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화 - 티타임(1)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을 활짝 펼친 노아가 그림자 틈새로 태양을 바라보았다. 겨울이라지만 그래도 끝물인데, 하늘은 여전히 청명하고 태양은 하얗게 빛났다. 손끝에서 맴도는 바람이 아직 차다. 그래도, 방아쇠를 당길때마다 반동처럼 내려앉는 서리만할까 싶다. 마법을 발동시킬때마다 용케 부서지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얼어붙고 녹기를 반복했으니 말이다.

한참 멈춰있던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노아의 품에는 중앙위원회와 마법동에 각각 제출하기 위한 보고서가 한가득이었다. 그 날의 일은, 어째서인지 비밀에 부쳐져서 퇴원직전에야 서면보고를 하라는 은밀한 지시까지 내려진 상태였다. 마법사도 아닌 청소용 샬레인을 통해 전달된 사항에 노아는 그 ‘은밀함’이 함구령이란걸 눈치챘다. 

왜냐고 묻는건 이제 포기했다. 이유가 있어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이유가 없으면 노아의 선에서는 더 알길이 없다. 도서관의 열람제한 자료처럼 말이다. 굳이 여기에 변명 하나 더 붙이자면, 의문을 제기해도 세상이 변하는 게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중앙 위원회는 들으시오!! 갑자기 해고라니, 이게 가당키나 합니까?!”

중앙 위원회 청사 입구로 들어서자 분수대 앞에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손에 막대기를 단 판자를 들고 있었고,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옷이 낯익다 싶어 곰곰이 생각하던 노아가 종종 탑에서 마주치던 청소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언젠가부터 사람대신 청소용 샬레인이 늘었다 싶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맨 앞에 선 대표로 보이는 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당신들이 쓰고 버리는 도구가 아니라고! “

“우리도 사람이다!!”

“우리는 정당한 대우를 바란다!!”

구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 사람도 아닌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 외치는 소리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럼에도 위원회 청사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 뒤에서 계속 지켜보던 노아가 청사 별관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 목소리가 닿을까? 저들 바람대로 세상이 바뀔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보였다, 벽을 뚫은 목소리가 내부까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지만 목소리에 답하지 않았다. 노아가 중앙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안에서는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욕할 순 없었다.

그건 노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고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도 그들은 추위에 붉게 물든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온기 가득한 색임에도, 저 손끝이 시린것은 서리내린 손과 마찬가지란 걸 노아는 안다. 끈적거리는 바닥을 밟은 것 처럼 쉽게 떨어지지않는 걸음을 억지로 재촉했다. 

그러다 결국엔, 눈을 질끈 감은 노아가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있는 힘껏 달려갔다.

농성장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뒤쪽을 바라보고있었다. 가장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외치던 이가 소란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무슨 일입니까?”

가장 뒤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대답대신 상자를 가리켰다. 

조심스레 열어본 상자안에는 털실로 짠 장갑이 인원수만큼 있었다.

-

“하겠습니다.”

아르크가 안경을 벗어 목에 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노아에게 다가가 품에 꼭 안아주었다. 어릴 때 이후로는 받아본 적 없는 스승의 포옹에 어찌할바를 몰랐던 노아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크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고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잘 생각했네. 잘 생각했어.”

“그런데, 결정이 너무 늦어서 걱정입니다. 어찌되었든 한달동안 공백이었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말게. 자네도, 레인도 회복이 필요한걸 헤아린 중앙위원회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었네. 솔직히 지금도 좀 이르다 생각되긴 하지만-”

아르크의 시선이 노아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틈하나 없이 단단히 입은 단복 아래에는 한결 얇아진 붕대와 반창고가 있을터였다. 

“이를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2,3일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테니까요.” 

“정말 그러한가? 노아. 이럴 땐 솔직해도 괜찮네.”

“괜찮습니다.”

흔들림없는 제자의 눈동자에 아르크도 더 이상은 별 수 없었다. 그저 믿어볼 수 밖에, 지금은 그것만이 답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입에 올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더 묻는다면 고집센 제자가 대답대신 화를 낼 사안이 될 터였다.

