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해준) 오늘은 뭐 먹어요?

(서원해준) 오늘은 뭐 먹어요? -달래불고기-

요리하는 박서원x영상 찍는 정해준

*결말 부분의 스포일러가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작을 읽으신 후 열람해주시길 바랍니다.

*캐붕, 날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작보다 전체적으로 많이 말랑한 느낌입니다. 캐붕...좀...많습니다.

*ㅋㄹㄴ는 없다는 설정입니다..그렇지만 미세먼지는 있어요(?)

***

영상을 찍은 지 2주가 지났다. 편집은 다 끝내놓은 상태이고, 이제 올리기만 하면 된다. 처음 올리는 거라 조회 수가 얼마 나오지도 않을테지만 그거와 별개로 공개적인 곳에 나와 박서원이 같이 찍힌 영상이 올라가는 것이다. 괜히 긴장되네. 영상에 실수라도 있을까 봐 재차 확인도 제대로 했고, 목소리는 내지도 않았으니 괜찮을 거다.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클릭하였다.

게시 완료!

나는 화면에 뜨는 네글자를 바라보고 긴장을 살짝 풀었다. 영상이 제대로 올라갔나 다시금 확인하려 가보니, 다행히 멀쩡하게 잘 올라가있다. 조회 수는 당연히 없음이고. 오늘 올렸으니 아무리 빨라도 다음 달은 되어야 영상이 올라가려나. 찍어놓은 거라곤 오늘 올린 영상 이외에 연습용으로 집안을 촬영한 거 빼놓고는 없었다.

박서원은 영상을 찍은 다음날 귀신같이 일이 늘어서 집에 자주 들어오지 못했다. 그럴 수 밖에. 박서원을 부르는 곳은 아주 많았고, 그중에서 골라서 한다 하여도 한 사람이 하기엔 많은 일들이다. 박서원이 우스갯소리로 몸값을 더 올리면 전보단 덜 부르지 않겠냐고도 했었고. 물론 나도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쉬는 시간이 더 적은 건 박서원 쪽임은 틀림없는 바였다.

저쪽에서 박서원과 같이 살 때에도 이랬다. 집의 돈은 박서원이 냈지만 사는 건 거의 나인 점도 비슷하고. 저쪽이 덜 바빴던 거 같기도 한데. 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침대에 털썩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박서원은 아까 했던 통화에서 말했던 듯이 드라마 촬영중일터였다. 서다흰 씨도 같이 찍는다고 했던지라 구경 오고 싶으면 와도 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촬영장과 전혀 연이 없는 일반인이 가기에는 그렇지 않은가. 빌더쓰2때가 특이했던 경우지. 나는 간만에 그때의 일들을 생각하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

"으음...."

몸을 뒤척이며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을 꿈뻑였다. 따뜻한 날씨에 나도 모르게 잠을 자버린 듯했다. 얼마나 잠들었지? 한손으로 눈을 비비며 천천히 천장을 바라보는데, 천장이 아닌 익숙한 것이 보였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에 새하얀 피부, 살짝 휘어져 있는 눈꼬리, 호선을 그리는 입인...

"일어났어요?"

박서원이다.

어? 벌써?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비비던 손을 치우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곧바로 눈을 반쯤 뜨고 박서원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자는 동안에는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요."

"안 건드렸어요. 보기만 했지."

박서원은 내 말에 대답하며 양손으로 내 양 볼을 감싸 쥐고는 천천히 얼굴을 내렸다. 뭐, 뭐야, 왜? 가까워지는 얼굴에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감자, 얼마 있지 않아 입술에 닿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상냥하게 내려앉은 입술은 무언가 달래주기 위한 듯 천천히 닿고 떨어지기를 반복하였다. 한번, 두 번, 세 번. 세 번이 넘어가도 끝나지 않아 저절로 눈을 더 꾹 감았다. 그렇게 다섯번, 여섯번, 아니 이 사람이 언제까지 하려고? 이미 세 번쯤 했을 때부터 가슴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기에 더는 무리였다. 터진다고, 터져. 내가 오므려진 손을 뻗어 박서원을 밀어내자 순순히 물러났다. 완전히 몸을 일으켜 세운 듯하여 눈을 다시금 뜨자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박서원이 보였다.

