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녹스

𝐒𝐢𝐞𝐠𝐞 : 𝐓𝐡𝐞 𝐠𝐚𝐭𝐞 합작품

투쟁은 죽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공동 퀘스트 [최초이자 최후]가 시작됩니다.」

아티엘은 환영과 같은 상태창을 보며 곱씹었다. 기꺼이 싸움에 뛰어든 자신의 역사를. 그리고 제 곁에 있는 파트너의 얼굴을 본다. 언제나 같은 덤덤한 표정에 약간의 긴장이 서려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이 같은 얼굴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거대한 운명과 삶에 대한 시험이다.

 

 

2022년, 제 투쟁을 잃어버린 14세의 아티엘 아이모스는 그 반동으로 이능력을 얻었다. 재앙이 한순간에 삼켜버린 친오빠의 얼굴은, 마지막조차 자신이 승리했다는 양 미소 지었다. 장례식의 사진에서까지도. 최초의 게이트가 열리던 순간에도 살아남았던 아티엘 아이모스, 그 평생의 목표는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8년, 사회 못지않게 혼란해진 개인의 일상. 형제의 장례식을 끝낸 아티엘이 다음으로 향한 절차는 전학이었다. 미성년 각성자를 키운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아카데미는 B급이라 해도 신규 각성자를 환영했다. 미성년자 보호와 안전을 전제로 한 곳은 ‘어린 각성자가 죽지 않도록’ 실전 경험을 차근차근 쌓게 했다.

아카데미에서의 수학 과정은 생존 외의 모든 것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아티엘의 호승심은 이능력 각성 전과 후로 성질이 바뀌었다. 승리를 위해선 죽음을 뛰어넘어야만 한다. 생존자가 승자이며, 패배자는 시신이 남아야 겨우 영광을 얻는다.

우스웠다. 저 ‘게이트’라는 이차원의 존재는 인류 문명과 맞닿아 보이는데도 본질은 야생과 다를 바 없다. 복잡한 걸 싫어하는 아티엘에겐 잘된 일이었다. 다만 그 속에서도 지식(智識)을 날카롭게 세우며 인간 본질을 잃지 않는 인류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본 오빠의 미소 같이 가슴 속에 술렁임을 남겼다.

문명의 탈을 쓰고 있으나, 생존이 곧 승리인 날것의 세상. 아티엘은 그 아카데미에서 에단 녹스를 만났다. 저보다 두 살이나 많은 나이, 약한 신체 능력, 고통에 대한 두려움. 아티엘과 에단은 여러모로 상극이었다. 둘 다 대식가가 아니었으면 말을 섞을 기회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의 평화를 알았다면, 비슷하다고 느낄 정도로 순탄한 일상이었다. 아티엘은 툭하면 에단과 급식 많이 먹기로 겨뤘다. 승률이 좋진 않았으나 도전자는 포기를 모르고, 수락한 이는 거절을 몰랐다. 제 주변인에게 여러 내기를 걸던 아티엘은 에단과는 분야가 겹치지 않아 식사 외에는 크게 다툴 일이 없었다. 어느 날의 실습 시뮬레이션에서, 아티엘이 에단에게 다가가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영원히 평행선이었을 테다.

통증에 대한 반감으로 물러난 에단에게 아티엘은 물었다.

“언제까지 도망칠 거야?”

그 말이 진짜 계기였다.

도망치는 게 나쁘든, 묘책이든, 아티엘은 승과 패를 명백히 갈라야 하는 사람이었다. 상실이나 비탄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티엘의 성격이 그랬을 뿐이다. 오지랖이었을지도 모르나, 승패에 관해선 진지한 것 또한 성정이었다.

그래서, 에단 녹스는. 병과의 사투가 아닌 미지와의 사투로 변한 제 삶을 마주 보았다. 에단은 병마 앞에 무력하지 않았으며, 그의 능력은 타인까지 구할 수 있었다. 어떤 중상이든 살려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어도, 이제 당하기만 하는 입장이 아니다. 깨달음은 그를 한 걸음 앞으로 이끌었다.

공감이 아닌 순수한 의문이 그를 일깨웠다. 에단은 아티엘이 왜 그렇게 투쟁에 맞서는지 알고 싶었고, 아티엘은 타고나길 그랬다고 답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티엘의 투쟁은 자기 자신보다 10살이 많았다. 그가 죽기 전까지 항상 아티엘의 곁에 있었으니, 날 때부터 그랬을 수밖에.

