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정 종사자들
3. 안녕히 주무세요! (3)
“어서 오세요!”
“다녀오셨어요!”
“잘 주무셨어요?!”
“오냐, 잘 잤다.”
익숙한 문을 열고 돌아오자, 나갈 때 그랬듯 다양한 인사들이 몽학을 향해 날아왔다. 그중 나갈 때 반응했던 것과 같은 계통의 인사를 돌려주었다.
“바보야! 잘 주무셨어요가 아니라 안녕히 주무셨어요야!”
“그건 잘 때 쓰는 말이잖아!”
“나도 알거든! 일단 알려주는 거잖아!”
“지금은 다녀오셨어요가 맞아! 다녀오셨어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매일 같이 지내지만 신기하다. 자기들끼리 인사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이미 신발도 벗고 손을 씻으려 화장실로 가려는 뒤통수에 대고 한번 더 인사를 하기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 다녀왔다.”
답을 들었지만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지 몽학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진로를 방해하다가. 몽학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자 열어둔 문을 붙잡고 기웃댄다. 어이구 그러다 문 빠질라. 그나저나 뭐지?
“근데 뭐 사왔어요?”
“아.”
맞다, 나갈 때 살 거 있다고 하고 나갔었지. 깜빡했다. 이래서 일이 갑자기 터지면 여러모로 귀찮다니까. 제가 깜빡했지만 몽학은 자연스럽게 '출입구' 탓으로 돌리며 부러 장난기를 끌어올려 말했다. 물소리에 목소리가 섞인다.
“이거저거 구경하다가 까먹어버렸네~”
“뭐야~ 과자 사오는 줄 알았는데”
“나는 피자.”
“삼춘도 바보다!”
어느새 화장실 밖에 옹기종기 모여든 아이들에게서 우우, 하는 비난이 날아온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세면대를 잡고 허리를 푹 숙여 사과하자 재미있는지 킥킥 웃는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뭐든 살아서 반응을 하는 게 제일이다. 방금 보고 온 세계처럼 이 아이들이 굳어서 단순한 장식처럼 배치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턱에 힘이 들어가지만 아이들 앞에서 딱딱한 낯을 할수는 없으니 빙그레 웃는다.
“요놈들!”
“앗 차거!”
“도망가!”
그리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물기 젖은 손을 튕기자, 얼굴에 와닿는 물방울에 토끼 떼처럼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킬킬 웃으면서 수건에 손을 문지르고 있는데 아이들의 이리저리 튀는 높은 목소리와 다른,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몽학을 향한다. 헷갈릴 수 없는 목소리, 미령이다.
“식사 준비해야 하니까. 손 다 씻으면 부엌으로 와요.”
“응, 어… 공부는?”
당연히 같이 해야 하는 일이긴 한데. 평소보다 시간이 조금 이르다. 의문을 가짐과 별개로 입으로는 순순히 긍정한다.
뭐, 부르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나저나 애들은 괜찮나? 싶어 되물었더니 머리를 모으고 숙제를 하던 아이들이 말한다.
“둘이서 할 수 있어!”
“흥, 삼촌 없어도 우리 둘이 더 잘해요”
가기 전까지만 해도 둘이 붙어있으면 곧 싸울 것 같더니, 그 새 어떻게 마음이 달라진 건지 모르겠다. 여튼, 그룹홈 대장님이 부르면 가야지. 손을 공룡처럼 앞으로 내밀고 미령의 뒤를 따라간다. 좁지는 않지만 7식구가 적당할 뿐. 엄청 넓은 집도 아니기에 화장실에서 나와 몇 발짝 걷기만 해도 바로 부엌이다. 먼저 주방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열어 이미 준비된 재료를 꺼내는 미령의 질문이 몽학을 향한다,
“나간 이유, ‘출입구’ 때문이었죠?”
“어, 응, 입구였어.”
그리고 미령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일반적인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면서 나오긴 힘든 말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하고 당황할 법도 하지만 질문을 들은 몽학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방금 부엌으로 따라오라는 말을 들은 수준이었다.
“그건 이미 안전 안내 문자로 왔어요. 아이들에게 해가 갈 차원은 아니었나요?”
“그래? 빠르네. 아니었어. 일부러 닫아야 할 문도 아니라 며칠 후면 알아서 사라질 거야.”
“알겠어요.”
둘의 대화는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출입구’를 마치 의사에 따라 닫을 수 있는 평범한 문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과, 그 말이 허황되었다 취급하는 게 아닌 아주 당연한 진실을 듣는 듯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둘의 대화는 목소리를 낮추거나 비밀얘기를 하는 기색도 없이 먹구름이 낀걸 보니 곧 비 오겠다. 그렇군요. 우산을 챙겨야겠네요. 따위의 일상대화를 하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뭐야?”
