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정 종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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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히 주무세요! (1)

창작 소설 by 정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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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스갯소리로 육아는 인간의 최종 컨텐츠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영혼이 육에 채 적응하지도 못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핏덩이를 돌보는 일은 정말 보통이 아닌 일이다. 거기에다 그 수가 일곱이나 된다면 어떨까? 분명 그 애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는 건 눈을 포함한 사지四肢가 인간보다 몇 배는 많은 아라크네 족이거나. 전지전능한 신 밖에 없을 거다.

안타깝게도 내 팔다리는 어떻게 세더라도 각자 두개씩, 4개가 끝이고 눈도 고작 두개다. 거기에 전지전능과도 거리가 있는 편이다. 육아와 썩 어울리진 않는 편이지.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일이라는 건 피아식별 없이 내가 그 일과 어울리던, 어울리지 않던 상관치 않고 몰아치는 편이다.

 

“아저씨이이!!”

 

그래,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몽학이 자신을 둘러싼 영과 육이 미성숙한 인간들, 아이들의 목소리에 집중하자 한 뭉텅이로 들리던 얇고 새된 목소리들의 집합체가 각각 다른 의미를 담고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저씨! 나 고양이 주웠다! 우리 키우자!"

"길에 있는 애 함부로 데려오면 안 된다고 했지? 엄마 고양이가 찾고 있을 테니까 빨리 원래 있던데 돌려 놓… 성묘네?! 어떻게 잡았어?!"

"삼촌. 나 숙제해야하는데."

"그래 조금만 기다렸다가 다들 조용해지면 할까? 지금은 조금 바쁘네!"

"……."

"어어! 거기 다 알아! 밥 먹기 전에 과자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 먹더라도 식사 후에! 지금 먹으면 밥을 맛있게 먹을 수가 없어지니까!"

"야!! 그거 내 과자잖아!!! 도둑새끼야!!"

"심지어 누나 과자였어?! 아니 그래도 가족한테 새끼는 쓰면 안 되지!"

"새끼 말고 다른 건 써도 돼요? 야 이 쌍놈아!"

"욕은 다 안 된다?!"

"다들 시끄럽게 굴기나 하고. 어리기 짝이 없다니까…."

"…하하."

 

비록 마지막 말을 꺼낸 사람의 나이가 9살이긴 하지만, 동의를 표할 가치가 있는 말이었다. 그 잠깐 사이 얼마나 많은 말이 몰아쳤는지. 어지러울 정도다. 시대에 맞지 않는 독박육아의 한복판에서 아이들을 차례로 상대하고 있자니, 주방에서 들리던 달그락 거리던 소리가 끊기고, 앞치마를 멘 작고 둥근 체구의 사람이 거실으로 나왔다.

 

“다들 왜 그럴까?”

“엄마!”

“이모오!”

“어머니!”

“고모다!”

 

몽학을 부를 때도 그랬지만, 명절에나 들릴법한 다양한 호칭이 동시에 쏟아진다. 방금 부엌에서 나온 이는 미마. 현재 사용하는 이름은 성미령이다. 육아는 자신과 맞지 않다 독백한 몽학과 다르게, 미령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양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의 말에 섬세히 반응해 주고 있었다.

들리는 호칭들에, 상황을 보아하니 여기 있는 아이들은 혈연관계고 성미령와 몽학은 부부인가? 하고 추측한 사람도 있겠지. 가족이라는 점에서는 맞지만… 아쉽게도 틀렸다. 아기 새들처럼 입을 벌리고 먹이가 아닌 관심을 요구하며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아이들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이곳은 아동공동생활가정, 쉽게 부르자면 그룹홈이라 불리는 시설이니까. 

몽학을 향해 쏟아지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방향을 바꿔 미령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나 고양이! 고양이 데려왔어! 키우면 안돼요?”

“우리 집은 고양이가 살기에는 고양이를 위한 물건이 부족한데?”

“하지만… 귀여운데….”