의문을 가질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아티엘은 그림자만 노려보고 살았다. 그렇기에, 완전한 타인인 에단은 그 회로가 오작동하는 부분을 똑바로 짚어냈다.

2022년의 게이트, 아카데미에서의 임무는 ‘엘리오스 아이모스’라는 아티엘의 투쟁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찾아냈다. 그 부조리한 진실 속에서 아티엘은 헛발만 디뎠고 에단은 말했다.

“지금이 똑바로 바라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 실수는 습관이며 습관은 반복에서 비롯된다. 아티엘은 ‘머리 쓰는 것에 약하다’는 핑계로 성찰을 피해 갔다.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면서, 14세 사고의 후유증은 교묘하게 외면했다. 상실과 성장으로부터의 도피는 스쳐 지나가는 자들은 볼 수 없었다. 옆에서 가만히 멈춰서서 지켜보는 사람 눈에서야 적나라하게 보였다.

우습게도 아티엘이 에단에게 지적했던 행동이었다. 승패를 정하지 않고 도망치는 것.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핑계 하에 어차피 못한다고 도외시하는 것.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아티엘 삶의 밖에 있던 에단이, 그가 외면하던 현실을 명확히 짚어냈다. 제가 먼저 지적했던 사람에게 같은 곳을 찔리는 건 꽤 뼈아팠기에, 아티엘은 에단의 말대로 조금씩 마주보기로 했다. 어쩐지 이번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평생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던 제 오빠를, 그의 그림자를, 이번에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대는 입학에서 졸업까지, 서서히 두 사람의 궤도를 바꿨다.

지구에서 보는 별은 관찰 각이 1˚만 어긋나도 광년의 차이를 낸다. 다시 말해, 각도가 조금만 다르면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평행만 같던 두 길이 교점에서부터 함께 길을 걷는다.

단짝, 혹은 파트너. 그런 단어로 정의되는 관계.

 

 

신뢰는 삶에 한 번 더 전환점을 짚어낸다.

졸업, 성인이 된 아티엘은 친우를 따라 그의 길드에 들어갔다. 정작 제 아버지가 후원하는 길드는 뒤로해 부모에게 잔소리를 들었지만, 진지하게 말리는 이는 없었다. 회사를 이어받을 이도 이미 존재하고, 아티엘이라는 사람이 경영과 어울리지 않다는 건 가족이 제일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시절 반 이름에서 따온 길드, 흰올빼미는 2014년 이전 녹스 가문의 회사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헌터 사이의 물류를 관장했다. 길드장이 된 에단을 보며 아티엘은 답지 않은 감상에 젖었다. ‘푸른 어둠의 주인’은 헌터 사회의 얼굴이 되기보다 그들의 혈관을 담당했다. 그리고 고대적 사람들이 믿었던 연금술을 연상케 하는 이능력. 길드가 하는 일도, 그의 이능력도 참 그다웠다.

길드 소속 헌터로서 아티엘이 하는 일은 간단했다. 주로 하는 일은 고급 재료가 나올 법한 던전 공략이었다. 자신이 죽지 않는 선에서 폭풍처럼 던전 안을 쓸어버리는 ‘철혈의 호박’은 흰올빼미 길드에서 유명인이었다. (물론, 길드장과 함께 사내 급식소를 쓸어버리는 것으로도 유명인이었다.) 그 외에도 공략이 완료된 던전을 탐사하거나, 자원 발굴 중 위기에 처한 대원을 구하는 등, 실전에 뛰어드는 일이었다.

아티엘은 게이트 밖에 있을 때보다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던전에는 언제나 에단이 만들어준 포션과 함께였다. 현장직과 지원직은 이런 식으로 항상 동행했다. 두 사람이 새로 찾은 일상이었다.

죽음이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은 여전했지만, 돌아갈 곳과 사람이 있는 기분은 이상했다. 가족과는 달랐다. 그보다 건조하고 당연한데, 연락은 적었다.

어릴 적 아티엘이 보면 안이하다고 냉담할 정도로 안온했다. 지루한 반복은 싫었지만, 이런 삶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팀원에게 소소한 내기를 걸고, 승부를 확실히 정하고, 거점으로 돌아가 제 성과를 돌아보는 하루하루가.

