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 박미미
진만특별시 형이상학 사건 전담반(M.C.T.F)/*안미옥 시인의 시 <생일편지> 중에서
https://docs.google.com/document/d/1tEtY20WiFyzDrA_xkXP1fWt8Mi-Ne1VNM5bVglEo6qE/edit?usp=sharing
(배우 한수아)
박미미
朴美瑂
하리선녀 河螭仙女
1974. 04. 27.
156cm/47kg/O형
1974.04.27. - 진만시에서 태어남. (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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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1986 - 진만시 소재 초등학교 재학
1987~1989 - 진만시 소재 중학교(남녀공학) 재학
1990~1992 - 진만시 소재 여자고등학교 재학
1993 - 서울 성북구 소재 S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입학
1994 - 연초부터 신병을 앓기 시작, 여름방학에 내림굿을 받고 대학 자퇴 수속을 밟은 뒤 진만시로 복귀
1995 - 진만시에 하리선녀 신당 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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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 진만특별시 형이상학사건전담반(M.C.T.F) 진만무속인협회 소속으로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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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름은 무슨 뜻이야?
A. '瑂'가 '옥돌 미'래. 그러니까... 아~주 예쁜 옥돌이지! 철학관 작명소 가기 싫다면서 나 태어나기도 한참 전부터 엄마아빠가 많이 고민했는데, 갓 태어난 나를 보자마자... 미리 만들어둔 후보에도 없었던 '미미'가 떠올랐다나? (진위여부 판별은 어려움)
Q. 그럼 하리선녀 河螭仙女는 무슨 뜻인지?
A. 물 하에 교룡(이무기) 리. 음... 멋있는 용도 아니고, 무슨 어정쩡하게 이무기냐고? 그러게...(과거회상) 내림을 받을 때였어. 그때부터 아픈 건 싹 사라졌지. 그날 자는데, 내가 받은 선녀님이 나를 '하리'라고 부르시더라고? 처음엔 어리버리하게 못 알아들어서 그게 대체 누군가 찾았는데, 앞으로 나는 그렇게도 불릴 거라면서... 왜 그 이름인지도 설명해 주셨거든. "내 그릇으로 너를 고르기는 했지만, 너는 아직 많이 어리고 미욱하기가 꼭 냇물의 이무기와 같단다. 내 지켜볼 거이니, 너의 힘으로 솟아오르는 용이 되어보거라."고 하셨던 것 같아...!
Q. 좋아하는 게 뭐야?
A. 인형!(종류를 가리지 않고 예쁘거나 귀여우면 다 좋아함. 근데 본격적인 수집은 미미, 바비, 마론인형 같은 구체인형류.) 복실복실한 강아지, 고양이, 토끼...그런 동물들! 그리고 달콤한 거. 그거는 울 선녀님도 좋아하셔가지고. (주머니 뒤져서 유가 사탕 몇 개 꺼내어) 먹을래? 히히. 친구랑 신나게 떠들면서 오래오래 산책하기, 계절마다 다 다르게 피는 꽃들, 보드랍고 잘 짜인 예쁜 옷감으로 직접 만든 옷들. 아, 요새는 뜨개질도 조금씩 하고 있어. 겨울 오기 전에 귀엽고 포근한 털실도 조금씩 사놔야지! 당연히 우리 엄마 아빠도 있구. 또... 품에 가득 차도록 껴안고 안기기! 그래도 뭐니뭐니해두 제일 좋아하는 거는, 나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 나를 사랑해주면... 나는 곧이곧대로 사랑해버려. 아, 그리고 이거는 비밀인데에... 여자애들이 좋아. (남자에게 딱히 끌림을 느낀 적이 없다. 레즈비언인듯!)
