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무강_보편적인 상印 象
퇴근 후 돌아오거든 물을 썼다. 손발을 씻고 쌀을 안쳤다. 다시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벗은 옷가지를 챙겨 세탁기를 돌렸다. 요란한 소리가 생겼으니 베란다 문을 닫았다. 그런들 커다란 유리창 같은 문이었다. 텔레비전을 틀어 소리를 키웠다. 식탁에 저녁상을 차렸다. 그러면 이제 세탁기와 텔레비전, 수저가 귓전에 부딪혔다. 특별한 구석이 없었다. -번지 -층, 이라고 고유한 주소를 붙여도 그랬다. 탐문을 다닐 적이면 이런 저녁을 보내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상식은 몰라도 상식적이었다. 그럼에도 기억하는 게 형사였다. 나는 수완이 좋은 것 같다.
그의 집에 들어서면 다른 그림 찾기 놀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십 년은 강산을 바꾸는 데에 힘이 부쳤는지, 창밖 풍경이나 조금 달라졌다. 형광등은 분명 다른 것일 텐데 이전과 같은 광량을 유지했다. 그 아래서 세탁기는 낡되 세제 상자는 같은 회사의 것으로 돌아왔다. 상표 모양이 바뀐다 해도 회사명은 같았다. 칫솔도 나날이 벌어지고 휘다가 새것으로 되돌아왔다. 바뀌는 듯 바뀌지 않으면서 매번 같은 자리에 있었다. 배열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상식적인 공간에 온 손님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개수대 앞에 선 그의 뒤를 지나 욕실에 들어갔다. 벗은 옷을 서랍에 잘 넣어두었다. 샤워기가 그쪽을 향해도 서랍문이나 젖었다. 문 앞에 그가 두고 간 반소매 옷과 반바지를 입고, 조금 전까지 입었던 옷은 의자에 걸었다. 이런 여름철에는 그가 옷을 걷어갔다. 지금 빨면 금방 마른다면서. 물을 만나면 무게가 더해질진대 몸은 한결 가벼웠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며 라이터, 영수증을 꺼내 식탁 한쪽에 모아두었다. 세탁물의 주머니를 비우는 건 상식이었다. 그와 나는 십 년을 간격으로 나뉜 나와 나이므로 행동에 결격사유랄 게 없었다.
거실 한가운데 상을 차리곤 꼭 텔레비전을 틀었다. 정작 보는 이는 없었다. 그와 나의 시선은 반찬과 밥그릇을 오갔다. 얼핏 젓가락 끝을 따르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이 끝나걸랑 그가 리모컨을 들었다. 광고 하나가 지나가기 전에 채널을 바꾸었다. 자네나 나나 밥 먹는 데에만 입을 쓰는데, 듣기는 또 좋아하지 않나. 언젠가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릇을 치울 때도 텔레비전을 켜두었다. 그가 사과가 든 쟁반을 들고 와서야 나란히, 텔레비전을 앞에 두고 앉았다.
영화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사과 특유의 산미 섞인 단맛과 광고가 끼어들었다. 볼 생각이 없었거니와…. 화면 귀퉁이 계속 떠 있는 문구가 신경 쓰였다. 이게 벌써 그렇게 됐어? 라니. 티가 났는지 그가 불을 껐다. ‘요즘에’ 사람들이 그렇게 따라한다는 영화였다. 그런 데에 관심이 없는 나도 알 정도였다. 그럴 것이 극장마다 걸어두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다하다 이 시간에까지 나온다고 해야 할지. 자네는 이제 처음 보겠구만. 그가 말과 함께 사과를 건넸다. 한 서너 번째 조각이니 하나를 먹은 셈이었다. 지금 영화에선 주제곡이 몇 번째로 나오는지 모르겠다. 같은 것은 아니고 매번 변주되었다. 빠르기나 악기를 달리했다. 종장부에 처음으로 가사가 흘러나왔다. 늘 같은 타이밍에 오차 없이 해냈다. 수백, 수천만, 천문학적인 횟수로. 햇수로도 십이었다. 영화로운映畵 것을 생각하는 새 스태프롤이 올라갔다.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정지한 채였다. 노래와 마찬가지로 숱하게 세상에 나왔을 이름도 곧 멎었다. 잠깐, 아주 잠깐 화면이 어두워졌다. 바로 가전제품 광고가 튀어나왔다. 새까만 광원이 어딘가 어색하단 인식이 기억으로 넘어갔다. 그는 불을 켜곤 그대로 쟁반을 가지고 개수대로 가져갔다. 나는 편히 앉아만 있었다. 되감아야 할 테이프가 있지도 않고.