“상황을 반대로 생각해볼까? 만약에 누가 우리 지우를 예쁘다고 데려와서 이상한 방에서 모르는 외계인이랑 같이 살자고 하면 어떨까?”

“…싫을 거 같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고양이는 원래 살던 데로 보내주자.”

 

보라, 저 다정하고 상냥한 설득을. 어떻게 잡은 거지?! 하는 질문이 앞서버린 몽학과는 다르다. 불퉁한 얼굴의 고양이가 발톱을 세운 앞발을 휘두르더라도 표정이 변하지 않는다. 흘러내리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던 지우는 납득했는지 네에, 하고 시무룩해진 낯이지만 순순히 집 밖으로 발을 옮겼다. 일단 급한 불 하나는 껐다.

 

미마의 시선이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곧장 이쪽으로 다가왔다. 몽학은 동생의 뱃속으로 사라져버린 과자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씩씩대는 아이를 품안에 넣고 토닥이고 있는 중이였다. 

그 다음으론 이쪽이 급하다고 판단했나보다. 몽학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는 씩씩거리던 아이는 자신의 편을 들어줄 상대가 다가오자 상황을 알리려는 듯 빽하고 외친다.

 

“저새끼가 내 과자 먹어버렸어!”

“그랬어? 먹어버려서 슬펐겠다.”

“친구가 나 먹으라고 선물해 준건데…!”

 

몽학은 미령의 뒤에 숨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훔쳐먹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는지 잔뜩 당황한 기색이 보이는 얼굴. 어른 둘의 시선이 동시에 향하자 동그란 얼굴에 핏기가 점점 빠지고 있다. 

순서대로 몽학의 품에 있는 아이는 민아, 미령의 뒤에 숨은 아이는 민서로 둘은 남매였다. 현재 그룹홈 인원 중 유일한 혈연이기도 했고, 그래서일까 유독 자주 다투는 경향이 있었다. 

감정이 끓어 자연히 열이 올라 따끈따끈해진 정수리에 손을 올리고. 아이고 그랬어, 하며 달래고 있자니 미령이 몸을 돌리고 동생과 뭐라 대화한다. 뭐라고 대화하는지 궁금하지만, 당장은 이 서러움을 들어 주는 게 최우선이다. 이러고 있으면 곧…

 

“저기, 누나… 미안….”

 

이렇게, 용서를 빌 용기가 북돋아진 아이가 다가올테니까. 사과는 중요하지. 품안에서 씨익씨익 하며 거칠게 내뱉던 숨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사과에 기분은 조금 진정 되었지만 이미 먹은 과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 작은 머리가 데굴데굴 돌아갈 때 살짝 길을 잡아 주는 거, 이게 어른이 할 일이지. 몽학이 고개를 숙여 아이의 귀에 대고 보상을 살짝 속삭여준다.

 

“용서해주면 삼촌이 그 친구랑 같이 먹을 과자 내일 사줄게. 응?”

 

곧 몽학의 옷자락이 구겨져라 쥐고 있던 손이 떨어지고. 그 손이 우물쭈물 하는 민서를 향한다. 긴장했는지 끈적거리는 작은 손이 내밀어진 손을 잡는다. 용서해줄게. 라는 말은 차마 목을 넘어오지 않는지 입술은 여전히 앙 다물린 채 삐죽거리지만 손을 쳐내지 않은 게 어디야. 그럼 이 불도 조금은 진정했다.

 

“화해 한 거야?”

“……네.”

“…네!”

“그래? 둘 다 너무 잘했네.”

 

곧 두 아이가 미령의 품에 모두 안긴다. 곱실거리는 부드러운 머리칼, 포근한 향기, 따스한 온기세 굳어있던 어린 얼굴들이 흐물흐물 녹는다. 몽학이 끼어들면 저렇게 되지 않는다. 분야가 다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숙제 노트를 안고 옆에 서서 저 흐뭇한 풍경을 같이 바라보는 아이, 주원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다.

 

“이야, 멋지게 기다려줬는데? 덕분에 하나는 잘 넘어가겠다.”

“내가 애도 아니고 당연한 거 아니에요?”