Q. 싫어하는 것은?
A. ...못생긴 거. (단호함) 이게. 못생겼다는 말이 되게 넓은 의미인데. 눈에 보기에 못생긴 것도 당연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못생긴 게 훨씬 싫어! 주변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거, 손절(당하기), 이유 모를 아픔(신병인 줄도 몰랐으면 그렇게 아프다가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유도 모르고 나를 끝없이 잡아당기는 슬픔. ...아, 콩 싫어해. 콩 안 먹어. 그리고 바퀴 달린 것들이 무서워. 어릴 때 자전거에 치인 적이 있어서.
Q. 하리선녀의 주 업무(일과)는?
A. 거의 잠만 자(고 씻기만 하)는 쫍은 집에서 8시에 알람시계가 울려. 그러면 일어나서 뭐라도 먹구. 거긴 정말 살림이랄 게 없어. 사실 자는 것도 신당에서 해도 되는데. 음... 아주 그 집은 빼고 신당에 다 갖다놓을까 그냥? 그리고 아무거나 주워입고 걸어서(도보 5분) 신당 샷다 올려. 불 켜고, 손님 받는 공간이랑, 일 없으면 쉬고 노는 데가 벽 하나 사이로 나뉘어 있는데! 양쪽 다 인형 진열장이 있거든. 거기 둘러보면서 잘 있나, 어디 아픈 인형은 없는지 살펴. 달에 두 번 정도는 싹 꺼내서 먼지 같은 거 털고 다시 정리해. 그리고 손님 받는 곳의 내 자리에 앉아서 전날 왔다 간 손님들이랑. 무슨 용건이었는지 수첩(업무일지. 되도록이면 손님 가자마자 그 건에 대해서 얼른 써둔다. 안 그러면 오지게 밀리니까.) 보면서 싹 복기해 보고, 바닥도 너무 안 더럽나? 함 쓱 보고 더러우면 급하게 쓸구. 그러면 꽤 시간이 오래 흐르는데. 보통 10시에 문 열지. 얼마 전엔 외지 사람들한테도 받으려고 전화 상담도 열었어. 휴대전화로. 근데, 음~ 내 개인 번호로 하니까 너무 헷갈려서. 조만간 전화번호를 하나 더 만들어 분리할 생각이야. (그럼, 헬레나한테 새 번호로 다시 알려줘야지!) 손님이 막, 초인기 무당들만큼은 아니지만? 내 수집품 모으고 관리할 정도 이상은 충분히...! 그래서 꽤 정신 없이 일하다가, 한시~두시 정도에 건넌방으로 가서 또 간단한 거 해 먹어. 주로 사라다빵.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게 제일 간단하고 야채도...그거라면 어떻게든 먹으니까. 오후 손님들도 다 받고... 저녁 아홉 시 정도에, 불은 안 끄고 샷다만 내려. 그러면 조금 있으면 슬슬 순찰 싹 돌고 온 하얀이가 온다? 그럼 샷다 슬쩍 올려서 같이 먹고 떠들고 그러다가 정리하고 집에 갈 땐 열 시가 넘네? 그러면 씻고 자... 어, 나 되게 바쁘네?
