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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현 / 미소
사건 관계자-지금은 한 사무소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 중 류태현과 제일 교분이 깊은 건 하무열이었으나 그마저도 밀실에 얽히게 되면서 알게 된 인연이라 그 이전의 류태현은 잘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하무열은 더 전에 만났다면 류태현이 어떻게 웃었을지 궁금해하곤 했다. 물론 류태현이 웃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류태현은 평범한 선에서 감정이 풍부했기에 순경이었던 시절에도 다른 사람에게 -혹은 하무열에게- 화도 내고, 피곤해 하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슬퍼하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다만 어딘가 좀 패여있었다. 딱 잘라 이야기해서 하무열은 류태현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때론 쓸쓸해 보이고, 때론 아련하게도 보이는 미소.
하무열은 그 미소가 싫었다.
"태현 씨요?"
"그래. 지은 양이 보기엔 어떤가?"
"가끔 걱정된다 싶으면서도...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야, 고양이를 기르고 있잖아요."
"이제 살 좀 붙었다고 듣기는 했지."
"고양이를 기르고 또 함께하면서 그 아이를 돌보듯 자신의 마음의 상처도 스스로 보듬게 될 거라고 봐요."
민지은도 류태현도 근본적으로는 강한 사람들이었다. 하무열보다 더 젊기도 했고.
사실 그런 걱정을 한다는 걸 류태현이 알았다면 무열이 형부터 잘 하세요, 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무슨 얘기들 그렇게 하세요?"
"자네 웃는 얼굴이 쓸쓸해 보인다는 얘길 하고 있었지."
하무열은 평소대로라면 돌려서 했을 대답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한 소리 들을 걸 알면서도 솔직하게 물을 수 있는 것도 그가 그 밀실 속에서, 또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배운 점이었다. 류태현은 그런가요. 라고 짧게 답하면서 작게 웃었다.
"무열이 형도 기분 나쁘게 웃는 거 고쳐야 해요."
"그래요. 손님들이 무열 씨 보고 깜짝 놀라잖아요. 전직 경찰이라고 소개 안 했으면 꺼림칙해 하셨을 걸."
"흥신소 타이틀 달았는데 이 정도는 봐 주라고."
말이나 못하시면.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고 하무열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을 수밖에 없었다.
***
사무실이 있는 건물 옥상은 개방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류태현이 캔맥주가 든 비닐봉투를 들고 하무열을 옥상으로 초대했다.
"아니 회식 때 술도 잘 안 마시는 자네가 웬일인가?"
"걱정하는 거 같아서 술이나 한 잔 하면서 시름 좀 푸시라고 사 왔죠."
"기특한지고...가 아니라, 시름까지는 아니야."
"지은 씨도 같이 부를까 했는데, 알바 있다고 나중에 같이 먹자며 먼저 가셨어요."
"여기서 경리 일 맡아서 해주는 게 용할 따름이지."
"앉으세요."
하늘색에 구름무늬가 그려진 돗자리가 있었다. 그 언젠가 밖에서 다같이 배달 음식 시켜먹을 때 받은 것이었다.
하무열이 먼저 털썩 앉자 류태현도 그 옆에 조금의 틈을 두고 앉았다.
"자요. 늘 드시던 걸로."
"금주하라더니...아냐, 좋지. 고마워."
"걱정해주시는 거 알아요."
딸깍, 하더니 탄산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무열도 제 몫의 캔맥주를 땄다. 탄산이 다시금 차올랐다.
"잃은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곁에 무열이 형도 있고, 지은 씨도 있고, 승아도 있습니다. 아미도 있고요. 어찌됐건 저는 살아남았고, 이 일상을 누리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
"무열이 형이나 지은 씨가 당장 과거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처럼 저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언젠가 시간이 좀 더 많이 흐르고 나면 조금 더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 거에요."
"그래, 그렇겠지."
제 누나와 류태현은 달랐다.
류태현은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부딪쳐서 깨질 지라도 밀어붙이는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한 번 박살이 났었다. 비록 둘 다 지켜보지 않고서는 하무열의 마음이 어쩔 줄 모른다는 것만이 그저 같았다. 하무열은 캔을 흔든 다음 류태현에게 슬쩍 내밀었다. 류태현도 제 캔을 들어 툭 건배했다.
"뭐, 괜찮아. 내가 한 개그 솜씨 하니까 말이지. 까짓거 한솥밥 진득하게 먹으면서 빵 터트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
"무열이 형 개그가 빛을 발했던 적이 있기는 했고요?"
"솔직히 웃기다고 생각한 적 없었나?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좋아."
"제가 왜 부끄러워요."
"자네 개그 솜씨도 썰렁하잖아."
"썰렁개그도 먹히는 사람한텐 먹힙니다."
"내 개그 솜씨에 배를 붙잡고 웃는 사람들도 있다고."
"복장이 터지는 거겠죠."
"나한테 쌓인 게 많은가?"
"사실을 말하는 건데요 뭘."
"친절했던 태현군이 그립구만..."
"전 늘 친절해요."
여름이 훌쩍 다가오는지 미세먼지 섞인 공기도 참아줄 만하게 서늘해진 저녁 공기는 썩 기분 좋았다. 하무열은 류태현과 캔맥주를 한 캔씩 마시고는 빈 속에 맥주 마셨더니 속이 그렇다며 근처 물색해둔 안주집으로 2차를 가자고 제안했고 류태현은 하무열이 전에 바란 것처럼 비교적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만 가시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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