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정 종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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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녕히 주무세요! (2)

단추를 채우지 않은 요란한 색감의 셔츠, 일반적으론 알로하셔츠라고 불리곤 하는 옷이 거친 바람에 휘날렸다. 자연스레 부는 바람은 아니고, 차원에 간섭이 일어날때 주변의 대기가 먼저 반응하며 일어나는 공기 순환이었다. 몽학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무시하고 시야를 어둡게 방해하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이제야 주변의 색채가 또렷해졌고, 열리기 직전의 일렁이는 ‘출입구’가 또렷하게 보였다.

 

“어디 출입구 열리려는 차원 있어?”

 

거친 바람이 귓바퀴를 때리는 소음만 가득할 뿐 몽학의 근처에는 인간도, 통신장비도 존재치 않는다. 의미없는 혼잣말처럼 보이지만 그 끝에는 확실한 상대가 있었다. 곧 수많은 대답이 몽학에게 전달된다.

 

“…없어? 진짜로? 귀찮다고 감 무시하고 거주공간에 틀어박혀서 안보고 있는 건 아니지? 알겠어.”

 

쯧,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출입구는 아직 열리려면 좀 남은 상태, 대피하는 민간인들과 출입구를 향해 다가가는 군인들이 보인다. 몽학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이번에는 CCTV를 살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하늘에서도 전투기와 방송사의 헬리콥터가 오고 있는 상태. 대처가 빠르다. 예전에는 다음날은 돼야 신문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 전에는 며칠은 지나서야 겨우 들었고… 한달은 지나야 알려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참 많이 발전 했어. 인간을 향해있던 시선이 다시 불안하게 일렁거리는 출입구를 향했다.

 

“잠든 차원 아니면 불청객들….”

 

곧 두 가지 호칭을 혀 위에서 굴린다. 어느 쪽이든 달갑지 않다. 다만 둘 중 하나로 열릴 거라면 차라리 전자가 낫다. 후자는 호칭으로 알 수 있겠지만 초대하지 않았고 초대하고 싶지도 않은 이들이니까. 인간에게든 몽학에게든.

 

***

 

건물 아래, 군인을 인솔하던 중대장은 불길하게 일렁이는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빛이 뭉치며 아지렁이처럼 공기가 일렁인다 곧 열릴다는 징조.

그가 처음으로 군복을 입은 후 꽤나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명령에 따라 대피자를 통솔하랴, 바리게이트를 치랴. 하면서도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에 우왕좌왕하는 기색이 보이는 젊은 군인들과 다르게. 그는 담담했다. 저 출입구를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출입구.

입구인지 출구인지는 열리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이 차원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속담의 모티브. 인류의 재앙이자 선물이 눈앞에서 다시 아가리를 벌리려 하고 있었다. 괴물이 쏟아져 나오는 출구出口인가 아니면 인류에게 새로운 세계와 교류를 허할 입구入口일 것인가? 긴장감에 절로 마른 침이 목 뒤로 넘어갔다.

 

“민간인 대피 완료했습니다!”

“그래, 적어도 ‘출입구’은 몇 십분 안에 열린다. 긴장 풀지 말고 대기하도록!”

“충성!”

 

쯧, 못마땅함이 담아 혀를 마찰시키는 소리가 들린다. 중대장이 아니다. 한 병사의 목소리였다. 아마 짬 좀 찼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모양인 목소리. 나름 제딴에는 소리를 낮춘 목소리일 텐데도 군단장의 귀에 들어온다.

 

“야. 우리가 이러고 있는 동안 자각자들은 뭐한데?”

“그, 그 '입구'인지 '출구'인지 확인되기 전까지는 출동 안 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출구여도 안 오잖아. 그건 뭔데?”

“그, 군 화력으로 처리 가능한 몬스터의 경우에는 자각자를 호출하는 것보다 군대 선에서 처리하는 게 빠르기 때문이라고…”

“오~ 잘 아는데? 너 사회에서 자각자들 있는데서 일했다고 했냐?”

“네, 넵! 그렇습니다!”

“야 그럼…”

“거기 조용히!”

 

어디까지 하나 두고 봤더니 수다가 끝도 없이 이어질 기세다. 소리를 치자 그제서야 고개를 ‘문’으로 돌린다. 하여간, 나라를 지키는 일인데도 요즘 것들은…. 

그렇게 꼰대라고 들을 만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지만, 직업상 그런 말을 들어본적 없는 중대장은 한숨을 쉬고 자신도 ‘출입구’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헉!"

그때. 일렁이던 ‘출입구’가 명확한 형태를 갖고 움트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숨 들이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절로 입술이 마른다. 다만 내색하지 않고 모두에게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외친다.

 

“‘출입구’가 열린다!!”

 

그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곧 마지막으로 강풍이 한번 불더니, 공기가 잠잠해지며 네모난 직사각형의 형태로. 희게 일렁이는 빛의 통로가 완성되었다. 높이는 체감 10m쯤 일까. 저정도면 일반적인 수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완전히 열린 '출입구'에서는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입구'다. 턱을 딱딱하게 굳힌 중대장과 다르게 낮은 한숨이 군인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일반 군인들이 할 일은 사라진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군이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다.