"방금은 깨어있었으니까 상관 없죠?"

괜찮긴 무슨, 안 괜찮아. 나는 누워있는 채로 씨익 웃고 있는 박서원을 노려보다 이불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얼굴 안 보면 좀 진정되긴 하겠지. 계속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얼굴에 열이 오른 것도 해결해야 하고. 내가 이불을 덮어 얼굴을 가리자 박서원이 키득거리는 듯싶더니 내 팔 옆부분에 무게가 실려 살짝 가라앉았다.

"정해준 씨 보려고 최대한 빨리 달려왔는데, 얼굴 정돈 보여주죠?"

나 서운한데. 나는 귓가에 속삭이는 박서원의 말을 무시하고 이불을 덮고 있었다. 서운하긴 무슨. 놀리고 싶어서 잔뜩 웃고 있는 표정이 저절로 떠올랐다. 내가 이불 밖으로 눈만 보이게 빼내어 노려보니 박서원은 내가 떠올렸던 표정 그대로였다.

내가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팡팡 발길질을 하자 박서원은 아, 아. 하고 성의 없이 소리를 내다 바람이 빠진 듯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곤 곧바로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뭐야? 내가 다시 눈만 빼내어 밖을 바라보니, 바로 눈앞에 박서원이 누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은 사르르 접힌 듯 눈썹이 내려앉아 있었고, 어두운 색의 눈동자에는 빛이 머물러 있는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작게 웃고 있는 입꼬리는 다정했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박서원의 얼굴과 침대 시트에 흩어져있었다. 드라마에서도 자주 했었던 표정. 아니, 그보다는 더 부드럽고 낯뜨거운 시선이었다. 사랑해 마지 못하겠다는 저 표정은 반칙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박서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멈춰있을 수 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온전히 사랑을 비추는 눈동자에 내가 무어라 답을 하겠는가. 그저 그 시선을 받아들이기에도 벅차다. 내가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최소한의 대답이었다.

박서원은 그런 날 계속해서 바라보다가 눈을 마저 접은 채로 나에게 말하였다.

"데이트 갈래요?"

이 상황에서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겠지. 나는 입을 천천히 입을 움직여 그가 좋아할 만한 대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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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말고 이거 입어요."

"왜요?"

"그건 너무 박서원 씨 같잖아요."

박서원은 늘 박서원 같은 옷을 입는다. 빌더쓰에서 입던 무스탕 같은 옷 말이다. 그렇기에 얼굴을 가려도 다들 알아보는 편이었다. 물론 얼굴도 그렇게 안 가리고 다녀서인 편도 있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와 박서원은 사이즈가 비슷해 서로의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박서원이 꺼내든 옷을 집어넣고 내 쪽 행거에서 옷을 꺼냈다.

"후드티?"

"이게 제일 안 들켜요."

"그래도 기왕 데이트 인 데."

"데이트 아니고 장 보러 가는 거잖아요."

자요, 이거 입어요. 내가 박서원에게 후드티를 내밀자, 박서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에 쥐었다. 정말 쥐기만 하고 갈아입지 않으려 하는 게 문제였지만. 후드티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색이 마음에 안드는 건진 모르겠지만 눈에 안띌려면 어쩔 수가 없다. 옷 취향과는 상관없이 박서원은 체크 남방만 입어도, 하와이안 셔츠를 입어도, 심지어는 꽃무늬 바지를 입어도 잘생겨 보이고 핏이 살았기에 최대한 가려야 그나마 평범해 보인다. 박서원도 그 사실을 알 터였지만 오늘따라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입을 기색이 없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박서원에게 말하였다.

"저랑 같은 거예요. 봐요."

박서원이 내 말에 고개를 들어 내가 집어 든 후드티를 바라보았다. 혹시나하고 똑같은 종류의 옷을 두 벌을 사놓은 게 망정이지. 박서원은 그제야 괜찮아졌는지 좋아요, 한마디를 내뱉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고 갈아입기 시작했다. 먼저 다 갈아입은 박서원이 자신이 입은 후드티를 보고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색까지 같은 건 없어요?"

"없어요."

이래서 오늘 안에 나가려나 모르겠다.

