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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쿠로오 테츠로 드림 / 로맨틱 타로 키스데이 / 4,26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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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홀린 듯한 기분으로 손바닥 아래의 흰 뺨을 훑었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덮어 살랑거렸다. 그를 똑바로 직시하는 분홍색 눈동자가 꽃의 결을 닮아 달콤하게 휘어진다. 늘 다정히 맞춰 오던 시선이 이번에도 눈가 근처에 머물렀다. 늘 그랬다. 아이리는 어느 상황이 와도 시선을 피한 적은 없었다. 발갛게 열이 오른 얼굴로 눈을 굴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마지막 순간엔 눈을 맞췄고, 쿠로오 테츠로는 아이하라 아이리의 한결같은 시선을 사랑해 왔다.

귓가와 목덜미가 이어진 부분을 조심스레 감싸 쥐자 아이리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간지러워, 쿠로. 목소리가 흘러 나오는 입술로 시선이 옮겨 간다. 그에 비하면 한참 작은 연인이 품 안에 매달리듯 안겼을 때부터 시선이 갔으니, 사실 옮겨 갔다고 표현하기도 뭣했다. 화장기 없는 입가에는 무언갈 바른 흔적조차 없었는데도 쿠로오 테츠로는 달싹이는 모양새며 끝이 당겨진 입매를 종종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아이리 앞에서는 티를 낸 적 없지만. 지금까진, 정말로, 그런 적이 없었지만…….

“쿠로.”

아이리가 까치발을 들었다. 쿠로오의 허리를 둘러 감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를 올려다보는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걸렸다.

쿠로오 테츠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이리의 목 뒤를 부드럽게 받쳤다. 이마가 맞닿고 콧잔등이 스쳤다. 숨소리까지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던 아이리가 웃음을 흘리며 그를 당겼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담금질 된 불을 한입에 삼킨 기분으로 고개를 숙였다.

바람결에 스치는 것 같은 감각.

그리고 쿠로오 테츠로는 눈을 떴다.

“……악!”

쿵!

열여덟 살 청소년은 불쌍하게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상황 파악을 하듯 멍청하게 천장을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자의로 머리를 한 번 더 처박고 말았다.

그냥, 죽어라, 쿠로오 테츠로!

*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로 새로이 명명된 관계는 아이리의 일상을 다소 바꾸어 놓았다. 쿠로오 테츠로와 아이하라 아이리는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었고, 좋아한다는 말을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하지.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데 자존심이 상할 이유가 있어? 나는 그 앨 좋아하고, 그 애도 날 좋아하는 걸 아는데.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 열이 오른 낯, 손장난을 칠 때 피어나는 웃음은 숨길 수 없는 마음의 표상이고, 그래서 손을 맞잡고 등하교를 함께 하게 된 지 일주일 만에 아이리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저, 켄마.”

“……아. 아이리.”

교실 구석에 앉아 어깨를 푹 수그리고 있던 켄마는 흠칫 놀랐다가 아이리를 보고 순순히 게임기를 껐다. 쿠로오가 보면 자기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왜 그리 순순하냐며 통탄을 금치 못할 장면이었다.

“무슨 일이야? 2학년 층까지 오고.”

“아, 별건 아닌데, 혹시 어제 집 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해서.”

“무슨 일?”

“응. 오늘 쿠로가 조금 이상해서.”

“쿠로가?”

영 모르겠다는 눈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켄마가 이런 반응이라면 별일 없는 게 분명한데.

아이리는 오늘 집 앞에서 만난 쿠로오의 표정을 떠올렸다. 좋은 아침이야, 하고 인사했는데 마주한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눈이 마주치자 급히 미소 짓는 얼굴이 여상스러워 보이긴 했으나 아이리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니야. 잘 잤어, 아이리?’

유들유들하게 넘어가는 목소리가 평소와 같아서 착각인 줄 알았지만 이상한 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 고마워. 아이리.’

‘응. 같이…….’

‘아니야, 피곤할 텐데. 혼자 다녀올게.’

아주 묘하게 밀어내는 듯한 태도. 평소였다면 같이 가자고 했을 일을 혼자 다녀오겠다고 하고, 스킨십도 피하고, 웃으면서 쳐다보면 마주 웃다가도 지레 찔리는 듯 움찔 시선을 피하는 게 결코 쿠로답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영 생각나는 게 없었다. 어젯밤에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통화했는데. 게다가 아이리를 꼼꼼하게 챙기는 건 여전했고 화가 난 기색도 아니었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보냐며 약간 짙어진 뺨으로 흘긋 시선 돌리는 것도 평소와 같았다.

그러면 대체 왜?

“아. 오늘 자기가 쓰레기라고 중얼거리는 건 들었어.”

켄마가 돌연 말을 꺼냈다. 아이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쓰…… 쿠로가? 왜……?”

“나도 잘 모르겠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아이리를 가만히 보던 켄마가 지나가듯 덧붙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쿠로가 이상해진 건, 거의 다 아이리 때문이긴 해.”

“쿠로가 이상했어?”

“응. 자주.”

