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네다 유이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 / 히가시야마 유이X타네다 코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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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야마東山는 어디에서나 찾아보기 힘든 드문 성씨였다. 히가시야마 유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껏 가족을 제외하곤 한 번도 겹치는 성씨를 만난 적이 없다. 잊을 만하면 사회에서 한둘쯤 만나게 되는 사토さとう나 스즈키鈴木, 타카하시高橋들은 그런 히가시야마의 성씨를 종종 부러워하곤 했다. 히가시야마 상은 다른 친구들과 성씨가 겹쳐서 이름을 부른다든가 하는 일 없었지? 한 번도 없긴 해요. 우리들은 그런 경험이 종종 있으니까.

커피를 기울이며 소소한 이야기를 꺼내는 동료들 사이에서 히가시야마 유이는 웃곤 했다. 특이한 성씨는 대화할 주제가 영 없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제법 괜찮은 재료였다.

해서 특이한 성씨를 가진 장본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말하자면, 기실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누군가에게 딱 박히는 이름이라는 점은 장점으로도 작용했고 단점으로도 작용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뭐 그런 걸로 그렇게 긴장을 했나 싶은데 한창 대학에 다닐 무렵에는 교수들이 종종 아, 히가시야마 상? 하고 외운 티를 내는 경우가 있어서 혀를 깨물고 싶었던 적이 좀 있다. 그 수많은 학생들 중에 히가시야마는 유이 하나뿐이었고 고작 희귀한 성씨 하나에 특별함을 느끼기에 히가시야마 유이는 일상의 소중함을 잘 아는 존재였기 때문에. 말하자면 평생을 불려온 이름의 일부답게 적당히 친숙하고, 그렇다고 영영 그 이름 안고 살 정도로 애정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냉큼 치워버릴 정도로 싫어하지도 않고, 딱 남들도 적당히 무관심하게 가지고 있을 그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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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다 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워진 이름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로운 것은 별수 없었다.

"히가시…… 아, 타네다 상."

"응?"

팀장 자리에 앉아 담당한 서버를 구현하고 있던 타네다 코타로가 피곤한 듯 안경을 벗고 콧잔등을 누르다가 고개를 들었다. 유이는 여전히 발급받은 명함을 앞에 두고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류를 들고 다가오던 미타니 카나코가 멈칫했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을 달싹이다가 슬쩍 걸음을 옮긴다.

"타네다 유이 상."

낯설기 짝이 없는 이름이 한 번 더 불렸다.

당황한 듯 타네다 코타로가 유이를 흘금 돌아보았다. 부르는 사람이며 착각한 제3자며 허둥거리는 꼴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성씨에 이름까지 붙여 또박또박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유이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타네다 코타로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유이."

"네?"

그제야 퍼뜩 고개를 든 유이가 멈칫했다. 미타니 카나코가 옆에 서 있었다. 머쓱한 공기를 뚫고 들고 있는 서류를 내미는 미타니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타네다, 유이. 타네다.

"상의할 게 있어서요. 이번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사항 중에서 이 부분 말인데……."

"아, 네. 그 부분은 저도 신경을 썼는데 아무래도……."

잠깐 날아갔던 정신이 빠르게 되돌아온다. 얼마간의 대화 끝에 클라이언트에 한 번 더 연락을 해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본사에 방문해야 할 일이 있으니 자신이 연락까지 해 두겠다고 다시 한번 역할 분배를 맡고서야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봄을 맞아 열어둔 창문 사이로 약간 쌀쌀한 바람이 들어왔다. 커튼이 펄럭거리고 요구사항을 정리하던 유이가 의자에 걸쳐 두었던 가디건을 주섬주섬 들었다.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던 타네다 코타로가 창문을 닫았다. 밝은 화면으로 보이는 코드 몇 줄에 빨간 선이 그어져 있었다.

머쓱하게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타네다 코타로가 흘금 시선을 들었다.

타네다 유이가 모니터 옆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을 하나 뗐다.

봄.

결혼을 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엎어진 적이 두 번. 심지어 두 번 다 회사에 소문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한 번은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 생각했으니 설렘이며 기대감에 들떠 먼저 말을 꺼내놓았지만 한 번은 일정이 완벽히 잡히기 전까진 굳이 말할 생각이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들켰고, 부서 사람들이 거의 다 알게 됐고, 그 결혼도 엎어졌으니 고작해야 두 번이긴 하나 징크스라면 나름의 징크스겠다.

세 번째 결혼 이야기는 예상보다는 느리게 나왔다. 타네다 코타로는 히가시야마 유이와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약자였다. 감정의 무게 따위를 논하려는 게 아니라 양심이 있다면 그래야 했고 타네다 코타로는 실제로 양심이 멀쩡한 정상인이었기 때문에 먼저 결혼을 입에 담거나 하진 않았다.

