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24
#24.잠입
지미가 비명 섞인 고함을 질러댔지만 그럴수록 잡힌 팔은 점점 더 이상한 각도로 틀어졌다. 남자가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짓씹듯 내뱉었다.
"평등법 제3조제1항에 따라 널 성희롱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네겐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화들짝 놀란 지미가 반대쪽 손을 내저었다.
"자, 잠깐!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피해자까지, 목격자가 셋이야. 닥치고 철창 구경이나 해."
"니들이 뭔데? 이거 놔!”
음울한 눈을 한 다른 남성이 다가와 지미의 코앞에 신분증을 내밀었다.
"F, FBI?"
노먼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수갑을 두고 왔네. 리처드, 네 것 좀 빌려줘."
퍼킨스가 품에서 수갑을 꺼내 던졌고, 노먼이 한 손으로 낚아채 지미의 손목에 채우려 했다. 지미가 격렬하게 몸을 비틀며 다급하게 외쳤다.
"난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 저 안드로이드한테 물어봐!"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퍼킨스가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동조했다.
"그래. 말해봐라, 안드로이드. 이 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코너는 지미와 퍼킨스, 그리고 노먼을 차례로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뭐?"
퍼킨스가 눈썹을 찌푸렸고 노먼도 미간을 좁혔다. 지미가 소리쳤다.
"봐! 아무 짓도 안 했다잖아!"
노먼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가 당신을 만지는 걸 우리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명백한 성범죄고, 고소 대상이에요."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닙니다. 그를 풀어주세요."
그 말에, 노먼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지미는 결박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손을 팍 떨쳐냈다. 그가 손목을 매만지며 코너를 노려봤다.
"이 인간들이랑 아는 사이야?"
노먼이 입을 떼기도 전에 코너가 대답했다.
"아뇨. 모르는 사람입니다."
노먼이 그를 돌아봤으나, 코너는 그저 차가운 얼굴로 인간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할 뿐이었다. 지미가 이를 뿌득 깨물었다.
"이 미친 자식들……. FBI 주제에 무고한 시민을 공격해? 두고 봐, 오늘 일 후회하게 해줄테니까!"
노먼이 고개를 홱 돌렸고, 매서운 그 표정에 지미는 저도 모르게 움찔해선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얼굴이 되어선 씩씩대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퍼킨스가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쳤다.
"저런 대사를 입 밖으로 내뱉는 놈은 또 오랜만이네."
코너는 말없이 서서 넥타이를 갈무리하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ARI를 거칠게 벗어낸 노먼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코너. 이런 건 당사자가 바로 신고해야 돼요. 주변에서 아무리 도와주려 해도, 피해자가 입을 다물면 우리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코너는 드디어 몸을 돌려 노먼을 마주 봤다.
“폭행한 것이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어차피 전 감각도 없으니, 별 느낌도 안 들어요.”
노먼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퍼킨스도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참나…. DPD는 직원들한테 성희롱 예방 교육도 안 시킨 건가? 설마 안드로이드한테는 뭐, 싫어요, 안 돼요, 부터 가르쳐야 하는 거야?”
정말 그런가? 노먼은 갑자기 막막해졌다. 인간의 답답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너는 지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그를 보내 준 이유가 있습니다. 저자의 체형과 말투도 그렇고, 40대 백인 남성이라는 점 모두 당신이 얘기한 프로파일과 동일합니다. 게다가 그의 숨결에서 던보 로얄 특유의 계피 향이 났어요. 또한, 그의 주머니에서 이걸 찾아냈습니다.”
코너가 노먼에게 새빨간 명함을 건네주었다. 앞면엔 검은 음각으로 갬빗 스윙어라고 새겨졌고, 뒷면에는 직함과, 본명이 아닐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름 하나가 적혀있었다.
퍼킨스가 노먼의 손에 들린 명함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가만 안 둔다길래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싶었는데. 섹스클럽의 매니저씩이나 되는 분을 우리가 건드려버렸군.”
노먼은 눈을 들어 코너를 바라봤다.
“이걸 찾으려고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그것도 있지만, 어차피 그 정도 체급의 근력 수준이라면 딱히 제게 해를 끼칠 수도 없으니 내버려두었습니다.”
코너의 말에 노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단서를 찾아낸 건 잘했지만, 다음부턴 그러지 마요. 저런 자식들은 안드로이드 신고자가 적은 걸 이용해서 진짜 제멋대로 해도 되는 줄 아니까.”
코너는 여전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노먼이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코너가 대답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할 기세였기에, 결국 마지못해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다음엔 조심하겠습니다.”
빈말일지라도 일단 안드로이드의 약속을 받아낸 노먼은 한숨을 내쉬며 명함을 주머니에 넣었다.