그렇구나…… 어쩐지 멋쩍어서 웃자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던 켄마가 흘긋 위층을 보았다.

“아이리,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응? 오늘이 무슨 날이야? ……나 혹시 뭐 잊어버렸나? 잠시만,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 아니야. 그냥, 쿠로가 이상하면 보통 다 아이리랑 관련이 있었으니까.”

켄마가 시선을 깔았다. 곁눈질로 주위를 슬쩍 돌아보며 덤덤히 말을 던졌다. 오늘도 아마 아이리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아이리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나랑?

*

“저, 지금 쿠로오 상 이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체육 시간 뒤. 짧은 쉬는 시간. 단둘이 남은 체육 창고 앞에서 쿠로오가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바른 자세로 앉아 이쪽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아이리의 시선을 견디다가 슬금슬금 옆으로 피하고 말았다. 그게 더 티가 난다는 걸 알 텐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쿠로. 혹시 내가 뭘 잘못했어?”

“뭐? 아니.”

“그런데 왜 피해?”

쿠로오의 손이 멈칫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슬슬 몸을 일으키려던 쿠로오 테츠로의 시선이 한 바퀴 굴렀다. 까만 눈이 와 닿는 걸 느끼고, 아이리는 의자를 끌어 거리를 좁혔다. 움찔 떠는 연인을 확인했다가 조금은 간절하게 쳐다봤다. 잘못이 아니라, 까지 성급하게 뱉었던 쿠로오는 그 눈을 마주하고 숨을 삼켰다.

아이리는 그 말을 곱씹었다. 잘못이 아니라. 잘못.

“그러면, 나랑 아예 연관이 없어?”

“…….”

“있구나.”

관찰력이 좋고, 분석력이 뛰어나고, 머리까지 좋은 아이하라 아이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눈마저 좋았다. 쿠로오의 낯에서 어렵지 않게 긍정을 읽어낸 아이리가 조심스레 그를 올려 보았다.

“……왜 그런 건지, 알려 주면 안 돼?”

“……아이리. 그게 아니라,”

“내 잘못이 아니면, 더 서운하단 말야.”

쿠로오 테츠로가 심장째로 뱉어낼 것만 같은 숨을 간신히 삼켰다. 조금 시무룩한 아이리의 표정은 늘 그랬듯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고, 그는 오늘 아침에 여러 번 중얼댔던 말을 다시금 되뇌며 끝내 입을 열고 말았다. 아침과는 다른 의미였다. 저런 표정을 짓게 하다니 쿠로오 테츠로 그냥 죽자, 몇 번을 생각하면서.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머뭇거리다가 뻗은 손이 아이리의 손끝에 닿았다. 미안하고 민망해서 숨기려던 마음은 직접적인 말 한 마디에 그대로 녹아내렸다.

“켄마도 그 말 하던데…… 혹시 정말 무슨 날이었어? 미안해. 알려 주면 다음엔 안 잊어버릴게.”

“그런 거 아냐. 키스데이래. 오늘.”

“응, 키스…… 응?”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리의 낯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새빨갛게 물든 뺨을 보며 쿠로오는 웃고 말았다. 어제 그 말을 들었다. 내일이 키스데이래. 여자친구 있어서 좋겠다? 놀리듯 하는 말에 점잖게 헛소리하지 말고 가라고 턱짓했으면서도 상상하고 만 것이다. 기울인 뺨, 스치는 콧잔등, 달아오른 목덜미 따위를. 그리고 결국엔.

“아이리에게 키스하는 꿈을 꿨어.”

“……어?”

새하얀 손등을 덧그리는 제 손에도 제법 열이 올랐다. 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일 년간 대부분을 그렇게 보낸 것도 같으니 이제 와 표정 관리를 할 여력도 없었다. 분홍빛 눈동자가 꿈과 달리 약간 흔들렸다. 눈동자 색처럼 꽃잎 색으로 달아오른 낯으로 푹 숙인 여자친구에게 쿠로오는 결국 주절주절 덧붙였다. 그래서 그랬어. 계속 생각나서, 그런데 사귄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주제에 이러는 게 싫을까 봐, 하하…… 나야말로 미안. 아이리는 잘못한 게 없어. 말하는 그의 낯에도 슬금슬금 열이 오르는 것은 자신이 붙잡고 있는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마주 잡아 오는 아이리 때문이 분명했다. 부끄러워서 눈을 피하면서도 혹여 기분이 상했다고 오해할까 손을 꼭 붙잡는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그 애가.

“……되는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쿠로오 테츠로를 밀어뜨렸다.

“해도 되는데…….”

“…….”

“……현실에선 별로야? 쿠로.”

약간 숙인 고개 탓에 갈색 머리칼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보이는 귓가가 새빨갰다. 쿠로오의 손을 붙잡은 아이리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마디마디가 꽉 얽힌 손.

손이.

“아이리.”

“…….”

“고개 들어 줘.”

그럴 리가 없잖아.

새빨개진 열여덟 청소년이 꿈과 똑같은 자세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다른 건, 눈을 꾹 감은 그 얼굴이 분명하게 꿈보다 사랑스러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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