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아버지

고죠우타

Stand by Me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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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가 없다.

 

아니, 물론 생물학적 아버지는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를만한 존재도, 사실 존재한다. 없는 것은 서류상의 아버지다.

어렸을 땐, 그러니까 유치원을 다닐 즈음엔 그런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내가 그 사실을 몰랐고, 아버지는 집에 자주 오진 않았지만 얼굴 잊어버리지 않을 주기로는 찾아와서 나와 실컷 놀아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말을 들어봐도 나와 같은 집이 없는 게 아니어서, 그러려니.

남들과 조금 다르단 걸 알게 된 건 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주위 친구들은 가족들이 다 같은 성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만 성이 달랐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넌지시 그 이유를 물으니, 어머니는 어쩐지 조금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올 것이 왔다는 얼굴이었으리라.

엄마랑 아빠는 이유가 있어서 결혼을 안 했거든. 그래도 서로 사랑해서 너를 낳고 함께 책임지고 있어. 그러니까 성이 달라도 우리는 가족이야.

그런 말을 하며 꼭 안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불안했던 나는 그 온기 속에서 안심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어린 시절엔 사소한 일도 친구와 나누고 싶은 법이 아니겠는가. 아이 중에서도 입이 무거운 자는 있겠으나, 내가 남몰래 비밀을 꺼내 보였던 친구는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하지 않았단 이야기가 며칠 후에는 어머니가 외도하여 이혼을 당했다는 소문이 되었다. 열 살짜리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했을 리는 없고.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를 집에 가서 말하고, 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또 학교에 퍼트렸던 거겠지.

점점 나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이 없어졌다. 사소한 괴롭힘도 당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나는 어쩐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는 사실 자체도 그랬지만, 어린 마음에도 우리 집의 비밀을 멋대로 까발려서 어머니를 욕되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더 그랬다.

다행히 혼자 끙끙거리는 나를 이른 단계에서 어머니가 눈치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왔다. 아버지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날만큼은 아버지를 감싸는 분위기가 무서워서 말도 걸지 못했다. 아버지도 내게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 상황에서 내가 무서워하지 않게 말을 걸 방법을 몰라서 그랬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아버지와 외모가 많이 닮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학교에 등장한 후로 이상한 소문은 금방 종식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그것뿐만은 아니고 아버지의 뒷공작이 많이 들어갔겠지만, 그 날의 진상은 지금의 나도 아직 제대로 모르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세상을 조금 배웠고, 입단속을 할 수 있게 된 이후의 생활은 대체로 평범했다. 머리 색이 좀 튀는 것 때문에 가끔 시비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즈음엔 나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가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네 아빠를 닮았다며 한숨을 쉬고 아버지는 엄마 피가 흐르긴 하는구나 하며 웃었다.

 

이런 일을 회상하다 보면 가끔 어이가 없어지곤 한다. 흔하진 않아도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가정사로 마음고생을 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에겐 더 엄청난 비밀이 있었는데.

내가 그때 ‘너네 엄마가 나쁜 짓 해서 너 낳은 거라며?’ 하고 책상을 발로 찼던 녀석의 어깨 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버렸다면, 아마 조금 더 고된 날을 보내게 되지 않았을까.

뭐든 친구에게 말해버리던 어린 내가 그것만큼은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머니의 조기 교육 덕분이었다. 밖에서 저런 걸 봤는데 남들은 안 보인다고 하면 그냥 ‘잘못 봤나 봐’ 하고 엄마한테 와서 말해. 엄마가 지켜줄 테니까. 알았지? 길에서 무서운 걸 보고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에게 달려가면, 엄마는 금세 그것들을 해치우고 나를 안아 올린 채 가만가만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저 징그럽게 생긴 것들을 ‘주령’이라고 부른다는 것 정도만 알던 어린 시절을 넘어 내 머리가 조금 더 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많은 것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그 주령을 퇴치하는 주술사를 키워내는 주술고등전문학교의 교사라는 점. 아버지는 도쿄의 학교를 다니고, (본인 말을 빌리면) 워낙 유능해서 일이 많은 탓에 집에 자주 못 온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집안이 (더 험한 말로 표현했지만 요약하자면) 워낙 극성인 터라 결혼도 마음대로 못하고 있다나.

