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단] 펠릭스
1기
15.07.23 작성(추정)
메테오는 소대륙에도 보일 있을 만큼 환하지는 못했다.
성 안에서 일으켰으니 당연히 보이지 않을 수밖에, 라고는 해도, 이후 한 번 더 불러일으켰던 불의 경우에도 사정은 같았다. 나단은 펠릭스가 돌려준 대답에 그냥 조금 웃었다.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가까이에서는 황량하기까지 했던 치열한 형상은, 한참 먼 데서는 흩뿌려진 가루로 반짝였을 것이다. 나단 던스트는 별이 낮게 내려온 듯이 반짝였을 바다 건너의 광경을 상상한다. 다음에는 더 환하게 비춰야겠네요. 우스갯소리를 하면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담담히 대답했다. 호브의 지형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나단은 곤혹으로 웃었다. 그건 안 되는데. 큰일이네요. 나단은, 되찾은 땅을 본다. 또는 빼앗은 땅. 어떤 이해에 의해 지칭되든지 간에 호브의 탈환은 이루어져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이해한다. 숨겨진 진실과 같은 이야기들. 헨슨이 일렀던 말들은 다음 순서로 놓인다. 정화를, 정화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오직 인간만을 위한 일일 텐데. 언젠가 의문으로 던져졌던 말. 모르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미 내디뎌진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사막은, 호브보다 혹독할 것이다. 나단에게는 활자로만 접한 광경이며 기후였고, 완전한 미지에 가까웠으니. 펠릭스가 돌아온 이후로는,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서로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소문들. 사막에서는 좀 더 껴입을 필요가 있을 겁니다. 나단은 헐렁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을 두고 이런저런 사항들을 고려한다. 검은 색 로브. 어쨌든, 대강 보기에 마법사인 줄 모르지 않을 모양새겠지. 마법사들은 단순하고 허술한 구석이 있어서, 나단은 크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펠은 어떻게 할 거예요? 간단히 결정을 내리고 나면, 대답은 펠릭스에게서 다시 요구되었다. 펠릭스는 오래 생각지 않고 말했다. 저도, 걸칠 게 필요하겠군요. 일행 전원이 꽁꽁 싸매고 가게 되겠네요. 그러니까, 그런 싱거운 이야기들. 정화 뒤의 호브는 놀랍도록 조용했고, 두어 번 정도는 비가 내렸다. 그때는 배 바깥에 피워두었던 모닥불도 꺼져버렸다. 젖어서 쓰지 못하게 되었던 장작들. 나단은 얼핏 비 냄새가 도는 것 같은 바닷바람을 맞다가 펠릭스를 돌아봤다. 갑판에서는 여전히, 낮은 말소리들만이 들려왔다. 함께 있다는 실감.
오랜만에 야식이나 만들어볼까요?
나단은 이 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
호브 탈환 소식은 소대륙에 웅성거림으로 퍼트려졌다. 조만간 호브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다. 대다수는 정화 사실을 믿지 못하거나 위험성을 염두에 두고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여러 이유로 배에 몸을 실으려 하지 않겠지만, 결국 예정되어 있을 일이었다.
“그래서, 인심이 후해지지는 않았던가요?”
“그건 잘 모르겠군요. 아직, 시작 단계이기도 하고.”
“나는 시장은 조금 무서워서. 시장 인심이 후해졌으면 좋겠네요.”
“그렇습니까? 그건 의외군요.”
나단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음, 잠깐 말에 사이를 둔다. 호흡은 곧 평탄하게 이어졌다.
“전에 과일 심부름을 갔다가 자안뜩, 돈을 더 주고 사왔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랑 다시 직접 찾아가게 됐었죠.”
“……어렸을 때 일이군요.”
“네에, 그리고 어머니도 실패!”
“흥정에는, 어머니께서도 서투셨던 것 같군요.”
“어머니도 마법밖에 모르는 분이셨거든요. 아버지가 해결해주셨죠.”
“지금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도 않아요. 딸기 기억해요?”
“친구가 챙겨주었다던.”
“난 딸기 가격도 몰랐어요. 그냥, 거기서 챙겨 받았을 뿐이라. 귀하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죠? 생활에 있어서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누가 챙겨주는 대로 받기만 하는.”
나단은 웃어보였다.
“그러니까, 펠은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죠.”
알맞게 익혀낸 고기를 접시에 담아내다가, 문득 안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을 한다. 어스름하게 서로의 윤곽만이 보이는, 말소리로 실감하는 공간.
“대대륙에 시장이 생겼을 쯤에는, 펠이 흥정하는 것도 보게 해줘요.”
“별로, 재밌는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뇨, 재밌을 걸요. 옆에서 어수룩하게 서 있어도 그러려니 해요.”
“당황한 나단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군요.”
“아, 그러면 기대해도 좋아요. 나는 당황하는 표정도 잘 지어요.”
“……그렇습니까.”
나단은 대수로운 이야기라도 되는 듯이 짐짓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밤이니까 잘 보이지 않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을 때에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나단은 손으로 허공을 위로 휘저었다. 그것으로 일어나는 불꽃들. 둥글게 모여 있는 불 사이로, 하얗게 흩어지는 빛들.
“펠은, 처음 내가 불꽃놀이를 보여주었을 때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죠?”
물으면, 펠릭스는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가 긍정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었고.”
나단은 천진하게 웃었다.
“지금은, 마음에 들어요?”
펠릭스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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