***

따지고 보면 그렇게 좋은 점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기에 박서원이 마스크를 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썼고. 박서원은 하얀색 캡에 흰 마스크, 선글라스 대신에 알이 없는 안경을 썼다. 평소라면 선글라스일 텐데 왜 안경이냐는 말에 데이트니까 얼굴 잘 보여야죠, 라고 대답했다. 데이트 아니래도. 박서원은 그러거나 말거나 대답을 마치고는 내게 슬쩍 손깍지를 껴왔다. 내가 그런 박서원을 힐끔 쳐다보자, 박서원은 눈꼬리를 휘게 접으며 마스크를 잠시 내리고 깍지를 낀 손을 들어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뭐... 손 잡는 거 정돈 괜찮겠지? 아직은 사람들도 많이 없고? 나는 박서원의 행동에 별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괜스레 마주 잡은 손을 꼼지락 거리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박서원도 내 보폭에 맞추어 같이 걸어갔다. 평소보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뭐 살 거예요?"

"재료 많이 없으니까... 없는 것들 위주로 사고,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고요. 계란 있던가?"

"한 다섯개쯤 남았어요. 우유도 없고."

"그것도 사야겠네요. 살 거 많네."

자동문을 통과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두런두런 살 것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예정에 없던 외출이라 딱히 목록을 정리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고. 지하에 도착하자 나는 자연스럽게 카트를 꺼내 들었다. 재료를 고르는 일을 박서원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카트를 끌게 되었다. 도르륵, 도르륵. 내가 카트를 밀어내며 걷기 시작하자 바퀴가 움직이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작게 울리는 철소리가 들렸다.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사람들 사이로 그것을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음....치킨?"

"그런 거 말고."

"사실 생각나는 게 딱히 없어요. 치킨도 저기서 팔고 있길래 말한 거예요."

나는 고갯짓으로 치킨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꼭 아무생각 없을 때 냄새 맡으면 괜히 먹고 싶어진단 말이지. 박서원은 잠시 자리에 서서 치킨을 바라보다 다시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또한 뭔가 기대한 것은 아니라 아무 말 없이 그 옆을 따라갔다.

한쪽에는 제철 과일인 딸기가 포장된 채 쌓여있었고, 채소 코너엔 전에 박서원이 사 왔던 냉이도 놓여있었다. 달래도 있네. 박서원은 채소 코너에서 멈춰서 이것저것 들어보고 두어개 정도 카트에 담았다. 나는 그 옆에 서서 박서원이 무얼 보고 무얼 담는지 구경 중이었다. 더덕도 넣었네. 구이 해 먹으려고 그러나? 무침보단 구이가 좋은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박서원과 눈이 마주쳐서 바라보니, 눈꼬리가 예쁘게 휘었다. 마스크에 가려져 입은 보이지 않겠지만 입꼬리도 별반 다를게 없겠지. 나는 가볍게 눈을 두 번 깜빡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박서원이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작게 들리곤 다시 채소로 고개를 돌렸다. 눈 깜빡임으로 대답한 게 마음에 들었나. 기분 나빠하는 건 아닌 거 같으니까 괜찮겠다 싶었다. 나도 다시금 채소를 보는 박서원에게로 눈을 돌렸다.

"박서...아."

나는 박서원의 이름을 부르려다 손으로 마스크를 살짝 건드리며 입을 다물었다. 이름으로 부르면 다 알겠지. 간만에 같이 오는 거라 잠시 잊었었다. 내가 박서원을 부르려다 만 채로 바라보니, 박서원은 아무 말 없이 날 보고 있었다. 궁금하면 물어볼 텐데 안 물어보는걸 보니 내가 부르기 전까지 답 안 할 건가. 나는 다시금 입을 열어 말하였다.

"...자기."

"왜요, 자기?"

대답하는 박서원의 목소리에 즐거움이 잔뜩 묻어있다. 내 이름은 그냥 불러도 상관 없는데. 이 호칭 정한 게 박서원이니 이럴 거 같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다시금 질문하려던 것을 마저 말하였다.

"우리 오늘 뭐 먹을 거예요?"

"자기는요?"

"전 아까 말한 거 말고 딱히 없어요."

