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리쿠]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상
2024.04.21 어나스테 발행 이오리쿠 게스트북 「Fly Along You」 참가 원고
이제는 익숙해진 자리에서 프라이팬을 꺼내고, 적당한 기름을 두른 뒤 계란 두 알을 까서 약불로 굽는다. 그 옆에는 소시지도 두 개. 식빵은 평소 세팅해 둔 대로 토스터가 구워 주고 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져서 그런가, 기분이 좋아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캡슐 커피를 미리 꺼내 두면 좋겠네. 리쿠는 인덕션의 화력을 낮추고 캡슐 커피를 담아 둔 상자로 갔다. 이오리가 늘 마시는 카페모카는……. 어라?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생각보다 자주 마시지 않는 초코라테는 잔뜩 보이는데, 카페라테나 카페오레만 보이고 카페모카가 찾아지질 않았다. 그새 다 떨어졌나? 그럴 리가…….
그때 우당탕 하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이오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타는 냄새 나지 않나요?!”
“어?!”
덩달아 당황한 리쿠가 벌떡 일어나 인덕션으로 향했다. 다급히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소시지의 한쪽 면이 까맣게 타 있었다. 계란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자연스럽게 리쿠의 어깨가 처졌다.
“요즘은 잘 안 태웠는데…….”
“괜찮아요. 그 부분만 잘라 내고 먹으면 되니까요.”
이오리가 작게 한숨을 쉬며 그런 리쿠를 도닥여 줬다.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문득 오늘은 아직 하지 않은 말이 생각났다. 그 일상적인 말을 건네는 리쿠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돌아왔다.
“좋은 아침, 이오리.”
“좋은 아침입니다, 나나세 씨.”
* * *
둘만의 동거를 시작한 뒤 시간이 꽤 흐른 만큼 자잘한 집안일의 분배도 익숙해진 지 오래다.
세세하게 신경 쓸 부분이 많은 일은 주로 이오리가, 잊지 않고 정기적으로 하면 해결되는 일은 주로 리쿠가 담당한다. 리쿠가 손을 대도 결국 이오리의 잔소리가 쏟아지게 되는 요리나 청소가 전자, 쓰레기를 버리거나 장을 보는 것 등이 후자에 해당한다.
특히 채소나 식자재의 경우, 이론적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배워야만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이오리와 달리 자연히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리쿠가 맡곤 했다. 신기하게도 리쿠가 장을 보러 가면 없던 덤을 받아 오기도 하기 때문도 있었다. 물론 장보기 리스트는 주로 이오리가 작성했지만.
아침에 먼저 눈이 떠지는 건 대체로 리쿠다. 이오리가 의외로 아침잠이 많다 보니, 두 사람 몫의 간단한 끼니를 준비하는 일도 리쿠의 몫이 되었다. 오늘처럼 토스트일 때도 있고, 시리얼이나 샐러드일 때도 있고……. 아침인 만큼 거창한 메뉴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리쿠는 식탁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잠이 덜 깬 와중에도 자신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 주는 이오리가 귀여워 이 순간을 참 좋아했다.
양치를 마치고 머리가 맑아진 이오리의 하루는 바쁘다. 리쿠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이오리는 동거인이 깜빡 잊은 인덕션 청소나 식탁 정리를 담당한다. 햇빛이 적당히 드는 자리에 놓은 작은 화분들은 둘이 함께 돌보고 있었다. 다만 이오리는 아침에 일어나 한 번씩 들여다보는 게 완전히 루틴이 된 모양이었다.
아무튼, 지난밤 리쿠가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내버려둔 담요며 책을 정리하는 것도 이오리의 몫이었다. 리쿠가 정리를 게을리하는 탓이라기보다는, 대체로 이오리가 먼저 발견하고 손을 대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리쿠가 샤워를 하고 나오면 이오리는 자연스럽게 드라이어를 꺼내 온다. 이제는 익숙해진 대로 이오리가 소파 위에, 리쿠가 그 아래에 기대앉아 머리 말리기가 시작된다. 딱 좋게 설정된 온도의 바람과 이오리의 부드러운 손길이 리쿠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이오리는 오늘 스케줄 있었지?”
