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정 종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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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녕하세요.(1)

“안녕하세요~”

 

손님이 오기엔 제법 이른 아침, 선하나 몽학과도 다른 어느 목소리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선하 왔어? 아침에 오느라…”

“아! 선하 삼촌이다!”

“오빠다!”

“오늘은 일찍 왔어!”

 

그 목소리가 들리자 밥을 먹던 아이들이 몸을 벌떡 일으키거나, 엉덩이를 굼실거렸다.

아이들의 몸을 움직인 이의 정체는 정선하. 한창 뭐든 할수 있을때의 건강한 청년.

 

그룹홈을 집으로 삼고 숙식을 해결하는 미마나 몽학과는 다르게 출퇴근 형태로 함께 하고있는 마음씨 착한 사람이다. 또 얼굴도 착한편인지 애들이 유독 좋아하기도 한다. 나보다 더 반기는 거 같단 말이지…. 몽학은 끝에 실없는 생각은 덧붙이며 말이 끊긴 입안이 섭섭지 않게 밥을 한술 떠 넣었다.

 

“밥 먹을 땐 얌전히 있어야지!”

 

웃는 얼굴의 선하가 저를 반기던 아이들에게 그리 말하자 숟가락을 쥐고 벌떡 일어났던 아이들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엉덩이를 붙였다. 그제야 몽학은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찍 오느라 고생했어. 미… 령 선생님이 부탁한대.”

“아니 뭐, 미령쌤이 이러는 게 자주 있는 일도 아닌데. 이 정도로 뭘.”

“그래서, 밥은 먹었어?”

 

이 나라 사람이면 당연히 할법한 인사가 툭 튀어나왔다. 이 나라에 꽤 오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들었다. 그 질문을 역시 자연스레 받아들인 선하가 입고 온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돌아오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배고프겠네! 그럼 거의 다 먹어가는 애들 있으니까 자리 나오면 같이 먹어.”

“에이 애들 학교 가고 나서 먹을게.”

 

그룹홈 일에 밥은 필수다. 원래도 인간에게 식사는 당연하지만, 온종일 애를 돌보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기운을 많이 쓰는 일이라서…. 안 먹으면 깔끔하게 말해, 못 버틴다. 뭐, 미마나 몽학은 안 먹어도 괜찮긴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선하는 평범한 인간 남성이니까.

 

“안돼 안돼, 어차피 설거지 한 번에 해야 하니까. 그냥 지금 먹어 그러다 밥 먹는 거 까먹으면 어떡해?”

“아니 누가 밥 먹는걸 까 먹….”

“아~ 삼촌 같이 먹자!”

“나, 나 거의 다 먹었어!”

 

오늘 아침 식사는 미마가 걱정한 일 없이 무사히 밥에, 국, 반찬이 놓인 식탁. 다만 살짝 평범하지 않은 점은 아이들이 밥그릇이나 국그릇을 따로따로 가진 게 아닌 대부분 학교에서 보일법한 급식판을 들고 앉아 있다는 점일까. 그래도 이곳에 머무는 아이 중 누구도 그 점에 의문은 갖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온 선하가 반가운지 같이 먹기를 조르며 입안에 맨밥을 막 욱여넣을 뿐.

 

“아이고, 같이 먹을 테니까 천천히 먹어 체할라.”

 

그리 말하며 선하는 양 볼이 맨밥으로 가득 찬 아이를 토닥인다. 그 사이 몽학은 제 자리에서 일어나 깨끗이 닦인 빈 식판에 새 밥이랑 반찬을 올렸다. 그 식판은 자연스레 부엌으로 따라 들어 온 선하의 빈손에 쥐어졌다. 같이 먹는 게 처음도 아니지만, 자연스레 반찬을 눈으로 훑은 선하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온다.

 

“어? 오늘은 소시지가 있네?”

“…미령쌤한테는 비밀이야.”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미마라면 아침부터 염분이 너무 많은 음식은 안 좋다고 했을 테니까. 물론 아이들의 기호 문제로 가끔은 올라오지만 이렇게 짭짤한 케첩에 버무려진 채, 곁들여진 파프리카나 양파같은 야채도 없이 심플하게 반찬으로 나올 일은 없다. 뭐, 있는 걸 쓴 거니까~ 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던 몽학은 선하의 반응에 표정을 굳히고(그래봤자 선글라스를 써서 안 보이지만.) 진지하게 말했다.

 

“비밀로 해주는 대가로… 소시지 한 개 더 줄까?”

“됐거든?”

 

안 통하네…. 반찬을 담은 집게를 딱딱 부딪치는 몽학을 두고. 선하는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하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식탁을 향했다. 아이들이 어느새 엉덩이를 조금씩 옮겨 빈자리를 만들곤 여기 앉아 여기! 하고 손을 흔든다. 선하가 아이 사이에 끼어 앉자. 곧 앞치마에 손을 슥슥 문지른 몽학이 뒤 이어 제 자리에 앉는다.