"저도 그래서 안 먹어본 거 중에서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두런두런 말을 건네면서 끌던 카트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별 이유는 없고 바로 앞이 해산물 코너라 우회해서 갈 뿐이다. 생선을 그대로 내놓는데 냄새가 안 심할 리가 없지. 박서원이 지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늘 그렇듯 주변을 핑 돌고 고기가 있는 쪽으로 향하였다. 시식대에서 지글지글 익는 고기 덕분에 근처에만 가도 고기 냄새가 솔솔 났다.

"한입 드셔보세요~!"

먹어보라는데 사양하면 예의가 아니지. 나는 잠시 카트를 박서원에게 넘기고 이쑤시개 두 개로 고기를 콕콕 찍은 다음 하나는 박서원의 입에 넣어주고 다른 하나는 마스크를 내린 내 입에 넣었다. 적당히 간이 벤 돼지고기는 입안에 넣자마자 후추향과 함께 고기향이 맴돌았다. 역시 알던 맛이 제일 맛있지. 고기는 작은 조각이라 몇 번 씹지도 못하고 입안에서 사라졌다.

"두 분 다 잘생기셨네요~ 연예인인가?"

"아, 감사합니다."

시식대에서 고기를 뒤집고 있던 직원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박서원은 고기 먹일 때만 내리고 빠르게 다시 씌워줬는데, 다행히 얼굴을 제대로 못봤나보다. 아직 마스크를 벗고 있던 나는 일부러 얼굴을 보이고 웃어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연예인이 맞긴 한데, 들키면 안되거든요. 속으로 말을 삼켰다.

"고기 맛있죠? 세일 중이니까 한 번씩 보고 가세요!"

직원은 자신의 오른쪽에 놓여있는 고기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고기...그러고보니 저번에 박서원이 받아온 갈비찜 빼고는 잘 안 먹었던 거 같긴 한데. 나는 슬그머니 발을 떼어 고기 앞으로 움직였다. 대패 맛있겠다. 그냥 삼겹살도 맛있고. 아까 먹었던 맛이 다시 생각이 나서 괜히 입맛이 돌았다. 먹을 거 없으면 고기가 낫지. 나는 슬쩍 냉동 대패를 하나 집어 들었다.

"정해준 씨?"

"네?"

"그쪽 말고 이쪽."

박서원은 반대편에 있는 매대 앞에 서서 말하였다. 저쪽도 고기이긴 고기인데....소고기? 소고기 먹게?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박서원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점점 아래로 떨어져 한 곳에 멈추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따라서 같이 고개를 내렸다.

"그거 먹게요?"

"방금 전까지는요."

"지금은?"

"...둘다요?"

고기는 많이 먹을수록 맛있으니까. 자칭 고기 박사인 정해영도 했던 말이다. 이 말 정도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다. 박서원은 잠시 내 얼굴과 대패삼겹살을 번갈아 가며 보더니 손가락을 까딱이다가 카트 안을 가리켰다. 졸지에 허락 받았네. 허락 안 받아도 몰래 넣을 거였지만. 나는 고기를 든 채로 박서원에게 다가갔다. 카트 옆에 서서 고기를 넣으려고 안을 보자, 채소들 사이에 소고기가 추가 되어있음을 볼 수 있었다. 겉에 쓰여져있는게...불고기용? 불고기 해 먹을 건가? 나는 내 손에 있던 대패를 내려놓으며 물어보았다.

"우리 불고기 먹어요?"

"안 먹은 지 좀 됐으니까요? 정해준 씨랑은 엇갈린 거 같지만."

대패는 저 없을 때 해 먹어요. 불고기는 오늘 같은 날 아니면 잘 해 먹지도 못하니까. 나는 박서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카트를 잡았다. 불고기 안 먹은 지 오래되긴 했지. 밖에서 고기 먹으면 늘 구워 먹는 거였고. 맛있겠다. 나는 속으로 예전에 먹었던 맛을 떠올리며 박서원의 발걸음에 따라 천천히 바퀴를 굴려 갔다.