Q. 그럼 그 옷들은 대체 언제 만드는 건데?
A. 정기 휴무일이 있지요~ 매달 둘째 넷째 주 수요일이랑, 빨간 날은 꼭 쉬어. 그때... 신당 건넌방에서 미싱 꺼내고(드륵드륵)... 어쩌다 오전에 일 안 할 때가 생기면, 꼭 시장 가서 원단 떼와. 이건 자랑인데, 내가 걷고 뛰고 말하고 쓰는 거 다음으로 이르게 배운 게 바느질... 이라서. 손이 빨라. 빨간 날이 좀 있으면, 달에 ... 그래도 한 벌은 만들걸? (^-^V)
Ⅰ. 맡겨진 공주님
나에게 생의 첫 기억이 뭐냐고 물으면, 아마도 그거겠지? 말도 옹알옹알 잘만 하고 걷기도 꽤 걷고. 슬슬 뛰려고도 했을 땐데. 집에 어쩐 일로 친척 어른들까지 모였다. 아마도 엄마 아빠가 일을 하러 나갈 때, 어떤 순서로 돌아가며 나를 맡아 돌볼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했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나는 친할머니, 외할머니, 이모 고모들 집을 돌아가면서 다녔다. 친할머니 댁에 가면 밭일하는 할머니를 따라 나가서 보려고 했지만, 햇빛에 탄다고 했나? 그래서 할머니는 티비만 틀어주고 나가 몇 시간을 밭일만 하시다 들어올 땐 토마토 옥수수 고구마 감자 같은 것을 가져와 먹여주셨지. 그리고 좀 더 많이 커서는, '가스나는 이런 거 못 하면 안 된다!'하며 내 앞에서 꾸준히 바느질과 자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엔 바늘을 조금씩 잡아보기도 했다. 엄마아빠는 그걸 알고 애한테 무슨 바느질을 벌써 시키냐며 위험하다고 할머니께 화를 엄청 내셨지만... 할머니는 살면서 바늘도 찔려보고 커야 되는 거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 덕에 나는 바느질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하는 어른이 되어서. 웬만한 옷은 스스로 기워 입거나 아니면 만들 수도 있게 되었지! 그리고 외할머니는 자장가를 참 잘 불러주셨다. 품에 안겨 낮고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장자장 우리 아기 듣다 보면 어느새 가물가물 잠이 왔어. 큰이모 댁에 갈땐 좀 싫었던 것 같다. 일단 밥을 제대로 안 먹으면 혼나니까 매번 갈 때마다 큰이모가 무서웠고... 큰이모는 선생님이라 내게 자꾸 이것 저것 가리키며 저건 뭘까? 이건? 묻기도 하셨다. 큰이모가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 나는 한글도 큰이모의 가르침으로 뗐다고 했다. 조금 더 커나갈수록 다른 친척집보다 거기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작은 고모네는 재미가 없었다. 갈 때마다 성당에 데려갔던 것 같아. 성당은 정말로 재미가 없었지... 설교를 들으면서 매번 졸았지만 고모는 크게 나무라진 않으셨다. 정말로 본인이 신실한 신자일 뿐인데, 성당에 가면 다른 데에 날 맡길 수 없으니 데리고 다니는 것일 뿐이구나. 라고 알게 된 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다. 하지만 그 여러 친척집들을 그렇게 고분고분하고 순하게만 다녔겠어? 언젠가는 거의 집이 뒤집어져라 울었다. 이모네였던 것 같은데. 그 날 만큼은 엄하기만 하셨던 것 같던 이모도 어쩔 줄을 모르며 나를 안아들고 대형마트에 데려갔다. 완구 코너에 날 내려놓고 '미미가 가지고 싶은 인형 하나만 골라봐~'라고 하셨다. 왜인지 꽤 신중했던 것 같은데. 지금에야 생각하면 투박하고 단순하게 생긴, 분홍색 토끼 인형이었다. 눈은 까만 구슬처럼 빛났고, 코는 문지르면 기분이 좋은 소재에 몸체는 털이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원단이라 적당히 부드러웠다. 거기다 스케치북과 24색 크레용까지 사주셔서 신나게 돌아왔었지. 미미 이제 그만 울고 이모랑 놀자? 넹! 이모네에 돌아오자마자 크레용으로 스케치북에 처음 그린 것은 방금 같이 사온 토끼인형이었다. 그래. 그건(인형을 집착적으로 모으는 성향) 모두 이 때부터 비롯된 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은데...