 

 

붉은 광물 형태의 조각과 재를 닮은 가루가 빛을 내며 허공에서 융합한다. 곧 빨간 액체가 되어 튜브형 시험관에 담겼다. 상처를 봉합하는 역할을 할 약물이었다. 슬라임과 구정물이 변형된 검고 끈적거리는 액체는 독이다. 독 역시 약물처럼 평범한 용액인 양 튜브에 담겼다.

이능력으로 만든 시험관으로 무수히 많은 종류의 포션을 준비한 에단은, 새 포션을 만들며 제 파트너를 돌아보았다. 보호구와 신발을 체크한 아티엘은 스트레칭을 마치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불확실한 이름의 퀘스트와 임무 내용은 지구상 모든 헌터가 봤기에, 둘 모두 아무 말 없었다. 창이 뜬 순간부터 참여는 기정사실이었다.

인벤토리에 각자 필요한 아이템을 넣고 두 사람은 흰올빼미 길드 한국 지부 건물 출입구로 내려갔다. 아티엘은 1층에서 에단을 엎어 들고 쏜살같이 도약했다. 지반이 튼튼한 위치임에도 이곳저곳 갈라진 아스팔트가 시야에서 멀어졌다.

“허락 없이 뭐하는 짓입니까.”

마천루 옥상에 겨우 발을 디딘 에단이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쉬었다. 지긋이 에단을 보던 아티엘은 바닥을 가리켰다. 이 높이에서도 보일 정도의 싱크홀이 그 자리에 있었다. 민간인은 대피했기에 사상자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이겼지.”

“평소랑 똑같은 도약이라 이번에도 변명의 사유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눈앞이 도는 기분에 에단은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올려다본 하늘은 확연한 비일상이었다. 부유하는 건물의 잔해, 공허를 닮은 소용돌이, 아득한 곳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산소가 각박한 고도에서도 바람은 분다.

“너는 왜 이 퀘스트에 참여했어?”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었다. 묻지 않아도 원하는 식사 메뉴를 공유하거나, 서로가 필요한 임무에 배정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달라서. 그래서 뒤늦게 물었다.

에단은 어깨를 으쓱이며 안경을 눌러 썼다.

“큰 이유 없습니다. 언제나와 똑같죠.”

우습게도 예상했던 답이었다. 아티엘은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다 손으로 실 같은 기류를 붙잡았다. 이어질 말은 뻔했다.

“당신이 간다고 해서요.”

더 자세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나, 에단이 아티엘을 따라오는 이유는 언제나 이랬다. 당연함은 안도를 불렀다.

“뻔하지만 당신에게도 묻겠습니다.”

낮게 묶은 꽁지와 높게 묶은 장발이 휘날렸다. 향하는 곳이 같기에, 서로를 보지 않는다.

“왜 이 퀘스트에 참여했습니까?”

담담한 에단의 목소리에 아티엘은 목 근육을 풀 듯 고개를 까딱였다. 호승심으로 점철된 제 삶이 죽음으로 불리더라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내가 이겨야 하니까.”

서로 지독히 가벼운 사유였다. 그 경량만큼 두 사람은 미소 지었다. 항상 무덤덤한 두 사람이 짓기엔 너무 산뜻해서, 지구의 운명이 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장난기가 느껴졌다.

“그거면 됐습니다.”

“도망치지 않아?”

“뭐, 딱히 도망갈 곳도 없고요.”

잠시 숨을 들이킨 에단이 덧붙였다.

“다른 말로는 어른이라고도 하고요.”

그 말에, 아티엘은 10년 전 죽어버린 제 오빠를 겹쳐 봤다. 기이하게도 그때 오빠의 나이가 지금의 자신과 같다. 제 투쟁의 그림자를 이기려면 지금이라고, 에단이 방향을 짚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승리의 어깨에 걸린 것들은 너무 무거운데, 이 순간이 삶에서 가장 가뿐한 건 어째서일까. 이 침묵이 너도 그렇게 여긴다는 뜻인지, 아니면 나와 다른 긴장인지.

다만, 합의하지 않아도 만나면 서로 인사하듯, 너와 내가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 감상은. 지금 함께 보는 풍경이 아름답진 않았으나 우리답다고. 승패가 감히 이 궤적을 가를 수 없다고.

그 ‘최초이자 최후’는 일출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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