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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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워닝 : 살해, 자살

검은방 2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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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끌어다 봉분을 쌓았다. 땅이 좁아 크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 기를 꽂으면 어린 아이들이 와 모래뺏기를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의 천진함이 무섭다, 그런 말로 털기라도 한다면 낫겠다. 누군가 파헤친다면 나는 아주 불리하다. 비석이 있길 하나, 뼛조각이 나오길 하나. 무덤이라 봐줄 사람이 없었다. 사정은 알겠는데 산 사람을 치면 어떡합니까. 영화에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 다른 경찰관이 옆구리를 찌르는 장면도 보았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배려였다. 오히려 배려가 날카로웠다. 경찰이 내게 무얼 얻으려고 배려를 가하겠는가. 현역 르포 라이터일 적부터 익숙한 치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相對는 내심 반가웠다. 나도 양수연에게 그랬다. 장담한다. 그랬던 상대는, 나부끼는 머리칼이 아니었다면 멈춘 듯 보였다. 무릎을 휘청인 이후로 저 상태였다. 선의의 경쟁이라도 한 듯 마음이 좋지 않았다. 

수혁 씨. 수혁 씨는.

저 이름은 아내와 상대의 약혼자를 찢어놓았다. 병원장의 아들이고, 행정실장이며, 불법 장기매매 브로커. 그러니 우리의 깃발이었다. 장기란 저마다 역할이 있었다. 구분이 분명해서, 우리는 봉우리에 오르는 길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그 방에서 상대와 마주친 순간 알아봤다. 내가 짓고 싶은 표정으로 섰으니. 알아챘다는 것까지 분명했다. 상대는 내가 먼저 권총을 꺼내길 기다렸다. 정확하게 손등을 내리치려거든 그 수 외에 없었다. 그대로 부지깽이를 강수혁의 뒤통수에 휘둘렀다. 상대가 부러웠다. 깃발과 상대는 연인이었다. 모르고 이어진 인연이라곤 하나 버릴 수 있는 복수귀였다. 갑판을 오르며 수혁 씨, 부르던 목소리가 나지막했다.

순경은 형사의 조수라더니 수제자 뻘이었다. 진상이라 부르며 잘도 알아봤다. 그건 청출어람이 아니었다. 형사는 나도 모르던 내 배역을 맞췄다. 문제지를 받지도 않고서. 양수연이 상대도 없이 감히 깃발을 낚아챘을까. 복수를 팔러 온 방문 판매원은 상품만큼이나 수완이 희한했다.

상대는 뒷걸음치다 끄트머리에 섰다. 자신까지 세 번, 바다에 버리는 것으로 부러움을 샀다. 나도 뒤로 걸어 선으로 갔다. 선善도 기다란 작태일지. 획을 생각하다 휘청대는 무릎을 가지런히 모았다. 구부렸다. 빠르게 튀어오르며 가장 높이 들렸을 때, 몸에서 힘을 풀었다. 수면이 깨지는 역시 날카로운 소리, 팽팽하던 근육이 돌아오는 느낌, 제법 개운한 바닷바람. 우리는 모래뺏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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