 

9살이니까 당연히 애다. 부러 어른스럽게 말하지만 받는 칭찬이 싫은 기색은 아니다. 착하고 조용해 손이 덜 간다는 이유로 우선순위가 밀리는 아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관심과 칭찬이 고픈 건 마찬가지니까.

 

“숙제 한다고 했지? 무슨 과목이야?”

“수학이요. 사실 별로 어렵지도 않아요.”

“오, 대단한데? 그럼 삼촌한테 알려줄 수 있어?”

“당연하죠!”

 

기분이 좋은지 신나 방방 뛰려는 발걸음을 꾹꾹 눌러 의젓하게 걷는다. 우와 난 수학 진작 포기했는데 덕분에 다시 배우겠네! 그리 말을 덧붙이니 더 뿌듯한지 어께를 으쓱하며 말한다.

 

“전 구구단도 2단이나 외웠어요. 우리 반 애들은 아직도 뺄셈만 하는데.”

“헉 진짜? 우리 집에 수학 영재가 났네!”

“고작 2단가지고 그래?”

 

화기애애한 목소리 사이에 날카로운 말이 푹 찔러 들어온다. 아이고, 우리 라나가 또 시작이네! 저쪽을 좀 띄워주면 저도 끼고 싶어서 괜히 불퉁하게 말한다. 그 말에 자존심에 금이 갔는지 주원의 미간이 좁혀지며 높아진 목소리가 집안을 울린다.

 

“2단이 얼마나 어려운데!”

“난 9단까지 외울 수 있어.”

“아이고 세상에! 우리 집에 수학 영재가 둘이네! 그러면 같이 공부할까?”

“2학년 문제 재미없어요.”

 

라나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뀐다. 클레오파트라를 추월할 정도로 코끝이 올라간 태도지만. 결국 더 관심 받고 싶고, 끼고 싶어서 저런다. 이럴 땐 무시해서도 안 되고, 원래 받고 있던 다른 아이의 관심을 앗아다 주어도 안 된다.

 

“그러면 네 숙제도 가져와서 같이 하면 되지! 아저씨한테 더 가르쳐주라.”

“뭐…, 그래요. 그렇게 부탁하면 들어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흐흐, 몽학의 입에서 얼빠진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구구단 2단을 자랑하던 주원이 몽학의 어께를 토닥인다. 그 고사리 손이 닿는 촉감에 얼빠진채 벌어져있던 입꼬리가 올라간다. 눈치가 빠르다니까. 이곳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주원은 유독 그런 편이다.

다 같이 숙제를 할 둥글한 접이식 책상을 거실에 펴니 흩어졌던 아이들이 각자 방에서 교과서에 필기도구를 꺼내들고 쪼르르 다가온다. 드디어 좀 조용해졌다. 겨우 한숨 돌리나 싶은데 몽학의 감이 간질간질하다. 썩 유쾌하지 않은 감각이다.

 

지이이이잉-

 

여러 개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린다. 공부 중에 핸드폰을 봐선 안 되니 무시한다. 집중해야지 집중! 하며 손을 뻗어 문제 중 하나를 가리키는데, 공부에 참여하지 않은 아이 한명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핸드폰을 울리게 만든 원인을 소리 내어 읽는다.

 

“○○동에 ‘출입구’ 출현, 현재 군 이동 중 입구인지 출구인지 확정되지 않음…. 근처 거주자 안전 구역으로 대피 요망.”

“○○동이 어디야?”

“강 건너 있는 곳, 넌 구구단이나 계속해.”

“숙제는 뺄셈이야!”

 

이상한 문장이다. 출입구가 왜 출현하며, 어째서 대피해야하는지 물어볼 법도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이 나라, 아니 이 차원에 살고 있는 생명이라면 모두가 아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알아버린 이상 어쩔 수 없지.

 

“아! 장 보는 거 깜빡했다. 나 뭐 좀 사올게!”

“같이 숙제 한다며! 공부하기 싫어서 도망가는 거지!”

