회원만 들어갈 수 있도록 설정된 글이었다. 코너의 LED가 잠깐 노랗게 반짝이고, 간단한 해킹 으로 사이트의 모든 권한을 얻어냈다. 그는 곧바로 해당 게시글에 접속했고, 이번엔 긴 본문 내용과 함께 아래 달린 댓글까지 안드로이드의 눈앞에 떠올랐다.
[24시간도 안 된 따끈하고 솔직한 갬빗 후기 올려준다.
친구가 추천해서 가봤는데 일단 입장부터 가격이 존나… 비쌈. 깡통은 무료인데 인간은 기본 100 이상 시작임. 솔직히 이 돈이면 에덴 가는 게 나을까 싶었는데 궁금해서 들어가 봤음. 영상촬영 당연히 안되고, 휴대폰이나 전자기기 전부 입구에 맡기고 들어가야 함.
계단 내려가자마자 나오는 공간은 그냥 평범한 클럽이고, 좀 더 들어가야 나옴. 처음엔 가볍게 술부터 들이키고 탐색 들어갔는데 입장료도 존나게 비쌌으면서 술은 정말 욕 나올 정도로 비쌌음. 어쩔 수 없이 한 잔 마시긴 했지만 알아보니까 개인 술 가져갈 수 있더라고…. 어쨌든 내부는 나름 이것저것 꾸며놨고 인공조명으로 느낌 낸 테라스 비슷한 것도 있고 수영장도 있다. 추워서 인간들은 안 들어가고 플라스틱만 몇 개 떠 있었음.
전체적으로 시설은 그저 그런데, 대신 종류별로 즐길 수 있어. 체력만 되면 열이고 스물이고 돌아가면서 할 수 있다. 근데 확실히 섹스 로봇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잘함…. 몇몇 안드로이드는 감도 장착도 한 거 같던데 진짜 느끼는 건지, 척만 하는 건지 깡통 대가리 열어볼 수도 없으니 이건 알아서들 판단하고. 뭣보다 걔들도 인간 외모 존나게 따지니까 알아서들 꾸미고 와라. 여긴 에덴이 아님.
웃긴 건 인간끼리 빨아대는 것도 볼 수 있고 지들끼리 방에 들어가는 것도 몇 번 봤다. 그럴 거면 왜 그 돈 내고 거기까지 와서 그러는 건지 이해 안 갔는데, 클럽 내 종족 비율이 너무 안 맞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음. 룸은 테마별로 가격이 다 다르던데 입장료 20배 하는 곳도 봄. 어떤 인간은 안드 셋 끼고 들어가더만. 존나 부러웠음….
나는 홀에서만 놀았는데 거기도 나쁘진 않았어. 조금 시끄럽고 짐승들 짝짓기 현장 같다는 점 빼곤. 참고로 바텐더 실력이 개쓰레기니까 술은 챙겨가길 추천함. 돈 내는 건 인간인데 인간 손님한텐 매우 불친절함.
이상 후기 끝.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나도 저번 주에 갔는데 가드부터 직원까지 전부 싸가지없음.
⤷근데 왜 감? 에덴보다 나음?
⤷갬빗에 비하면 에덴은 저학년 성교육 체험 현장
⤷에덴이 호텔이라면 갬빗은 걍 시장바닥임. 둘이 시스템 자체가 다름.
⤷물 좋음?
⤷깡통한테 물이 어딨냐 등신아. 루브는 비치되어 있음.
⤷그 물 말하는 게 아니잖아. 병신아….
⤷왜 욕을 하고 지랄이야 씨발아
그 아래로는 엄청난 비속어와 욕설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코너는 댓글을 쭉 읽다가 36분 전에 달린 글을 확인했다.
⤷인간적으로 이런 후기를 적었으면 어딘지도 써놔야 할 거 아냐?
⤷나도 찾는 데 오래 걸림. 알고 갔는데도 못 찾아서 한참 헤맸다.
⤷이 새끼들은 왜 주소지 똑바로 안 적어놓는 건데? 불법도 아닌데 존나 쪼네.
⤷갬빗정도면 불법임.
⤷위치 좀 알려줘라. 나도 못 찾고 길에서 혼자 뺐다.
⤷[삭제된 댓글]
⤷뭐야 나도 알려줘. 제발.
⤷[삭제된 댓글]
⤷나도요.
⤷[삭제된 댓글]
그게 마지막 글이었다. 코너는 불과 5분 전에 작성되고 12초 만에 삭제되었다고 적힌 내용을 읽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왜 작성하자마자 삭제했는지, 코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들은 원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온라인에서는 더더욱 알 수 없는 행위를 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글쓴이는 위치를 알려달라 요청하는 글에 답신한다는 사실이었다.
