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eart

"다녀왔어."

헥스 헤이와이어 X 시클링 (당신)


※ 좀비 아포칼립스 AU.

※ 눙(@6uooU)님의 연성 https://x.com/6uooU/status/1658423371338752000?s=20 을 보고 작성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 헥스 헤이와이어에 대한 개인 해석과 날조가 있습니다.





  “다녀왔어.”


  헥스 헤이와이어는 아지트의 문을 열면서 무언가 다른 공기를 느꼈다.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 희미하게 피비린내가 섞인 공기였고 비릿하고 눅눅한 악취였다. 좋지 않은 예감이 뒤통수를 세게 강타했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탐사에서 얻어 온 물자로 가득한 배낭을 던지듯 내려놓고 아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엉망진창이었다. 낡았지만 꽤 푹신하던 소파는 갈기갈기 찢겨져 속에 있는 쿠션과 솜이 온통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담요는 알 수 없는 오물로 더럽혀져 축축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나 명백한 그 현장에서, 헥스 헤이와이어는 이를 악물었다.


  이곳은 모든 괴물들로부터 안전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가 여기 있었기 때문이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안전한 조치를 취해 놓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플랜도 몇 가지 가지고 있었다. 이곳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는지 헥스 헤이와이어는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이 직접 한 것이었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준비해 둔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그가 이곳에 없을 때, 그러니까 지금과 같이 탐색을 나갔을 때를 대비한 플랜도 가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소용 없었다고? 허탈함과 분노 사이에 공포는 없었다. 겁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이 안에 괴물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직접 그의 손으로 해치워야 할 것이지 두려워 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어렵지 않게 한쪽 구석에 숨어 있던 당신을 발견했다. 당신은 아지트의 가장 안쪽, 가장 구석진 곳에서 울다 지쳐 잠들어 있었다. 당신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몇 군데에는 물린 자국도 보였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다만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평소와 같이 아지트의 환기구를 열고 약간의 식사를 준비하며 헥스 헤이와이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뿐이었고, 그 근처에 없어야 하는 괴물들이 무언가에 이끌려 아지트 가까이에서 서성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이 어떻게 환풍구를 통해 기어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그들은 아지트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괴물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들이었고 이미 죽은 괴물들이기에 다시 죽이기도 힘들었다.


  신선한 살 냄새를 맡은 괴물들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환기구를 통해 더 많은 괴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야 했지만 괴물들은 당신이 그것을 생각에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당신은 얼마 남지 않았던 탄환을 모두 사용했고, 탄환이 떨어진 다음에는 도끼를 들었다. 도끼는 여러 모로 좋은 무기였지만 당신이 제대로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운 것이 문제였다. 당신은 온 몸으로 그것을 휘둘러야 했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괴물들은 당신을 기다려 주지 않았으니까. 아지트의 거의 모든 가구와 집기를 거의 전부 다 박살 내고, 모든 것이 망가지고, 당신 역시 무수한 부상을 입은 다음에야 괴물들을 모두 물리치고 환풍구를 봉쇄하는 데 성공했지만 당신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지나치게 늦게 깨달았다.


  괴물의 잇자국이 당신의 팔뚝과 종아리에 남아 있었다.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몇 군데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은 당신은 멍하니 물린 상처를 바라보았다. 부정하기에 그것들은 지나치게 선명하고, 뚜렷했다. 당신은 이 이후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었다. 곧 당신의 피부는 푸르게 식어가고, 조금씩 이성을 잃어 가고, 자아를 잃고 피아를 분간하지 못하게 되어 본능적인 생존 욕구만 가지고 있는 괴물이 될 것이다. 당신은 그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닥쳐 올 앞날이 무서웠다. 그것은 당신을 망가트리는 것 뿐만 아니라, 헥스 헤이와이어까지 망가트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허탈하게 웃으면서 동시에 울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아지트 안에서, 당신은 주저앉아 울다가 그대로 잠들었고 헥스 헤이와이어는 뒤늦게 돌아왔다.


  헥스는 당신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당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작게 안심했지만 곧 당신의 팔다리에 남은 상처를 보고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짐승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괴물의 잇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당신과 마찬가지로 헥스 헤이와이어 역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당신이 느꼈던 절망과 공포가 그대로 헥스 헤이와이어를 덮쳤다.


  이 아지트는 물론 여기에 있는 모든 것과 탐색을 나가는 것까지, 헥스 헤이와이어라는 존재 자체까지 전부 당신을 위한 것이었다. 당신이 안전하게 지금을 이겨내고 언젠가 돌아올 평화와 일상을 되찾기를 위한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것이 전부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당신은 물론 헥스 헤이와이어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당신은 어느 정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고, 헥스 헤이와이어는 당신을 위해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 누구보다도 괴로울 당신을 위해서. 괴물이 되어 가는 당신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감당해야 할 앞으로 닥쳐 올 현실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기적적으로 백신을 찾거나 해결 방안이 짠 하고 눈 앞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것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었고 그저 차가운 현실이었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었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당신을 깨워야 할지 혹은 이대로 놓아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신의 손을 잡고 싶은 것만큼은 간절했다. 그래서, 헥스는 천천히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쥐었다.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작고, 차갑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손에 힘을 조금만 더 주면 그대로 바스라져 먼지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처럼. 헥스는 그 손을 조금, 만지작거리듯 자신의 손 안에서 매만지고 엄지로 손등을 쓸었다. 그 손은 많이 거칠었고, 벗겨진 상처와 무언가에 긁힌 상처가 가득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익숙하지 않은 무기를 휘두르느라 그런 부상도 입은 것이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자신이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탐색을 나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명백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지금은 정말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나가기 직전 당신은 그에게 가지 말라고 부탁하지 않았었나. 그 말을 들었어야 했나.


