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이치유메] 나는 해바라기거든

17.02.21 작업 완료

※세라피(@serapi_ff14)님께 선물로 드린 글입니다.

※블리치(BLEACH)의 쿠로사키 이치고와 드림주 유메노 호고샤의 드림물입니다.

※공백미포함 3,583자.

※2017.02.21 작업 완료

 

나는 해바라기거든

 

 

 

1.

 

“나는 꽃들 중에서 해바라기가 제일 좋더라.”

“뜬금없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해바라기는 왜?”

“…이치고- 너 내 생일도 제대로 안 찾아봤지?”

“아, 설마 탄생화라서 그래?”

“뭐, 그런 이유도 있고?”

“헤에, 다른 이유라도 있나 보지?”

“일단은 그렇다고 할까? 나는 해바라기거든.”

“그건 또 무슨 소리래. 가끔씩 누나는 알 수 없는 말만 한다니까.”

“뭐- 모르면 됐다~ 안 알려줄 거야.”

2.

 

어느 화창한 평일의 오후. 방학식을 한 날, 날씨마저 훌륭하여 평화롭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햇빛은 따스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이며 내 피부를 간지럽힌다. 그러나.

  

“누나, 아직 멀었어?”

“거의 다 왔어, 이치고. 조금만 더 참아.”

“어디 가는지, 그것만이라도 말해주면 안 돼? 적어도 안대는 치워주라고.”

“안 돼.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나는 왜 지금 왜 이러고 있는가. 어디를 가는지도 알지 못하고, 왜 누나가 내 눈을 가린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런 생각이 아예 안 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스르륵 자취를 감추었다. 어두운 시야 속, 의지할 것은 청각뿐인 그 상황에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는 장난기와 설렘이 가득하면 가득했지, 절대 불안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치고는 그저 호고샤가 이끄는 대로, 호고샤의 손을 잡고 불안한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치고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아니, 대충 설명이라도 해주든가. 이치고는 이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찬찬히 떠올렸다. 그래, 분명 시작은, 누나가 학교로 찾아왔을 때부터였지.

 

3.

  

“이치고!”

“누나?!”

“뭐야, 왜 이렇게 놀라?”

“여긴 어떻게 왔어? 아니, 애초에 내가 언제 일찍 끝날 줄 알고 기다렸던 거야? 오늘 방학식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쿠로사키 선생님한테 여쭤봤거든~ 오늘 방학식이라며! 일찍 끝나겠구나, 해서 왔지.”

“아, 그 양반이 가르쳐준 거였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누나? 누나가 나를 만나러 여기까지 온 건 흔하지 않잖아.”

“으음… 반쯤은 맞아. 이치고, 나 너랑 가고 싶은 곳 있어.”

“지금?”

“지금! 지금 아니면 안 돼!”

“하?”

 

…거기서부터 시작이구나. 왠지 단호해보여서 거절하면 안 될 것 같긴 했는데. 그 이후의 일을 예측하는 것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이치고는 알겠다며 호고샤의 말에 승낙한 그 순간부터, 집에도 들르지 못한 채 바로 호고샤에게 끌려다녔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본인도 어디로 가는지 그 목적지를 알지 못했다. 호고샤의 말에 따르면, 작품을 위해 이곳저곳 찾아보고 다녀와 본 곳들 중 한 곳이라고 했다. 그 곳을 본 순간부터, 꼭 이치고와 함께 다시 와서, 그 곳을 이치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때부터 그 곳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 이치고가 그 곳을 알 리가 만무했다.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긴 아냐, 고 하는데, 그걸 내가 알 것 같냐? 그런 걸 뿌듯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하지 말라고!

  

“어떤 곳인데?”

“말해주면 재미없지. 가서 직접 봐.”

“…하아.”

  

버스에서부터, 전철에서부터 호고샤의 대답은 일관된 것이었다. 힌트라도 알려달라고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안 알려줄 거야.’ 이치고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호고샤가 자신을 데리고 가는 곳은, 점점 이동하면 할수록 이치고도 여기가 어디인지 모를 수준이었다. 완전히 낯선 곳이었다. 카라쿠라 마을도 도심지가 아닌 외곽에 위치 한 작은 마을이었으나, 호고샤가 향하는 곳은 카라쿠라 마을보다도 훨씬 더 외곽이었다. 들판이 보이고, 밭들이 보인다. 한참을 더 덜컹거리며 이동하다가, 웬 시골 외각에 내렸다. 도대체 이곳까지 와서 내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 생각하며 호고샤를 얌전히 따라가던 이치고의 눈앞에, 호고샤가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이치고. 자, 이거.”

“…뭔데, 이거.”

  

호고샤가 내민 것은, 딸기들로 아기자기하게 수놓아진 안대. 이 와중에 안대에 있는 저 많은 딸기무늬는 또 뭐람… 누나 취향이야?

  

“안대. 보면 몰라?”

“내가 그걸 몰라서 물어봤을 거 같아?”

“거기 갈 때까지는 비밀이니까 그러지. 보면 안 돼.”

“이젠 보지도 말라고? 아직도 멀었어?”

“잔말 말고 얼른 써.”