***

어느 정도 찬 카트를 끌고 장난감 코너로 왔다. 걸어 다니면서 영상의 한쪽이 비어 보여 소품용으로 쓸만한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 하고 말을 했던 탓이었다. 평생 와봤자 어릴 때나 정해영 선물 사줬을 때 뿐일 줄 알았는데. 이 입이 한동안은 괜찮더니 또 이러네. 나는 머릿속으로 내 입을 때린 채 인형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대형마트라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종류도 많았고 뭐로 사야 할지 생각도 안 했었던 터라 고르기 어려웠다. 내 옆에 서 있는 박서원은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 생각 외로 열심히 봐주고 있네.

"정해준 씨."

"네?"

나는 박서원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려는데 한쪽 팔에 감겨오는 것에 시선을 내렸다. 다름이 아니라 박서원의 팔이 감겨와 한 손을 겹쳐 잡은 것이었다. 나는 곁눈질로 주변을 보며 작게 말하였다.

"박서원 씨, 밖에서는 안 하기로 했잖아요."

"데이트인데 손도 마음대로 못잡아요?"

데이트 아니라고 몇번을 말해야 하는 건지. 다행히 애들은 서로 자기들이 뛰어노느라 바쁘고 보호자들은 뛰어다니는 애들을 보느라 바빴다. 한동안 제대로 못 만나고 못 돌아다녔더니 그런 건가. 그렇게 주변을 한 번 더 보고 있자 감겨있던 팔 쪽으로 당기는 힘에 저절로 몸이 기울었다.

"그쪽 말고 이쪽."

정해준 씨가 골라달라면서요? 박서원은 어느샌가 양손에 작은 인형을 들고 말하였다. 순간 자기 봐달란 줄 알았네. 나는 조금 놀란 가슴을 뒤로 하고 박서원이 들고 있는 인형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검은 고양이였고, 다른 하나는 복숭아 캐릭터였다. 왜 하필 복숭아? 나는 눈썹을 움직이며 박서원에게 말하였다.

"복숭아는 왜요?"

"닮았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어디가? 박서원이 손이 들고 있는 고양이는 귀엽다면 복숭아 쪽은 하찮게 생겼달까. 애초에 둘 다 날 닮지도 않았다. 박서원의 눈이 삐었다고 해야 할지 콩깍지가 씌웠다고 해야.....아니다 그냥 그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거나 말거나 박서원은 양손에 인형을 든 채로 진열되어 있는 인형을 다시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인형을 고르는 박서원은...나도 처음 보네. 생각 외로 잘 어울렸다. 어울리는걸 넘어서 좀 귀여워 보인달까...누구한테 뭐라 할 처지가 아니네. 박서원은 손에 들고 있는 인형을 그대로 든 채로 다시금 나를 보며 말하였다.

"정해준 씨는요?"

"..이런 건 잘 모르겠어요. 자기가 골라주세요."

"좋아요."

그럼 이걸로. 박서원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형을 흔들며 말하였다. 손에 들고 있는 것 중에 하나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손에 들려있는 게 바뀌어있었다. 둘 다 고양이? 그리고 박서원은 자연스럽게 두 고양이 모두 카트 안에 넣었다. 두 개 다 사냐고 묻자 하나는 자기고 하나는 나라서 둘이라고 한다. 뭐 굳이 하나일 필욘 없긴 했는데..두개여도 별반 다를 거 없을 듯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텅 비어있었던 카트를 반을 좀 넘게 채우고 나서야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물건 정리 후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소불고기는 양념에 한 시간은 재워둬야 때문에 지금 시작해야 저녁에는 먹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낮잠 자느라 좀 늦게 나간 것도 이유이긴 하지만 계획했던 건 아니니 대충 넘기자. 나는 식탁 위에 두 인형을 올려놓은 채로 카메라를 건드리고 있었다. 박서원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앞치마 끈을 세 번쯤 당기며 동여맸다.

"리본은 어디서 났어요?"

