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25
#25. 갬빗 스윙어
지미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 코너는 전파의 방해를 느꼈다. 송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수신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럼에도 코너는 멈추지 않고 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클럽 로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지만, 이곳에도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꽤 많았다. 바 테이블까지 걸어간 지미는 바텐더에게 무언가를 주문했다. 코너는 바 옆의 새빨간 복도처럼 긴 공간을 발견했다.
“저기는 뭔가요?”
“거긴 개별 룸이야. 무료는 아니지만, 관심 있으면 데리고 가주지. 어때?”
코너는 노먼이 신신당부한 내용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저는 홀에 있겠습니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지.”
지미가 웃으며 바텐더가 건네준 잔을 코너에게 내밀었다. 코너는 옅게 희석된 티리움이 유리잔 너머로 찰랑이는 걸 바라봤다. 또다시 노먼이 했던 충고가 떠올랐다.
'그런 곳에 잠입할 땐 음식이나 음료 같은 걸 시키는 게 자연스럽지만, 남이 사주는 거라면 절대 입에 대선 안 돼요. 뭘 넣었을지 모르니까.'
코너 역시 그 말에 동의했으나 노먼이 놓친 게 하나 있었다. 인간이라면 모를까 코너의 분석 기능은 매우 극소량의 샘플만으로도 성분 파악이 가능하기에, 누가 외부 물질을 음료에 주입한다고 해서 코너에게 해를 끼칠 위험성따윈 없었다. 그러나 코너는 노먼의 말을 따를 작정이었다. 무슨 물질이건 시스템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마시지 않는 게 나았다. 그래서 코너는 지미가 건넨 음료를 도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티리움은 이미 충분히 보충했습니다.”
지미가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이걸 마다하는 안드로이드는 흔치 않은데. 요새 가격이 꽤 오르지 않았어? 돈이 좀 있나 보네?”
코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DPD에서 나오기 직전, 서에 있던 티리움 저장고에서 3개월 치 혈액을 전부 마신 코너는 머리끝까지 완벽히 채워진 연료에 몹시 흡족한 기분으로 FBI 이관 서류를 작성했었다. 그 때문에 지금은 다른 물질과 혼합된 저급품질의 티리움으로 혈관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지미는 개의치 않고 바텐더가 내민 붉은 액체가 찰랑이는 술을 받아 들고 조금 한적한 공간으로 코너를 데리고 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묻지 않았네. 뭐라고 불러줄까?”
“코너입니다.”
“코너. 넌 무슨 일을 하지?”
'절대 당신의 이력을 말해선 안 돼요. FBI는 물론이고, 경찰과의 관계성도 말하지 마요.'
다시금 코너의 메모리에 저장된 노먼의 목소리가 재생됐고, 그에 따라 안드로이드는 대답했다.
“대학 강의 보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 멋진걸? 무슨 과목을 가르치지?”
“언어와 역사 수업을 진행합니다.”
그 말에 지미가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내가 또 역사에 지대한 관심이 있지. 독립 기념일은 7월 4일, 안드로이드 해방일은 11월 11일. 맞지?“
코너는 그 사실을 모르는 미국 시민이 몇이나 될지 의아했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미가 계속해서 떠벌댔다.
”난 원래 안드로이드가 해방되기 전부터, 너희가 의식을 갖고 자유롭게 행동하길 원했다고. 고분고분한 인형보단 아무래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안기가 좋지. 안 그래? 너도 그래서 이렇게 인간들 있는 곳에 찾아온 거 아냐?”
코너는 이번에도 조용히 고개만 주억거렸다. 지미는 그를 흥미로운 얼굴로 쳐다봤다.
“인간이랑 해본 적은?”
“한다는 게 성관계를 뜻하는 것이라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용케 여길 찾아왔네. 호기심이 아주 왕성한가 봐?”
호기심? 다른 건 몰라도 그 말은 맞았다. 코너는 자신과 타 안드로이드와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했다. 수사를 위해선 모든 정보가 필요했고, 코너는 해결되지 않은 작은 의문점은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했으며 이건 그의 시스템에 내재된 가장 기본값이었다. 그렇기에 코너는 모르는 게 생길 때마다 질문해야 직성이 풀렸고, 거의 모든 인간들은 그런 그를 귀찮게 여겼다. 노먼 제이든은… 아직까진 코너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 주었지만.