  

…미치겠네.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말해주지도 않았으면서, 이제는 보지도 말란다. 내가 왜?!라며 반박을 하려던 이치고는, 꽤나 단호한 호고샤의 얼굴에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저것 은 분명 진심이다. 내가 말을 들지 않으면 분명 잇자국이 날 때까지 세게 물어버릴 것이다. 상상만 해도 싸하게 체온이 내려가는 기분이 들고, 식은땀이 나는 기분이다. 이치고는 애꿎은 제 머리만 벅벅 긁으며 어쩔 수 없이 호고샤가 내민 안대를 받아들었다. 그건 이제 사양이라고, 누나. 누나가 무는 거 진짜 아프다고. 알아? 내가 물어버릴 수도 없고 이거 참. 한숨을 폭 쉬었다. 부루퉁한 이치고의 얼굴과는 다르게, 호고샤의 얼굴은 묘하게 들떠 보였다.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거 안대 엄청 좋은 거네. 쓰자마자 빛도 하나도 안 들어와서 완전 새카매.

 

4.

 

“누나, 멀었어?”

“거의 다 왔어~”

“아니, 그러니까 그 말이 대체 몇 번째인지는 알아?”

“몰라~”

  

…환장하겠네. 이젠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온다. 반쯤 포기하고 그저 순순히 호고샤의 뒤를 따라갈 때 즘,

  

“…으악!”

  

앞에서 이치고를 인도하며 걸어가던 호고샤가 갑자기 멈춰섰다. 그 바람에 이치고는 하마터면 그대로 호고샤에게 쿵 부딪혀 넘어질 뻔했다. 앞이 안 보이니 균형을 잡기가 더 힘들어서, 이치고는 긴 팔을 그대로 휘적휘적 거렸다. 얼떨결에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고 있는 기분이라고, 지금.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작게 쿡쿡 웃는 호고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왜 웃어!”

“웃긴 걸 어떡해.”

“누나가 갑자기 멈춰서 넘어질 뻔한 거거든?!”

  

…저 누나가 정말. 그나저나 멈췄다는 것은 다 왔다는 건가? 그러면 이제 이거 벗어도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안대를 벗으려 손을 뻗으려는 바로 그 순간에, 호고샤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아직 벗으면 안 돼.”

 

대체 왜냐고 채 묻기도 전에, 호고샤가 자신의 팔을 덥석 잡았다. 흐음, 소리가 나는 걸 보아하니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대체 무슨 고민을 하는 건데. 나도 좀 알자. 그러다가 자 신의 몸을 돌리려는 듯, 팔을 잡고 있던 손을 올려 자신의 몸을 잡는다. 이치고는 그저 호고 샤가 원하는 대로 얌전히 몸을 돌렸다. 괜히 버텼다가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한참을 돌렸다가 다시 원래대로 했다가 하며 세세하게 각도를 맞추던 호고샤가 응! 하며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다. 대체 뭔데.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하던 사이,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호고샤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나 보다. 잠깐만, 뭔데. 앞이 안 보이니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시각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다. 그나마 누나의 영압이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나보다.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안대 벗어도 돼, 이치고!”

 

5.

 

내가 그 말만을 기다렸지. 드디어. 이치고는 천천히 팔을 올려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벗겨내었다.

  

“…아.”

  

처음에는 눈이 부셔서 차마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어둠 속 가려져 있던 눈은 갑자기 눈을 찌르고 들어오는 햇빛에 맥을 추리지 못했다. 절로 눈이 찌푸려지고, 온 세상이 눈부신 빛으로 둘러싸여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이치고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숙여진 시야 안으로 그림자가 보인다. 그림자의 방향을 보니, 자신의 바로 등 뒤에 해가 떠있나 보다. 한참을 그리 눈을 깜빡 거리던 이치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정면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풍경을 드디어 마주했다.

  

“…아.”

  

그의 짙은 갈색 눈에 담기기를 소망하며, 소년의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풍경은, 해바라기들. 눈앞에 해바라기들이 한 가득이다. 햇빛을 받아 더욱 노랗게 보이는 꽃잎들과, 잔뜩 푸르러 생기를 뽐내고 있는 줄기와 잎들. 이렇게 많은 해바라기들은 처음 본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이는, 해바라기들이다. 이치고는 이 광경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해바라기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태양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중, 제일 앞에서, 그리고 제일 가운데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를 본다.

6.

 

드디어 태양과 눈이 마주친 해바라기. 이치고와 눈이 마주치자, 호고샤는 빙긋 웃었다. 미소를 띤 얼굴로 두 팔을 크게 벌린다. 마치 이 공간을 가득 담으려는 것 같은 자세다. 그리고는, 활짝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다름 아닌 그녀의 태양을 향해 있었다.

  

“언제나 너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야, 이치고!”

  

호고샤의 얼굴은 들떠 보이기도 했지만, 마치 고백을 하는 것처럼 묘하게 떨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수줍어 보이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햇빛을 받고 있는 그녀의 미소는 훨씬 환해보였다.

나는 해바라기거든.

…아. 하나의 깨달음이 이치고의 머릿속을 때리고 지나간다. 아, 그래서. 그래서 누나가 해바라기를. 이제 알겠어. 언제나 태양만을, 너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드디어 이해가 간다. 그래서 누나가 나를 이곳으로. 이치고는 자신의 해바라기의 웃음에 마주 빙긋 웃었다. 내가 태양이라면, 내가 누나의 태양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그래. 나의 해바라기야.”

  

태양은 드디어 자신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를 눈치 채었다. 드디어 봤어, 나의 꽃아, 나의 해바라기야. 자신의 꽃을 알아챈 태양은 그렇게 환하게 웃었으리라. 그리고 해바라기 역시 그렇게 웃었을 테지. 자신의 태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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