 

 적당한 이유를 지어내며 몸을 일으키자 한 식탁에 둘러 앉아있던 아이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뭐, 하자고 해놓고 먼저 일어서니까 들을만도 하다.

 

“그 무슨 섭섭한 말을! 이 아저씨가 그럴 거 같아?!”

“응.”

“단호하네…. 너무 신뢰가 없는 거 아니야?”

“그럼 아니야?”

“사실… 구구단은 조금 어렵긴 했어.”

“거봐!”

 

그렇게 현관을 향해 집을 가로지르며 시시껄렁한 말장난을 주고받자니 어느새 다가온 미령이 방금까지 몽학이 앉아있던 자리를 차지한다. 순하게 처진 눈매 안에 자리한 눈동자가 잠시 몽학을 향했지만, 어디를 가냐는 물음 없이. 시선은 다시 아이들에게 향한다.

 

“대신 엄마랑 할까?”

“네에.”

“엄마가 더 좋아!”

“으윽, 상처 받는다!”

“으히히히!”

“킥킥!”

 

그 말에 장난스럽게 가슴에 손을 올리고 가슴을 부여잡자. 아이들이 웃고는 이어 인사한다. 약속을 어긴점을 타박하더라도 결국 배웅 해주니 얼마나 다정한지.

 

“푸히히, 다녀오세요!”

“잘 다녀와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푹 자고 올게!”

 

 

부러 헷갈린 인사에 맞춰 답하곤 요란스럽게 손을 흔들어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인사하고, 현관에 놓인 외출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공용이라 몽학에겐 약간 작지만 상관없다. 오래 걷지는 않을거니까.

 

“그럼 이번엔 또 어디일까….”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그대로 전원을 길게 눌러 완전히 종료한다. 빛을 잃은 핸드폰은 모든 기능을 잃은 상태. 아무런 쓸모도 없어졌지만 이게 바로 몽학이 원하는 바다. 그러곤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느긋하게 발을 끌었다. 그러면서 현대인 답지 않게, 고개를 하늘로 향해 고정 시킨다. 몽학은 하늘을 바라보는게 아닌 높이 부착된 CCTV를 살피는 중이였다. 이럴땐 조금 귀찮지만, 치안에는 좋으니까 뭐.

 

"어디보자, 어 디 가 괜찮을까요!"

그러곤 노래하듯 콩콩거리며 뛰다가 곧 적당한 위치를 찾았는지 요! 하는 소리에 맞춰 경쾌하게 점프했다. 그리 높게 떠오르지 않은 몸이 다시 중력에 이끌려 내려오고, 뻗어진 발이 바닥에 닿으려고 하던 때.

꿀렁

하고 몽학의 주변이 일그러진다. 사람을 지탱해야 할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은 늪처럼 변해 몽학을 빨아들였고. 곧 도로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몽학의 주변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나아가는지 추락하는지 퇴보하는지 알 수 없는 암흑으로 가득한 허공, 그 사이를 유영하는 별이 내뿜는 빛이 찬란했다. 그 풍경에 시선을 뺏길 만도 하지만 몽학의 눈동자는 여전히 앞으로 고정된 상태, 허공을 딛고 헤엄치듯 뻗어나가는 몽학의 움직임에 따라 별은 옆으로 흐르는 유성이 되었다.

"미안, 가야해."

누구에게 말한걸까. 알 수 없는 말을 흘리고, 물속에서 발을 내딛는 것처럼 느리게 왼발을 앞으로 뻗었다. 이번에 내민 발은 허공을 차내고 올라와 단단한 시멘트를 디뎠다.

"도착!"

 

곧 오른발도 마저 단단한 바닥을 딛는다. 하늘을 투과해 내리쬐는 햇볕이 주변을 가득 채우며 몽학의 시야에 도심이 다시 나타난다. 다만 이동하기 전과 주변 각도가 다르다. 그도 그럴것이 몽학이 나타난 위치는 인도 위가 아니라 옥상. 방금 전 문자로 날아온 ‘출입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건물의 옥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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