코너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궁금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풀어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럼 넌 뭐가 궁금해서 온 거야? 인간과의 잠자리?”
지미가 능글대며 묻자, 코너는 고개를 가로젓곤 대답했다.
“저는 당신이란 사람이 궁금합니다.”
“뭐?”
“당신이 평소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습니다.”
안드로이드의 몹시도 솔직하고 진솔한 고백에, 지미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잠시간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내가 애인 꼬실 때 자주 써먹던 멘트인데. 그걸 안드로이드한테서 들을 줄은 몰랐네.”
지미는 의연하게 말했으나 명백히 당황한 표정이었고, 코너는 그런 그를 보며 살짝 웃었다. 이젠 코너가 질문할 차례였다.
“당신은 언제부터 이곳에서 일했나요?”
“나? 글쎄…. 원래 다른 클럽에서 일하다가 여기로 옮겨온 건 한, 5개월? 6개월쯤 됐나?”
“일하는 건 어떤가요?”
“나쁘지 않지. 이곳은 종족 간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곳이야. 인간과 안드로이드 모두에게 재미와 즐거움, 쾌락까지 안겨다 주지. 몇몇 진상만 없다면, 뭐. 나름대로 보람찬 일이야.”
“확실히 그럴 거 같군요. 그렇다면 당신도 여기서 다른 안드로이드를 만나기도 하나요?”
“이래 봬도 직업의식이 있지, 난 일하는 중엔 손님과는 자지 않아.”
“그런데 지금은 저와 대화하고 있네요.”
“그거야…. 네가 마음에 들었으니 그렇지. 아무하고 이러진 않아. 나도 눈이 높다고?”
또 다른 질문을 꺼내려 입을 연 코너의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 코너가 입을 다물고 눈을 살짝 찌푸렸다.
여긴 왜 들어온 거지? 궁금해하기도 잠시, 노먼이 눈짓으로 문밖을 가리켰고 안드로이드는 곧바로 의미를 알아챘다. 코너는 지미가 고개를 돌리려 할 참에 다시금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럼, 언제 퇴근하죠? 끝나고 따로 볼 수 있을까요?”
코너의 질문에 지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아까 낮에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제법 다른데? 어쩌다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이 되었어?”
그야, 노먼의 속성강의 덕분이죠. 코너는 그저 생각만 할 뿐 말없이 미소 지었다. 노먼은 코너에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조용히 웃으라 했고 대다수의 사람은 그걸 귀엽게 봐줄 거라 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노먼의 예상이 맞는 듯했다.
지미가 흔쾌히 말했다.
“퇴근은 12시야.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다른 인간과도 좀 놀고 있으면 끝날 때쯤 내가 친히 모시고 가주지.”
“네. 알겠습니다. 여기, 바로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코너가 최대한 나긋하게 대답했다. 지미는 더 얘길 나누고 싶어 하는 듯 보였으나 안드로이드는 곧바로 등을 돌려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코너는 아까 들어왔던 검은 문을 지나자마자 끊겼던 수신 전파를 감지하고 잡아냈다. 계속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건지, 퍼킨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이봐. 들려?]
코너는 거의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네.”
[노먼은 만났나?]
“네. 안쪽에 있습니다.”
[뭔 일 생기면 그 녀석에게 곧바로 신호를 보내.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수신 범위 안에 있어.]
“그건 어렵습니다. 문이 닫히면 수신이 끊겨요.”
[젠장. 그럼 적어도 10분마다 나와서 보고해.]
“그것도 어렵습니다. 자꾸 들락거리면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
수신기 너머로 퍼킨스가 끙, 하는 신음을 흘렸다. 그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내 수긍했다.
[…알았어. 그럼 최대한 빠르게 유인해서 밖으로 나와. 밤새 파자마 파티하면서 수다 떨 거 아니잖아.]
“12시 이후에 퇴근하고 같이 나가기로 했으니, 그때까진 지미를 주시 하며 다른 용의자가 있는지 살펴볼 생각입니다.”
[허? 이미 약속을 잡았군. 대단한데?]