“클럽 매니저라니… 확실히 피해자에게 접근하기 쉬운 위치네요. 신원은 식별되었나요?“
“별명은 지미. 본명은 제임스 켐퍼. 43세로 총 21건의 전과 기록이 있습니다. 그중 3건은 성희롱으로 고소당했습니다.”
“세 번밖에 고소를 안 당한 게 놀라운걸. 숨겨진 전과가 족히 두배는 될거야.”
퍼킨스의 말에 노먼이 이마를 긁적였다.
“범인은 매번 꾸준히 시신을 처분했어. 만약 저자라면 집에 가도 아무것도 못 찾아낼 가능성이 높아. 무작정 쳐들어갔다간 증거 인멸을 시도 할 위험성도 있고. 그렇다고 또다시 범행을 저지를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래서 제가 들어가려고 합니다.”
“네?”
“상대는 안드로이드를 타깃으로 하죠. 아까 그자의 행동을 보면 명확하게 제게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잠입해서 그의 거주지든, 작업실이든 들어가 증거를 확보하면 됩니다.”
“당신이 함정수사를요? 전에 해본 적 있어요?”
“아뇨.”
몹시도 단순한 그 대답에, 노먼은 다시금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코너의 수사 능력은 꽤 괜찮았으나 이 딱딱한 기계가 작업을 거는 포지션에 들어간다고?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괜찮겠네. 한 번 해봐.”
“리처드!”
노먼이 기가 막힌 얼굴로 돌아봤지만, 퍼킨스는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가능성이 없진 않지. 아까 그 자식이 하는 꼴만 봐도 충분히 넘어갈 게 분명한데. 그리고 저번에 봤잖아. 이 녀석의 민첩성이나 힘을 생각하면 위험에 빠질 일 따위 없어.”
“그건 모르는 일이야! 피해자들도 죄다 같은 안드로이드인데, 꼼짝없이 당했어. 시스템을 건들면 속수무책이라고.”
“전 괜찮습니다.”
코너가 앞으로 나섰지만, 노먼은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 차라리 영장을 받아올 테니 그때까지….”
하지만 코너는 더 이상 인간더러 자신이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결정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어제 노먼이 한 대답을 상기시켰다.
“명령인가요?”
“네?”
“두 분 다 하지 말라면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퍼킨스 요원이 상위 책임자라는 당신의 말대로라면, 두 분이 뚜렷한 의견 차이를 보이는 지금, 그의 말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퍼킨스가 노먼을 돌아봤다.
“뭐? 그런 얘길 했어?”
노먼은 황당한 얼굴로 코너를 쳐다봤다.
“제가 언제 그랬어요? 우린 동등한 위치라고 제가 분명….”
노먼의 말을 끊고 끼어든 코너의 입에서, 노먼과 완벽히 똑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우린 그냥 동등한 관계예요. 계급도 같고. 굳이 따지자면 리처드의 경력이 훨씬 많긴 한데…. 그냥 평소엔 그의 말을 조금 더 잘 들어줘요. 저와 다르게 성격이 별로니까, 잘못 건드려서 괜히 화 돋우지 말고.’”
노먼은 입을 쩍 벌리고 안드로이드를 바라봤다. 마치 녹음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는 기계를 처음 본 노먼은 소름이 쫙 돋았다. 반면, 퍼킨스는 그런 모습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오히려 노먼을 향해 투덜거렸다.
“내 성격이 어떻다고? 젠장. 안드로이드한테 인간 동료 뒷담화를 한 거야?”
노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코너가 또다시 입을 열었고 이번엔 기계의 원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들어가는 게 가장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클럽에 들어가 그와 접촉한 후,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에 증거를 확보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수신기나 소형 카메라를 장착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영상 전송이 가능합니다. 범인에게 수상하게 보일 확률도 매우 낮지요. 제가 하겠습니다.”
코너는 또다시 예의 그 강아지 같은 눈으로 노먼을 간절하게 바라봤다. 아니, 냉정하게 보면 그는 평소와 똑같은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그 눈동자만큼은 노먼이 거절하면 잔뜩 실망할 거라는 분위기를 팍팍 내뿜었다.
노먼이 퍼킨스를 흘끔 쳐다봤다. 퍼킨스는 결정을 노먼에게 맡긴다는 듯 입을 다물었지만 그럼에도 눈썹을 까딱이며 눈짓했다. 노먼은 결국 마지못해 허락했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해요.”
코너의 눈이 반짝였고, 노먼은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전에 손가락을 치켜들고 당부했다.
“대신, 저랑 같이 연습이나 하고 들어가요. 이건 당신 생각만큼 만만한 게 아니에요. 의욕이 앞서는 건 좋지만 그럴수록 위험성도 늘어난다고요.”
"알겠습니다. 가르쳐주시면 배우겠습니다."
노먼이 다시금 입을 열려 하자, 퍼킨스가 손을 들어 막았다.
