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민지은/마감

"지은이 넌 끝까지 꼼꼼하구나."

"네?"

"아니, 다른 애들은 일이 없다 싶으면 농땡이도 피우고 가끔 누락도 하고 그러는데, 너는 그만두는 날까지 그러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후후후, 눈치챌 수 없게 한숨 돌리는 게 진짜 기술이라구요. 점장님 깜빡 속았죠?"

"그래, 깜빡 속았네. 자, 나머진 내가 할 테니까 그만 들어가."

"시급 깎는 거 아니죠?"

"안 깎는다, 안 깎아."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게 되면서 오늘부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그만두게 되었다. 점장님의 말이 어쩐지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 번 맡은 일은 꼼꼼하게 해내는 게 맞다. 실수가 없을 순 없지만 거기에서 실수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 있다면 마냥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싶어서 기웃거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은 두려움을 잊은 듯 적극적으로 나서서 겪어보는 게 맞았다.

"끝까지. 끝까지라..."

끝, 종료, 미감.

마무리.

꼼꼼한 것도, 맡은 일에 진지한 것도 맞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매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왜 매사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

폐건물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죽음의 위기를 뛰어넘고, 수많은 방들을 지나 턱 끝까지 차오른 숨과 한계에 다다른 정신을 겨우 붙잡아 마지막 지점인 옥상에 올랐다. 이윽고 모든 것을 씻어내려는 듯, 쓸어보내려는 듯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오랜 시간 묻혀있던 과거가 낱낱이 드러나고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가 명확히 떠올리지 못했던 강박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

아는 것이 힘이다. 알면 다친다. 모르는 게 약이다. 세상에는 그런 말들이 있는데, 셋 모두 맞는 말이다.

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고, 앎으로서 누군가를 상처입혔음을 알았다.

결코 순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지은 양이 경리 일까지 이렇게나 잘하는 줄 몰랐군."

"강력계 형사가 경리 일까지 꿰고 있으면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거 아니겠어요?"

"흠, 내가 내 돈 계산은 잘 하는데 이런 조직 같은 걸 이끌어본 적이 있어야지."

"흠, 이전 사건들을 떠올리면...리더 상은 태현 씨가 가까울 거에요."

"그 친구가 조금 못 미덥긴 해도 인간적인 면으로 감안할 수 있는 상이긴 해. 스스로는 그런 점을 모른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그런데 내가 보기엔 지은 양도 리더 상으로 제격인데 나설 생각은 없나?"

"일단 이번 달 넘기고 난 다음에 얘기하세요, 소장님."

소장님이라고 부르니 움찔하시는 것이 미안하시긴 한 모양이다. 일단은 떼어온 서류를 보기 좋게 정리하고 큼직한 서류 봉투에 차곡차곡 넣은 뒤 봉했다. 원래 갓 개업한 곳에는 발을 들이는 게 아니지만,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알게 된 인연이 인연인지라 자의로 말뚝을 박기로 마음먹었다. 당분간은 소득이 거의 없을 거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선 전과 크게 다르지도 않을 테고.

부치고, 제출하고, 발품을 팔아야 하므로 한 번 사무실을 나설 때 일거리를 모조리 해치우는 게 당연히 좋았다.

그를 위한 최적의 루트를 그리다가 문득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강박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억누르는 듯, 압박하는 듯 재촉에 가까웠던 기색은 온데간데 없었고, 온전히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만이 남아있었다. 한쪽 매듭을 짓지 못해 붙잡고만 있던 예전이 아니었다.

"소장님, 오늘 나가서 이거 마무리 짓고 바로 들어가도 될까요?"

"아아. 고생했네. 사무실 문은 내가 닫을 테니 지은 양은 일찍 들어가보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지."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내일 또."

사무실을 나서자 기분 좋은 봄바람이 휙 불었다.

끝. 종료. 마감.

사회인에게 조기 퇴근만큼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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