퍼킨스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노먼이 지켜보고 있을 테니 넌 네 할 일에만 집중하고.]
“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와서 상황 보고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코너가 순순히 응답하자 퍼킨스는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수신을 끊었다. 코너는 홀로 들어가기 전, 시선을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넓은 로비 안에 빼곡히 들어찬 인간의 비율이 안드로이드보다 두 배는 많아 보였다. 그 때문인지, 클럽에 방문한 안드로이드는 밖에선 못 받는 관심을 이곳에서 마음껏 충족하는 듯했다. 그들도 인간과 같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수다를 떨어댔다. 그러다 몸을 만지고 부드러운 말을 속삭이는 인간이 있으면 금방 자신을 내맡겼고 그렇게 서로 꼭 붙어 검은 문 뒤로 들어갔다. 범인은 이곳 로비와 저 안의 홀, 두 곳의 사냥터 중 하나에서 활동했을 것이다. 현재로선 지미가 용의선상에 올라온 유일한 인물이지만 다른 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순 없었다.
코너가 로비로 나온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건만 인간 두 명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안녕? 혼자 왔어?”
코너가 인간을 내려다봤다. 여성, 160cm. 남성, 177cm. 둘 다 20대로 보이는 사람이었고, 범인의 프로파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코너는 아무 대꾸 없이 그들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작게 투덜대며 욕을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너는 로비를 한 바퀴 돌며 탐색했으나 이렇다 할 소득 없이 결국 다시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아까 지미와 얘기를 나누던 곳으로 돌아왔다. 지미는 홀 한 편에 위치한 테라스에서 서빙 직원과 대화 중이었다. 코너는 바 쪽으로 눈을 돌렸고,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린 채로 기대어 선 노먼과 눈이 마주쳤다. 음료를 주문한 건지, 바텐더가 노먼에게 잔을 건네주었다. 노먼은 술을 홀짝이며 무심한 표정으로 홀을 훑어보았으나 코너는 그의 시선이 계속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았다.
코너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지미가 퇴근하기 전까지 한 시간 반가량 남았으니, 그동안 가만히 앉아 있기보단 다른 용의자도 찾을 겸, 이곳에 오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심리를 파악해 보기로 했다. 파트너 없이 한 구석에 가만히 서 있는 코너에게 다가오는 인간들은 많았다. 코너는 적당히 응대해 주었으나 상대는 얘기하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를 끌어들이려 했다. 코너는 계속해서 거절했고 인간은 자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뻣뻣하게 서 있는 안드로이드에게 금세 싫증이 나서 자리를 떴다. 그럼에도 또다시 새로운 인간이 와서 그 빈자리를 채웠다.
코너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통성명을 해댔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하며 눈으로는 문을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을 살폈다. 몇은 짝을 맺어 오고, 몇은 혼자 와서 똑같이 혼자 있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에게 작업을 걸어댔다. 그중 아무하고도 파트너를 맺지 못한 사람들은 바 테이블로 가서 청승맞게 술을 퍼마셨다.
금방 지루해진 코너는 그들이 향하는 바 근처에 선 익숙한 인간의 옆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노먼도 자신처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노먼은 미소 짓고, 웃으며 앞에 선 남자와 수다를 떨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노먼은 본인에게 다가온 다른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상대하면서도 눈으로는 간간이 코너를 살폈다. 하지만 이제 노먼의 눈에, 코너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손을 올려 노먼의 허리를 쓰다듬었고 노먼은 상대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그 모습을 본 코너는 고개를 갸웃했다.
노먼이 당부한 대로라면, 그 역시 자기를 만지는 사람에게 ‘대응’ 해야 했다. 하지만 노먼은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의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남자는 이제 천천히 손을 내려 노먼의 엉덩이를 쓰다듬었고 노먼은 그를 두들겨 패거나 손목을 꺾는 대신, 부드럽게 눈웃음을 흘리며 남자에게 더 바싹 다가섰다. 코너는 다시금 머리를 갸우뚱했다.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대뜸 자신의 등허리를 만지는 느낌에 코너는 반사적으로 손을 돌려 그자의 팔을 꺾었다. 남자가 짧은 비명을 토했지만 이미 주위는 그런 류의 신음성이 가득했기에, 사람들은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남자가 소리쳤다.