나는 카메라를 설치하다 박서원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박서원은 고양이 인형을 바라본 채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두 고양이 다 검은 고양이라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가 표시용으로 정해영이 선물이라며 멋대로 던져놓고 간 쓰레기들 중에 있던 끈으로 리본을 묶어두었다. 색도 파란색이랑 빨간색 뿐이라 색의 선택지는 없었고. 나는 사실 그대로 박서원에게 말하자, 박서원은 조금 더 인형을 바라보더니 빨간색 리본을 단 고양이 인형을 들고 재료가 놓여있는 곳 위에 같이 올려두었다. 그리고 몸을 슬 옆으로 움직였기에, 나는 카메라를 들어 어떻게 찍히는지 확인하였다. 음, 확실히 재료만 있는 것보단 좋네. 나는 카메라를 도로 내려놓고 박서원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박서원은 여상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였다.

"그럼 시작할게요?"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천천히 말하였다. 하나, 둘, 셋. 박자에 맞추어 버튼을 누른 카메라는 삣 하고 소리를 내며 녹화되기 시작했다.

우선 불고기용 소고기를 꺼내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다. 보통은 삼등분 정도 하는 것이 적당하지만 오늘 것은 평소보다 조금 큰지 삼등분을 하진 않았다. 자른 고기는 탈탈 털어 고기끼리 붙어있는 것을 떼어낸다. 화면 안에는 공중에서 쏟아지는 소고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털어낸 후에는 10분 동안 물에 넣어 고기 안의 핏물을 빼내어준다. 핏물이 빠지는 그 사이에 불고기 양념을 준비한다.

배를 하나 꺼내어서 껍질을 깎은 뒤 강판에 갈아준다. 급하면 믹서기에 갈아도 괜찮지만, 영상용이라고 강판에 가는 듯했다. 배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조금씩 모습을 줄여나갔다. 렌즈를 움직여 강판과 박서원의 손이 확대되게 촬영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박서원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 평소보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잘 보였다.

점점 배는 깎기 어려울 정도로 작아졌다. 박서원은 그 배를 들어 앵글 밖으로 빼내더니, 이내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내가 살짝 고개를 들자 작은 배를 들고 있는 박서원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눈을 꿈뻑거리다 이내 이해하고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박서원은 내 입에 자투리 배를 넣어주었다. 아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서 배즙이 흘러나왔다. 내가 먹는 소리도 찍혔겠네. 다른 자투리 배는 박서원 자신의 입에 넣었다. 서로 아삭거리는 소리만을 내며 다시 강판을 집어 들었다.

다 갈아둔 배는 체에 걸러내어 즙만 남겨둔다. 위에 남아있는 건더기도 손으로 쭉 짜낸 다음, 체에도 꾹꾹 눌러 빼낸다. 배즙은 볼에 옮겨놓고, 본격적으로 양념을 시작한다. 볼에 양조간장 100mL, 다진 마늘은 두세스푼 정도 넣은 후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양념이 서로 섞이게 한다.

핏물이 빠진 고기는 꺼내어 키친타월로 꾹꾹 눌러 닦아준다. 그리고 방금 양념해둔 볼에 고기를 넣고, 설탕은 작은 숟가락으로 세스푼, 후추는 탁탁 쳐서 살짝만 넣어준다. 고기와 양념이 섞이게 버무려주고 양파 반 개를 고기와 비슷한 두께로 썰어준다. 나무 도마 위에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우리의 말소리를 대신해 들려왔다. 채 썬 양파는 그대로 고기와 함께 양념에 섞어준다. 그리고 볼에 랩을 씌운 뒤 냉장고에서 1시간 동안 재워두면 된다.

일단 한 시간 동안은 할게 없으니 잠시 쉬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던 도중 박서원이 설거지를 하려는 것을 보고 급하게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제가 할게요."

"얼마 안 돼요. 물 묻은 김에 내가 하는 게 낫지."

"박서원 씨가 요리 하는 대신에 설거지는 제가 하기로 했잖아요."

그랬다. 집안일 중 정해진 딱 한 가지가 이거였다. 한쪽이 식사 준비를 하면, 다른 한쪽이 설거지 하기. 삼시 세끼 박서원이 해주던 밥을 먹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서 정한 거였다. 지금처럼 이유라도 말하면 양반이지, 안말하고 멋대로 다 해버릴 때도 많았다. 안그래도 쉬는 날도 많이 없어 쉴 때 좀 제대로 쉬라고 해도 내가 옆에 앉아있질 않으면 쉬지도 않고. 저쪽에서는 서로 알아서 소파에 앉거나 누우면서 잘 쉬었던 거 같은데. 거기서도 혼자서는 안 그랬던 건가? 나는 재빨리 박서원이 손에 쥐고 있던 그릇을 낚아챘다. 그러자, 박서원은 잠깐 내 손을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눈꼬리를 천천히 내렸다.