“함정수사 개론 강의를 열 생각이라면 차로 돌아가서 해. 여긴 범인의 사냥터라고.”
시계를 흘끔 본 노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빨리 움직이자. 코너가 들어간다면 우린 근처에 잠복할 곳을 찾아봐야 하니까.”
셋은 왔던 길로 돌아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몇 분 뒤, 커다란 검은 차량이 그들이 방금 지나친 골목 뒤쪽으로 서서히 들어섰다.
“함정 수사의 법적 허용 판례를 말해봐요.”
“기회 제공형과 범의 유발형이 있습니다. 합법적 함정수사는 기회 제공형이며 반대로 범의를 유발하는 것은 대다수의 경우 불법이기에 증거의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맞아요. 그러니 무리하게 그를 꾀내려 들지 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술이라도 권하면서 대화를 이어가요. 명심해요. 절대 방이나 어디든 따라 들어가지 말고, 홀에서만 얘기해야 돼요. 알았죠?”
“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미 외에도 주변 인간들의 동태에 신경을 써야 해요. 특징과 가까운 사람이 보이면 주시하고요.”
“네.”
“우리가 계속 지켜보고 있을 테지만 위험한 상황이 오면 바로….”
“네. 빠져나올게요.”
“그만해, 노먼. 귀에 딱지 앉겠어.”
장장 몇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했던 얘길 하고 또 하는 노먼에게 퍼킨스가 면박을 줬다. 노먼은 머리를 주억거리면서도 여전히 말을 끝맺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범인이 어디서 작업을 벌이는지만 알아내면 돼요. 절대 안으로 따라 들어가지도 말고, 억지로 끌고 가려 하거나 몸을 만진다면 바로 대응해요.”
“대응이라 하면?”
“두들겨 패라는 소리야.”
퍼킨스가 지루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노먼이 재차 당부했다.
“혹시라도 당신을 만지면 바로 손목을 꺾어요. 알았어요? 미친놈이 주무른다고 참지 않아도 돼요. 위치만 알아내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당신은…….”
퍼킨스가 결국 시트에서 등을 떼고 뒷좌석을 바라봤다.
"이봐. 벌써 9시야. 이러다 범인이 우리보다 먼저 움직이겠어."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퍼킨스의 타박에도 노먼은 코너를 섣불리 보내기 껄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노먼은 초조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들어가요.”
코너가 문을 열고 나가고, 노먼은 자리를 옮겨 보조석에 올라탔다. 그는 바로 차창 너머 코너의 뒷모습과 태블릿의 화면을 번갈아 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퍼킨스가 한쪽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녀석이 수사관으로서 날개를 펼치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근데 왜 자꾸 이래?”
“자기가 성희롱 당하는 줄도 모르는 기계인데, 너라면 마음이 편하겠어? 뭔 일이라도 나면 협조 요청한 내 책임이잖아.”
“그게 어떻게 네 책임이야? 저놈이 같이 수사하고 싶다고 해서 네가 도와준….”
“쉿. 들어간다.”
노먼이 팔을 휘적대며 퍼킨스의 입을 막았다. 코너의 시각 처리장치가 실시간으로 송신되어 화면에 비추고, 노먼과 퍼킨스가 각각 착용한 수신기에서 코너의 주변 소리가 들려왔다. 우락부락한 몸집을 가진 인간 가드가 코너의 앞을 막아섰다.
[휴대용 전자기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가드는 안드로이드 전용 입구를 가리켰고, 코너는 그리로 들어갔다. 생체부품 외, 다른 기기가 있는지 탐지하는 기기가 벽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감지기는 아무런 알림 없이 코너를 들여보내 줬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노먼과 퍼킨스는 모니터에 집중했다. 코너의 걸음에 따라 화면이 살짝씩 위아래로 흔들렸고, 길고 붉은 복도를 지나면서 안쪽에서 들리는 음악이 점점 더 커졌다. 이윽고 복도의 끝 모퉁이에서 코너가 몸을 돌리자, 조도 낮은 현란한 조명이 로비를 비추었다. 사람들과 안드로이드가 곳곳에서 춤을 추고 음료를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어댔고, 겉보기엔 다른 클럽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제 음악 소리는 너무 커져서 노먼은 수신기의 음량을 다소 줄여야 했다.
코너는 잠시간 두리번거리며 곳곳을 살폈다. 몇몇 사람들이 클럽의 안쪽에 난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고, 그 근처에서 다른 종업원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던 지미를 발견했다. 노먼이 수신기를 누르며 말했다.
"코너. 너무 빠르게 접근하진 말고, 저자가 당신에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요."
