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남궁혁] 푸른 밤하늘 아래

[남궁혁] 푸른 밤하늘 아래

 

w. 미스터루껫미

 

*쌍둥이au

*사망 소재 있음

남궁혁은 말없이 서신을 불태웠다. 사연을 아는 가솔은 안절부절못한 채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시신은 어떻게 했나?”

 

“…주인 없는 땅에 묻었다 했습니다. 장례식은 치르지 않았고요.”

 

“…그래.”

 

“유품은 따로 챙겨뒀다고 했습니다. 늘 쓰시던 안경이랑 옷이랑 신발도 같이 태우려고 했지만, 가주님 명으로…….”

 

가솔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남궁혁은 긴 한숨을 쉬었다. 가솔은 뭐라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마음이 어떨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남궁혁이 입을 열었다.

 

“유품은 가주님이 가져가셨나?”

 

“아, 아직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붓과 종이를 가져다주게. 가주님께 서신을 쓸 테니.”

 

남궁혁의 말에 가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 도련님. 설마…….”

 

가솔은 말을 잇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여전히 가만히 있는 가솔을 보며 남궁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가져오게.”

 

가솔은 말없이 남궁혁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주먹을 쥔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솔은 고개를 숙였다. 어릴 때부터 보필한 막내 도련님이었다. 그저 평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옆에서 보필했다.

 

가솔이 가져다준 붓으로 남궁혁은 서신을 썼다. 가솔은 옆에서 서신을 다 쓸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지금은 오른손으로 글씨를 술술 쓰는 걸 보면서 가솔은 남궁혁의 아해 시절을 떠올렸다.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글쓰기를 위해 밤늦게까지 연습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혼자가 아닌 둘이 있었다. 남궁혁과 똑같이 생긴 고귀한 분. 남궁혁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자, 같은 이름을 공유했던 도련님.

 

남궁의 성도, 이름도 없이 아무도 없는 땅에 묻힌 고귀한 분. 남궁의 이익을 위해 뒤에서 활동하지만, 끝내 앞에서 드러날 수 없었던 분. 남궁의 낮과 밤을 나눈 쌍둥이의 비극이었다. 남궁 세가의 삼공자는 여전히 하나였고, 창천회 수장 또한 하나였다.

 

가주에게 서신을 전달한 지 얼마 안 되어 남궁혁은 비밀리에 서신과 검 한 자루를 받았다. 서신 내용을 확인한 남궁혁은 그 서신을 다시 불태우고 검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지붕 위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들 눈을 피했다.

 

그의 걸음은 객잔 앞에 멈췄다. 취객들이 객잔 앞에서 떠들고 있었다. 얼굴이 벌게진 채 시끄럽게 떠드는 그들을 지나쳤다. 객잔에 들어온 그를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전부 다 술에 취한 채 큰 소리로 떠들었다. 출처도 없는 소문들이 뒤섞이며 점소이들이 음식과 술을 갖다줬다. 그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남궁혁이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그가 찬 검을 보고 한 점소이가 다가왔다.

 

“이제 오셨습니까. 일행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점소이의 안내를 받고 남궁혁은 2층으로 올라갔다. 점소이가 문을 연 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도 예상한 일이었다. 점소이는 조심스레 문을 닫으며 안내하려 하자, 남궁혁이 손을 들었다. 점소이는 알겠다는 듯 예를 표했다.

 

“준비되면 불러주시지요.”

 

남궁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점소이가 물러난 후 남궁혁은 방 한 바퀴를 돌았다.

 

형님. 봐도 됩니다.

 

그래도 비밀 장소인데 내가 알면 좀 그렇지. 창천회는 네 조직이니까.

 

괜찮습니다. 가끔은 와서 절 깜짝 놀라게 해 주시지요.

 

자신을 보며 미소 지었던 아우를 따라 벽 위에 손을 올렸다. 약하게 내공을 불어넣자, 벽이 문처럼 앞으로 밀렸다. 그대로 들어가자, 창천회의 집무실이 나타났다. 집무실엔 어떤 장식품도 없었다. 벽 여기저기에 지도와 정보들이 붙어 있었다. 뭔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벽과 달리 책상만큼은 깔끔했다.

 

남궁혁은 책상을 바라봤다. 책상에서 골똘히 첩보를 살펴보던 동생은 이제 없었다. 동생과 똑같이 생긴 자신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책상에 가까이 다가간 남궁혁은 움찔했다. 책상 위에 핏자국이 있었고, 함이 열려 있었다. 함에는 남색 술잔 2개가 들어있었는데, 하나는 함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른 하나는 책상 위에 엎어져 있었다.