"그럼 같이 해요."

둘 다 손에 묻었고. 박서원은 그렇게 말하며 다른 그릇을 집어 들었다. 자연스럽게 자기도 넣었네. 얼굴에 속아서 넘어갈 뻔했지만 이 얼굴도 나름 오래 봤다고 속진 않았다. 그래도 같이 하긴 할거지만. 나는 박서원과 함께 그릇소리를 내어가며 적은 설거지를 끝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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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소파에 기대어 티비를 보는 동안 한 시간쯤 지났다. 팽이버섯을 씻은 후 잘게 쪼갠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불고기를 꺼낸다. 조금 차가운 불고기에 방금 씻은 팽이버섯을 조물조물하며 적당히 섞어준 후, 팬을 센 불로 달궈준다. 열기가 올라오면 고기와 양파, 팽이버섯을 넣어 준 후 자박할 정도로 물을 부어준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소불고기의 향이 올라왔다. 냄새는 영상에 못담는게 내심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박서원은 마지막으로 넣어야 하는 파 말고도 더 찾는 듯했다. 뭐지? 나는 카메라를 든 채로 박서원의 얼굴 아래를 찍으며 힐끔 고개를 내밀었다. 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는 이내 익숙한 채소가 등장했다. 달래? 내가 달래를 보며 눈을 꿈뻑이자, 박서원은 입을 빠끔거리며 대답했다.

'달래 맛있잖아요.'

박서원은 달래 한 줌을 들고 싱크대에서 물로 흙을 씻어내었다. 간단하게 손질을 한 뒤 파는 채 썰어둔다. 팬에 있던 불고기를 그릇에 옮겨 담은 뒤 파는 골고루 뿌린 뒤 가운데에 달래를 얹었다. 달래는 안익히네.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에 세팅을 마친 박서원은 내게서 카메라를 가져가버렸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향해 박서원은 턱짓을 하며 의자를 가리켰기에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릇에 놓인 불고기는 누가 봐도 맛있어 보였다. 맛있어 보이게 익은 갈색의 소불고기와 사이사이에 보이는 팽이버섯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달래라는 조합이 내겐 조금 생소했을 뿐이지만. 나는 고개를 들어 그냥 섞어먹으면 되냐고 입만 뻥긋거리자 박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박서원의 끄덕임을 보고 젓가락을 집어 들어 달래와 파를 불고기와 함께 저었다. 적당히 저은 뒤 달래가 조금 흐물흐물해졌을 즈음, 한 젓가락을 집어 들어 밥 위에 올려 한입에 넣었다. 조금 짭짤한 소불고기의 간장향과 섞인 고기향에 달래에서 나오는 봄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맛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맛이다. 입안에서 버섯이나 고기를 먹다가 달래나 파가 씹히면 조금 아삭한 식감이 들었다. 달래는 일찍 넣었으면 오히려 질겼겠네. 내가 그렇게 한입, 두입 먹기 시작하자 카메라에서 핏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추어 고개를 들었다.

"말 안 하려고 하니까 생각보다 어렵네요. 대화 하고 싶을 때 하지도 못하고."

"소리랑 화면이 같이 들어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죠. 찍고 싶지 않은 건 찍지 않아도 돼요."

"괜찮아요. 자주 찍어봤자 한 달에 한 번일 텐데."

달래 미리 사두길 잘했네요. 박서원은 테이블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으며 말하였다. 박서원은 내가 먹는 걸 구경할 거라는 듯 턱까지 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박서원을 보며 먹던 음식을 삼키고 말하였다.

"박서원 씨는요?"

"당장은 안땡겨요. 정해준 씨 먹는 거 보는 게 더 재밌네."