  당신은 부스스 눈을 떴다. 눈이 뻑뻑하고 온 몸이 욱씬거렸다. 당신은 당신이 마지막으로 잠들었던 차가운 바닥이 아닌 다 망가진 소파 위에 누워 있음을 깨달았고 바로 옆에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헥스 헤이와이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당신은 그의 얼굴을 보고 안심하여 활짝 웃어 버렸다. 헥스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

  “…….”


  당신과 헥스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헥스 헤이와이어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고, 헥스 헤이와이어가 모든 것을 알았다는 사실을 당신은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그럼에도, 같이 있었다. 그것이 그 어떤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해도 작은 위안은 되는 것 같았다. 당신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고는 당신의 앞에서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한쪽 무릎은 세운 채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헥스와 눈을 마주했다. 헥스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혹은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당신은 이상하게 모든 것이 그저 담담하게 느껴졌다. 죽음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 걸까. 당신은 헥스를 향해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어깨를 쓸어주다가, 팔을 다독였다.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얼른 가, 헥스.”

  “…….”


  어쨌든 살아남은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 당신이 없으면 헥스 헤이와이어는 더욱 잘 생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동안 당신이 헥스 헤이와이어에게 짐이 되었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작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그렇게 여기자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분명히 다가와야 할 수밖에 없는 작별의 순간이 지금 닥쳐 온 것이라고. 당신은 헥스가 남은 물자와 무기를 모두 챙겨 새로운, 안전한 아지트를 만들기를 바랐다. 서둘러야 했다. 이미 괴물에게 물린 지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언제 괴물로 변할지 알 수 없었다. 몸이 차갑게 식어가고 시야가 흐린 것을 보니 아마, 머지 않은 것 같다. 당신은 주위를 둘러보며 헥스 헤이와이어의 배낭과 무기를 찾았지만 헥스는 당신의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헥스.”

  “……내가 왜 가야 해?”


  당신이 헥스의 이름을 부르며 재촉하자, 헥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당신을 품에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크고 따뜻했고, 무척 좋은 향기가 났다. 당신은 헥스 헤이와이어에게 안긴 채로 하염없이 울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작별은 아팠다. 하지만 헥스 헤이와이어를 보내 주어야만 했기에, 그의 삶이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만 했기에 당신은 그가 떠난 뒤에 울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헥스는 지금,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신을 안고 있었다. 당신은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헥스를 밀어냈다.


  “가야지. ……살아야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나는.”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고였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그런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가에 짧게 입을 맞춰 주었다. 있잖아. 헥스 헤이와이어가 당신을 다시 끌어안고 가만히 등을 다독이고 쓸어내렸다. 그 손길은 다정하고 따뜻했다. 곧 괴물로 변할 자신에 대한 공포나 거부감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네가 없으면 그 어디로도 갈 수 없어.”


  너도 알잖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헥스 헤이와이어를 밀어내야만 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고, 좀 더 살아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하지만 동시에 헥스가 자신을 떠나지 않아 주었으면 했다. 마지막 순간, 그의 손에 죽임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은 잠깐 고민했지만 그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얼마나 그에게 상처가 될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차라리 떠나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헥스는 지금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신을 안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은 허탈하게 웃으면서 울었다. 바보. 당신의 중얼거림에 헥스가 조금 웃는 것처럼 몸을 떨었다.


  “어디로도 가지 않아.”

  “…….”


  헥스 헤이와이어가 당신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포옹을 약간 풀어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헥스 헤이와이어의 눈은 오팔처럼, 무지개처럼 찬란한 빛이었고 당신은 그 눈을 무척 좋아했다. 이제 이렇게 눈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당신은 웃으면서 울었고, 헥스는 쓴웃음을 머금은 채 당신의 눈가에, 뺨에 계속 입을 맞추고 눈물을 훔쳐 주었다. 당신은 결코 헥스 헤이와이어를 보낼 수 없었고, 헥스 헤이와이어는 결코 당신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헥스 헤이와이어가 대신 괴물이 된다 하더라도, 당신 역시 그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이성적이고 계산적이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선택 대신 바보 같고 아무 이득도 없고 그저 손해만 보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당신은 헥스 헤이와이어를 마지막으로 밀어내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헥스.


  “사랑해. 날 사랑한다면 떠나…….”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헥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말할 기운도, 눈을 뜨고 있을 기운도 없었다. 시야가 지나치게 흐리고 탁했으며 호흡이 이상하게 얕았다. 작고 가쁜 숨을 뱉으며 당신은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 그보다 더 싫은 것은, 괴물이 된 당신이 당연히 눈 앞에 있는 헥스 헤이와이어를 물어 뜯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당신은 그것이 싫었지만, 너무나 싫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그런 당신을 전부 이해한다는 듯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독여 주었다. 괜찮아. 그가 속삭였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을 거야.”


  그럴까. 이 모든 것이 전부 끔찍한 악몽일까. 푹 자고 일어나면 기적 같이 아름다운 현실이 나를 다시 마주해 줄까. 그곳에서 우리는 행복할까.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위험도 없이 안전하고 그저 행복할까. 당신은 울면서 웃는다. 응. 그럴게. 잠깐만 잘게. 당신의 말에 헥스 헤이와이어는 안심한 듯 웃었고, 당신은 눈물 때문에 흐려진 시야로 헥스를 바라보며 흐느끼듯 속삭였다. 잘 자. 당신은 그렇게 의식을 잃는다. 마지막 순간, 당신은 헥스 헤이와이어의 목소리를 들었다. 잘 자. 사랑해. 우리는 작별 인사 대신 사랑을 속삭였고 마침내 모든 것의 끝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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