“젠장, 뭐 하는 거야! 이거 놔!”
그제야 코너는 상대가 누군지 알아챘다. 지미가 코너의 팔에 매달려 끙끙대는 중이었고 코너는 손을 놔주었다.
“죄송합니다. 깜짝 놀라서요.”
코너가 곧바로 사과했으나 얼굴만큼은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지미가 욱신대는 팔을 부여잡고 얼굴을 구겼다.
“FBI 자식들이 한 짓을 따라 한 거야?”
코너는 그의 말에 부정하려다 잠깐 멈칫했다. 그런가? 아까부터 노먼이 하도 같은 말을 반복해서, 코너의 프로그래밍에 세뇌 기전이 멋대로 작용해 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몸을 함부로 쓰다듬는 인간의 손에 극심한 반발감을 느꼈고, 원래라면 결괏값을 생각한 후 충분한 연산을 거치고 행동할 만한 일에도 무작정 손부터 나가버렸다. 코너가 재차 사과했다.
“팔은 괜찮으신가요? 다치셨다면 치료비를 드리겠습니다.”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상투적인 말을 내뱉는 안드로이드에게 지미가 욕설을 지껄이며 몸을 돌렸다. 코너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11시 34분. 그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으나 자신이 실수를 한 지금, 지미의 거주지를 알아낼 확률이 극도로 낮아지기 시작했다. 코너는 어떻게든 인간을 설득해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좀 전엔 놀라서 그랬어요.”
코너는 최대한 미안한 표정과 말투를 지어냈고, 지미는 인상을 쓰면서도 결국 뒤를 돌아 대꾸했다.
“오늘만 대체 팔이 몇 번이나 꺾이는 거야? 이거 무서워서 네 몸은 만지지도 못하겠어.”
그럼 만지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코너는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그를 달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다만, 그는 한 번도 인간을 달래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 거지? 무작정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걸까? 코너는 자신이 실수하면 사과해야 한다는 정도의 상식은 탑재되어 있었으나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코너가 잘못한 건 없었다.
코너는 지미가 화가 난 이유가 어쩌면 거부당했단 사실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론했다. 그리고 거부당한 일이라면, 코너도 이미 숱하게 겪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 경관이, 형사가, 파울러 서장이 그를 사건과 수사에서 배제하려 드는 것에 답답해했고 꽤 오랜 기간 은근하게 화가 올라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제부로 그런 기분 나쁜 감정이 씻은 듯 사라진 상태였다. 코너는 이유를 생각해 냈다. 노먼. 그가 코너에게 쓸모를 알려주었고, 다른 인간이 코너를 거부하고 밀어냈을 때 그만큼은 자신을 받아주었다.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감정을 따라 하는 기계이니만큼 인간 역시 코너와 비슷한 감정 메커니즘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그렇다고 가정하면, 인간도 스스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인정을 받을 때 기분이 좋아질 것이었다. 계산을 끝낸 코너가 입을 열었다.
“지미. 제가 아직 사람과의 관계에 조금 서툴지만, 당신이라면 이해해 주실 거로 생각했어요. 계속 말했지만 오늘은 당신과 함께 들어가고 싶습니다. 아까 제 부품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알려주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자는 것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필요해요. 다치게 한 것은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
코너의 단순한 몇 마디에, 찌푸려졌던 미간이 대번에 풀린 인간은 멍청한 표정으로 웃었다. 지미는 그 말 하나로 정말 완벽히 용서한 듯 보였다. 코너가 그를 따라 미소 지었고 지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거 완전 선수네. 대학에서 일하는 안드로이드라 그런가? 말을 너무 잘해.”
지미는 몸을 완전히 돌려 코너를 마주 봤다.
“지금은 조금 이르고, 나중에 우리 집에 가면 그때 다시 용서를 빌어봐. 방금 그 말 굉장히 꼴렸으니까.”
그러곤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 정리하고 바로 나올 테니까.”
코너가 고개를 끄덕였고 지미는 눈을 찡긋하며 스태프실로 향했다. 근처에서 서빙하던 직원 하나가 그의 뒤를 따라가며 속닥였다.