나는 그때 처음으로 두 분이, 아니 적어도 아버지는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곤 해도 대단히 의미를 두는 것 같진 않고, 될 수 있다면, 정도의 뉘앙스였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고는 두 사람은 그대로도 즐거워 보였다. 어머니가 이 말을 들으면 치를 떨며 부정하시겠지만, 내가 보기엔 어머니도 그랬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는 호칭 대신 '고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부르기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버지를 더 친근하게 느끼게 했다. 이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는 네가 무슨 곤 프릭스냐며 어이없어했다. 뭔 소리인지.

그래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건 어머니였는데, 아버지가 뭐 어떠냐며 웃어넘기니 어머니는 ‘하긴, 네 자식인데…….’ 하는 말을 끝으로 말을 아끼셨다.

 

고등학교는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두 분이 일하는 환경이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재능이 없다고 했다. 주력도 술식도 있지만 술식을 활용할 눈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보조감독 정도뿐일 거라길래, 더 잘할 수 있는 걸로 세상에 공헌하겠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선 중얼거렸다. 약한 걸 인정할 줄 아는 미덕은 어디서 물려받은 거지? 나는 어머니가 맞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고죠를 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했다.

세간에서 말하는 ‘평범’의 조건에는 들어맞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그럭저럭 좋은 날들을 보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며, 어쩌다 한 번씩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화해하고. 짬을 내어 들르는 아버지와 맛있는 걸 먹고, 골탕 먹고, 두 분의 싸움인지 치정인지 모를 것을 구경하고, 그러다 불똥이 튀기 전에 도망가고. 아주 가끔은 셋이서 가족여행도 가고, 그 날들을 함께 곱씹고.

 

평범한 고등학교와 평범한 대학교를 거쳐 사회로 나온 내가 결혼할 사람을 데려왔을 때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보다 먼저 결혼하는구나! 어머니가 말없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찍었다. 아버지는 웬일로 얌전히 찔려주고선, 아프다며 잔뜩 엄살을 피웠다.

두 분 다 당연히 내 결혼식에 부모의 자격으로 참가했다. 배우자와는 길 한복판에서 함께 이상한 것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알게 되었는데, 상대 집안은 주술사는 아니어도 고죠에 대해 조금 아는 것이 있는 모양인지 우리 가족의 형태에 대해 별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 들려오는 전화의 내용이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유명하다는 말은 정말로 허언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말을 본인에게 전했다가 꿀밤을 맞았다.

 

내 가정이 생기고선 자연스레 부모님과의 교류가 줄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결혼 발표는 내게도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사유를 물으니, 이제는 이것저것 안정이 됐고, 마침 날짜가 좋다나? 말이 안 통하는 고죠를 두고 어머니께 재차 물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말했다. 이제는 이것저것 안정이 됐고, 마침 날짜가 좋다네…….

어머니가 아버지의 성을 따라가게 되면 내 이름은 어떻게 되는 건가 잠시 고민했는데, 아버지가 이오리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새로운 곤란을 내게 주었다. 반평생을 고죠라고 부르던 사람이 고죠가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이제 그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게 생긴 것이다. 여기서 고죠를 굳이 아버지라고 꼬박꼬박 부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 아버지 했더니 좀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가끔 실패한 것 같긴 하지만).

물론 더욱 곤란해한 것은 어머니였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오로지 어머니에게 ‘여보’ 혹은 ‘사토루’라고 불리기 위해 성을 갈아치운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결혼식 직전까지 두 사람은 ‘이제 나는 고죠가 아니니 제대로 불러라’, ‘결혼 전이니 넌 아직 고죠다’ 하는 지지부진한 싸움을 이어 갔다. 대부분의 싸움이 그렇듯, 아버지가 이겼다. 어머니가 결혼을 승낙해버린 시점부터 정해진 승부였다.

결혼식은 마치 축제 같았다. 속이 시원한 얼굴들을 하는 걸 보니, 다들 두 사람의 결혼을 제법 기다린 모양이었다. 내 옆에 선 쇼코 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몇십 년이 걸린 건지.

아마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두 분은 그대로 즐겁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래도, 형식을 따르지 않은 시끌벅적한 결혼식 중 간소한 파티 복장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두 사람은 웃음이 분명 행복해 보였기에. 나도 결국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늘,

 

내게는 아버지가 생겼다.


2024 고죠우타 중간생일 기념 합작 참여(@0714go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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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즐거운 물개

    마음이 좋아졌습니다.....

  • 지혜로운 오목눈이

    황혼결혼식이 짱이다. 이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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