코너는 또다시 사이트를 해킹해서 이번엔 임시 계정을 만들고, 모든 게시글 접근 권한과 글쓰기 권한을 열어두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봤던 본문 내용 아래에 새로운 댓글을 달았다.
[ID: Connor51]
⤷안녕하세요. 제게도 갬빗 스윙어의 위치를 공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곤 잠시간 기다렸다. 곧바로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떴고 코너는 빠르게 확인했다. 문제는, 댓글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뭐야?
⤷미친놈 말투 왜 이래?
⤷컨셉임. 무시해.
⤷안드로이드 아냐?
⤷깡통이 여길 왜 와.
⤷못 올 건 없지. 지들도 인간들 뭐 하고 사나 구경하고 싶을 거 아냐.
⤷시발 왜 기분 나쁘지?
⤷진짜 안드로이드야?
코너는 고개를 갸웃했다. 안드로이드인 걸 어떻게 알았지? 노먼도 그렇고, 인간들은 가끔가다 보면 정말 이상한 데서 높은 추론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안드로이드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코너는 위치를 물었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얘길 해댔다. 코너는 또 한 번 댓글을 작성했다.
[ID: Connor51]
⤷갬빗 스윙어의 위치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곤 다시금 댓글이 달리는 걸 구경했다.
⤷등신 같은 말투 보면 안드로이드 맞는 거 같은데.
⤷널 만든 연구원이 이런데 오면 안 된다는 것도 안 알려줬니?
⤷내 거 빨아주면 알려줄게.
⤷이 새끼가 어떤 모델인 줄 알고?
⤷상관없어. 남잔지 여잔지만 중요해.
⤷플라스틱에 성별이 어딨어? 그냥 철 쪼가리 인형인데.
⤷그런가? 그럼 구멍이 하나야, 두 개야?
⤷그래. 그 질문이 더 말이 되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위에 달린 댓글보다 코너가 훨씬 정중하고 예의 있는 형식으로 글을 작성했음에도, 위치를 알려준다는 답신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코너는 이곳에서 더 이상 정보를 얻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창을 닫으려 했다. 그 순간, 알림이 하나 더 떴다.
⤷피터보로 491번가. 섹스토이 파는 가게 바로 옆 건물임.
그리고 댓글은 곧바로 삭제되었다. 그러나 코너는 이미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전부 얻어냈다. 모든 창을 말끔히 닫아버린 그가 곧장 발을 내디뎠다.
코너는 좁다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에 성인용품 상점 간판이 보였으나, 한두 개가 아니었다. 코너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아까 본 정보가 맞다면 분명 이 근처일 터였으나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기에 누군가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코너는 거리 곳곳을 기웃댔고, 매우 협소하고 지저분한 구석 안쪽까지도 머리를 기울여 빼꼼히 살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이봐!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코너가 고개를 돌렸다. 어둑한 골목 사이로 한 남성이 건들대며 걸어나왔다. 짙은 색 정장 안에 붉은 셔츠를 받쳐입은 그는, 검은 머리에 오일을 잔뜩 발라 완전히 뒤로 빗어넘긴 모습이었다.
코너가 물었다.
"혹시 갬빗 스윙어 클럽이 어딨는지 아십니까?"
게슴츠레한 눈으로 코너의 위아래를 훑어본 남자가 대답했다.
"영업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 이런 대낮에 열 리가 없지."
"그렇군요. 그럼, 몇 시에 다시 오면 될까요?"
코너의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픈시간은 저녁 6시부터야."
“이 근처가 맞나요? 어디 있죠?”
남자는 이제 주머니에 손을 꽂고 히죽대며 코너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때까지 못 기다리겠어? 몸이 달았나?"
코너는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어딘지 위치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코너의 당돌한 요구에 남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한 쪽 손을 들어 그가 걸어 나온 골목, 건물 사이에 위치한 녹슨 철문 하나를 가리켰다.
"저 뒤에 검은 문 보이지? 이따 오면 무서운 아저씨가 지키고 있을 텐데, 쫄지 말고 곧장 들어오면 돼. 안드로이드는 입장료도 필요 없으니 도장만 찍고 바로 들여보내 줄 거야.”
그리곤 코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근한 눈길로 바라본 남자가 능글맞게 덧붙였다.
“혹시라도 막아세운다면…. 내 이름을 대. 지미의 애인이라고 하면 바로 들여보내 줄 테니."
"지미……."