“계란찜이요. 애들이 좋아하는 거 하나쯤은 해줘야죠. 야채 좀 다져주세요.”
“아싸 계란찜~”
몽학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깔끔히 정리되어있는 도마와 칼을 꺼내든다. 얼마나 다져? 같은 질문은 필요하지 않은지 준비된 재료를도마위에 올리고 곧장 칼을 놀렸다. 타다닥, 평소보다 조금 빠른 리듬으로 칼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미령은 깊은 그릇에 계란을 깨 넣는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몽학은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막지 않으며 야채를 다졌다. 당근 했고, 다음은 애호박. 그 모습에 할 일이 없는지 거실에서 폰을 만지며 빈둥거리던 아이, 민아가 다가와 묻는다.
“아저씨는 요리하는게 재밌어?”
“응? 왜? 재밌어 보여?”
“요리할 때마다 노래하니까.”
“그야 너희들이 맛있게 먹어줄 거 생각하면 당연히 즐겁지!”
“맛있게 안 먹으면?”
“아저씨 마음이 슬포….”
“악 소름끼쳐!!”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요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시간이다.
다 같이 밥을 먹고, 누구야! 다 먹은 그릇에 물 받아 두라고 했잖아!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노닥거리다보면 어느새 밤이다. 안녕히 주무세요. 라는 인사가 어울리는 시간. 각 방마다 이불을 깔고 몽학과 미마는 아이들과 함께 몸을 누인다.
“안녕히 주무세요!”
“잘…녕히 주무세요!”
“오, 이번엔 제대로 말했네? 잘했으!”
“으히히히!”
“다들 잘 자고. 좋은 꿈꿔요.”
집의 불이 꺼진다. 물론 당장 모두가 잠들지는 않는다. 몰래 핸드폰을 하려고 한다던가, 컴퓨터를 하려는 욕망을 잠옷사이에 감춘 아이들은, 잠든 척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시도는 “삼촌/이모 안잔다.” 이 말에 무산 될 예정이다. 이곳엔 잠을 잘 수 없는 존재와 잘 필요가 없는 존재가 있으니까.
도심에 있는 집은 불을 다 끄더라도 밖에서 들어오는 인공적인 조명탓에 완전한 암흑이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잠든 집의 명도는 점차, 눈치채기 힘들게 서서히 낮아지다. 지금은 아무런 빛이 들지 않는 시골의 밤처럼 깊어졌다. 눈을 감든 뜨든 비슷한 풍경이 되었을 즈음. 어디선가 별빛이 흘러내려 어두운 천장에 별자리를 수놓는다.
방에 우주가 나타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잠자리에 누워있던 미령이 몸을 일으킨다. 어느새 일어나 있던 몽학이 가구도, 창문도 없는 벽에 손을 올리자. 낮에 나타났던 ‘출입구’과 비슷한 형태의 문이 나타난다. 다만 갑자기 나타난 이 문은 ‘출입구’처럼 발광하지도. 지나치게 거대하지도 않다.
자, 어서오시죠.
문을 연 몽학이 웨이터처럼 장난스럽게 허리를 숙이지만. 미령은 그 행동에 반응하지 않고 익숙하게 문 안으로 들어선다. 미령이 들어선 후, 몽학이 문을 닫으려는데 비몽사몽간에 가느다랗게 눈을 뜬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몽학은 다급하게 문을 닫지도, 서둘러 모습을 숨기지도 않고. 그저 빙그레 웃고는 문을 닫았다.
문을 통과해 들어온 곳은 벽지부터 바닥, 조명까지 아이들이 잠들어있던 방과 같은 구석이 한군데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구석을 찾자면 어둠에 덮혀있다는 점일까. 어둠 아래에 온갖 전선과 부품이 자신을 과시하듯 돌출된 이상한 방. 그 안에 들어오자마자 입을 다물고 있던 미마가 입을 열었다.
“방에서 이동하다 아이들이 보게 되면 어떡합니까?”
“주원이가 깨긴 했더라.
이전의 부드러운 말투와 다르게, 부드러운 말투와 억양이 사라졌다. 여전히 상냥한 목소리긴 하지만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 말투. 아이들이 들었다면 미령이 맞는지 의심할 정도지만 오히려 몽학에게는 이쪽이 익숙하다. 오히려 아이들한테 쓰는 말투는 좀 부담스럽다고 해야하나? 그 어투로 말을 걸면 자기도 모르게 과민 반응을 하게 되니까.
“…괜찮은 겁니까?”