 

“뭔가 내 자리가 좁아졌다?”

“기분 탓이야.”

“아닌 것 같은데….”

“몽학, 미령쌤은 언제 와?”

“아마 애들 학교 가고… 한 12시?”

“그렇구나.”

 

대답을 듣고 선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끝났지만 밥을 다 먹은 아이, 민서가 선하의 곁에 앉아 있다가 몽학에게 말을 걸었다.

 

“있지, 엄마 병원 간 거라고 했잖아.”

“그렇지?”

 

몽학이 눈을 뜨고 미마를 찾는 아이들에게 한 변명이다. 병원가서 검진 받고 쉬고있어. 뭐 병원…이라는 거 빼곤 얼추 다 맞으니까. 몇 번 말했던 거라 쉽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건 또 왜? 하고 물어볼 찰나 입 주면에 케첩이 묻은 작은 입이 오물거리다 열린다.

 

“그럼 학교 가는 길에 보고 가면 안 돼?”

 

상상도 못한 발상이다. 누가 들으면 미마가 입원이라도 한 줄 알겠어. 문제는 그 말에 혹하는 아이들이 몇 있어 보인다는 거. 이러다간 손에 손 잡고 단체로 미아 되게 생겼다. 일루와, 몽학은 휴지를 뽑아 민서의 케첩 자국을 문질러 지우며 말했다.

 

“거기 엄청 멀어서 들렀다 가면 지각한다? 그러면 엄마가 안 좋아 할 텐데?”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 방은, 평범한 인간이 몽학의 도움 없이 가고자 하면 평생을 들여도 도달 할 수 없으니까. 어이구, 휴지가 떨어져진 입술이 튀어나와있다. 납득이 안 됐나보네. 아마 저 머릿속에는 보고 가면 엄마는 좋아할텐데! 같은 생각이 들어차있겠지. 저걸 어떡하나…

 

“한의원이라 가면 침 맞고 한약도 먹어야 하는데?”

“침?”

“응, 가본 적 없어? 바늘로 몸을 콕콕 찌르는 거야.”

“히익…!”

“심지어 한 개도 아니고 열 개 스무 개 찌르기도 한다?

 

입안에 음식을 넣고 씹던 선하가 밥을 목 뒤로 넘기고 거든다. 나이스 어시스트! 몽학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되도록 안하려는 주의라 (미마는 설계 자체를 거짓말을 못하도록 되어있기도 하고.) 이렇게 거들어주는 선하의 도움이 고맙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마음과 바늘으로 몸을 찌르는 고통을 마음속에서 저울질 하는 듯 보이는 민서가 히잉, 하는 소리를 내더니 포기한 듯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 제 책가방으로 향한다. 다행이다. 어디로 사라지는 일은 없겠어. 몽학이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저씨 가슴에 밥 걸렸어? 물줄까?”

“어? 응? 고마워.”

 

그 행동을 신경 써 준건지 밥풀이 붙은 플라스틱 컵이 내밀어진다. 왜인지 물속에도 밥알이 떠있긴 하지만… 물마시다 체하지 말 라고 넣었나보지. 익숙한 일이라 거절하지 않고 받아 꿀꺽 마셨다. 어차피 밥도 다 먹은 상태라 컵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말했다.

 

“다들 학교 갈 준비는 다 했어? 준비물, 체육복, 실내화 깜빡한거 없고?”

 

물론 어젯밤에도 알림장을 확인하긴 했지만. 안심을 할 수가 없으니 한번더 물어보는게 최고다. 깜빡한게 없는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아이, 자기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 학교 가기 싫다며 밥상앞에 드러누운 아이, 가지각색의 반응이다.

그중 밥상 앞에 드러누워 있던 아이, 지우가 중얼거린다.

 

“학교에 출입구 생기면 학교 안가도 되는데…”

“어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 순수한 말에 담긴 악의에 몽학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순히 학교에 가기 싫다고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폭탄이 거주지 근처에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라니. 뭐, 물론 어린아이라 이러는 건 아닐 거다. 자기 발로 선택한 운동이나 직장에도 운동/출근하기 싫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인데. 아직 왜 학교를 가야하는지도 모를 나이에 일주일에 5일을 학교에 가야 하니 얼마나 싫겠어. 그래도 가야한다. ‘의무’교육이니까. 밥을 삼킨 선하가 아이를 웃는 낯으로 달랜다.

 

“일어나야지? 옷 다 구겨져~!”

“시른데에.”

“싫어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이잉~. 학교 가기 시러어.”

 

일부러 발음을 늘리며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퍽 귀엽다. 지우의 성격상 학교에 안 갈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투정을 들어줄 상대가 있어 저러는 거니 사랑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도 저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꾸 그러면 아저씨가 가만히 안 있는다?”