아르크의 책상에 시선을 두던 노아가 무언가 생각난 듯, 그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레인이 스승님, 당신의 이름을 부르던데 원래부터 알던 사이셨습니까?”

찰나지만, 아르크의 표정에서 무언가 스쳐지나간 듯 했다.

“내 자네한테 말 안했던가? 레인과는 오랜 친우일세.”

“한 번도 그런 얘기도 없으셨고, 제게 신상정보를 주실때도 언급도 없으셨니다만.. 친우요? 오랜?”

“마음만 맞으면 그게 친우지, 안 그런가?”

생글거리며 웃는 스승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노아도 딱히 반박할 생각은 않았지만, 무언가 놓친듯한 찜찜함이 있었다. 이 위화감은 대체…

“어쨌거나 두 사람, 정식으로 인사 나눈적이 없었지?”

“뭐… 그렇긴 하군요. 그래도 서로 통성명은 했습니다.”

의미심장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르크의 모습에 어쩐지 노아는 뒷골이 스산해짐을 느꼈다. 위계니, 직급이니 전부 귀찮다고 생략하거나 그런건 따지지 말자하는 아르크였다. 그런 아르크가 용납하지 않는게 하나 있다면, 

“그건 아닐세. 제대로 해야하지 않겠는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때 만큼은 제대로 시작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서로 이름 아는게 통성명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상황상 악수까지는 못 나누더라도 얼굴보고 자기소개도 나름 했는데 설마 이걸 아니라고 하진 않겠지,싶었는데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이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없다. 인간관계는 없는것으로 치는 노아에게는 여간 번거로운일이 아니다. 

인사따위, 그렇게 해봤자 소용없는걸 잘 알고 있기에. 

“저 바쁜일이-”

‘똑똑-’

“마침 도착했나 보구먼.”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뜨려던 노아의 노력이 무색하게 노크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꼼짝없이 붙잡혔다. 노아가 저도 모르게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한 아르크의 뒤를 따라 레인이 집무실안으로 들어섰다. 피로에 찌든 레인이 노아를 발견하고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곧 평정심을 되찾고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오랜만입니다, 대마법관님. 그리고··· 노아.”

“...오랜..만…입니다.”

어색하게 인사를 받은 노아가 그를 가만히 살폈다. 짙게 내려앉은 눈 밑의 그늘과 하나로 모아 묶은 머리카락은 잔머리가 사방으로 삐져나와 전혀 단정해보이지 않았다. 흰 가운을 걸치고 있지 않았다면 연구실이 아니라 복도에서 자다 온 것이라 착각할 몰골이었다. 

도서관에서 보았던 레인의 연구기록들이 노아의 머릿속에 스쳤다. 단기간에 명확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런 집요함 덕분일까. 밤을 샌 모양인지 하품하는 레인을 본 아르크가 차라도 내오겠다며 탕비실 안쪽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그 어색함과 침묵을 깨트린 것은 레인이었다.

“..잘 갖고 있습니까?”

일부러 주어를 생략했겠지만, 노아는 그것이 무얼 얘기하는지 알았다. 노아가 제 손목을 두 번 툭툭, 건드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에 입던 단복은 수선이 불가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둘러댄 덕분에 전에 입던 것 보다 소매가 조금 더 긴 단복을 새로 받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소맷단이 손등을 살짝 덮고 있었다. 그제야 굳어있던 레인의 얼굴이 약간이나마 풀렸다.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노아는 이때다 싶었다.

“그렇잖아도 궁금한 게 있어서 연락을 드릴까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도서관에서 당신에 대해 알아봤는데, 샬레 연구에 대한 기록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커피 향이 퍼지는가 싶더니  아르크의 목소리가 노아의 목소리를 덮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크가 커피가 담긴 컵 세 개와 쿠키를 담은 접시를 얹은 쟁반을 들고나왔다. 노아에게 향해 있던 레인의 시선이 아르크에게 옮겨졌다.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가려던 노아가 카펫에 발이 걸려 비틀거리는 아르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얘기는 다음에 하는 게 좋겠군요.”

앞으로 고꾸라지는 아르크를 붙잡은 노아가 제 스승의 손에 있던 쟁반을 들고 응접실로 향했다. 가볍게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레인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뒤늦게 그 뒤를 따라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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