Ⅱ.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공산품
지금이야 매사 허허실실 웃으며 여기저기 두루 잘 지내고 다니기 위해 부던히 노력을 하여, 그게 꽤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릴 땐... 친구가 별로 없었다. 울보였으니까. 툭하면 울었다. 같이 하는 인형놀이 안 시켜준다고, 줄 서있는데 내 앞으로 새치기했다고, 나방이 무서워서... 별의 별 이유로 눈물샘이 터졌다. 울고 싶어서 그렇게 운 거였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땐 울 수밖에 없었나 보다. 그래서 다들 나랑 안 놀아줬다. 놀이터에도 잘 안 나가고 매일 방에서 인형이랑만 놀았다.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어린이날이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 무얼 갖고 싶으냐고 물으면 인형 뿐이었다. 그래서 내 주위는 온통 인형들 천지였고. 나는 그런 인형 왕국을 거느리며 매일 그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대화했다. 어른들은 항상 걱정하셨지. 애 저러다가 정말 대인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게 인형 밖에 없어 보이니, 무작정 더 이상의 인형놀이는 안 된다며 뺏거나 갑자기 안 사주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겠고. 근데 애가 그런 걸 알았겠나. 그저 다음엔 무슨 인형을 가지게 될지 기대하며 혼자서 계속 놀았다. 그렇게 계속 놀다 보니, 나름의 취향도 생겼다.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인형을 좋아하긴 했는데, 그래도 좀 '사람처럼' 두 발로 선 형태를 더 좋아했다. 머리가 더 크고 나서는 아예 바비인형이나 마론인형 같은. 사람에 더 가까운 형태의 인형을 더 많이 가지고 놀았지. 그때의 나는 분명히 외로웠다. 크면서는 점점 더 외로워졌다. 그래서. 그래서 사람 인형이 좋았다. 그래봤자 공산품 주제에. 하지만 사람과 닮기 위해서 있는 대로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이 좋았다. 내가 계속 들여다보고, 쓰다듬어주고, 얘기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로 얘가 사람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나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상상도 오래 했다. 네가 인형에서 사람이 되면, 그래서 나에게 오면. 나는 너한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 반가워. 와줘서 고마워. 같이 놀자. 오래오래.
Ⅲ. 내가 그대만을 사랑한다는 말을 속으로만 너무 아낀 건 아닐까요?*
*少心 - 이수영(1999)의 가사에서 가져옴.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혼자서 울든가. 놀든가. 학교에 인형은 가지고 갈 수 없으니까. 내가 가진 인형들을 교과서나 공책 귀퉁이에 계속 그리다가 혼나기도 하고. 그렇게 뚱하니 혼자서만 놀고 있는 여자애는 남자애들이 괴롭히기에 딱 좋은 장난감이었다. (그래서 남자. 이성에게 그 때부터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주에 세 번은 울면서 집에 돌아갔다. 그러면 방에서 혼자 아주 어릴 때의 그것. 나의 첫 인형을 오래도록 안고 있었다. 안에 든 솜은 다 꺼지고, 코는 벗겨지고, 눈에는 기스가 가득했지만 여전히 제일 소중한 내 친구. 그러다가 중학교에나 가서야 '단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유미주. 1학년 1학기가 시작될 때 처음 말해본 친구였다. 미주가 먼저 말 걸어줬다. 미미는 이름도 예쁜데 생긴 것까지 정~말 예쁘다면서. 쉬는 시간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주는 그때부터도 나보다 키가 세 마디 이상은 커서, 나보고 자꾸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했었지. 미주는 학교를 안 가는 날엔 꾸준히 나랑 놀았다. 놀았다고 해봐야 미주가 자기 다니는 교회에 같이 데리고 간 게 대부분이었지만. 어릴 때 고모가 늘상 데려가던 성당과 오버랩이 되는 듯했지만... 재미없는 기다란 의자, 언제 끝나는지 모르겠는 설교, 성가대에서 노래 잘 부르는 예쁜 언니들, 무엇보다도... 내 옆엔 미주가 앉아있었으니까. 모태신앙이라던 미주는 정말 신실했다. 세례명은 뭐랬더라. 세실리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세실리아 미주는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며 기도할 때엔 늘 진지했다. 내가 너무 몸이 배배 꼬이게 심심한 것 같을 때만 빼고. 미주가 그렇게 빌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 애의 기도하는 손과 옆모습을 보면서 내심 많이 궁금도 했던 것 같다. 부활절에도 성탄절에도 미주와 교회에 가서 달걀도 선물도 함께 받았다. 나는 딱히 엄청나게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미주가 그렇게나 믿는 하나님이 뭘까? 싶기도 했다. 걔는 언제나 죽으면 천국 가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굳이 죽지 않아도 미주랑 있으면 그런 건 별로 안 필요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학기 초에 적으라는 서류에다 제일 친한 친구 이름을 쓰라는 칸엔 유미주 뿐이었다. 그래서 자연히... 미주가 여고에 간다고 해서, 나도 같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1지망으로 썼고. 진학할 고등학교를 추첨할 땐, 생전 해보지도 않던 기도를. 교회에서 미주가 매번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보면서 열심히 빌었다. 그리고 정말 같은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땐, 눈물나게... 좋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선 중학교 다닐 때처럼 그렇게 미주와 아주 가깝게 자주 볼 수는 없었다.
