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약혼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 / 히가시야마 유이X타네다 코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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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로, 엄마가 보러 오래요."

풉, 타네다 코타로가 탕면을 먹다가 사레에 들렸다.

쿨럭대는 남자에게 예상했다는 듯 히가시야마 유이가 물을 밀었다. 헤드셋을 끼고 있던 왕단이 저럴 줄 알았다는 듯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도 가게 한켠을 차지한 중년 남성 둘이서 시시덕댔다.

"나, 를?"

물을 마시고 간신히 진정한 타네다 코타로가 말을 뱉었다. 말을 한 게 아니라 정말 뱉은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히가시야마 유이는 천연덕스럽게 소룡포를 그의 접시 위로 하나 건네 준 다음 다른 것을 한 입 베어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잖아요."

딸이 구애인, 정확히는 구구애인쯤 되는 남자와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는데, 심지어 곧 함께 산다는데 신경 쓰지 않을 부모는 없다. 특히나 유이의 어머니는 줄곧 스와 타쿠미가 좋다고 언급하지 않았던가. 매번 일하느라 늦고 딸을 기다리게 했던 타네다 코타로가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다.

이제 와 유이가 그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타네다 또한 이제 몸을 갈아가며 회사에 남아 있는 일이 줄었다는 걸 유이의 어머니가 실감할 수 없는 문제였다. 신경 쓸 일이 더는 없다곤 해도, 상견례 자리까지 오지 않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딸을 고주망태로 만든 전적까지 있는 남자를 곱게 볼 리는 없었다.

한창 '유이와 사귀었을 적'에 마주했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린 타네다 코타로가 침묵했다.

그는 아직도 종종, 유이를 만나는 일을 과거의 편린으로 치부하곤 하는 습관이 있었다. 결국 타네다 코타로의 손을 마지막에 붙든 것은 히가시야마 유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가기 싫어요?"

"그럴 리가."

묻는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한 타네다 코타로가 애써 숨을 삼켰다. 히가시야마 유이는 그 마음을 안다는 듯 턱을 괸 채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희미하게 웃음기가 서려 있는 얼굴을 보니 재미난 장난이라도 치는 듯했다. 물론 타네다 코타로는 히가시야마 유이와의 관계에서 늘 죄인이고 약자여야 했으므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언제쯤?"

"코타로가 괜찮을 때 비워 놓겠대요. 이번 주말 어때요?"

"그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없겠구나. 그 말은 속으로만 했다. 유이는 이미 아는 것 같았지만.

히가시야마 유이는 그럼 그렇게 말해 놓겠다며 휴대전화를 들어 문자를 보냈다.

"아. 혹시나 해서 묻는데, 새로 못 먹게 된 음식이나 그런 건 없죠?"

"응."

"문어도 잘 먹어요?"

"웬 문어야?"

"그냥 혹시나 싶어서."

그러고 어깨를 으쓱인다. 타네다 코타로는 괜찮다고 대답하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히가시야마 유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문어도 잘 먹어요? 그냥 혹시나 싶어서.

그 말이 문득 마음에 걸렸다. 이상하게 어색함보다 친숙함이 느껴지는 말투를 곱씹어 본다. 곱씹다가 생각했다.

모든 게 옛날과 같을 수 없다. 그것은 히가시야마 유이와 연애했던 그 시기의 타네다 코타로가 지금과 다르기 때문이고, 타네다 코타로와 연애했던 그 시기의 히가시야마 유이가 지금과 다르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온 세월과 미묘한 관계에서 비롯되었던 거리감, 그러고도 접지 못했던 마음이나 숨기지 못한 눈빛 같은 것, 그 모든 것이 달랐다. 타네다 코타로는 히가시야마 유이를 지금도 좋아하고, 지금의 관계가 그때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와 달라진 게 분명히 많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이."

"네."

"……."

그래도…….

"왜요?"

기껏 불러놓고 침묵하는 남자를 보며 히가시야마 유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타네다 코타로가 입술을 달싹였다.

연애를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 왕단이 도끼눈을 뜨며 했던 말이 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좀 해! 특유의 딱딱하고 선명한 발음과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귀에 아프게 박혔었다. 그렇게 시작된 잔소리를 구구절절 늘어놓던 왕단은 끝마무리로 중국어로 몇 마디 욕처럼 들리는 문장을 쏟아놓더니 새침하게 팽 돌아가버렸다. 히가시야마 유이는 내내 멀뚱멀뚱 그 옆에 서 있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맥주 한 잔! 외쳤다. 퇴근 전보다 더 지친 기분으로 서 있던 타네다 코타로는 그 모습에 결국 같이 웃으면서 앉고 말았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좀 하라고 했지.

그러니까…….

"왜 존댓말 해?"

뻐끔거리는 입술에서 한 마디가 튀어나오자 유이가 눈을 깜박였다.

"네?"

"원래, 반말 했잖아."

이름은 다시 부르기 시작했지만 말투는 상사를 대한 그것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등 떠밀며 뭐 하는 거야 코타로, 하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던 옛날을 떠올리면 괜히 신경이 쓰였다. 연인 관계에 유이가 매번 반말을 써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부모님 앞에서도 나한테 존댓말 쓸 거야?"

타네다 코타로뿐 아니라, 스와 타쿠미와도 그러지 않았는가. 헤어진 다음에도 말이다.

듣고만 있던 히가시야마 유이의 낯이 점점 변했다. 원래도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던 얼굴 위에 점점 유쾌함이 어린다.

젠장. 타네다 코타로는 제 머리를 헝클였다. 괜히 민망했다.

"신경이 쓰였어요?"

"……조금."

"조금?"

"……조금 많이."

"아아~ 조금 많이 신경이 쓰였다?"

"거기까지 해……."

힘겨운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봐주겠다는 듯 유이가 턱을 괴었다. 애 보듯하는 눈빛과 짓궂은 표정으로, 괜스레 모르는 척 다 먹은 탕면을 휘적거리다가 접시 위에 올라간 소룡포를 해체하는 남자를 보면서.

"코타로."

달콤한 부름.

"……응."

"술 한 잔 더 시킬까?"

놀리는 듯 웃음기가 덕지덕지 붙은 목소리에도 속절없이 기분이 좋아져서, 타네다 코타로는 결국 숨을 뱉고 말았다.

"그래."

왕단이 저기서 세 잔 이상은 안 돼! 우렁차게 호통쳤다. 히가시야마 유이가 나는 봐 줘~ 웃음을 터뜨렸다. 타네다 코타로가 턱을 괴었다. 환한 얼굴을 본다. 환한 미소를 가만히 본다.

"왜 그렇게 봐, 코타로?"

"그냥."

그가 입 안으로만 대답했다.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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