"우리 집에 오라고 하긴 했지만."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

"당당하게 말한 것도 아니고 되게 민망해하면서 했지만."

당시의 타네다 코타로가 처한 상황이 어떠했을지는 이미 상사의 입에서 전해들은 바 있으나, 어찌 되었든 간에 결론만 놓고 보자면 타네다 코타로가 쓰러져 가면서 일을 하고 업무를 더 우선시했던 것은 사실이다.

타네다 코타로는 흐린 정신 속에서도 훌쩍이며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붙잡고, 간절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를 기억했다. '코타로', '코타로'. 어찌 됐건 지금까지도 유이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면 다른 무엇보다 그때가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존댓말 쓰지 말고 예전처럼 굴라는, 우리 집에 오라고 했을 때와 흡사하게 민망해하며 꺼낸 말에 사뭇 장난스러워진 지금에 와서도 별수 없이 그랬다.

"머리 덜 말랐어."

어떤 정신머리로 그때 그 말을 꺼냈는지, 돌이켜 봐도 긴장으로 가득 찬 심장 뛰는 소리밖에 떠오르지 않는 탓에 입 꾹 다물고 있자 히가시야마 유이가 웃으며 말했다. 꼭 이번은 봐준다는 듯이, 약간 축축한 검은 머리칼을 헤집으면서.

"금방 마를 거야."

익숙한데 낯설고 낯설지 않은데 기묘하게 제 것 같기도 한 자연스러운 손길이 어딘가 노곤했다. 창문 바깥에 달이 약간 기울었다. 바닥에 앉아 슬쩍 고개를 뒤로 물리자 소파 위에서 유이가 머리칼 끝을 약간 흔들었다. 장난을 치듯 뒷머리가 검지를 감아보자 손가락까지 축축해졌다.

"슬슬 머리 자를 때가 된 것 같은데."

"유이?"

"아니, 코타로."

"자른 지 꽤 되긴 했어."

그렇지? 하면서 장난치던 짓을 멈춘다. 물기 어린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더니 다시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빗어 넘기기 시작한다. 눈을 깜빡이는 타네다 코타로의 낯은 평온했다. TV 소리, 집 바깥에서부터 나는 생활감 느껴지는 소음, 음악 소리. 무엇도 없는 고요함과 정적 속에서도, 꼭 수천 빛깔을 지닌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코타로."

"응."

"코타로 군."

"그래."

"타네다 상."

"그건 별로 좋지 않은데."

"타네다 군?"

"다를 게 없잖아."

"코타로."

"응."

언젠가 한 번을 꼭 거쳤던 이름을 입 안에서 다시 웅얼거린다. 타네다 군, 타네다, 코타로 군, 코타로, 타네다 상. 타네다.

타네다…….

"코타로."

언젠가, 한참 오래 전에 이렇게 소파에 마주앉아 콧잔등을 부딪히며 똑같은 장난을 쳤던 적이 있다. 지금보다 쌀쌀한 날씨였다. 침대 위에 널브러졌던 이불을 뒤집어쓴 채, 조금 더 넓은 데 누워 있으면 될 걸 좁디좁은 공간에 성인 둘이 욱여앉아 키득대며 팔을 당기고 손장난을 쳤었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자그맣게 터뜨리는 웃음, 뺨을 맞대자 조금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 그리고 목소리.

히가시야마 유이는 연인에게 제법 장난스러워지는 사람 중 하나였고, 타네다 코타로는 히가시야마 유이에게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때의 코타로는 지금보다 관계에 확신이 있었으므로.

'계속 타네다라고 부르면 나중에 헷갈릴걸, 유이.'

그때 히가시야마 유이는 설렜고, 기대했고, 들떴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었다.

"유이."

달이 기울 때마다 창가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들어 꼭 볕처럼 길게 황금빛 흔적을 남긴다. 보름이 뜨는 날인가 생각하며 보름보다 선명하게 와 닿는 이름을 곱씹는다. 타네다 코타로가 발음하는 그 이름이란, 제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게 등을 간지럽히는 무언가가 있어서.

"있잖아, 코타로."

덜 마른 검은 머리칼을 괜스레 만지작거리면서, 히가시야마 유이는 달밤 그 과거에 묻어두었던 말을 속삭였다. 코타로, 호명에 유이, 호명으로 화답하는 남자와 시선을 똑바로 맞춘 채,

한참을 늦은 말이었다.

"우리 결혼할까?"

이번에는 정말로.

설레고, 기대하고, 들뜬 마음으로.

그리하여 자신이 들은 말을 곱씹기라도 하듯 쉽게 대답을 뱉지도 못하는 남자의 눈동자에 달빛이 가득 차는 모습을 보면서 히가시야마 유이는 웃는다.

익숙해지게 될 낯선 이름을 곱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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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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