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웬
𝐒𝐢𝐞𝐠𝐞 : 𝐓𝐡𝐞 𝐠𝐚𝐭𝐞 합작품
☩
Oratio ad Sanctum Michaël
Leo XIII (1886)
Sancte Míchaël Archángele, defénde nos in prœlio,
Contra nequítiam et insídias diáboli esto præsídium.
Imperet illi Deus, súpplices deprecámur,
tuque, Prínceps milítiæ cæléstis,
sátanam aliósque spíritus malígnos,
qui ad perditiónem animárum pervagántur in mundo,
divína virtúte, in inférnum detrúde.
Amen.
.
.
― 이명을 건네받은 순간이 스쳐 간다. 회고록이다.
꼴깍거리는 소리가 귓가 가까이 진득하게 머무른다. 자세히 들어보면 물방울이 톡, 톡 소리 내며 돌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도 닮았다. 오웬은 이것이 자신의 숨이 넘어가는 소리임을 짐작한다. 그리고 짐작은 곧바로 확신으로 꽈리를 틀었다. 뱃속에 요동치는 잔잔한 불쾌감이 뱀의 머리를 한 채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하긴… 훤하니 뚫린 배는 적당히 고인 우물처럼 아늑할 것이다. 안 좋은 예감을 키우기에도 적합한.
돌연 제레미아가 떠오른다. 금방이라도 호흡이 멎을 것처럼 헐떡거려도 간신히. 최대한, 정성을 다해, 선명히. 그러나 그와 자신을 반으로 가른 거대한 돌덩어리가 시야를 방해한다. 그 기분이 몹시 싫어서 눈을 연신 감았다가 떴다. 마지막 모습. 눈동자에 깃들던 감정.
‘이명을 받았어.’ 오웬은 짐짓 수줍은 낯을 하며 제레미아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두 번째 이름을 적었다.
‘미카엘은 라파엘과 가브리엘의 몫까지 뺏었다던데……. 욕심쟁이.’ 그가 그러며 웃었던가? 분명 잊지 않았는데 기억이 갑자기 흐릿하다.
‘그러는 미아, 너는. 넌 분명 나를 대신해서….’ 대신해서, 네가 새로운 이름의 숙명을 다하는 동안 나는 네 곁을 지키고자 마음먹었는데.
실상 지켜야 하는 것은 세계였음에도 불구하고 갖은 희생정신이나 정의 따위와는 둘 다 멀었던 탓이다. 그게 성심껏 일하지 않았다는 것도, 타인을 범주 바깥으로 밀어냈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므로 지금도 봐. 온몸에 벌레라도 기어 다니는 양 몸서리를 치다가도, 점점, 서서히, 느지막이 물에 떠 오른 빈 풍선처럼 축축한 바닥에 늘어지는 몸뚱이.
오웬은 끝이 다가오는 것은 영혼이 깃털처럼 먼저 부유하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만다. 대천사의 날개라고 별로 다를 건 없구나. 희뿌연 초점이 마치 커다란 날개의 촘촘한 깃털 같다는 성의 없는 감상도 멀어지는 정신머리로나마 하고 만다.
그리고…….
그리고 삽시간이었다. 축 늘어뜨린 손가락이, 제레미아의 손바닥에 자신의 이명을 적어주던 그 순간처럼 움직인다. 최초이자 최후라 하였으니 그런 것에는 으레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가. 오웬의 의지는 제레미아였다. 여러 번의 기회를 손아귀에 쥐기엔 정말이지 마땅하고도 남는, 충분하고도 남는 이유.
올리지 않는 기도는 오웬 그레이스의 몇 안 되는 단점이었다. 죽음을 불살라 생을 거듭 얻어내기 위해서는 단점마저 천직처럼 겉껍질에 두르고 종사할 수 있었다. 삶을 향한 의지 아닌 상대를 향한 의지 하나로… 그는 그리하여 기도한다. 아멘. 피투성이 몸은 점차 살점이 아물었다. 응답은 엉터리 기도에도 기다렸단 듯이 내려진다. 이명의 무게.
