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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무지개, 땅 위에는 기름띠

검은방. 하은성 장례 직후 하무열 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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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하늘에는 무지개가 걸리고 아스팔트 위에는 자동차가 흘린 기름으로 생긴 기름띠가 오색으로 반짝이며 번들거린다. 하늘에는 무지개, 땅 위에는 기름띠. 새파란 하늘엔 재 날리는 일이 더는 없어 화창하기만 한데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을 괜스레 염려한 인간은 구름 대신 하얀 연기를 화장터 굴뚝을 통해 흘려보낸다. 연기는 무지개다리보다 더 높은 하늘을 향해 오르는가? 계속 올려다보자니 목이 아파 고개를 내리는데 문득 겨우 이 정도로 아파해도 되는가 같은 우문이 머리에 박혀 든다. 안 될 이유는 없다. 없다는 걸 알지만 한 번 떠오른 생각이 내세우는 존재감이 만만찮다. 죄의식일까? 그러나 죄의식을 느껴야 할 주체가 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다행히 인지하고 있었다. 죄책감을 가져야 할 자는 제가 아니다. 대가를 치러야 할 자는 분명히 있다. 그러니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 정도이다. 한심해라. 한심한 인생이어라.

당신이 죽은 뒤 남겨진 나는 이토록 한심하나니, 나와 다르게 부지런할 당신은 저 다리를 건너 건너편에 도달했는가?

대답해. 대답해 줘.

대답해 줘. 누나.

죄책감을 느껴야 할 자가 저는 아니다. 그래서 조금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면 금수가 따로 없으리란 것 또한 모르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뒤엔 돌아갈 수 없는 자리만이 남아 있으니 남겨진 자신은 사실 남기로 한 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저로선 부정할 수 없다. 그 정도로 염치도, 양심도, 죄의식도, 인간성도 결여한 자가 되지는 못하는 자신은 여기 남아, 여기 남겨져, 치우지 못한 빈 컵과 말라 시들어 죽어버린 화분 속 화초와 상해버린 된장국과 우울과 백년가약을 맺고 인생의 동반자가 된다. 그들이 저를 죽여버릴 때까지. 제가 그를 죽여버릴 때까지.

저 위, 무지개를 이루는 색색의 경계가 분명치 않게 뭉개져 흐린 것 같이 내 앞의 선 역시 그러하다. 건너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벌써 한참 전에 건너와 건너편에 서서 할 소리는 아니리다.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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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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