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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리쿠]또 새로운 꿈을

2016.09.16 | 게임 2부 10장 4화(애니 2기 11화)까지의 스포일러 포함

너와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어떤 오늘도 바꿀 수 있어

당신이 입을 열면, 당신이 노래하면, 당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빛깔로 다시 칠해진다.

당신의 목소리는 때로 기운을 북돋는 응원이었고, 때로 본 적도 없는 아름다움을 그리는 붓이었고, 때로 알지도 못한 꿈을 보여 주는 공상이었다.

* * *

넓은 회장을 가득 채웠던 신곡의 MR이 잦아들고, 연출을 위한 보조 조명이 모두 꺼졌다. 조금 휑한 주조명과 정적만이 덩그러니 남은 무대 위아래로 기운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허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슴다─”

이오리는 멤버 7명을 비롯한 수많은 스탭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회장을 한번 돌아봤다. 관객이라곤 9명뿐이었던 첫 라이브 무대를 새삼 다시 떠올린다. 지금 텅 비어 있는 수많은 객석은 곧 빈 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찰 것이다. 생애 첫 실패를 겪었던 그 무대를 떠올린다. 이번에는 그런 식으로 실수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수습해 줄 것이다.

예전과는 많은 것이, 매우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분명히, 확실하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였다.

리허설 좋은 느낌이었네, 역시 라이브는 좀 긴장되긴 한다, 타마키 군 요즘 인사도 제대로 하게 돼서 정말 기특해, 그런 대화를 나누며 다 같이 대기실로 향하던 중. 리쿠가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가겠다며 무리를 이탈했다. 다들 응, 그래, 하고 아무렇지 않게 보내 줬지만 이오리는 문득 발을 멈췄다. 그리고 리쿠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화장실은 그쪽이 아닐 텐데.

“이오리?”

“……형, 저도 잠시.”

“어? 그래. 알아서 하겠지만, 안 늦게 잘 오고.”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이오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돌렸다.

* * *

“역시.”

“……어? 이, 이오리? 왜 이런 데서…….”

“그건 제가 할 말이죠. 화장실이 이쪽에 있었나요? 이런 데서 뭘 하고 계시는 거죠?”

아하하……. 리쿠가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다니는 사람이 없는 복도 한구석에 놓인 조금 불편한 의자에 앉은 리쿠는 누가 봐도 긴장으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이오리가 작게 한숨을 쉬자, 리쿠는 그 소리에 또 시선을 살짝 떨궜다. 아니, 핀잔을 주려고 같은 방향으로 빠져나와 그를 찾아다닌 건 아니었는데. 문득 형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말이 떠올랐다. 네 그 애정표현은 언젠가 인생에서 대실패를 맛볼 거야. 아뇨, 형. 적어도 지금은 안 됩니다. 이오리는 심혈을 기울여 머릿속에서 모난 말을 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긴장하시는 겁니까.”

“…….”

“당신은 오늘부터 다시 IDOLiSH7의 센터, 나나세 리쿠잖아요.”

“……그렇지.”

“떠밀려서도 아니고, 본인이 먼저 하게 해 달라고 해서 다시 맡게 된 센터입니다.”

“……그렇……지…….”

리쿠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그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늘은, 무척이나 오랜만에 나나세 리쿠를 센터로 세운 무대를 선보이는 날이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발표될 신곡은 특별한 음향 효과도 코러스도 없이, 리쿠의 솔로 파트로 시작된다. 무대 연출 또한 당연히 이에 맞춰 리쿠에게 집중이 쏟아지도록 유도하는 구성이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긴장하지 않는 쪽이 이상할 마당이었다. 더군다나 나나세 리쿠라는 사람은 본래 부담감이나 중압감 같은 말에는 한없이 약해지는 타입이었다. 이오리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MC 코너에서 다 같이 전하기로 했잖아요.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따라와 주신 팬들이라면, 분명 제대로 받아들여 주실 거예요. 저나 다른 멤버들도 옆에서 제대로 도울 테고요.”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분명 있을 거고…… 너무 오랜만이라, 실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또 한숨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억눌렀다. 이 이상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리쿠는 기어이 이오리가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을 단번에 끊어 버리는 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만약 이오리를 좋아하는 팬들이…… IDOLiSH7을 싫어하게 되면…….”

“그런 팬들은 오히려 제가 사양하고 싶습니다만?!”

“뭐?!”

아차, 싶었지만 마침 듣는 사람이 리쿠뿐인 걸 다행으로 여기며 이오리는 얼른 뒤집힌 목소리와 표정을 수습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 라고 자기보다 더 당황해서 허둥거리는 리쿠에게, 이오리는 간신히 주워 담은 이성으로 말을 이었다.

“저 개인을 사랑해 주시는 팬들도 물론 감사한 분들이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IDOLiSH7의 일원 이즈미 이오리입니다. 저 하나만 좋으니 제가 센터가 아닌 IDOLiSH7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분들은…… 안타깝지만 저와 언제까지고 함께할 수는 없는 분들이겠죠. 저는 늘 IDOLiSH7의 최선을 위해 활동할 거니까요. ……물론 이런 소리는 비공식석상에서,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자리니 할 수 있는 말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이오리는 다시 리쿠와 눈을 마주쳤다.