제레미아….
아멘, 하고 올리는 기도의 끝은 제레미아의 이름을 부르듯 발음된다. 죽음을 거쳐 생으로 되돌아온 인간의 얼굴을 하고. 비로소 오웬은,
이것은 계승되는 최후. 최초는 언제나 존재한다. ―
☩
【 LOADING… 】
Prophetess
― 이명을 건네받은 순간이 스쳐 간다. 회고록이다.
한쪽밖에 없는 시야에 천장이 맺힌다. 무너질 듯 가까워지더니 잡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지는 천장을 보며, 제레미아는 이것이 오로지 자신의 환각임을 결론 냈다. 너무 많은 피를 쏟으면 정신머리가 훅 간다더니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진 않았는데… 내장이 파열된 건지 목구멍을 통해 울컥거리는 핏물이 여간 비린 게 아니었다. 목은 비틀리지 않아 다행인가? 아니, 비틀렸더라면 즉사였을 테니 아깝게 된 건가.
구역질 나는 핏덩어리를 고스란히 삼키며 제레미아는 눈동자를 굴렸다. 옆에 있었던 오웬을 생각한다. 마치 그곳에, 돌이 땅속 깊숙이 파고든 그 자리에 오웬과 함께 누워있는 듯한 착각. 그들도 이렇게 더럽고 축축한 돌바닥이 아닌 풀밭에 누워본 적이 있기는 했다. 그 시간만큼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였나. 어떠한 죽음도 두려움도 다툼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처럼…… 돌이켜보니 제법 허구와 같은 시간이었다고 제레미아는 떠올린다. 허구일 리가 없는데도.
‘이명을 받아왔어.’ 오웬의 다음 순서는 제레미아였다, 늘. 그들이 〈그레이스〉 법칙이란 대다수 그런 것이니까.
‘어울려, 미아. 신을 대신해서 입을 여는 사람… 그러니까 예언자는, 결국 누군가를 위해 말하는 사람이니까.’ 태초부터 제레미아는 오웬을 대신하여 삶을 살아왔으므로. 새로운 이름이라 한들 새로운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는 말을…… 자신의 손을 붙잡고 웃는 오웬에게 했었는지. 기억이 찐득한 피로 젖어 감춰진다.
예언자가 아니라 대언자겠네. 오웬의 목소리와 자신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동시에 들려온다. 눈가를 지나 귓바퀴를 천천히 흐르는 것이 진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오웬의 목소리는 오웬의 목소리다, 인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제레미아 그레이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가 침범한다. 돌연 기다란 두루마기가 하늘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왔다. 발화의 주인이 불멸의 존재라면 자신 또한 불멸이어야 이치에 맞지 않느냐고… 그런 생각을 한 탓인지도.
생각은 곧 의지였다. 살고 싶은 의미. 수많은 사람의 곁을 물결 마냥 흘러가도 오웬이라는 섬에 머무를 결심. 그 발아래에 손수 못을 박아넣었다. 아주 까마득한 어린 날에. 뜻 모를 구원을 바라는 이의 몸짓으로. 어린 시절을 복기하는 제레미아의 굼뜬 뇌가 비로소 작동한다. 육안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두루마기는 자신을 감싸 보호막처럼 행위한다. 그러자 시야에 오래도록 내려앉은 암막이 서서히 거두어진다. 그는… 그렇게 아물어가는 상처가 되었다.
죽음의 비린내를 뱉어내니 살아났음이 현실로 물씬 다가온다.
오웬….
우린 필멸을 꿈꾸었으면 꾸었지 불멸을 염원하진 않았건만, 앞날은 나조차 예측하지 못한 변수와도 같아서. 우리에게 변수가 아닌 것은 오직 ‘우리’여서. 생을 붙잡으며 죽음을 흉흉히 발라낸 자의 얼굴을 하고. 비로소 제레미아는,
이것은 계승되는 최후. 최초는 언제나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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