1학년부터 다른 반이 되어서, 쉬는 시간마다 두 반 정도 떨어진 서로의 교실에 드나들며 떠들다가 갔다. 그래도 미주는 나를 그동안 봐온 것이 있는지, 너무 자기한테만 그렇게 하지 말고 너네 반에서도 좀 놀기도 하라고 했으니까. 노력했다. 노력하다 보니 정말로 같은 반 친구가 하나둘씩 생겼고, 그 친구들과 미주를 함께 끼워서 놀기도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사람이 여럿이면 이상한 기류도 흐르고, 싸움도 생기고, 뒷말도 날아다니고... 그러다가 학교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박미미랑 유미주가 사귄다'고.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다. 나야 여자애들이랑 놀다가 껴안고 머리 쓰다듬어지고, 몇몇 친구들은 미미는 참 하얗고 말랑말랑하다~며 팔뚝이나 허리 같은 곳을 자주 찌르거나 주무르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내심 싫진 않았기 때문에 가만히 받고만 있었더니... 그렇게 된 걸까? 게다가 내가 유미주랑 유독 더 깊고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 소문을 우리 둘 다 알게 된 날. 미주는 엉엉 울었다. 교회까지 이 거짓 소문이 들어가면 자기는 교회 사람들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할 것이라고. 그러면 나는 이 동네에서 낯짝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이상하겠지만, 나는 그 때에야 내가 정말 미주에게 그저 친구처럼 좋다고 생각하는 것 너머의 감정이 있었다는 걸 알았고. 그대로 몇 날을 내리 앓았다. 미안해. 내가 나라서 미안해. 집에 가서도 미주네 집에 전화하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의 반에 찾아가지 않게 되었다. (미주는 어떻게 지냈을지 잘은 모르지만) 나는 또 다시 학교에서 혼자 다니며 수업을 듣는 시간 외에는 누군가와 놀지도 않고 늘 공책에 그림만 끄적였다. 집에 돌아오면 공부나 숙제 이외에... 다른 공책을 하나 빼두고 미주에게 직접 주지도 않을 편지만 썼다. 불 끄고 얼른 자라고 할 때까지 오래 내용을 생각하면서 썼다. 시간이 유야무야 흐르며 2학년에 올라가자 미주와 나는 계열이 아예 나뉘어 교실도 벽을 끼고 코너를 돌아야 할만큼 멀어졌다. 미주는 이과. 나는 문과계열에서도 끄트머리에 열외자처럼 빠진 모양의 예체능. 어렵게 예체능을 하겠다고 허락을 받았다. 그러니까 집안 어른들께 보여줘야 했다. 미주를 그동안 만큼은 잊은 것처럼 굴었다. 3학년이 되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대입 원서를 쓰고, 시험을 치르고, 결과가 나오고... 아주 나중에야 미주에게 집으로 전화가 왔다. "미미 니 대학 서울로 간다매. 좋겠다. 서울 물 많이 먹고 와라. 나는 안 간디. 아니. 가지 말으란다." 말 끝에 잔뜩 물기가 서려있는 것이 느껴져 나는 당장 아무렇게나 주워 입고 미주네로 뛰어갔다. 늦은 밤, 미주네 근처 공원 놀이터에서 천천히 발을 구르며 그네를 오래오래 탔다. 그간 못 한 이야기들도 했다. 사실 '그 일'에 대해선 서로 함구를 하듯 정확히 꺼내진 않고 그냥 너도 나도 미안하다고만 했다. 졸업식 날 마지막으로 미주가 안아줬다. 울지 않으려 애썼다. 서울에 올라가서 편지 한다고 했지만, 바빠서 많이 하지 못했다. 미주도 바빴겠지. 하며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잊었고, 진만에 다시 돌아왔다.