박서원은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또 거기에 넘어갈 줄 알고? 나는 또다시 눈을 반만 떴다. 박서원은 가끔 밥 먹기 싫다며 저런 식으로 넘길 때가 있었다. 저래놓고 또 이따가 간식만 주워 먹는다. 적어도 밥은 먹고 간식을 주워 먹던가 하면 모르겠는데. 나는 작게 숨을 내뱉고는 또다시 밥 한술을 떴다. 젓가락으로 소불고기와 달래를 올리고, 그대로 숟가락을 뻗었다.

"?"

"자요."

"먹으라고?"

"얼른."

내가 박서원에게 내밀자 잠깐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벌렸다. 나는 그대로 팔을 움직여 박서원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애석하게도 안 먹겠다 할 때 제일 잘 먹히는 방법이 이거다. 나는 다시 밥을 한술 뜨고 고기를 얹어 내 입에 넣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왜 정작 본인은 잘 안 먹지? 그냥 습관이 몸에 밴 건가. 나는 다시 한술 떠 박서원에게 내밀었다. 박서원은 다시금 받아먹었고, 그다음엔 내가 한입 먹었다. 또다시 박서원에게 한입, 나에게 한입. 다시 박서원에게 내밀려고 하자, 박서원은 즐겁다는 듯 미소 지어 보였다.

"정해준 씨."

"네."

"이러면 곤란한데."

"...뭘요?"

뭐야, 왜 또. 뭐가? 박서원의 말에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숟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으며 반응을 살폈다. 박서원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하였다.

"애인한테 너무 무방비한 거 아니에요?"

나는 박서원의 말에 눈만 낌빡거렸다. 무방비? 내가? 아, 방금 이거? 먹여주는 건 예전에도 해줬던지라 무방비라고 하긴 좀 그런데. 내가 별 반응 없이 박서원을 바라보고 있자, 다시금 입을 열어 설명해주었다.

"정해준 씨, 체향 꽤 세게 나는 거 알아요? 아까 옷 빌려 입었을 때도 그랬는데. 참기 힘들었어요."

박서원이 웃으며 말하자 나는 다시금 눈을 깜빡이다 급하게 옷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 박서원이 별 반응이 없어서 전혀 몰랐다. 아니, 옷도 빨아둔 거라 안 날 텐데? 박서원은 내 반응이 즐거운지 계속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저 아까 데이트 할 때도 그래서 좀 참았어요. 정해준 씨만 몰랐나? 박서원의 얼굴과 말투를 보고 일부러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팔을 내리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관리를 했다. 박서원은 뭐라 하던 놀리겠지. 머리를 굴리는 도중 박서원은 턱을 괸 손의 손가락을 움직이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거기에 이런 짓까지 하면 내가 뭐라고 받아들여야 해?"

박서원의 눈빛에 나는 부러 시선을 돌렸다. 또, 또. 얼굴 써먹는 게 몇번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럼 사귀는 사이에 이것도 못해? 이런 건 그냥도 하잖아. 왜 하나하나 반응하냐고? 박서원의 유별난 반응에 무어라 답하려 해도 얼굴을 보면 또 넘어갈 거 같아서 눈을 감았다. 이 정도 써먹었으면 나도 안 넘어갈법 한데 정말 한결같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머릿속을 정리다가 슬쩍 눈을 떠 박서원을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대답을 흘렸다.

"..애인한텐 좀 무방비해도 되잖아요."

깜빡. 박서원의 두 눈동자가 조금 크게 떠졌다. 그러나 곧바로 사르르 눈을 접으며 따듯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그리곤 기분 좋은 듯 소리를 내었다. 흐음, 흠. 그렇네요. 그렇네. 정답이라는 듯 바라보는 눈빛에 쳐다보는 박서원의 시선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거기에 내가 내뱉고도 화끈해지는 얼굴에 살짝 숙이기도 했다. 그러자 앞에서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나 다시금 고개를 들어 박서원을 바라보았다.

"그 말 마음에 들긴 하는데, 정해준 씨는 후회할 거 같네요."

"...왜요?"

"내가 가만히 안 둘 거라?"

박서원은 그 말을 끝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몸을 내 쪽으로 숙이며 한손으로 내 턱을 잡고는, 그대로 입을 내려 맞추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나는 무어라 따지려고 하는 사이 입안으로 익숙한 것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대로 삼켜져 버린 말은 다시 나올 일 없다는 듯 숨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또다시 집안에는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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