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대공저

실드 밑이 어둡다

하윤님이 신청하신 골드커미션

챙강, 하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노아는 양손에 든 검을 교차하여 저를 향해 쇄도하는 대검을 막아냈다.

'여긴 안 되는데...'

스스로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눈치챈 노아는 상대의 주의를 돌려 장소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녀보다 상대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나와 검을 맞대고 있는데, 한눈을 팔 여유가 있나?"

이윽고 주변에서 붉은 빛과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자, 노아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 안돼. 장판은 안되는데-!!"

안타깝게도, 파이어 매직 실드는 하늘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막아주지만 땅에서 솟아나는 불길을 막아주는 기능이 없었다. 대공저의 안주인이 대검을 바닥에 내려꽂는 것과 동시에, 땅에서는 원형의 불꽃이 여러개 피어났고-

저택의 주인이 아끼는 온실이 반파되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고 만 것이었다.

아튼시미니, 맙소사.

***

에일레흐 왕국 북부에 위치한 대공령 대공저택의 집사, 노아 라인하르트는 위계질서도 무시하고 저택의 안주인을 향해 빼액 소리를 질렀다.

"비전하는 생각을 좀 하고 사세요!"

"힘이 약하면 머리가 고생하는 법이다. 압도적인 강함이 있으면 머리는 안 써도 괜찮지."

물론 저택의 안주인, 대공비 베임네크는 노아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반파된 온실을 바라보며 잘 되었다는 듯이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

"마법 주력인 제가 왜 비전하 상대할 때 쌍검들고 싸우는데! 이런 일 생길까봐 그렇지! 저도 파이어볼이랑 메테오 데미지 잘 나오거든요?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 대공전하 이거 보시면 기절하실텐데!"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다음에는 꼭 마법을 쓰도록 해."

그런 그들 사이로 대공저의 막내 집사, 겐이치가 천천히 걸어나와 끼어들었다.

"저, 선배 비전화와의 대화 중에 죄송하지만...."

"막내야?"

"전하 이미 기절하셨습니다."

겐이치의 말에 베임네크와 노아의 시선이 겐이치의 뒤쪽으로 향했다. 저택의 주인, 사쿠야 스칼렛이 아끼는 온실의 참혹한 상태를 목격하고는 벽에 기대어 눈을 뒤집고 기절해있었다. 물론 안경캐의 본분을 지켜 쓰러지듯 기절했다고 하여 안경이 벗겨지는 일은 없었다.

어쨌거나, 그 직후 전하! 그대! 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진 것도 딱히 비밀은 아니다.

***

침대에 누워 머리에 물수건을 얹은 채 끙끙 앓고 있는 반려를 베인은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미안해, 그대."

솥뚜껑같은 커다란 두 손으로 사쿠야의 한 손을 꼬옥 잡고 사과하는 눈빛에, 평소의 사쿠야라면 괜찮다며 넘어갔겠지만. 적어도 오늘의 사쿠야는 아니었다. 반대편 손으로 이마 위에 있는 물수건을 잡아 방바닥으로 패액 집어던진 그는 눈을 날카롭게 뜨며 물었다

"본심은."

"나는 그대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아."

"그러니까 말하라고."

"나보다 신경쓰던 것들이 없어져서 잘 됐군."

"이 미친놈아!"

기운이 없어 누워있던 사쿠야가 상체를 벌떡 일으킬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인은 꿋꿋했다.

"같이 사는 다른놈들을 넷이나 참아주고 있는데, 내가 그 풀떼기한테까지 그대를 빼앗겨야하나? 그대를 만나고 내가 생존본능이 좀 강해져서 말이야,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좀 아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건 그대 뿐이야."

"발로르 베임네크!!!!!!"

너를 사랑하지만 너 진짜 말 안 통하고 헛소리한다....사쿠야는 머리를 짚으며 다시 침대 위로 무너져내렸다.

***

대공의 방에서 부부가 사랑싸움을 하고 있을 무렵, 사용인들은 온실 리모델링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도 반이나 남았네."

"유미오빠 진짜 긍정적이다."

"전소한 것보다는 낫잖아 온실은...정리하고 다시 지어야겠지만."

유미너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노아가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일레랑 나는 성던전 좀 다녀올게."

"선배, 제가 갈게요. 식물 옮겨 심는 건 일레이시아 선배가 더 나으실텐데..."

겐이치의 말에 노아와 일레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안돼, 거기 있는 것들이 남자 싫어해."

"그렇지. 그런데 나 거기까지 가기 싫은데. 그냥 근처 던전 입구에 있는 돌 캐도 되지 않아?"

"이번엔 좀 튼튼하게 지으면 좋겠다 싶어서."

"성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는 뭐가 좀 다른 가요?"

"거기에서 나오는 석재에는 마법적 효과가 부여되어있거든."

"노아, 그렇게 그러면 못 알아들으니까 더 자세히 설명해줘."

"보호3 방어3이 부여된 석재다."

"아하."

선배의 설명에 겐이치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노아와 일레이시아가 온실을 새로 지을 재료를 구해 오는 동안, 유미너리와 겐이치는 살아남은 식물들은 옮겨심고, 베임네크의 장판에 희생된 식물들을 대신 한 새로운 식물들을 구해왔다. 거기에는 대공령에 사는 약초상 헬더씨의 전폭적인 협력이 있었는데, 덕분에 울라에서는 보기 힘든, 이리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물의 씨앗이나 구근도 구할 수 있었다. 씨앗 포대를 양손 가득 든 유미너리가 자기가 먼저 갈테니 겐이치보고 천천히 이야기하다 오라고 말한 것도, 겐이치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게 물든 것도, 헬더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 것도 특별히 비밀은 아니다.

그렇게 계획대로 착착 움직인 대공저의 사용인들은 각기 나름의 그랜드 마스터들이라 문제 없이 온실 리모델링이 완료되었고, 다행히 대공-사쿠야 스칼렛은 새 온실과 식물들을 마음에 들어했다.

참으로 잘 된 일이었다.

***

"비전하, 오늘은 안 덤비시네요?"

사쿠야에게 간식 배달을 가던 일레이시아가 분수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베임네크에게 말을 걸자, 시선을 내린 그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주인이 일주일이라도 싸우는 걸 참으면 화를 풀겠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알만 했다. 우리들의 비전하의 싸움 외의 행동에는, 모두 대공전하가 관련되어있기 마련이니까.

"대공전하도 비전하를 너무 사랑하신다니까. 기왕이면 한 달정도로 하시지."

"나도 나의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지만......일주일이나 너희와 검을 부딪히지 못하는 건 좀 아쉽군. 그동안 실력이나 좀 정진해두도록."

대공이 말한 최소한의 금지기간이 지나자마자 검들고 사용인들에게 달려들 생각이 만만인 베임네크를 보며 일레이시아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전하는 우리 월급 올려주셔야한다니까......"

오늘도 대공저는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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