단 둘이 있을때 그나마 감정이 섞이는건 아이들과 관련된 일 뿐이다. 답지 않게, 아니 어쩌면 그 답게 걱정하는 모습에 어께를 으쓱하곤 말한다.
“그래서 별빛을 띄워뒀잖아 꿈이라고 생각할거야. 문을 열고 나가면 어디 가는지 의심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벽에 문을 열고 나가면 꿈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습니까.”
“응, 인간의 뇌는 무마하는 능력이 뛰어나거든…. 됐다.”
어둠은 둘의 시야를 방해하지 못하는지 두 존재는 대화를 이어가며 익숙하게 방에 쌓인 복잡한 전선과 기기를 이리저리 옮기고 건드린다. 곧 장치가 작동하며 방의 벽지처럼 보였던 톱니바퀴들이 도미노처럼 순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곧 군데군데 빛이 들어오며 방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기계가 완전히 가동한다. 낮게 우우웅—하는 소리가 울리지만 소음은 크지 않다.
“좋-아. 그래도 많이 익숙해졌다! 그치? 예전보다 빨리 했지?”
“지난번에 비해 오차범위는 1.54초 정도. 객관적으로 판단했을때 그리 빠르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빨라지긴 했잖아? 애들한테 할때처럼 칭찬 좀 해줘!”
몽학은 진심으로 칭찬을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말투를 미마에게 그대로 사용한다. 그런 그를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기에 미마는 부러 에너지를 사용해 몽학의 투정에 답하지 않고. 방 중앙에 위치한 투명한 캡슐 안으로 향했다.
미마가 캡슐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 입구가 닫히며 안에 오묘한 빛이 차오른다. 잠을 두렵지 않도록 밝혀주는 무드등 정도의 밝기. 빛이 캡슐 안을 가득 채우자, 곧 캡슐 위에 연결될 수많은 기기중, 패널에 적힌 기묘한 문양들이 종이를 넘기듯 넘어간다.
이번엔 얼마나 걸리려나.
달칵달칵, 그런 소리를 내며 넘어가던 문양들은 특정 그림을 나열하고 멈췄다. 그 그림를 눈으로 읽은 몽학이 중얼거린다.
“여덟 시간… 정도인가? 이번엔 좀 늦게 끝나네. 애들 학교 갈 시간엔 없겠다.”
그 문양는 글자, 그중에도 숫자였던 모양이다. 이계의 글자로 적힌 시간이 정해지자. 곧 캡슐 내부의 다른 장치들이 작동을 시작한다. 안에서 수많은 기기들이 나오며 미마의 피부에 있는 줄도 몰랐던 이음새를 벌려낸다.
벌어진 틈으로 일반적인 장기와 근섬유, 뼈, 척수에 연결된 신경, 혈관, 지방이 해야 할 일을 완벽히 대신해내고 있는 전선으로 추정되는 색색의 선 뭉치들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무언가, 몽학의 눈으로는 완전히 읽어내기 힘든 복잡한 장치들이 내부에 보인다.
몸의 여러 부위가 분리되어 그 내부를 드러내고 있는 와중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몽학도, 미마도 그저 평온할 따름이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미마는 몇 분이 지나도록 캡슐 앞을 지키고 있는 몽학에게 말을 건넨다.
“혹시 몰라 선하에게 빨리 와달라 미리 부탁해 두었습니다. 아침은 반찬이 있으니, 밥을 해 아이들에게 먹여 보내시길 바랍니다.”
“알겠어.”
“제가 없으니 밥 말고 다른 걸 먹자 조른다 해도 갑자기 빵을 사오거나 하지 마십시오. 몽학은 응석을 너무 받아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 은근히 응석 받아주는 건 너도 그렇거든?”
“…….”
“또 또 할 말 없으니까 입 다물지!”
흥, 하고 콧바람을 강하게 내쉰 몽학은. 평범한 인간의 몸에서 날 소리와 다른 소음을 자아내는 캡슐 안을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말을 건넸다.
“애들이 깼을 때 둘 다 없으면 안 되니까. 난 이만 갈게.”
“제가 없으면….”
“병원 갔다고 말할게. 늘 그렇게 했잖아?”
“네. 부탁드립니다.”
“그래 걱정 마.”
이제 더 있을 이유가 없다. 들어온 문을 열고, 그대로 아이들이 잠든 방으로 돌아가기 전 몽학이 미마가 아이들에게 건넸던 자기 전 인사를 다시 돌려주었다.
“잘 자. 좋은 꿈 꿔.”
대답이 없다. 하지만 ‘저는 잠을 자지도. 꿈을 꾸지도 않습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게 어디인가?
몽학은 미소를 지은채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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