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3

임선호 생축글

"낯빛 좋군."

"이게 좋아 보이냐고 하고 싶지만, 그래, 나쁘지 않아. 형사님 쪽은 어때?"

"이젠 형사 아니지. 초기 소규모 사업체가 겪는 고충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네."

"잘 됐군."

"콩밥은 맛있나? 자네가 내가 아는 누구처럼 통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네."

"흥, 마음에도 없는 소릴 다하기는."

그렇게 총을 맞고도 살아남는 사람은 없다, 임선호는 그렇게 말했지만 하무열은 확률이 낮다고 생각해 섣불리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 버텨만 준다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현직 경찰이 둘 씩이나 밀실에 갇힌 덕에 탈출 직후 위치가 포착되는 대로 구조대가 빨리 출동해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비도 있었지만 비장하게 나선 것치곤 질기게도 끈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었다.

"빵에 갇히고 나서 얼마 동안은 백선교에서 수를 써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날 죽여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었어."

"..그럴 리가 없지. 아는 것도 없는데 괜히 죽여서 어디에 쓰려고."

"맞아.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니 알겠더라고. 밀실에서라면 모를까 굳이 빵에 있는 놈까지 건드릴 생각이 없다는 걸."

"그래, 저 안승범이처럼 호송 과정에서 뒤엎는다면 모를까."

"나 말이야, 가끔 그때 꿈을 꿔. 그 미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손에 두 사람의 피를 묻혀놓고도 실패하는 꿈. 태현이가 내가 행하고 감춘 모든 걸 기가 막히게 밝혀내는...그런 꿈. 웃긴 건 뭔지 알아? 꿈속에서조차 실패해서 죽어가는데 속이 후련했다는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태현이가 진실을 밝혀줘서 다행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던 거 모르지도 않았잖아. 하고."

"..어찌됐든,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뿐이지. 태현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

하무열은 잠시 침묵했다. 그런 의미에서 임선호는 위험한 놈이었다.

극한 상황에서 무기로 쓸만한 게 나오면 의기양양해지는 건 일반적이었지만 전직 군인이기 때문인지, 이제껏 여러 가지로 억눌려온 반동에서인지 사람을 죽이거나 크게 다치게 할 가능성을 점쳐볼 만큼 공격성이 배가됐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나마 사람 수로 밀어붙여서 자제시킬 수 있었지만 미궁에서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태현이는 날 믿어주더군. 처음엔 누명이었지만 이번엔 정말 범인 역할이었는데도..가진 걸 다 잃고 인간성도 닳아서 바닥 끝까지 떨어졌구나 했는데, 그 녀석은 생지옥속에서 의심스러운 게 당연한데도 나를 믿는다고, 승아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하니까...스러진 거지. 내가 이런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태현이를 보니 이런 나라도 나서서 지켜주고 싶다고, 더는 험한 꼴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싶더라."

"나도 그 덕을 보고 있지. 자기 반성의 시간도 가졌고."

"내가 언제쯤 세상 빛을 다시 볼진 모르겠다만 잘 지내. 면회 안 와도 되니까."

"생존자 케어 서비스라서 말이야. 잊을 때쯤 또 올 거야."

죽었다면 손쓸 도리가 없지만 살아있다면 손을 뻗지 않을 수 없잖은가.

죄를 지었다고 죽음으로 사죄할 순 없다. 죄를 지었지만 살고 싶다고,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저 역시 깨끗한 사람은 아니지만 살아남았고, 살아남았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무리를 짓고 나아가야만 했다. 마지막까지 한 발자국 남기고 등을 돌린 임선호 역시도. 어떻게 할지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사회와 격리된 동안 되돌아볼 시간도 있을 테고.

"여하튼 안착했으니 나올 때까지 건강하게 있으라고. 가끔 얼굴 보러 올 테니까."

"고마워......무열이 형."

"...크흠, 아직 태현 군에게도 익숙해지지 않은 호칭이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구만. 그래..내가 형이지..그건 맞지..."

"거 감동적인 부분에서 분위기 깨는 거 하고는...출소할 때까지 잘 살아남을 테니까, 사람 속 그만 긁고 가 봐."

"안 그래도 그럴 거였네. 잘 있게."

하무열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려 문으로 나가기 직전에 툭 던졌다.

"형이 사식 넣었다."

***

"다녀오셨어요?"

"그래. 둘 다 보고 왔지."

"고생하셨네요."

사무실로 돌아오니 두 사람이 하무열을 맞이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좀 나눴는데, 어쩐지 전보다 후련해보이더군."

"다행이네요. 선호 씨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주셨나요?"

"아."

"아, 라뇨..생일 축하한다는 핑계 겸해서 면회하러 간다고 한 거잖아요.."

"사식 넣어줬으니 어련히 잘 알아줄 거라 믿어보자고."

"못 말려.."

"세상 사는 얘기 묵직하게 나누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내년에는 제대로 축하해주면 되지 않나."

그래도 생일인데. 두 사람은 하무열에게 핀잔을 주고는 자리를 비운 사이 들어온 일감에 대한 서류를 가져왔다. 밀실과는 동떨어진 작은 사무소의 일상은 대개 비슷했다. 언젠가 같이 면회를 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하무열은 시선을 건네받은 서류를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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