코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리곤 휙 몸을 돌렸다. 지미는 싱겁도록 재미없는 그 반응에, 자리를 뜨려던 안드로이드의 손목을 잡아챘다. 코너가 머리를 돌려 실실대며 웃는 인간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기계가 성격이 이리 급해? 인간한테 얻어낸 게 있으면, 뱉어낼 줄도 알아야지. 네 전 주인이 그런 것도 안 알려줬나?"
코너가 머리를 갸웃하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혹시 돈이 필요하십니까?"
"뭐?"
"별것도 아닌 것에 정보료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요. 얼마가 필요한가요?"
지미는 미간을 조금 구겼다가, 코너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혼잣말로 중얼댔다.
“설마… 아직 해방되지 않은 안드로이드인가? 이상하다. 그럼 제 발로 이런 델 찾아올 리가 없는데. …뭐, 상관없나."
그리곤 좀 더 다가가서 속삭였다.
"그래, 정보료 좋지. 안드로이드는 돈이 많지 않을테니 인간된 도리로 조금 할인해서…. 어디 보자. 지금이 2시니까, 4시간 동안 널 사는 값으로 퉁쳐줄게. 어때?"
코너는 의문 섞인 눈으로 지미를 바라봤다.
"전 판매용 안드로이드가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은 안드로이드 매매가 금지됐으니, 사이버라이프에 문의해도 구입은 어려울 겁니다."
지미는 이런 순진한 기계를 접해본 게 처음이 아니라는 듯, 인간만의 은어에 어리둥절해하는 코너를 재밌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사이버라이프라, 오랜만에 듣네. 가만 보면 거기도 진짜 지독한 변태들만 모아놨어. 성인용 로봇이 아닌 안드로이드에도 재미를 볼 수 있는 부품을 달아놓았으니…. 인간에게 봉사하라고 만들어놓은 게 아니면, 뭐겠어. 응?"
지미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코너의 옷깃을 매만졌다. 하지만 코너는 그가 주장한 내용에서 오류를 발견했고, 친절히 정정해 주었다.
"재미를 볼 수 있는 부품이라면 성기를 뜻하는 것 같은데, 비단 생식기만이 아니라 근육과 핏줄, 그리고 뼈를 닮은 부품마저 동일합니다. 안드로이드 초기 개발자는 인간의 몸을 정확히 구현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신체 모델링을 조합하고 합성해서 기본이 되는 안드로이드의 몸체를 만들어냈습니다. 티리움의 운반 메커니즘과 생체 부품의 신호체계마저 인간의 것과 거의 흡사하죠. 또한, 회사의 판매 전략상 애초부터 다양한 체구와 크기의 성인용 안드로이드를 생산할 계획이 있었으니,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안드로이드 역시 그와 같은 몸체를 공유하게 된 겁니다. 따라서 성인용이든, 공업용이든, 가정용이든 인간이 가진 외형적 요소는 안드로이드도 전부 갖고 있죠. 원가 절감 측면에서도 그것이 이득입니다.”
코너의 기나긴 설명이 끝나자 지미는 다소 멍청한 얼굴로 입을 헤벌렸다. 묻지도 않았고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까지 주절대며 설명한 안드로이드를, 그가 다소 어이없단 표정으로 쳐다봤다. 인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너의 무표정한 얼굴은 마치 인형처럼 반듯하고 고요할 뿐이었다.
한 치 흐트러짐 없는 그 단정한 모습에, 지미는 입꼬리를 더욱 높게 들어 올렸다. 그가 한 걸음 더 다가가 코너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마주한 인간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그럼, 너도…. 인간처럼 전부 달려있고, 뚫려있다는 말이네?"
그러면서 지미는 코너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코너는 여전히 미동 없이 지미를 바라봤다.
"너처럼 귀엽게 생긴 모델은 본 적이 없는데. 어때. 나랑 같이 갈 생각은 없어? 네 부품으로 뭘 할 수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줄게.”
슬금슬금 내려오던 지미의 손이 코너의 엉덩이를 쥐었다. 그럼에도 안드로이드는 무감한 눈으로 인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런 반항도, 거부도 없자 지미는 좀 더 거침없이 둔부를 주물럭대며 다른 손을 안드로이드의 바지 버클 위로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엄습하는 날카로운 통증에 지미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악!"
그가 팔을 빼려 했으나 반대로 꺾인 손목은 몸부림칠수록 오히려 고통만 가해질 뿐이었다. 괴로워하는 지미의 시야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비쳤다. 딱딱하게 굳은 입매와 잔뜩 구겨진 이맛살이 인간의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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