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화

叡栖 柳彝樺

예서 류이화 叡栖 柳彝樺

25世 | 女 | 귀족 | 원주

눈 깜빡할 새 없이 아스라질 벚꽃. 가냘프고도 청초했다. 혹은 부서질 듯,

사람들은 그녀를 꽃의 화신이라 불렀다. 누구에게서나 주목 받을 만한 미색이었으나, 계절과 함께 사라질 꽃처럼 연약했다. 파리한 입술을 감추기 위해 늘 바르던 다홍색의 입술연지. 햇빛을 보지 못한 새하얀 살결과 대비되어 미색을 더했다. 동공이 보일 정도로 연한 갈색의 눈. 쌍꺼풀이 깊게 져 눈을 내리깔거나 들어올릴 때면, 속눈썹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콧대가 반듯하며, 그 밑엔 엷은 호선을 그리는 입술이 있었다. 성격을 닮아 생긴다는 말처럼, 티 없는 그녀의 외향이 그랬다.

왜소까지는 아니었고, 나이에 비해 그저 여린 체구였다. 흑단 같은 머리칼은 허리께까지 늘어져 있으며, 두어 번만 빗어도 찰랑거릴 정도로 머릿결이 좋았다. 앞머리는 길러 옆가르마로 넘겼고 청호각에서 지낼 때에도 드물게 머리를 묶어 올렸다. 그저 그녀의 습관이겠거니, 이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본가에서는 붉은 계열의 복식을, 청호각에서는 난삼을. 벚꽃을 닮은 머리장식은 잠들 때를 제외하곤 떼어내는 일이 없었다.

주결경

누군가의 통증을 이해한다는 건, 아주 오래된 오해. ¹

¹ 유병록, 물의 행렬

차분하고도 고요했다. 그녀를 무딘 사람이라 칭하는 걸 당연시하게 여겼다. 무딘 사람아, 부르면 옅게 웃도록. 상대의 걸음을 막지 않되 자신의 보폭을 크게 하지 않았고, 작게 웃음 지으면서도 소리 내지 않아 그게 다가 아닌 듯 다가왔다. 차분한 행색이 금기를 절제하는 것과 비슷해 보였으나, 웃어뵈는 것 외에 별다른 답을 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뜻 드는 것은 타인에 대한 예의, 정도랬다. 여상한 미소로 부드러운 어투를 내는 일을 잘했다. 감히 어찌 남에게 칼집을 내냐는 듯이 조심스럽게. 그리고는 상대의 답을 먼저 물었다.

그러니, 공자께서는. 어찌 생각하세요. 

자신을 적게 사고 조화를 크게 본다. 작은 물음이라도 제 의견을 묻는다면 답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나, 파리한 입술이 먼저 열리는 법은 없었다. 

절제와 극도의 차분함. 그녀를 알지 못해 이루말하는 신비주의마저도 여상한 미소로 무마되리라.

지지 않는 꽃

변치 않을 이彝 벚나무 화樺

서기 967년 3월 24일생

스물 하고도 두 해가 지나도 꽃을 피워내지 않던 벚나무가 꽃을 피워내던 날, 아이는 태어났다. 

二 

柳家. 대대로 동궁부 요직을 맡아 온 사대부 가문.

2남 1녀 중 셋째. 연년생의 쌍생아 오라버니 둘.

부족하지 않게,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三 

허약한 몸. 상사병 마냥 치료약도 구할 수 없었던 의문의 병.

나는 유서도 못쓰고 아팠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깊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²

² 박준, 꾀병

열여덟의 나이에 재발병.

늘 부드러운 꽃내음이 났다. 은은한 벚꽃향. 열 댓걸음 이내에서는 진한 벚 내음만이 코 끝을 휘감았다. 약향을 지우려던 게 습관이 된 탓이었다.

請呼閣

열 여덟이 되던 봄, 소녀는 청호각의 커다란 북을 울렸다.

찬 37표 반 2표 기권 1표

재발병. 계절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청호각을 나섰다.

스물 두 번째 봄, 재입각. 노각주 화이평의 추천. 반대는 그 누구도 없었다.

비파 연주가 취미. 취미라 치부하기에는 실력이 뛰어났다.

병환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늘 곁에는 비파를 연주해주신 아버지가 있었다.

일곱 번째 생일날 선물로 받은 비파. 

총명할 예 叡 깃들일 서 栖

열여섯이 되던 해, 얻게 된 또 다른 이름.

*

 노각주 홍진 화이평

이화의 어머니 역시도 청호각 출신이었으나, 결혼을 계기로 1년만에 청호각을 나오게 되었다. 이화가 10살이 되자 어머니는 학문을 지속하고 싶다는 이유로 청호각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고, 객원 시절 노각주와 친분을 쌓게 된다. 어머니가 청호각을 떠난 이후에도 종종 차를 마시는 등 인연을 이어갔다. 어려서부터 이화는 영특했으나 학당으로 가 공부를 이어나가기에는 몸이 허약했다. 여느때처럼 이화의 본가에서 차를 마시고 나서던 노각주는 우연히 이화를 발견하게 된다. 이화의 어머니에게서 이화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던 노각주는 이화가 읽고 있던 책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아이는 현숙한 답안을 내 놓았고, 노각주는 아이를 눈여겨 보게 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종종 이화를 찾아와 서로의 식견을 나누곤 했다. 이화는 그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각주 또한 이화를 눈 여겨 봐두었고, 청호각 재입각 시 추천의 장본인이 된다.