하지만 그럴 것도 없이, 지미가 바로 코너를 알아봤다. 그는 눈을 살풋 찡그리며 주변을 두리번댔다. 노먼이나 퍼킨스가 근처에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듯한 낌새였다. 코너는 가만히 서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고, 이내 지미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아까 그 인간들은 어디 있어?]
노먼이 할 말을 알려주기도 전에, 코너가 선수를 쳤다.
[모릅니다. 당신이 가고 나서 저도 바로 자리를 떴으니까요.]
지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코너를 샅샅이 살폈다.
[정말 네 일행이 아니야?]
그러자 다소 냉정한 코너의 음성이 들려왔다.
[전 안드로이드입니다. 법 집행관이 우리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모르진 않으실 텐데요.]
그 한 마디로 지미의 얼굴에 가득했던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럼에도 그는 섣불리 다가오지 않고 안드로이드에게 손짓했다.
[좋아. 따라와. 아까의 인연도 있으니, 내가 특별히 안내해 주지.]
지미가 등을 돌려 조금 전에 서 있던 문으로 향했다. 두 짝의 검은 문엔 둥근 유리창이 달렸고 코너의 시야로는 그저 새빨간 내부에 그 앞을 지나는 인영만 언뜻언뜻 비칠 뿐이었다. 코너는 서서히 걸음을 내디뎌 지미를 따라갔고, 노먼과 퍼킨스는 가만히 화면을 내려다봤다.
코너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소 느린 템포의 음악과 끈적이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섞여 들려왔다. 옷을 모두 갖춰 입은 사람부터 반쯤 벗은 인간, 완전히 헐벗은 안드로이드까지. 넓은 홀 곳곳에 종족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뒤엉켰고 그들은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누가 옆을 지나가고 돌아다니는지 전혀 신경을 안 썼다. 코너가 들어온 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태블릿의 화면이 지직거렸다. 이를 본 노먼이 눈을 찌푸렸다.
"전파 방해가 있는데?"
퍼킨스 역시 미간을 좁히며 모니터를 바라봤으나, 이제는 소리마저 뚝뚝 끊기기 시작했다.
"…그걸 생각 못 했네. 이런 클럽은 손님의 신상 보호를 중시하지. 아마 여기서부턴 보안 카메라도 없을 거고, 송수신도… 어려울 것 같군."
노먼이 다시금 수신기를 눌렀다.
"코너. 더 들어가지 말고 일단 밖으로 나와요."
하지만 코너는 응답하지 않았다. 노먼이 재차 수신을 시도했으나 들리지 않는 건지, 화면은 계속해서 움직였고 이제는 수신기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코너가 홀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갈수록 영상은 심하게 버벅였고, 이내 완전히 멈추었다.
기다려도 화면이 켜질 낌새가 없자 노먼은 바로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귀에서 수신기를 빼낸 뒤 재빨리 손을 놀려 재킷을 벗는 걸 보며, 퍼킨스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들어가려고?"
"응. 가서 봐야겠어."
퍼킨스가 말렸다.
"차라리 내가 갈 테니 넌 여기 있어. 안에는 휴대폰도, 총기도, 아무것도 못 가져간다고."
"아까 그 인간 경계하는 거 못 봤어? 넌 이미 얼굴이 알려졌으니 안돼."
"그럼 너는? 그 자식이 네 얼굴도 봤잖아."
"난 괜찮아. ARI를 쓰고 있었으니까."
그 뻔뻔스런 대답에 퍼킨스는 어이가 없어졌다.
"뭔 클락 켄트도 아니고, 안경 하나로 널 못 알아볼 거 같아?"
"안경이 아니라 선글라스지. 어쨌든, 적어도 맨얼굴이었던 너보단 내가 가능성이 있어."
노먼은 넥타이를 끄르고 팔을 걷어 올리며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어 최대한 밖에 있는 인간처럼 껄렁하게 보이려 노력했다. 퍼킨스가 보기엔 영 미덥잖았으나 노먼은 제 차림에 만족한 건지 곧바로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퍼킨스가 그의 어깨를 잡아채자, 노먼이 조급하게 대꾸했다.
"이봐. 난 괜찮다니까? 이럴 시간에 코너가…."
퍼킨스는 말없이 손을 뻗어 노먼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단정히 넘긴 앞머리가 부스스 흩어지고 고동빛 머리카락이 이마 위를 살짝 덮었다. 노먼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고, 퍼킨스는 매우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표정 좋네. 딱 골빈 대학생 같아. 이대로 들어가면 아마 괜찮을 거야."
노먼은 이 인간의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룸미러에 비친 자신의 머리를 슬쩍 매만지고는, 휴대폰을 옆으로 휙 던졌다.
“코너보고 연락하라 할게. 20분 안에 아무 소식 없으면 너도 그냥 내려와.”
그리곤 곧장 문을 열고 나섰다. 퍼킨스는 불안불안한 얼굴로 멀어져가는 파트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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