“네, 오후부터지만요.”
“그럼 점심까지는 같이 먹을 수 있겠다.”
“먹고 싶은 메뉴라도 있나요?”
“오므라이스!”
망설임 없이 나온 대답에 이오리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제도 먹었잖아요, 하는 목소리에는 딱히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다. 리쿠는 오늘도 이오리가 자신을 위해 부드러운 계란을 밥 위에 얹어 주리라 확신했다.
* * *
이오리는 집안일을 정말, 정말, 이상할 정도로 잘했다. 딱 한 번 젊은 연예인의 자취 생활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중년 부부보다도 알뜰하고 친환경적인 가사’라며 화제가 된 적도 있을 정도였다.
단순히 꼼꼼하고 적당한 절약을 추구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오리는 생각보다 더 ‘몸에 좋은’ 것이나 ‘친환경적인’ 상품이며 방식을 추구했다. 언젠가 이유를 물었을 때 이오리는 리쿠를 언급했다. 건강 문제로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리쿠를 생각해서 이것저것 찾고 또 알아보던 중, 자연스레 환경에 좋은 게 몸에도 좋단 걸 깨닫게 돼서 이렇게 됐다나.
그 대답을 하면서 이오리는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물었다.
―……부담스러운가요?
리쿠는 이오리의 그런 표정이 불안할 때 나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이오리는 때로 걱정이 과할 때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리쿠의 행동이나 반경을 제약하는 식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리쿠는 리쿠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둔 채 자신이 손댈 수 있는 다른 범위에서 리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찾아냈고, 실행했다. 리쿠는 그런 이오리의 애정이나 표현 방식이 기꺼웠다.
―싫을 리가 없잖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나를 아껴 주는데.
다소 직설적인 문장에 이오리의 귓가가 조금 붉어진 게 보였다. 이어 아시면 됐습니다, 하고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쿠는 헤실헤실 웃으며 그런 이오리를 바라봤다.
* * *
저녁은 밖에서 먹고 오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이오리의 귀가는 생각보다 늦었다. 막 따뜻한 우유를 데워 먹으려 방 밖으로 나온 참이었던 리쿠는 반가운 마음에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넘어지신다니까요.”
“집 안이고 별로 멀지도 않은데!”
“그래도요.”
“대체 이오리의 잔소리는 언제 줄어드는 거야…….”
투덜거림을 들은 이오리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반응이 바보 취급하는 건가 싶어 살짝 열받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저 웃음은 솔직하지 못한 이오리가 자신을 귀엽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얼버무리는 버릇이다. 그 사실을 눈치채 버린 리쿠는 더 툴툴거리지도 못한 채 입술만 삐죽였다.
“시간이 늦었잖아요. 어서 주무세요.”
“이오리는? 바로 씻고 잘 거지?”
“저는 잠깐 읽어 둬야 할 대본이 있어서.”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찮습니다. 정말 잠깐이에요.”
그렇게 말한 이오리는 기어코 리쿠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리쿠는 억지로 들여보내진 데 불만을 터뜨리느라, 정작 방을 나선 목적이었던 우유는 까맣게 잊은 채 침대에 벌렁 누워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그 뒤로 얼마나 지나서였는지. 문득 눈이 떠진 리쿠는 옆에 이오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아해져서 밖으로 나가자, 아니나 다를까 아직 거실 소파에 버티고 앉아 있는 이오리가 보였다. 다만 뭔가 이상했다. 읽는다던 대본은 무릎 위에 얹혀 있고, 묘하게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늘어져 있는 게……. 가까이 가 보니, 작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어깨에 맞춰 희미한 숨소리가 들렸다. 대본도 내려놓지 못한 채 곯아떨어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체격이 비슷하니 침실로 옮겨 주기도 쉽지 않고, 꺠우기에도 뭐하고……. 고민하던 리쿠가 내린 결론은 결국 담요를 가져와 덮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게 바로 자라고 할 때 자면 됐잖아. 최근 피곤해 보이는 게 마음에 걸려서 한 소리였는데, 본인은 알려나 모르겠다.