백연 기영륜

방 동기님. 백연 낭자, 라는 이름보다는 이화는 그녀를 종종 방 동기님이라 불렀다. 처음 보는 유형의 사람이라. 얼굴이나 행동에서 생각하는 바가 드러나 그것이 퍽 즐거운 일인 양, 그녀를 향해 웃어뵈는 일이 잦았다. 쉬이 뵈지 않던 다도 솜씨를 드러낸 것도 그녀를 만난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이화는 그녀를 볼 때면 대나무를 떠올렸다. 올곧으며, 바람이 불 때면 소리로 답하는. 솔직함이 미덕이라. 서투르나 맑은 이라 생각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앞에서 벚나무가 꽃가지를 흔들어 뵈는 것은 섭리가 아니겠는가.

서우 양영균

동기님, 이라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 재입각 여부를 논하던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곧은 눈으로 제 의견을 지지하던 이였다. 맑은 눈으로 저를 향하는 목소리에 얼핏 눈길이 갔던 것 같다. 그 시선을 놓치지 않은 청년은, 인연의 물꼬를 터주었다.

1년을 못 다 채우고 청호각을 떠났던 일은 이화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었다. 언제 건강이 악화되어 떠날지도 모르는 몸. 이별하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았으나, 갑작스런 이별에는 늘 익숙치 못했다. 하염 없이 아파했고 원망할 이는 제 자신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청호각의 인연은 청호각에서 끝내겠다며 다짐하던 이화였으나, 가식 없는 친절에는 진심으로 다가서게 되는 법. 제 병환의 근원을 찾지 못함을 알면서도, 그의 친절에 못 이겨 진맥을 허락하는 이화였다. 동기로서, 의원으로서 곁을 지켜주던 이. 저를 향해 염려의 목소리에, 그 아래에 깔린 염려를 알기에 오늘도 그를 향해 다정히 웃어뵌다.

염화 남궁 보현

벗이라 하면 가장 떠올릴 이름이었다. 두 남녀가 함께하면 신선이라. 눈빛으로도 말하는 바를 알아챈다는 것은 이 둘을 두고 하는 말. 위로 연년생의 두 오라버니가 있다고는 하나, 아픈 몸 때문에 자주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녀가 진정으로 오라버니라 섬기는 이가 있다면, 이화는 두 말 없이 그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이화의 외조모는 남궁 가문의 방계 출신이다. 촌수로는 셀 수도 없는 먼 친적 뻘이라 하나, 보현의 조모와 남다른 연이 있었고 인연은 그들의 아들(보현의 부친), 딸(이화의 모친)을 거쳐 이화, 그리고 보현에게까지 닿았다. 냉철하다 알려진 남궁 가주(보현의 조모)도 유들유들하게 구는 이화의 모친 앞에서 인자한 미소를 종종 보여주셨으니. 그들 인연의 깊이를 애써 표현할 필요가 있겠는가. 임신부터 출산까지 시기가 겹친 데 다가, 요양 차 향했던 제주의 남궁 본가에서 그들은 인연을 쌓게 된다. 사실 그들의 인연은 태어난 직후부터 이어진 셈이다. 알 수 없는 병환 때문에 온 동네 의원들에게서 진맥을 받던 이화는, 남궁 가의 도움으로 보현 모자가 머물던 절의 스님을 뵙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종종 제주에 머물었다. 병환의 근원을 찾을 수 없었기에 증상 완화로 치료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다섯 살이 되던 해부터 여덟 살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남궁 본가의 별당에서 머물며 보현과도 벗의 인연을 이어갔다. 원주를 떠나고서도 그들은 꾸준히 서신을 주고 받았다. 열여덟에 병이 재발병 하여 청호각을 나서서 본가로 돌아 갔을 때, 보현의 출산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달려간 이화였다. 요양 차 1년이라는 시간을 다시 제주에서 머물며, 꽃놀이는 물론이고 학술적인 담화도 서슴치 않던 그들이었다.

問 

현재 지지하고 있는 친왕과 이유

순친왕. 

류씨 가문은 대대로 동궁부를 도맡은 가문이었기 때문에 차기 태자에 관해 늘 중립적인 위치를 맡아왔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미지었을 뿐. 태자의 옹립에 관해 가장 크게 휩쓸릴 수 밖에 없는 동궁부는 수면 위의 오리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차기 태자를 결정 후 즉위까지 그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 류 가문의 역할. 지지할 친왕을 고르는 일은 곧 가문의 존속과 직결된다. 가문의 결정은 누구도 왈가왈부 할 수 없는 불변의 것. 가주 류 설(이화의 할아버지 분)의 선택은 순친왕이었다. 

 

問 

대연이 부국강병하기 위해 최우선되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答 

모든 일에는 조화가 따라야 최상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과유불급이지요. 어느 한 쪽이 넘쳐서도, 부족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국치의 면에서는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법칙이 ‘중용의 도’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연은 태자 위位를 비워둔 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흔들림 없는 황권을 옹립하기 위해서는 태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군사와 내치의 덕목을 겸비한 인재, 조화가 따르는 친왕을 태자로 세우는 것이 第一의 과제가 아니겠습니까.

천하를 호령할 검이 있다면, 그에 필적할 붓이 필요하리라. 내치와 군사. 어느 하나만 있어서는 대연은 부국강병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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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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