“…가만 안 있으면 어떡할 거야?”

 

가만 안 있는 다는 말에 겁을 먹기보단, 약간의 불안함이 섞였지만 기대하는 시선이 향한다. 누워서 아무리 눈을 굴려봤자 몽학은 식탁 너머에 서있으니 그 머리꼭지만 간신히 보이겠지만…. 기대를 배신할 순 없지, 몽학이 부러 과장되게 어께를 푸는 시늉을 한다. 그리곤….

 

“이렇게 하지!”

“꺄하하하!”

 

쭉 뻗은 얇은 발목을 잡고 식탁 밑으로 쭈욱 잡아당겼다.

몸이 작아서 그런지 높이가 그리 높지 않은 접이식 식탁 밑으로 터널 통과하듯 쑥 지나간다. 뭐 애초에 부딫힐거면 높이면 이렇게 잡아당기지도 않았겠지만. 방바닥에서 탄 썰매가 퍽 재미있는지 지우가 깔깔 소리 내며 웃자 그 웃음에 자극받은 아이들이 나도! 나도! 하며 몽학에게 엉겨든다. 그 소란에 아직 입안에 음식이 있던 선하가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외친다.

 

“애들을 학교에 보내야지 놀아주면 어떡해?!”

“아니,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이대로 아이들한테 둘러싸여 있을 수만은 없으니,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대부분의 손을 아쉽다는 듯 떨어져 나갔지만 한 하나의 팔은 몽학을 어찌나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지 덜렁 딸려 올라온다. 목에 감긴 팔에 아이의 체중이 실리며 몽학의 목을 조른다. 입으로 자연스레 켁, 하고 졸리는 소리를 난다. 더 묵직해 진거 같은데? 역시 성장기는 대단하네. 목이 더 졸리기 전에 목에 매달린 아이, 민서의 엉덩이를 받친다.

 

“학교 잘 다녀온 사람은 아저씨가 다녀와서 썰매 태워줄게, 그러니까 출입구 어쩌고 하는 말 하면 안 된다? 말이 씨가 되는 수가 있어!”

“왜 나쁜 말이 씨가 돼? 좋은 말은 씨 안 돼?”

“그야 나쁜 말은 결집력이 강하니까….”

“그게 뭐야?”

 

어…. 질문에 반사적으로 답하긴 했는데 설명하기가 영 애매하다. 인간의 선의나 자신이 잘되길 바라는 의지의 경우는 보통 뿔뿔이 흩어져있지만 악의는 혐오와 함께 작용하기에 한곳으로 집결되기 쉽다.

 

예를 들자면 승진하게 해주세요. 라는 욕망은 개인적이고, 승진을 하길 바라는 게 ‘본인’이니 그 주체가 각자 다르다. 그렇기에 같은 소망을 가진 회사원 100명이 있어도 그 의지는 분산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이 경우에는 말이 씨가 되지 못한다. 될수도 있지만 확률이 아주 적지.

그런데 반대로 회사에 메테오가 떨어졌으면 좋겠다. 같은 욕망은? 불이나 싱크 홀, 외계 침공 등… 방식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회사에 무언가 별고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은 출근을 하는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가질 수 있다. 거기에 같은 회사에 다닌다면 주체까지 같아져버리고 말고. 이 경우에는 말이 씨가 될 수가 있다.

 

그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선의보다 악의가 잘 모이고, 그렇기에 악의에 반응한 의지력이 작동하는 빈도가 잦기 때문에 나쁜 말은 되도록 입 밖으로 내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을 이해시키기엔 바쁜 등교준비시간, 질문자는 초등학생인 현 상황은 그리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몽학이 할 수 있는 말이란 결국.

 

“설명하면 기니까 나중에 말해줄게!”

 

정도다. 물론 아이는 몽학의 이런 속내를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기 때문에.

 

“또 나중에야!”

 

그렇게 불만을 토하지만 어쩔 수 없다. 네가 인간의 악의에 대해 좀 더 이해 할 수 있을 때, 다시 의문이 생겼을 때는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그러니까. 부루퉁해지려는 아이의 등을 살짝 떠밀며 재촉하는 수밖에 없다.

 

“빨리 빨리! 양치했어?”

“가글 하면 되는데…”

“안 돼, 구석구석 양치하고 혀까지 닦아야지!”

“다녀오겠습니다!”

“응, 민아 잘 다녀와!”

“나도 누나랑 같이 가고 싶은데….”

“민서는 조금만 더 있으면 학교 갈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릴까?”

 

이런, 부루퉁한 아이가 한명 더 늘었다. 제 누나를 따라하고 싶은지 포크나 교정용 젓가락이 아닌 일반 젓가락을 쥔 아이, 민서의 입술이 오리처럼 튀어나왔다. 그새 또 소세지를 집어먹었나? 방금 닦아준 케찹이 또 묻어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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