Ⅳ. 즐거웠던 성북구 생활... 그런데 언젠가부터 금이 가더니 깨져버린 그릇
그림을 혼자서 많이 그리기도 했고, 원체 예쁜 것을 좋아한다. 그건 엄마가 정말 그런 예쁜 것들을 잘 보고 고르는 안목이 대단하여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나도 그런 예쁜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그래서 미대를. 디자인학과를 가면 어떨까? 하며 슬쩍 집에 말했더니... 엄마랑 아빠는 그래 하고 싶은 거 해라! 하셨지만, 양측 할머니들은 아주 노발대발을 하셔서. 나는 할머니들과 거의 싸웠다. 하지만 자식은 못 이기지. 겨우 원서를 써서... 딱 한 군데만 붙었다. 성북구 SS여대 시각디자인학과. 당장 처음부터 자취를 하기엔 무서워서. 학교 근처의 여성 전용 하숙집에 방을 구했다. (근데 하숙집 주인 이모도 신실한 크리스천에다가... 자길 '헬레나' 이모라고 부르라 했다.) 아주 넓고 좋은 방은 아니었지만, 나름 옆방 구성원들과도 오며가며 말하고 같이 먹고 지내면서 즐거웠다. 언제는 별안간 옆 방 언니가 내 방문을 확 박차고 들어오더니, "미미야. 너, 그 와꾸... 썩히면 안 된다? 연예계의 손실이다?"하며 어딘가로 끌고 갔는데. 모 드라마의 단역을 뽑는다는 오디션의 카메라 테스트장이었다. 제일 이쁜 옷 있냐? 그거 입고 화장도 열심히 해! 영문도 모르고 잔뜩 꾸민 채... 카메라 앞에 섰지만. 나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때 알게 되었지. 나는 카메라. 영상에 찍힌다고 의식하면 얼어버리는구나. 그게 무서운 거구나. 하고. 과제도 많았지만, 전공 수업은 정말 재밌었다. 그래도 나름 용돈벌이는 조금씩 하고 싶어서, 1학년 2학기부턴 여기저기 알아본 뒤 끈질기게 찔러댄 끝에 얻어낸 도서관 근로장학도 했다. 마침 자리가 나서 들어간 것이라. 책이랑은 엄청 가깝진 않았지만. 그 김에 조금씩은 읽게 되었다. 주로 아트북이나 도록, 아니면 소설책과 시집. 그 덕에 지금까지도 아예 책이랑 담을 쌓지는 않고 살 수 있었다. 2학년이 되면 뭘 더 해볼지 즐거운 상상을 하던 것도 잠시. 다음해 초장부터 이유없이 자주 아프기 시작했다. 몸살처럼 으슬으슬 떨리고 식은땀이 난다거나. 몸에 힘이 갑자기 안 들어간다거나. 아니면 나도 모르게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든지. 2학년 1학기까지도 어떻게 누르고 참으며 버티고 다녔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혼절한 적도 두어 번 정도는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짐짝처럼 실려나가 응급실에서 눈을 뜨면, 하숙집 옆방 언니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날 잡고 큰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도 많이 해봤지만. 다 모른다고 했다. 진만에서 엄마가 올라왔다. 너, 휴학하고 내려와 쉴래? 모르겠어... 그렇게 엄마랑 몇 주를 지낼 때도 자주 쓰러질 것처럼 아프다가. 언젠가는 옆방 언니가 나를 보고 경악을 하면서... "미미야! 니 눈알이 뒤집힌다! 그게 뭐야! 아니, 이거... 설마." 언니는 그 길로 당장에 크고 유명하다는 점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거기서 그 어른 무당은 나보고 단박에... 신병이라고 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안 믿어졌다. 무슨. 갑자기 벼락 맞는 것도 아니고. 옆방 언니는 자기 일인 양 어떡해. 미미 어떡해. 하고 울었다. 그 뒤, 그 무당에게 내림굿을 받을 일정을 잡고, 서울에서의 신변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림굿을 해준 뒤, 그 분은 내게 서울 사람 아니잖아. 