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eart

신성 모독

헥스 헤이와이어 X 시클링 (당신)

※ 헥스 헤이와이어에 대한 개인 해석과 날조가 있습니다.

  그건 신성 모독일까?

  그는 당신에게 질문한다. 그건 신성 모독일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게,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고 진리를 어긋나게 하는 끔찍한 짓일까? 그는 웃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자기야. 설령 그렇다 해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어. 그건 이성의 문제도 아니고,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는 못된 버릇이나 습관도 아니야. 본능적인 레벨에서 발생한 감정은 스스로 통제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어, 세상의 그 누가 그럴 수 있겠어.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고, 가장 기본적으로 생존 욕구, 그러니까 존재 욕구를 가지고 있어. 나는 그것보다 훨씬 더 저열하고, 낮고, 근본적인 영역에서 너를 욕망해. 그게 잘못된 거야? 아니면 내가 조금 더 진화한 인간이라는 증거일까? 그는 웃는다. 그게, 문제가 돼? 자기야.

  그 불경하고 오만불손한 혓바닥을 자르고 날개를 꺾어 아득한 유황 불 바닥에 처넣어도 그는 웃을 테다.

  나의 신성은 너야, 달리 무엇이겠어. 그는 당신을 숭배하고 숭상하고 우러러본다. 그는 당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의 발등에 입을 맞춘다. 그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무릎은 바닥에 댄 채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추면 그의 뺨으로 목덜미로 푸르고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그의 얼굴을 약간 가린다. 그림자 뒤로 감추어진 표정을 당신은 본 적이 없다. 그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하얀 발등 위에 입을 맞추고는 착한 아이 표정으로 얼굴을 갈무리한 뒤 고개를 든다. 당신은 그의 환한 미소 외에는 별로 본 적이 없지만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의 시커먼 속내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눈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적어도 당신에게 그는 그렇다. 그는 모든 것을 포장하는 듯 하면서도 조금씩 여지를 두고 단서를 흘려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을 찾아 오게 만든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 덫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기분으로, 눈을 가리고 손을 앞으로 내밀어 더듬거리며 함정으로 향하는 섬뜩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그것은 다소, 진실에 가깝다.

  그의 신앙은 단순하다. 그저 당신을 사랑하고 경애하며 아끼고 욕망하는 것. 그 모든 마음을 당신에게 쏟는 것. 모든 욕망이 결국 당신으로 귀결되는 것. 담백하리만치 곧은 욕망, 그것의 깊이가 어떻든 그것의 성격은 일견 단순하다. 그는, 결코 당신에게 함부로 손을 뻗지 않는다. 그는 그저 당신의 주위를 맴돌고, 맴돌고, 다시 맴돈다. 마치 달이 지구를,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는 것처럼 그는 당신에게서 얼핏 멀어지는 것 같다가도 결국 적정 거리 내로 돌아오고 그 이상 당신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어떻게 보자면 꽤 신사적인 미소를 지은 채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이 그 미소에 혹해서 그에게 다가갈 때, 당신과 그는 충돌한다. 우주적 폭발이다. 지상의 모든 생명이 죽어 버릴 테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묻는다. 이 마음이, 이 사랑이, 이 욕망이 저열하고 천박하고 모독적인 것이냐고 묻는다. 그는 대답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마치 대답을 갈구하듯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은 섣불리 고개를 끄덕일 수도, 저을 수도 없다. 그저 입술이 하얘질 정도로 꽉 깨물고 침묵하는 것이 당신의 최선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당신을 안타깝다는 듯 동정심 담아, 가엾다는 듯 측은함을 담아, 그런 여리고 작은 것들에게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 애정을 담아 바라본다. 그 시선은 쉽게 당신을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도 하고, 저 위로 끌어 올리기도 한다.

  그의 말이 옳다.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완벽히 통제하고 다스릴 수는 없다. 당신은 당신의 감정을, 마음을, 생각을 주체할 수 없다. 걷잡을 수 없이 부푸는 그것을 잡으려 손을 허우적거려도 손가락 사이로 연기처럼 빠져나간다. 그것들은 그런 식으로 붙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신은 계속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고, 쉼 없이 달려 온 사람처럼 가쁜 호흡을 뱉고, 마침내 주저앉는다. 그것은 새어나가고, 스며나가고, 흘러나간다. 그에게 향한다. 당신은 그것을 삼킬 수도 막을 수도 잡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웃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게, 신성 모독이 될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만 둘 수 없어, 자기야. 너도 알잖아, 너도 원하잖아. 내가 이 짓거리를 멈추지 않기를. 계속하기를 원하잖아. 내가 망가지고, 그래, 내 몸이 바스라지고 조각나서 마디와 마디 관절과 관절이 모두 끊어지고 피를 한 움큼 쏟으며 죽어간다 해도, 너는 내가 이 짓을 그만 두는 걸 원하지 않잖아. 그렇지, 자기야? 그의 말은 뾰족한 구석이 있다. 날을 세운 그것을 당신은 기민하게 느낀다. 하지만 그가 당신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그의 현실은 그렇다. 그는 당신을 지독히 사랑하고, 그것을 당신이 원하고 있다는 식으로 합리화한다. 당신은 그를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은 그가 아프지 않기를, 다치지 않기를, 슬프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감정에 행복은 동반될 수 없다.

