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방

강휘무열_가산점, 다른 단문 하나

2019~2020년산

가산점

간만의 단잠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별 생각 없이 창밖 풍경부터 살필 정도였다. 구름은 붉거나 보랏빛이 돌았다. 최후의 날 운운하는 재난 영화에서 본 적 있었다. 하이틴 영화에서도, 시가전을 하던 느와르, 서부영화에서도. 곱씹을수록 구분하는 의미가 없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그와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폭염에는 돛대도 나눠준단 비아냥에, 그는 자네이니 주는 것이라 대답했다. 그리곤 물었던 담배를 가져가 한 모금 빨아들이곤 돌려주었다. 그에게 받는 가산점이 좋았다.

그간 가산점은 내 노력이 아니었다. 자꾸만 공을 가로채는 치가 있다는 연민의 산물이었다. 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구김 없이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는 어떤 가산점을 받을까. 강등에 좌천이 십 년째였다. 강력계에서 멀어진 그가 꽤나 큰 사건에 휘말렸다는 것만 눈치챘다. 전보다 과묵해졌다. 원래부터 미래에 관해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 둘이 보고 있는 풍경 따위나 예전에 있던 일이 화제였다. 그도 나도 미래가 달가운 쪽이 아니므로. 그는 그게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본보기를 넘어 내 십 년 후이니 그럴 수밖에 없나. 어쩌다 물건을 떨어트리긴 해도 구겨진 옷을 입은 건 보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머리가 뻗쳐 있으면 보는 즉시 욕실로 들어갔다. 수염까지 정리하고 나왔다. 멀끔한 차림으로 휴일 아침을 꾸며냈다. 나는 그 가산점을 기억해두었다. 심정을 헤아리는 건 시간에 맡겼다. 같은 흡연자면서 입을 맞추기 전 미리미리 사탕을 씹는 건 조금 우스웠다. 철두철미 하십니다. 그리 말하면 자네는 안 그럴 것 같냐며 어깨를 툭 쳤다.

필터까지 빨아 피우곤 그에게 키스했다. 텁텁하면서 어딘가 구수한 냄새가 썩 유쾌하지 않고, 더운 살갗이 땀으로 미끄러웠다. 이 불편한 짓을 이어가는 점수를 헤아렸다. 고개를 틀자 그가 허리를 잡았다. 열기가 몰릴 찰나 입술이 떨어졌다. 해가 들어가거든 담배를 사러나가자며, 어깨를 두드릴 때처럼 등을 토닥였다. 그는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들었다. 지금이 몇 회인지도 모를 드라마에서 손을 멈췄다. 회차만 알지 못할 뿐 전후사정이 눈에 선했다. 분단위로 바뀌는 표정을 구경하다 해가 졌다.

같은 담배를 세 갑 샀다. 각자 하나, 남은 건 비상용이란다. 오래 두면 맛없어진단 핑계로 피워버리지 말라 덧붙였다. 그 공금은 십 년째 같은 자리에 있었다. 나는 이제 자기 연민을 티내지 않고 베풀 줄 알았고, 가산점을 생각하지 않으며, 점수를 골똘히 생각하는 그를 다루는 법을 알았다.


팔목에 걸었던 자켓을 오른손으로 바꿔 들었다. 옷으로 덮어두었으니 덥겠지 싶던 생각이 허투였다. 김재하는 해가 말그대로 내리 꽂힌다 생각했다. 말그대로. 기자라는 단어를 두고 스스로를 르포라이터라 칭했다. 그런들 두 직업이 묶이는 카테고리는 비슷하거나 같았다. 생각을 할 때 조차 토씨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는 것도 그랬다. 이제 더위만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아예 단추를 풀고 소매를 걷어올렸다. 신경질이 섞여 버벅거렸다. 태양은 흘겨볼 엄두도 나지 않으니 화풀이는 그쪽이었다. 뒤통수도 제 손으로 헝클었다. 머리에 올랐던 열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한숨도 뱉어본다. 잔불에 바람을 부는 격이었는지, 도로 화가 치밀었다. 걷는 발에 점점 힘이 실렸다. 그런들 발이 아픈 건 저였다. 다시 열이 모이고 뻐근해진 것도 제 뒤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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