 

“개척병!”

“네!”

 

그리 외치자 뒤쪽에서 여러 명의 인기척과 함께 무언가에 막힌 먹먹한 대답이 들렸다. 얼룩덜룩한 전투문양을 입고 있는 몇 명의 군인들. 다만 그 형태가 일반적인 군복과는 다르다. 산소탱크를 등에 매고 다양한 재질을 몇겹이나 겹쳐 총 칼의 무력보다는 외부 자극을 우선 방어한다. 군복이라기 보단 우주복에 가까운 형태, 둥근 헬멧을 쓴 병사들이 느리게 걸어 나타난다.

 

“카메라 작동하나?”

“넵!”

“새로운 세계로 출동하도록.”

“충성!”

 

개척병. 

새로운 세상을 탐색하고 개척하는 군인. 이들은 입구가 열렸을 때 넘어가는 특수보직이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군 생활 동안 출동하게 되는 일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군생활중 한두번일까. 그렇기에 보통은 이름의 다른 뜻에 어울리게도 땅을 개척하는 일을 주로 맡는다. 이제야 자신들의 보직에 맡는 일을 하게 된 이들이지만. 초심자나 다름없다.

 

‘시발, 왜 하필 나 곧 전역하기 전에 이딴 입구가 열리냐고…!’

 

미지의 세상 앞에서 겁을 내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세 명의 군인중 제일 앞장선 개척병또한 그랬다. 멋지게 경례하고 뒤를 돌았지만 솔직히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가기 싫다. 그냥 자각자들이나 보냈으면 좋겠다. 안 갈수도 없으니. 그는 속으로 욕을 쏟아내며 다른 세상으로 연결된 통로를 향해 발을 떼었다.

 

“흡!”

 

눈이 부시지는 않았지만 긴장 탓에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공기로 된 막을 통과하는 듯한 약간의 반탄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그 곳은 낯선 천장…이 아니라 이세계였다.

이세계인걸 쉽게 눈치 채긴 쉽지 않았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건 푸르른 숲이나 거대한 나무, 달이 두 개 뜬 보라색 하늘과 아름다운 유럽풍의 성 따위가 아니라 이동하기 직전까지 있었던 장소와 흡사해 보이는 도심속이였으니까. 정말 이세계가 맞나? 의아하지만 이럴 때는 메뉴얼대로 확인한다. 적힌것만 읽어봤지 실제로 해보는건 처음이지만….

 

“통신보안. 통신병, 들립니까?”

“…….”

 

잠시 귀를 귀울여보지만 답이 없다. 이쪽에서 보낸 전파가 닿지 못한다는 뜻. 그렇다 는건 통신장치가 고장났거나 이세계라는 뜻,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습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러면 이번엔 같이 넘어온 통신장치가 고장난게 아닌지를 살펴야한다.

 

“3번 개척병. 뒤에 '입구'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장치에 문제는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세계가 확실하다. 주먹을 몇번 쥐었다 피고, 몇 발짝을 더 나아간다. 이세계가 맞더라도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저들이 인간에게 적대적일 것인지. 아니면 호의적일 것인지 적대적이라면 당장 도망쳐야 하지만 우선….

 

“좀 더 진입합니다.”

“넵!”

“넵!”

 

헬멧에 달린 카메라에 좀 더 많은걸 담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 마침 앞에 멈춰져있는 물체가 시선에 잡혔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탈것으로 추정되는 물체. 바퀴로 보이는 둥근 물체도 달려있으니 자동차나 다름 없어보인다. 허공에 떠있긴 하지만.

탈것을 두고 대피 한 건가? 그렇다기엔 길이 막혀있지도 않고, 심지어 안에 누군가 타고 있어 보인다. 이해 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이해하려고 이곳에 온게 아니다. 느릿하게 걸어 그 물체 옆으로 다가간다.

 

“야, 이거 허공에 떠있다. 이제야 좀 이세계 같…헉!”

“무, 무슨 일이십니까?!!”

“야, 여, 여기….”

 

그 안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보통의 운전자처럼 무표정을 낯에 띄운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 그 생김새도, 복식도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사람의 형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탈것에 운전자가 타고 있다는 건 이렇게까지 놀랄 문제가 아니다.

 개척병이 눈에 담은 사람과, 헬멧에 장착된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동일했다. 당황해서 몸을 들썩이자 액정속 영상이 흔들렸지만 운전자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당연한 일이다.

"안, 안 움직이잖아…?!"

"네?! 죽은겁니까?!!"

"나도 몰라!"

차 안의 사람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그저 가만히 있는 것과는 다르다. 눈꺼풀이 있는 생물이면 마땅히 있어야할 눈 깜빡임이나. 숨을 쉬면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가는 등의 생물이 본능적으로 해야 할 움직임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야 눈치 챘지만 이 사람이 타고있는… 자동차로 추정되는 물체는 그 자리에 세워 둔 게 아니다. 차 뒤에서 희뿌연 연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개척병들이 걸어서 따라 잡을 수 있던 이유가 있다. 