앞으로 어디 있을 것이야? 여쭤보셔서. 고향이 진만시라 다시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아~ 진만? 거기 내가 아는 좋은 분 계신다. 네 신어머니로 받아주시라고 연락해 봄세." 하며 명함 하나를 주셨다. 다음부터는 그냥 순리대로였다. 학교 학사지원실에 가서 자퇴원서를 내고 수속을 밟았다. 학과장 교수님은 이유를 끈질기게 물어보셨다. 어쩔 수 없이 말했더니, 탄식만 짧게 내뱉으시곤 알겠다고만 하셨다. 그래. 그렇구나. 이렇게 되는구나. 자퇴원서를 내고 나와 돌아서서 가는 길에 좀 울었다. 그러고 얼마 뒤엔 하숙집의 내 짐들도 다 빼고 나갔다. 그때 좀 울고 있었던 옆 방 언니에겐 그간 신세를 좀 졌으니, 내 진만 집 전화번호를 남겨줬다.
Ⅴ. 진만으로 돌아오다
선녀님을 내 안에 받아 모시고, 하리선녀라는 이름도 받아서 그렇게 진만으로 다시 내려오던 날.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 어떻게, 어떻게 키운 귀한 외동딸이. 그렇게 될 수가 있느냐며 엄마도 아빠도 울었다. 친할머니는 내가 전혀 못 들어본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아빠의 친척 형쯤 되는 분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다고. 그래서 사망신고 후 주민등록 말소가 되었다고. 그런데 그것이... 언젠가부터 갑자기 원인 모를 아픔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가 거의 미쳐버려서 집을 뛰쳐나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 아팠었는지를 말하니, 친할머니는 드디어 그 일의 진상을 알 것 같다고 너무 미안하다며 그 분 이름을 외며 눈물을 훔치시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다. 그리고 반 년간 신어머니께 엄청난...(채 다 쓰기도 힘들다.) 교육을 받고, 집과는 차를 타고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작은 건물에 세를 내고 신당을 차렸다. 처음에야 많이 헤맸지만.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나름 내 즐거운 일도 함께 하기로 하며 계속해나가고 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의상 디자인을 해보겠다며 한복 기성품을 마음 가는 대로 리폼도 해서 입고. 이것저것 예쁜 것들도 버는 돈으로 조금씩 모으고. 그렇게 마론인형 진열장도 신당 한켠에 생겼다. 손님이 없으면 바느질과 재봉질에 열중. 그렇게 키치하고 패셔너블한 자기만의 개량한복 스타일을 세워나감과 동시에... 젊은 여성 고객층의 방문이 늘기 시작했다. 꼭 옆집 언니한테 고민 얘기하면 싹 해결되는 듯한 평이라나. 옳다구나! 아예 그런 식으로 밀고 가기 시작했더니, 내 신당은 거의 내 또래 여자애들의 아지트나 다름없게 되었다. 나로서는 그것이 퍽 즐거운 일이었고. 예전보다도 친구처럼 신나게 웃고 떠드는 사람이 곁에 많이 늘어난 것 같아서 기뻤다. 그러다가 여자 혼자 지낸다는 신당에 꼬이는... 이상한 사람도 생겼지만, 파출소에 의뢰해서 주변 야간 순찰을 부탁했다. 그렇게 매번 근처를 순찰 돌아주게 된... 표하얀 순경. 나보다 약간 어리고. 귀여운데. 언제나 열정 넘치고 다정한 친구. 그게 나는 너무 고마워서. 순찰이 끝날 즈음이 되면 내 아지트. 신당으로 불러 이것저것 해먹이고 마시고 얘기하고 논다. 처음엔 그저 부던한 노력이었다. 너무 슬펐으니까. 밝아지고 싶어서. 계속 애썼다. 그랬더니 정말로 밝아지더라. 지금은 웃기도 잘만 웃고. 모두에게 인사하며 다니는 햇살표 박미미다!