“……제가 사랑하는 IDOLiSH7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센터 나나세 리쿠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리쿠가 입을 벌리고, 조금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심코 귀엽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올 뻔한 걸 헛기침으로 얼버무리자, 리쿠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조금 수줍게 웃었다.

“……고마워, 이오리.”

이오리, 라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울림이 얼마나 달콤한지. 이오리는 사람의 목소리로도 향이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나나세 리쿠를 만나고 전에 없이 절절히 체험했다.

리쿠는 영차, 하고 일부러 소리를 내며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역시 이오리랑 말하고 있으면 좀 무서울 때도 있지만, 결국 기운이 나는 것 같아.”

“저는 그렇게까지 무섭게 말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이것 봐, 또 그렇게 말에 가시 있지.”

“슬슬 이 정도는 흘려들을 수 있도록 성장해 주세요.”

“이오리가 좀 더 다정해질 수는 없는 거야?”

이오리는 또 미츠키의 말을 떠올렸다. 네 그 애정 표현은 언젠가……. 이상하다, 평소에는 이 정도로 자주 떠올린 것 같지는 않은데.

“……이오리.”

“네.”

“그 말, 한 번만 더 해 줘.”

“뭘 말씀이시죠?”

“나를 슈퍼스타로 만들어 주겠다고.”

“……도대체가…….”

“그렇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볼 건 없잖아?!”

“몇 번을 들으면 만족하실 건데요?”

“윽……. 사, 상관없잖아! 말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이오리의 시선에 조금 움츠러든 리쿠가 입을 조금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또 어떤 말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오리의 속을 알 리 없는 리쿠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결국 쐐기를 박아 버렸다.

“그 말을 들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이, 이오리?! 하고, 당황해서 자신을 부르는 리쿠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리쿠를 끌어안은 뒤였다.

이오리는 한숨을 쉬려다가, 심호흡을 했다.

나나세 리쿠는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늘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함께 있으면 이렇게 예상치 못한 짓을 저지르고야 만다. 그라는 사람은 알기 쉬운 것 같으면서도 알기 어렵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 약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그런 것들은 알기 쉬운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그 어떤 답도 내놓을 수 없었다.

간신히 세울 수 있는 가설은 있었다. 나나세 리쿠라는 인간은 본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그리고 그 사랑스러움을 유독 잘 발견하는 것이 아마 자신일 것이라고.

그의 노래는 응원이었고, 본 적 없는 색이었고, 꾼 적 없는 꿈이었고, 그 외의 모든 것이었고…….

때로, 이 세상의 전부가 되기도 했다.

심호흡을 끝낸 이오리가 또박또박 말했다.

“나나세 씨.”

“네, 넵?!”

리쿠는 뒤집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아, 정말이지.

“당신을, 반드시, 슈퍼스타로 만들겠습니다.”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응!”

리쿠의 팔이 이오리의 등을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몸짓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가 긴장을 풀었다는 게 느껴졌다. 이오리는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나세 씨. 리쿠가 뭔데? 하고 되묻자, 이오리는 조금 부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자신의 기분을 솔직하게 말로 표현했다.

“또, 제게 새로운 꿈을 보여 주세요.”

리쿠는 짧은 간격을 두고 웃었다.

“이오리는 가사 인용도 잘하네!”

잠시 무슨 말인가 싶었다가, 신곡 가사 중 그런 구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게 아닙니다만, 하고 부정하려다가 그만뒀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게 힘이 됐다면 그만이었다. 이오리는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로 진심을 조금 얕게 덮어 버렸다.

* * *

조명이 차례차례 멤버를 비추자 팬들의 함성이 들려오고, 이어 신곡의 인트로가 흘러나온다. 반주와 함께 팬들의 환호는 더 커졌다. 리쿠의 노랫소리가 선율에 실리는 것과 동시에 이오리는 무대 가장 뒤, 가장 위에 선 리쿠를 돌아봤다.

단 한순간 만에 모든 목소리가 사라지고, 리쿠의 노래만이 남았다.

아마 착각이나 기분 탓이 절대로 아니었으리라. 이오리는 먼 훗날까지 그렇게 굳게 믿었다. 분명 그 무대에서 리쿠의 목소리는, 숨죽여 들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 이게 바로 당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

그렇게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던 모든 관중이 멍하니 그의 노래를 듣고만 있었다. 코러스와 함께 7명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자, 그제야 팬들도 꿈에서 깨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함성을 터뜨렸다.

이즈미 이오리는 본래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대개 ‘자신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그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당당하게,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 있다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나나세 리쿠라는 사람과, 그의 노래를 향한 사랑.

세상은 당신의 색으로 새로이 칠해진다. 당신은 언제든 본 적도 없는 새롭고 아름다운 빛깔로 이 세상을 물들이고, 꾸미고, 상상조차 한 적 없던 꿈을 그려 낸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과 함께 수도 없이 많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 나가리라.

그래.

나는 그런 당신에게 내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

또 새로운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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