 

창천회의 무인에게 들은 바로는, 막내가 남궁으로부터 온 서신을 받았다 했다. 막내가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랬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막내가 봤다는 서신도, 죽기 전 마셨던 술도 사라졌지.

 

혁아. 네가 막내를 따라 창천회 수장이 되겠다는 걸 말리지 않으마. 남궁이 더 해를 입을 수도 없으니. 누가 그랬는지 확실하게 알아내거라. 배후를 어떻게 처리하던 내가 관여하지 않으마. 알아서 하거라.

 

남궁혁은 엎어진 술잔을 들었다. 가끔 집무실에서 가볍게 술 마셨을 때 썼던 잔이었다. 술잔에 남은 술에 은수저를 댔더니 검게 변했다고 들었다. 그 자리 그대로 여전히 엎어진 술잔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남궁혁은 말없이 엎어진 술잔을 똑바로 놨다. 똑같이 생긴 술잔 2개가 다른 방향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남궁혁은 차마 함에 잔 2개를 가지런히 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모든 게 다 똑같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성과 이름도, 고기를 좋아하는 식성도 닮았다. 어디에 있어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걸 이제 알아야만 했다. 남궁혁은 숨 한 번 들이마셨다. 들고 온 검을 잠시 책상 옆에 뒀다.

 

남궁혁은 책상 맨 밑 서랍을 열었다. 깊은 책상 서랍에는 상자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신발이었고, 하나는 옷과 선글라스, 장갑이었다.

 

남궁혁은 책상 위에 올려진 검은 치파오와 푸른 선글라스를 바라봤다. 책상 바로 밑에 구두 한 켤레도 있었다. 남궁혁은 말없이 의상들을 바라봤다. 어린 시절 함께 자랐지만, 청소년기에 헤어지고, 성인이 돼서 재회했다. 무림인, 협객의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동생은 호탕하게 웃었다.

 

형님. 제가 남궁처럼 보입니까.

 

그 말이 참 서글펐지만, 웃음과 행동은 본인과 닮은 게 많았다. 어색했던 기류는 금방 사라지고, 다시 각별한 사이가 됐다. 지나간 이야기들은 며칠 밤을 새도 모자랐지만, 즐거웠다. 남궁혁은 동생이 입었던 옷을 바라봤다. 이젠 이 옷을 입으면 창천회의 수장이 된다. 본인이 수장이 된다는 건 동생의 죽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남궁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본인의 허벅지도 내려치지 못한 채 한참동안 분을 삼켜야만 했다.

남궁혁은 검은 치파오로 갈아입었다. 평소에 입는 의상과 좀 달라 처음에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됐다. 옷을 입은 다음 파란 선글라스를 썼다. 자신과 똑같은 호박색 눈동자가 푸른 렌즈에 가려졌다. 머리를 풀자 긴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자신과 다르게 옆으로 길게 땋은 머리를 하고 거울을 보니 죽은 동생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검은 반장갑을 낀 채 들고 온 검을 허리춤에 찼다.

 

이젠 아실겁니다. 창천회의 수장이 되셨으니 막내 도련님이 걷던 길을 따라가며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알게 되시겠죠. 아무리 남궁 세가의 숨겨진 자제라 해도, 막내 도련님도 결국은 남궁의 사람인걸요. 그러니 도련님, 막내 도련님의 최후가 초라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분도 결국 남궁의 사람으로 살다가 간 겁니다. 창천회의 목적은 결국 남궁의 이익을 위해서 아닙니까.

이름 없는 땅에 묻혔다는 동생 소식에 심란했던 그에게 가솔이 건네준 검이었다. 동생의 검을 든 그에게 가솔이 이렇게 말했다.  신발을 갈아신은 뒤, 앞으로 향해 걸었다. 뒤에서 그의 신발바닥에는 파란색이 보였다. 아무리 뒷조직이라 해도, 언제나 푸른 하늘을 동경하며 걸어갔다. 그저 밤 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진다해도 두렵지 않았다. 천하제일검가 대 남궁세가의 핏줄이 어디가겠는가. 어느 곳에 속하던 그건 변하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따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까지만 해도 빈 방이 어느새 창천회 무인들도 가득찼다. 그들은 창천회 수장에게 예를 표했다.

“창천회의 수장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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