담요를 둘러 준 뒤, 이오리의 손에서 살금살금 대본을 뺏어 들었다. 이번에 이오리 혼자 출연하게 된 영화였다. 같이 나가는 게 아닌 만큼 내용은 아직 잘 모르지만, 그 이오리가 기대해도 좋다고 했으니 괜찮은 작품이 될 것 같았다.
문득 어떤 대본일지 궁금해져서 이오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아마 잠들기 직전 보고 있었을 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서 한 줄짜리 대사가 유독 눈에 밟혔다.
‘제발, 부탁이야. 나만 두고 가지 마.’
절절한 이별 장면인 것 같았다. 듣는 이는 말하는 이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그 자리를 떠났다. 행동 지문으로는 ‘괴로운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며’라는 부연 설명이 붙어 있었다. 아마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인 듯했다.
어느 날인가의 방송국, 장시간 생방송을 달리던 중 나누었던 비슷한 대화가 떠올랐다. 분명 둘의 언어는 이보다 훨씬 담백했고, 결론은 정반대였지만.
그때의 약속을, 이오리는 기억할까.
아마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야…….
끝없이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서로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던 무렵을 떠올리며, 작게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연인의 숨소리를 들으며, 리쿠는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 * *
무거운 눈꺼풀을 몇 번 깜빡였다. 누군가 머리칼을 만지는 감촉이 느껴지고, 깼나요? 하고 조심스레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쿠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무어라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깨우지 그러셨어요.”
“그러는 이오리도…….”
“……깨울지 말지 고민하던 참이긴 했습니다만.”
바로 몇 걸음 떨어진 방에 침대를 두고 무슨 바보 같은 대화인가, 싶어 리쿠는 불쑥 웃음이 터졌다. 이오리도 덩달아 맥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와중에도 그 소리를 들으며, 리쿠는 눈이 감기기 직전 하던 생각을 입 밖에 냈다.
“이오리, 기억해? 내가 전에 그랬잖아.”
“네.”
“뭐야, 아직 무슨 얘기인지 말도 안 꺼냈는데.”
“대본을 보다 잠드셨잖아요. 그럼 할 얘기야 뻔하죠.”
“이오리는 눈치가 너무 빨라서 탈이야.”
그래서 싫으세요? 그런 건 아니지만. 시답잖은 소리를 주고받다가 툭 던지듯, 이미 했던 말을 다시 입에 담는다.
“두고 가지 않겠다고 했잖아.”
“두고 가지 말라고도 했죠.”
이거 봐, 역시 기억하지. 그야…….
시선을 들자, 이오리와 눈이 마주쳤다. 신기하지. 그때 그 소년을 그토록 불안하게 했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 지금의 이오리에게서는 안정감이, 무언가를 향한 굳은 믿음만이 보였다. 방금까지 나누었던 문장을 잠시 잊은 리쿠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오리의 눈동자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오리는, 계속 약속을 지켜 주고 있잖아.”
반만 이어지는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아니면 그쪽도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이오리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받아 줬다.
“나나세 씨도요.”
리쿠에게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그 이름 모를 불안의 주된 제공자 중 한 명이 자신이었다고, 이오리의 입으로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당신이, 금방이라도 손안에서 흘러넘쳐 붙잡을 수 없게 될 것만 같아서……. 이오리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자신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의 애정만은 잘 전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 무렵에는 자신도 무척이나 불안해했었지. 두고 갈까 봐, 두고 가게 될까 봐. 하지만 지금은.
어느새 이오리가 리쿠의 손을 잡아 주고 있었다. 리쿠도 말없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매일같이, 오히려 없으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온전히 서로의 품에 들어온 온기가 거기 있었다.
증표 없이도 단단한 매듭으로 묶여, 결코 깨지지 않을 약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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