  사랑은 터무니없는 감정이다. 사람을 천국에서 지옥으로 단숨에 끌어내리는가 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단숨에 끌어올리기도 한다. 그 짓이 하루 내내 몇십 번이고 반복되는가 하면 몇 년 동안 우울한 채로 잠겨 있기도 하고 사소한 몸짓과 눈빛, 시선과 목소리 고작 그까짓 것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솜사탕 구름 위로 둥실 떠오르는 듯 모든 근심 걱정을 떨쳐내고 행복해지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결코 완벽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은 다시 불행해지기 위한 도약대에 불과하며, 사랑은 그 위로 당신을 수도 없이 끌어 올렸다가 다시 밀쳐 버린다. 번지 점프와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허리를 묶은 안전 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당신을 죽였다가 다시 살려낸다. 하염없이 울게 하다가 웃게 만든다. 심장을 산 채로 뜯어내듯 괴롭게 하다가도 달콤한 입맞춤처럼 환상적인 몽롱함에 잠기게도 해 준다. 당신은 알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그 어떤 면죄부도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사랑해서 그랬어, 따위의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사랑해. 그게 전부야.

  그게 전부야?

  그 사랑이 얼마나 질척하고 끈적거리고 더럽고 악취 풍기는 것이든 상관 없이 그는 당신을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것이 쏟아지는 것처럼 당신에게 밀려온다. 당신은 파도처럼, 눈사태처럼 닥쳐 오는 그것에 질려 버려 뒷걸음질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란, 언제나 재난과 재해 앞에서 무력하고 초라하기에. 파도는 결국 당신을 휩쓸었고 눈사태는 당신을 파묻었다. 아래로 아래로 깊이 잠겨 가며, 혹은 묻혀 가며 당신은 생각했다. 이것이 사랑일까. 이런 것이 사랑일까. 당신은 분명히 어느 부분부터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의 꾸준한, 마치 암시처럼, 세뇌처럼, 집요하게 반복되는 그것이 당신의 머릿속에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이야. 의심하지도, 의문을 품지도 마. 그냥, 믿어. 네 마음이 향하는 대로 가. 그의 나긋한 목소리가 당신의 귀를 파고들어 신경을 타고 뇌에 닿은 게 틀림없다. 당신은 취한 것처럼 혹은 중독되는 것처럼…….

  신성 모독이든 악마 숭배든 상관하지 않아. 나는 너를 사랑해. 그게 전부야, 적어도 내 세계에서는 그래. 네가 전부야.

  그의 사랑은 분명 맹목적이다. 그 맹목에는 숭고한 면이 있다. 그저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바치는 그 모습을 빗대어 순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종교는 결국 사랑이다.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혹은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사랑. 마음. 심장. 피. 생명.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을, 심장을, 피를, 생명을 바친다는 것이다. 그 자신의 존재를 바친다는 것이다. 그 하나에 자신의 존재 욕구를, 생존 욕구를 의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어놓는다는 말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 나의 모든 세상을 바치는 것. 그는 그의 모든 세상을 당신에게 바친다. 검은 입구의 그 세상은 마치 쩍 벌어진 짐승의 아가리 같다. 당신은 잡아먹히는 심정으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새빨간 혓바닥이 날름거리듯, 그의 새하얀 손이 당신을 향해 내밀어진다. 이리 와.

  이것은 분명한 모독이다. 그럼에도, 혹은 그러니, 당신은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다.

  착하지. 그가 웃는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나는 전부 알고 있었다고. 너를 믿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미소에는 순수한 기쁨이 가득하다. 환희. 그것이 그의 얼굴을 밝히면 반대로 당신의 얼굴은 근심으로 어두워진다. 이게, 옳아? 이게 맞는 거야? 당신의 질문은 당신의 입 안에서만 뭉개지고 짓이겨져 마침내 삼켜진다. 당신은 묻지 못하고, 그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믿어. 너를. 그게 전부야. 그의 하얀 손바닥이 당신의 눈을 덮는다. 그 손은 따스하고, 그래서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당신은 눈을 가린 채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그 앞에 무엇이 있든, 당신을 잡고 있는 그 손은 결코 당신을 놓지 않을 테니까. 마침내, 당신은 웃는다. 그게 전부였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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