몰랐는데, 지금 보니 촌스럽구만.
쟁반을 대강 헹궈놓은 그가 돌아왔다. 한 눈을 찡긋거렸다. 촌스럽다고 하기엔 그는 보행자1에 잘 어울렸다. 키가 크고 수염 자국이 성한 중년 남성 엑스트라를 구하기란 얼마나 쉬울는지. 옷차림도 저 구한말에 떨어트리지 않는 이상 무난했다. 형사들이 튀는 구석이 없는 차림을 하니 그렇겠다만. 이어 감상을 물을 줄 알았으나 말이 없었다.
시가지 추격전은 재밌었습니다.
자넨 여전하구만.
먼저 떠오르는 장면을 재미있었다 말했다. 여전하단 말이 이를 가리키는지, 또 다른 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것을 궁금해하면 그는 꼭 나중에 알게 된다고 대답했다. 그에 알려주지 않는 이유를 다시 묻거든 괜히 놀려 봤다는 식이었다. 별것 아니니 그랬다고도 했다. 지난 백분百分만큼 따분하진 않았다. 시계를 보니 그보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영화 채널은 광고가 길기도 기니까.
화장실에 서서 칫솔을 물자 금방 그가 따라 들어왔다. 앞을 보면 거울로, 옆에 선 사람이 보였다. 비좁으니 그나 나나 같은 풍경을 볼 테다. 풍경이라기엔. 나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와 나는 새삼 닮은 것 같다. 똑같은 모습으로 설 일은 없을 게다. 나는 서른아홉만을 만났다. 그리고 늘상 현재였다. 내가 삼월 칠일이면 그도 삼월 칠일, 팔월 이십일일이면 팔월 이십일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말이다. 현재와 현실을 두고 철학놀이를 하기엔 내가 디딘 현실에서는 떼어지지 않았다. 시선을 떼는 것도 잊어버렸다. 거울 속의 눈을 보다 그대로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물었던 거품을 뱉었다.
매일 보는 나는 익숙하네만, 자네는 이 잘생긴 얼굴이 보고플 법도 하지.
닮은 얼굴로 그러지 마시죠.
눈을 굴려 정면으로 돌아왔다. 그런들 흘끔 쳐다보는 눈짓이 보였다. 거울로 다 보이는데도 훔쳐보는 시늉이었다. 콕 꼬집어 물었다.
거울에 전부 비칩니다.
그러니 보이기 싫은 데까지 다 보이지.
질질 흘리는 건 보기에 별로겠구만. 중얼거리며 그가 몸을 기울였다. 수도꼭지를 올리고 물컵을 들 때, 나는 비스듬히 서 고개를 들었다. 등이 눈앞에서, 눈 아래서 들썩였다. 나는 내 등을 본 적이 없다. 본 사람 말로는 다독여주고 싶게 생겼단다. 그래서 그날 밤에 내 등을 토닥였다고. 들썩이는 등을 어루만졌다고. 말하면서 그는 또 어깨를 문질러주었다. 그의 등은 튼튼하게도 생겼다. 보고 싶은 부분만 비추는, 무슨 동화에 나올 법한 거울이겠다.
세수를 마치고 그는 바로 베개를 꺼내주었다. 본래 혼자 눕던 자리지만 둘이 눕기에 충분했다. 손짓을 따라 이부자리에 누웠다. 목까지 이불을 덮자 불이 꺼졌다. 곁에 다가오건만 보이지 않고 소리로만 들렸다. 이불이 들렸다가 다시 덮여도 무게감보다는 소리가 더 와닿았다. 어깨가 닿고서야 그가 물성으로 느껴졌다. 옷 너머로 미지근한 체온이 옮는 것 같다. 옆얼굴이 선명해질 즈음 눈을 감아버렸다. 눈앞이 다시 온통 검었다. 영화도 이렇게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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