선녀님, 저. 이젠... 옛날보다도 훨씬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려요!
✿캐릭터 모티프와 테마곡 등✿
닥터 슬럼프 - 아라레 : "혹시 내가 실수하더라도 귀여우니 한 번 봐줘잉~!"
보건교사 안은영 - 안은영 : 남의 눈에 안 보이는 것(령)을 보고, 퇴마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두렵고 귀찮고 힘들어서 씨발. 씨발. 거리기 일쑤지만, 대의를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카드캡터 사쿠라 - 사쿠라 : 특유의 디폴트 말버릇. "호에에~?" 미숙하지만, 두려움에 떨지만. 이길 거야!
tripleS의 노래 Girls' capitalism : "예쁜 건 다 나의 소유" "거울 속의 나를 더 사랑해줄 거야" "나는 아름다워 Love me better!" "자신 있는 미적태도"
고선경 시집 - 샤워젤과 소다수 : "증상인지 사랑인지 구분되지 않는 나의 멀미" "마른 손 위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녹는/이상한 열매가 사랑이라면"
Lucky Girl Syndrome - ILLIT : "세상은 chocolate 삼키자 so sweet 긍정의 치트키 Lucky girl syndrome oh"
Pretty Girl - KARA :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Young, Dumb, Stupid - NMIXX : "넘어지면 또 일어나 무서울 게 없어 우린 가장 큰 꿈을 꾸는 Young & Dumb"
색안경 - STAYC : "머릴 넘기며 어디든 지나가네 내 달콤한 향수가 흩날리게 Yeah 항상 날 꾸미는 게 좋아 예쁜 게 좋아 근데 들어봐 Yeah 나도 알아 내 모습이 이뻐 보일지도 당돌한 걸지도"
좋아해(Bye) - CHEEZE : "널 좋아한단 말이 나와 널 사랑하고 있진 않을까 눈을 마주치고 하고 싶었던 말 네게 언제쯤 전할 수 있을까"
HAPPY - 우주소녀 : "같이 가 매일 데리고 다녀 주머니 넣어 갖고 또 웃으면서 머리만 쓰담쓰담해 으구으구 으구으구 힝"
그대에게 - Lovelyz : "그대 오늘 하루 힘들었나요 내 눈에 작은 슬픔 보여요 하루 지나고 또 내일이 오면 행복한 미소만 줄게요"
Lady's Room - 레드벨벳 : "Meet me in the Lady's Room 터트리자 샴페인 비가 내리게 We like to party 오늘 이 밤이 우리 함께라 더 재밌어 How we do 같이 가는 거야 할 얘기가 너무 많아
귀를 기울이면 - 여자친구 : "내 맘 모아서 가득히 너를 느낄 수 있어 두 눈을 감으면 나를 향한 믿음에 귀를 기울이면 반짝반짝 빛나던 너의 눈동자처럼 소중한 이야기 들려줄게"
커다란(XXLove) - 민수 : "정말로 닿았으면 하는 말은 언젠가 도착할 거야 우리의 눈 반짝임 속에 넘어가는 순간이 아니니까 마음 속에 들어오면 쉽게 나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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