“오늘은 드디어 외롭게 집에 가지 않으시겠네요? 매번 퇴짜맞아서 제가 다 안타까웠는데.”
“시끄러워. 나도 지금 얼떨떨하니까.”
인간들이 주고받는 목소리가 코너의 예민한 청각 장치를 타고 흘러들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매니저님 행동이 너무 징그럽다고. 요즘 안드로이드는 그런 걸로 안 넘어온다니까요?”
“옛날에는 먹혔어.”
“그걸 먹혔다 하면 안 되죠. 쟤들이 뭘 알기 전이니까요.“
지미가 짜증스럽게 외쳤다.
“가서 일이나 해! 방금 출근한 놈이 뭔 말이 이렇게 많아?”
그가 콧김을 뿜으며 문으로 들어갔고 직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금 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코너가 직원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퇴근한 적이 없습니까?”
직원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코너를 쳐다보곤, 대답했다.
“네. 제가 알기론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항상 늦게 집에가세요. 이곳의 매니저면서, 다른 사람은 죄다 짝을 맺는데 본인만 혼자 초라하게 돌아가죠.”
그러면서 덧붙였다.
“제가 볼 땐 저 못된 손버릇이 문제에요. 아무나 주물럭대고 만지면 누가 좋아해요?”
코너는 그의 말에 동의했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가 다른 안드로이드를 데리고 집에 간 적이 없는 게 확실한가요?”
“왜요. 이 안드로이드 저 안드로이드 다 거친 사람일까 봐 그래요? 전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요. 인간이랑 몇 번 같이 가는 모습은 봤어도 아직 안드로이드는 한 번도 안 넘어왔으니까. 아마 그들 타입이 아닌가 보죠.”
코너는 안드로이드의 대중적인 타입 따윈 몰랐으나, 확실히 안드로이드인 코너가 보기에 지미는 매력적인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코너는 누군가에게 좋고 싫음을 느낀 적이 없었음에도, 지미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인간 유형에 속했다.
“그는 주로 어떤 안드로이드에게 호감을 표합니까?”
“정확히 당신 같은 타입이요. 아니, 매니저님 본인 같은 타입이라 해야 하나? 에고가 강해서 그런가 맨날 자기랑 비슷한 머리와 눈 색을 가진 안드로이드한테 끌리더라고요. 마스터도 한 에고 하시던데, 그와는 정반대죠.”
“마스터?”
“아, 대표님이요. 매니저님과는 다르게 매번 다른 타입의 안드로이드를 낚는 데 성공해요. 어쩔 땐 인간도 여럿 끼고 들어가기도 하고. 솔직히 옆에서 보면 진짜 대단하다니까요. 지위 때문인가? 매니저님도 그리 나쁜 직위는 아닌데….”
“지금 그 마스터란 사람이 있습니까?”
코너의 질문에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매니저님을 두고 마스터한테 가시려고요? 그러지 마요. 어떻게 잡은 기회, 아니, 어떻게 한 약속인데….”
코너가 고개를 빠르게 젓고 재차 물었다.
“마스터가 오늘 출근했나요? 그것만 말해주십시오.”
“네. 저쪽에 있었는데…. 어? 어디 가셨지?”
직원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너는 그를 따라 시선을 돌려, 바 테이블을 바라봤다. 그곳엔 여전히 짝을 찾지 못해 상심한 인간들이 모여있었다.
“마스터는 출퇴근이 자유로우니까 벌써 같이 갈 파트너를 구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전 아직 5시간이나 남았…….”
코너는 직원을 무시하고 테이블로 걸어갔다. 바가 가까워질수록 코너의 인상이 살풋 찡그려졌다. 마스터는 둘째치고, 노먼이 보이질 않았다.
