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화 - 거래 (5)
[첫 번째 인공정령 ‘비엔토’ 배양 성공 발표]
‘인공정령 배양 프로젝트, 통칭 ‘샬레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나우 중앙 연구소의 레인 연구팀은 물의 정령 운디네의 마력 분자(magic atom,이하 마가)를 용암석에 이식하여 인공정령을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하였다. 수석 연구원 레인은 운디네의 마나와 용암석의 분자 구조의 일치율이 높고 ···배양된 인공정령은 바람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자아는 없는 것으로 밝혔다.’
‘...한편 중앙 마법사단은 인공 정령의 공식적인 명칭을 ‘샬레’로 명명한다고 발표했다···’
“두 달만에 이런 성과라… 천재는 천재란건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노아가 중얼거렸다. 같이 입원해있으면서 뒤늦게 알게된건데, 세간에서 레인은 천재를 넘어선 천재라고 지칭되고 있었다. 샬레 발명 이전의 그의 천부적인 재능은 정령사의 자질만 알려져 있었다. 당연했다. 그 어렵다던 고대정령과의 계약을 고작 13세란 어린 나이에 수월하게 맺었고, 노아가 받았던 문서에 따르면 4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정령을 이용한 마법의 보편화는 어느 누구도 생각치 못한 것이었다.
지금은 절멸되다시피 했지만, 마법사 이전에는 정령사가 있었다.
물론 현재도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법사는 시험에서 지정한 기준치를 달성하면 자격이 주어졌다.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것이다.
반면에 정령사는 정말 타고나야했다. 정령과 소통하고, 계약으로 서로의 생명을 공유하는 이들은 두 자릿수가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법은 정령사들만의 능력이었다.
다행인지 아니면 계약에 의해 제재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마법을 악용하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 선을 부순게 레인이었다.
독점할 수도 있었던 마법을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마법 학개론에서 다룬 것 같은데 ···’
마가가 활발한 반응을 보이는 조건이 검증되고, 검증된 조건을 수치화하여 기호로 새긴 것이 마법식이다. 이걸 전문적으로 계산하는 이들이 바로 정령 공학자, 연구원이라 불리는 이들이였다. 하지만 연구 대상의 특성 탓인지 정령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친화력이 성과에 유리하게 작용했기에, 과거 정령사였던 이들이 연구동에 소속된 경우가 많았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살펴본 자료들의 결론은 모두 ‘중앙은 무한한 에너지원에 대한 기대로 레인의 연구를 지원했다’ 라는 우호적인 방향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는 그렇게 물어온 것일까.
비슷한 시기에 나온 기사들을 전부 훑었지만 이 이상 특별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기사를 모두 물린 노아가 이번에는 레인의 논문을 찾기위해 학술지를 훑어보려 화면을 정리했다.
“저건…”
노아의 눈에 가려져 있던 리스트가 하나 보였다. 검색 경로를 보니 국가 지원 사업안에 포함된 문헌 모음에서 발췌된 것이었다. 제목이나 집필 기한을 보니 한창 샬레를 연구할 때 작성한 보고서인 듯싶었다.
가장 상단에 있는 문서를 열기 위해 노아가 화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나 눈앞에 보인 것은 붉은 글씨로 쓰인 경고창이었다.
[경고!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열람등급 : S]
“뭐야?”
검색마법 샬레인이 설치된 이 공간은 직급에 따라 열람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제한되었다. 입구에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마법관 직속 마법사는 직급에 상관없이 국립 도서관에 있는 모든 문서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더군다나 노아는 마법관중에서도 고위인사인 대마법관의 직속 마법사였으니 당연히 열람에 제한은 없었다. 분명 그래야 했다.
하지만 리스트에 있는 다른 문서를 열어보려 해도 볼 수가 없었다.
차단에 차단을 거듭한 경고문은 결국 인내심이 사라졌는지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경고! 열람제한 문서 침입 시도를 확인했습니다. 해당 인물의 검색 마법 사용을 차단합니다.]
“뭐? 잠ㄲ-”
노아가 채 말리기도 전에 마법진에서 빛이 사라지고, 자료로 가득했던 공간은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노아의 손에 있던 깃펜은 이미 사라져있었다.
“허? 이건 뭔….”
노아가 발꿈치로 바닥의 마법식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어이없는 웃음만 연신 새어나왔다. 더는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판단한 노아가 밖으로 나와 곧장 데스크로 향했다. 책등을 손질하던 사서가 다가오는 노아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일이신가요?”
“자료 검색대 사용이 막혔던데, 이거 어떻게 안 됩니까?”
“죄송하지만,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라 저희 권한으로는 차단을 풀어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영구적인 차단은 아니니 일단 기다려 보시는게 어떨까요?”
“얼마나,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사이에는 차단이 해제됩니다.”
“일주일…”
이 이상은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노아는 발걸음을 돌렸다.
‘레인, 나는 당신까지 이용할겁니다’
반쯤 오기섞은 말이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그가 필요해졌다. 노아가 아닌, 자료의 주인이라면 분명 볼 수 없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한 번 피어나기 시작한 의문은 그림자에 녹아들어 노아의 발목에 묵직하게 들러붙었다.
-
연구실은 시험관에서 나오는 빛만이 엷게 깔려 있었다.
커다란 유리관 안에 푸른 빛이 결정 형태로 맺혀있었다. 빛이기에 잡을 수 없을 텐데도 어떻게 한 것인지 케이블 같은 것이 줄줄이 엮여있었다. 시험관 안쪽 천장에는 집게 팔이 달린 기계와 한눈에 봐도 두꺼운 주삿바늘 따위가 전선으로 이어져 매달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채취하려는 도구처럼.
빛이 심장 박동처럼 일정한 간극을 두고 꺼졌다가 빛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위태로이 깜빡이는 빛을 따라 연구실 벽면에 레인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운디네···”
레인이 시험관 앞에 서서 그 빛을 보고 있었다. 아직 움직이지 불편한 어깨를 제외하고 모든 상처는 깨끗이 나아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계약자를 본 운디네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시험관 벽에 가까이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운디네가 다가왔던 자리를 쓰다듬듯, 레인이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가 이마를 기댔다. 제 손으로 운디네를 가둔 이 유리벽을 당장에라도 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시험관의 빛 아래로 레인의 괴로운 표정이 비쳤다.
운디네가 다시 레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부드럽게 내리쬐는 푸른 빛이 마치, 레인을 보듬듯 고개 숙인 레인의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넓게 퍼졌다.
"..모든걸 돌려놓을 거야. 그러니···. 조금만 버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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