연기가 차 안의 운전자와 함께 허공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다급하게 고개를 들자, 하늘을 날고 있는 무언가가 보인다. 하지만 그 또한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은 탁한 푸른색의 하늘을 배경으로 삼은 구름도, 새도, 비행 물체도… 개척병에 눈에 담기는 그 어느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다… 움직이질 않아?”

 

그러고 보니 이정도로 거대한 도심 속이라면 자연스럽게 들려와야할 일상 소음이 어디에도 들려오지 않는다. 들려오는 소리라곤 통신도구를 통해 들려오는 같은 개척병의 숨소리뿐이다.

거대한 디오라마 속에 들어온 불쾌한 기분에 저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이게 뭐야, 이상해.

본능이 외친다. 여긴 이상하다고,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출입구’가 있는 뒤를 힐끗 돌아보지만 목숨의 위협이 없는 이상 몇 분 이상의 다양한 영상을 담아가야 하는 게 철칙이다. 이를 악물고 발을 뗀다. 그동안 열렸던 차원중에 이런 차원이 있단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시발, 여긴 대체 뭐야…!”

 

***

 

“또 여기야? 예전보다 열리는 수가 늘어난것 같은데….”

 

몽학은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군인들의 말과는 명확히 상충되었다. 마치 몇 번이나 이런 곳을 겪어본 투. 하지만 몽학의 근처에는 이의를 제기할 상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몽학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아가는 군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인간들이 와도 별건 없을 텐데… 고생이 많네.”

 

몽학은 군인과 함께 넘어온 상태였다. 다만 있는 위치는 조금 달랐다, 그가 서있는 위치는 자재를 옮기는 중인 크레인 위니까. 한 벌짝을 내딛을 때마다 두리번대며 주위를 확인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무서울 만 하지.

 

몽학은 고개를 돌려 자신이 올라탄 크레인의 운전사를 본다. 일반적으로 맨몸으로 크레인 위에 나타난 사람을 보면 놀랄 만도 하지만, 바쁘게 조종기를 움직이는 운전사에게는 반응을 기대할 수 없었다. 밑의 군인들이 본 운전자와 같은 식으로 멈춰있었으니까.

"안녕?"

이렇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봐도 이쪽으론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매정하네, 실없는 소릴 하고는 다시 시선을 옮겨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쌓인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건물, 그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창 너머를 바라본다. 그 안에도 역시 사람이 있다. 이 거대한 도시가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저마다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모두가 멈춰있으니까.

어디를 바라보더라도 형태가 다를 뿐 몽학의 시선이 닿는곳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이 세계의 모든 인간들은 눈을 뜨거나, 감거나, 재채기를 하거나, 돈을 계산하거나, 상대를 향해 싸대기를 날리거나, 힘들게 작업한 파일이 컴퓨터 오류로 날아가기 1초전 저장 버튼을 누르려는 모습으로 고정되어있었다. 

높게 쌓여가고 있는 고층 건물, 건물의 재료를 올리는 몽학이 올라선 높은 크레인, 화려한 네온사인이 장식된 간판. 가공하기 힘든 광물로 전체를 장식한 벽면까지. 현재 지구에서는 기대하기 힘들 수준이었다. 몇백년은 지나야 따라잡으려나? 그 정도로 눈부신 발전의 위업이었고, 그 위업의 정상에서 이 세계는 멈춰 있었다.

 

잠든 차원, 몽학이 바깥에서 중얼거린 이름이지만. 사실 이 차원은 잠들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에 의해 멈춰진 세계일뿐. 그래, 미니어처처럼.

 

미니어처 인간을 위해 아름다운 건물을 짓고, 탈것을 조립하고, 철도를 연결하는 존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저 완성된 세계에 생동감을 넣을 장식품으로 이리저리 배치할 뿐이지.

생명이 도구로 사용되어버린 세계. 몽학이 특히 불쾌해 하는 부류였다.

 

“진짜 별로다.”

 

몽학은 느릿하게 팔을 움직여 머리를 긁적였다. 바깥에선 요란하게 흩날리던 머리카락이 이곳에선 몽학이 손댄 그대로 고정되었다. 모든 게 멈췄다는 건 인간이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산소조차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인간이 멈춘 차원에 들어설 땐 아래쪽에서 빨빨대는 군인들처럼 산소통을 챙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질식해서 죽으니까. 하지만 의미모를 감상을 남긴 몽학의 차림은 이 차원에 들어오기 전과 변함이 없었다. 몽학의 시선 끝에 있던 군인 몇 명이 더 나아가길 멈추고 가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오. 그래도 오늘은 좀 일찍 돌아가네?”

 

뭐, 그야 교류하고 대화할 존재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 그럼 몽학도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의미가 없다.

사고는 안나서 다행이네. 그리 생각하며 크레인 밖을 향해 가볍게 다리를 뻗는다. 추락해야 마땅할 동작이지만, 발밑에 투명한 바닥이라도 있는지. 허공을 겅중겅중 뛰어 희게 빛나는 '입구'를 향해 나아간다. 몽학이 개척병과 입구를 통과해 돌아가자. 잠든 차원에 살아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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