코너는 테이블을 빙 둘러선 사람들을 살폈다. 얼굴이 시뻘게진 인간 여럿이 술 냄새를 풍기며 홀을 구경했고 몇몇은 엎드려 잠든 상태였다. 코너가 그들의 머리를 잡아 들어 얼굴을 확인했지만 만취한 인간 중에 아는 얼굴은 없었다. 코너는 다시금 발길을 돌려 홀 여기저기에 누워 살을 맞대고 있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얼굴마저 샅샅이 돌아봤다. 긴 소파 몇 개에 벌거벗은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뒤엉켜있고, 바닥과 발코니에도 사람들이 널브러졌다. 코너는 그들 사이를 일일히 지나다니며 확인했으나 노먼과 닮은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코너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코너는 홀 내부 두 개의 화장실도 들어가 모든 칸막이를 열어젖혔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아까 자신이 지미와 대화할 때 조용히 나간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코너가 아직 여기 있는데, 아무런 언질도 없이 나간다고? 코너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범인은 안드로이드를 쫓는 살인마고, 인간은 그 타깃에 속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기이한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잠깐 계산을 돌려본 그는 이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곧바로 문밖을 나섰다.
“퍼킨스 요원. 요원님!”
코너가 송신을 시도하자마자 퍼킨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나왔군. 뭔 신데렐라도 아니고 진짜 아무런 연락 없이 12시까지 기다리게 할 줄은 몰랐….]
“혹시 노먼이 거기 있습니까?”
[아니? 걔가 널 두고 나올리가 없잖아. 왜, 노먼이 없어?]
퍼킨스의 반문에 코너가 대답했다.
“네. 바 쪽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질 않습니다.”
[안이랑 밖, 둘 다 찾아봤어?]
“일단 제가 있던 홀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로비로 나와서 찾아보려 합니다.”
[언제부터 없었던 거야?]
“노먼이 사라진 걸 알고 찾기 시작한 건 22분 전입니다. 마지막으로 본 건, 37분 전입니다.”
[37분이라고? 지미는 어디 있지?]
“좀 전까지 저와 대화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는 우리가 찾는 범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안드로이드와 집에 간 적이 없고, 목표로 삼는 타깃도 뚜렷해요. 직원의 증언뿐이지만요.”
퍼킨스는 침묵했다. 코너는 머릿속으로 지잉- 하고 울리는 휴대폰의 진동소리를 들었다. 그가 물었다.
“노먼입니까?”
[아니. 다른 사람이야. 일단 넌, 나오지 말고 상황을 계속 주시해. 노먼이랑 만나면 바로 연락하고.]
그러고 퍼킨스는 수신을 끊었다. 코너는 조용해진 머릿속을 느끼며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오류라도 생긴 듯 처리장치가 그의 머리에 경종을 울려댔다. 별일 아닐 수도 있었으나 어쩌면…, 노먼이 위험에 처한 걸지도 몰랐다. 코너는 경찰서에 일하면서 위험에 빠진 인간을 숱하게 봐왔고 실제로 그의 눈앞에서 누군가 죽는 모습도 두어 번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코너는 임무에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며 성공률을 높이려 계산을 돌리고 시스템을 수정하느라 바빴기에, 다른 경관이나 인간이 충격받고 슬퍼할 때 그에 동조할 시간적 여유도,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경우, 코너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설령 노먼에게 문제가 생겼다 한들 이는 코너의 책임도, 그가 신경 쓸 바도 아니었다. 애초에 감시하는 역할은 노먼이었지 코너가 아니었다. 노먼은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인간과 노닥거리기 바빴고 이제는 코너를 버려두고 사라졌다. 코너는 묘한 초조함과 함께 불안감이 가슴에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노먼에게 문제가 생기는 순간 코너가 DPD로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테고, 노먼만이 그걸 막아줄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코너는 바로 오늘 FBI로 넘어왔는데 벌써부터 돌아갈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코너는 노먼을 놓칠 수 없었고, 놓쳐선 안되었다.
코너는 다시금 냉정한 머리로 차분히 계산을 돌렸다. 노먼을 오랜 시간 봐온 게 아니기에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진 않았으나, 적어도 코너가 파악한 노먼은 그의 파트너와도 연락을 취하지 않은 채 멋대로 임무를 내팽개치고 사라질 인간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입구를 통해 나섰으면 퍼킨스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노먼은 분명 이 안에 있을 터였다. 코너는 빠르게 움직여 로비 속 인파를 헤치며 그와 닮은 갈색 머리가 보일 때마다 돌려세웠으나 전부 허탕을 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로비로 들어왔다가 나갔고 코너는 그때마다 입구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노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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