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후에

연습용 1차 단문

헤어진 후에 머리를 자르는 건 조금 식상한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긴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그 사람이 떠오르곤 했으니까. 그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르지 못하고 길러 온 것이니, 그와 헤어진 지금은 잘라 버리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러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잘라 버리자, 마음먹고 미용실로 들어갔다. 짧게 커트 쳐주세요, 자못 결연하게 들릴 정도로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길고 머릿결도 좋은데 아깝다며 울상을 짓는 미용사를 보니 어쩐지 마음이 약해진다.

내가 주저하는 게 보였는지 미용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거라면 그냥 어깨 정도까지만 자르는 게 어떻겠냐, 여기까지만 오는 단발은 어떻느냐 하며 타협을 시도해왔다. 그에 나는 다시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는, 아뇨, 숏컷으로 부탁드려요,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한다. 지금 스타일이 굉장히 잘 어울리시는데, 후회 안 하시겠어요? 걱정스럽게 묻는 미용사에게 괜찮아요, 대답한다. 괜찮지 않을 것이 뭐가 있겠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뿐인데.

그러나 잘려나가 바닥을 뒹구는, 내 것이었던 머리카락과 거울에 비친 짧은 머리를 보니 어쩐지 심란한 마음이 들기는 한다. 목 언저리가 허전한 것이 영 어색하다. 잘려나간 것이 꼭 사랑이라도 되는 양 거울에 비친 얼굴이 미련으로 가득해 보인다. 생각만큼 후련하거나 시원한 기분만은 아니었다. 어머, 짧은 머리도 잘 어울리시네, 빈말인지 진심인지 모를 미용사의 칭찬을 대충 흘려들으며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도 않았다.

곧 비가 오려는 듯 하늘이 어둡고 먹구름이 잔뜩 꼈다. 가방에 우산이 있었던가, 열심히 뒤적거려 보지만 나오는 것이라고는 볼펜과 손거울과 언제 받은 것인지 모를 영수증 무더기 뿐이었다. 허탈해져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일기예보를 꼼꼼히 챙겨 보며 우산을 챙기는 건 내가 아닌 그 사람이었고, 갑자기 비가 내리는 날에는 언제나 그 사람이 곁에 있었고, 그래서 나는 굳이 우산을 챙기지 않아도 빗방울 하나 맞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가방에 우산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가끔 이렇게 혼자 우산이 없는 날이면 항상 그 사람이 데리러 오곤 했는데, 그는 이런 나를 보며… 이런, 잊으려고 머리까지 잘랐는데, 또 그 사람 생각을 하고 있었네.

가방을 닫고 고쳐 매었다. 집이든 근처 카페든 실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비가 쏟아지지 않길 바라며 걸음을 서둘렀다. 헤어진 후에 머리를 자르고 비를 쫄딱 맞은, 미디어 매체에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차인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