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방

강휘무열_내게선 담배 냄새가

단문

내게선 담배 냄새가 났다. 그뿐이라 생각했는데 가려진 냄새가 있었다. 수증기를 먹은 빳빳한 피륙 냄새도 났었다. 누나는 아침마다 내 셔츠를 멀끔히 다려주곤 했다. 그에서 밴 냄새겠다. 어릴 적엔 그게 그저 옷 냄새인 줄 알았다. 세탁소 앞을 지나면 늘 그 냄새가 뿜어져 나온다는 이유에서, 모든 옷에서 조금씩 나는 줄로 알았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를 처음 입던 날까지 그랬다.

처음 입던 날은 첫출근일이기도 해서 온통 처음으로 둘러싸였다. 딱히 그런 것에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다만 간만에 새로 외울 이름이 많았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눈을 뜨니 좁은 공간에 갇혔고 위로는 젊은 남자가 얹혀 있었다. 이 신참내기는 내가 잘 알았다. 앞서 떠올린 셔츠를 입은 남자. ‘나’니까.

둥글게 자른 머리만큼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위에 엎어져 있었다. 죄송하다며 떨어지려 해도 장신의 남자 둘이 꼭 붙을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처음엔 백선교가 또다시 일을 터트리는 건가 의심했다. 말도 안 되는 교리를 펼치는 사이비집단이지만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짓, 십여 년 전의 나를 내 몸 위에 올려두는 짓은 벌일 수 없으므로. 뭐 덕분에 ‘나’는 내가 저일 것이란 생각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내게도 갑자기 50이 넘은 내가 얹혀 있으면 꿈이거나 못 알아보겠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담배를 태우던 중이었습니다.

어차피 나도 마찬가질세.

확실히 죄송하단 말마다 담배냄새가 실려왔다. 피차일반이라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 걸 신경쓸 때가 아니기도 하고. 다만 말을 더 짧게 할 것을 후회했다. 나는 줄곧 같은 담배를 피웠으니 저쪽에서도 비슷한 걸 알아채지 않을까. 참 나는 남의 담배를 구태여 알아내고 짐작할 성정이 아니지. 굳이 그런 짓을 하느니 서류철 하나라도 더 살폈다. 이거 심경이 복잡해지는 걸. 내게선 지금 무슨 냄새가 나나 옷깃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늘 쓰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났다. 다림질을 하지도, 다림질을 할 필요 없는 옷을 입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무사히 돌아간다면 안에 입은 반팔 티셔츠를 다려보고야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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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칭찬하는 수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니 정말 이렇게 써줄 줄은 몰라서 넘 감격스러워... 나는 여강휘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걸 생각했었는데 하무열 시점이라니 맛있다... 보통 사람의 기억을 잘 불러일으키는 감각 중 하나가 후각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생각나는 묘사들로 시작을 열어줘서 흥미롭게 읽어내렸던 것 같아. 첫 출근으로 쭈볏쭈볏했을 그를 생각하니 새삼 많이 달라졌다 싶어ㅋㅋㅋㅋ 우리는 항상 여강휘를 마주하는 하무열을 생각하는데 반대로 지금의 하무열과 10년 뒤의 하무열을 조우하는 건 잘 상상하지 않으니 거기에 또 웃었어(그러면서 너가 예전에 써줬던 글도 생각났고). 생긴 것이나 모양새는 달라졌을지라도 목소리는 거의 변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말을 더 짧게 할 걸 그랬나 후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누굴까 싶다가 하무열의 대답을 듣고 어떤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번에는 알 수 없으니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아. 넘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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