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FO

돌아갈 곳

[운 라이오닐 BL 드림]

1

이번에는 꽤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웠던 모험가다. 이번에는 벌어진 일들이 대략적으로 수습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천계로 돌아온 모험가는 에르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일이 서류로 자료를 정리해 건넸으며 전달 후에는 드물게 피곤하다는 이유로 평소보다 일찍 자리를 떴다.

원래대로라면 그가 갈 곳은 이튼 공업지대에 있던 자신의 작은 공방이겠지만 에르제가 황녀가 아닌 황제로 있게된 그때부터 그는 거처를 정리하고 겐트로 터를 옮겨 새로운 터전에서 지내게 되었다. 작금에 이르러 여러모로 황도에 지내는 것이 편하다고 판단한 것도 있거니와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물론 바쁜 나머지 집에 제대로 돌아간 적은 별로 없었다.

제 집에 돌아온 모험가는 우선 거추장스러운 자신의 옷을 벗고는 바로 욕실에 들어가 씻은 뒤 지친 듯 쇼파에 앉았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어. 그는 혼잣말 한 마디를 중얼거리고 모처럼 공방에 있는 기계들을 정비하려 했으나 오늘따라 의욕이 도통 나질 않아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모험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고르다가 초인종이 울리기 전까지 잠에 빠졌다.

그는 눈쌀을 한 번 찌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자신의 단잠을 깨운 이가 누구냐에 따라 매몰차게 대할 의향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마음에 드는 이었는지 험악했던 표정이 풀어지고 이내 문을 열어 상대를 맞이했다.

“제너스님.”

“어서와. 라이오닐.”

“… 돌아오셨다고 연락 받았습니다.”

“아침에 돌아왔어. 가만히 있지 말고 들어와.”

그는 익숙하다는 듯 상대를 집안으로 들인 뒤 한껏 다정한 눈빛으로 제 앞에 서있는 이를 바라보며 거실로 향했다. 라이오닐의 코트를 벗긴 뒤 쇼파 한구석에 최대한 구겨지지 않게 옷을 두고 그를 먼저 자리에 앉힌 다음 따라서 옆에 앉았다.

“보고싶었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엔 이런 말을 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하더니, 좀 감격인걸.”

“… 놀리지 말아주십시오.”

“미안.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조금 장난치고 싶었어. 아, 이 집에 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

“그렇습니다.”

“그동안 일이다 뭐다 바빠서 한번도 초대하지도 못했는데 용케 잘 찾아와줬네. 고마워.”

“저야말로 한번도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네가 미안할 일이 뭐 있다고. 나도 자주 들어가질 못해서 아직은 여기가 익숙치는 않아.”

그래도 내일부터는 얼추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말과 함께 제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료를 가져와 라이오닐에게 건넸다. 그는 짤막한 감사와 함께 받은 음료를 마시며 거실을 대강 둘러보았다. 상대를 지켜보던 제너스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2

“라이오닐.”

“… 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음, 당황스럽겠지만 집정리가 끝나면 나와 같이 살지 않을래?”

동거, 말씀이십니까. 라이오닐은 상대의 말에 상당히 놀랐는지 눈을 약간 크게 뜨고는 제너스를 바라보았다.

“… 그래. 누군가에게 돌아간다는 거, 너라면 좋을 거 같아서. 항상 원했던 일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리고 너와 같이 있고 싶어. 널 편한 곳에서 재우고 싶고 네가 편안하게 있었으면 좋겠어. 또… 가능하다면 난 네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네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고 싶어. 물론 동거가 부담된다면 굳이 더 이상 권유하지도 말하지 않을게. 어쨌거나 선택은 네 자유고 난 네 선택을 존중하니까. 거절한다 해도 널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니까 정말로, 정말로 부담갖지 않아도 돼.”

제너스는 그가 부담되지 않게 잡은 손을 살며시 떼며 오히려 한층 다정해진 표정을 지었다. 라이오닐은 그의 말에 걱정과 기쁨이 섞인듯한 복잡한 얼굴로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 제너스님의 제안은 감사드립니다만, 제가 같이 지내면 명성에 누가 되거나 모험가님의 평판에 타격이 될까봐 고민입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여기 인간들은 내가 누구랑 살건 엮여봤자 피곤하다는 것만 알걸. 아니면 한 번 해보라고 하던가. 미친놈들에겐 똑같이 미친 상태로 대해주면 돼.”

“… 그 점이 걱정입니다만. 굳이 저 때문에 싸우시는 건 원치 않습니다.”

“너 때문에 싸운다고 생각하지마. 이건 네 탓이 아니잖아? 오히려 넌 괜찮겠어? 나 때문에 네가 곤란해진다면 그건 별론데.”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면 그걸로 됐어. 그래도 당장 답하기 어려우면 나중에라도 말해주면 되니까. 기다릴게.”

애써 초조함을 참으며 제너스는 한껏 여유있는 척 그를 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억지로라도 그를 이 집에 머물게 하고 싶었지만 제 성깔대로 하다가는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것도 알거니와 그가 상처입는 것 역시 원치 않았기 때문에 매번 욕망을 참아냈다. 그저 그를 좋아하니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라이오닐 역시 고민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둔감해도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 비해 부드럽다는 건 알고 있으며 서로 몸까지 섞어본 사이긴 하나 같이 산다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그와 함께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도 했지만, 상대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것도 원치 않았다. 무엇보다 같이 지내다가 생활습관이나 성향이 맞지 않으면 그가 저를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내심 두려웠다. 모험가님은 제게 이리 잘해주시는데,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라이오닐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조금 의지하고 싶어지는 것은 역시 상대를 좋아한다는 의미일까. 매번 소중한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저의 곁을 떠났는데 그는 한번도 저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매번 자신에게 찾아오거나 혹은 자신이 그에게 찾아가게 만들었다. 군이 아닌, 돌아갈 수 있는 곳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결심이 선 듯 고민에 차있던 표정은 결심이 가득한 얼굴로 변했다.

“저, 제너스님.”

“… 응?”

“… 아까 말씀 주신 제안,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수락한다는 의미지? 제너스는 그의 답에 평소에는 지었던 적 없는 놀란 모습으로 상대의 손을 굳건히 잡았다. 네 마음을 들려줘서 고마워. 좋아해. 라는 말에 라이오닐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천천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제너스님께서 준비됐다고 하시면 저 역시 신속하게 갈 수 있도록 해두겠습니다.”

“그래. 준비가 끝나는 대로 연락할게. 네가 안심하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만들게.”

“… 저도 제너스님께 돌아갈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라이오닐은 제너스가 자신에게 해준 것처럼 그를 조심스레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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