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르스

[나단] 오알

1기

귤차 by 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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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18 작성(추정)

당신에게 주홍의 바다를 보여줄 수 없었으니.

 

 

*

오알 언더, 오알 언더의 이름이 정말 오알 언더, 였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오알은 그 시간 동안 오알로 불렸고, 그 이름은 온전히 오알에게 귀속되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에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나단의 고민은 오래 이어질 만한 것은 아니었다. 오알이거나, 오알이었던 그녀의 이름은 다음 순간 그녀의 선택으로 놓여 있다. 나단은 오알이 꿈처럼 이르던 대지신에게 바쳐지는 영광에 대해서 생각한다. 좁은 소대륙 안으로는 참혹이 촘촘히 메워져 있었고, 무엇이든 가능했다. 기도까지 흙을 채워 넣어 몸을 뉘게 한다고. 끔찍한 전설에 어울리는 과정이었으므로, 나단은 잠잠히 안도한다. 믿음을 저버렸다는 감상으로 오알을 떠올리기에, 나단에게 처음부터 친애 바깥의 무엇이 있지는 않았다. 신뢰는 미약했고 도리어 확신이 증명된 데 지나지 않는다. 일행 모두가 같은 목적일 수는 없다고 가늠했던 막연한 전제. 더 많은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단은 서로에게서 우리와 그들로 유리되는 지점을 짚어낼 수 있고, 오알은 여전히 온순한 눈으로, 나단을 찔렀을 때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여기까지였고, 그뿐이었다. 헨슨이 그러하듯. 그러므로, 그것으로 기억은 쭉 둥그런 모양으로 남겨진다.

 

 

*

문을 두드린 후 기다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방향에서 비켜 서 있던 시간은 비스듬히 드러난 문틈을 끝으로 짧게 그쳤다. 오알은 놀란 얼굴로 나단을 봤다.

 

“어머나. 나단?”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을 것 같아서 맞춰서 왔는데. 내가 잠을 깨운 건 아니겠죠?”

“네, 그렇지만, 왜…….”

 

오알은 언뜻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나단은 웃어 보였다.

 

“보여주고 싶은 게 있거든요.”

 

 

*

꽃들은 살금살금 숨을 쉬고 있었다. 새벽이려니 잠이 들어 있으려니 기대해보려고 해도 꽃가루도 향기도 어김없이 기승이어서, 바람을 두르지 않고서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이쪽이 잠들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나단은 잠으로 이끄는 수면 나팔을 둘러보다가, 온건한 꽃밭으로 향했다. 결국 사람이 터를 잡고 살 만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없애게 될 것들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는 아름다웠다. 나단, 어디까지 가는 건가요? 오알의 발소리는 옷 천이 다리에 쓸리는 소리, 작은 숨소리, 사뿐히 내디뎌지는 걸음으로 한 가지만으로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단은 음, 사이를 두었다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이제, 슬슬 보일 것 같은데. 나단의 말은 모호했지만 걷는 일이 중단되지는 않아서, 오알은 잠자코 뒤를 따랐다. 보폭이 다르니 너무 멀어지지는 않게 느슨하게 조절된 걸음 곁으로는 그러고 보면, 밝아오는 하늘이 있었다. 시리게 푸르던 색은 슬금슬금 퍼지는 붉은 색들로 희미하게 물들어갔다.

 

“새벽에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에요.”

“이곳의 광경도 나쁘지 않죠? 이 시간에 혼자서 오면 안 되겠지만.”

“나단은 새벽 늦게 혼자서 여기까지 와봤었나요?”

“나는 운이 좋잖아요.”

“후후. 나단은 정말 걱정이 되는 걸요.”

“왜들 그렇게 걱정할까. 이렇게 든든한데.”

 

너스레 뒤로는 멈춘 곳은, 다른 색의 꽃밭이었다. 어스름하게 내어진 윤곽들마다 보드랍게 살랑거리는 모습. 어느새 바로 옆에 선 오알이 묻는다.

 

“여기인가요?”

“음, 맞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그러니까, 지금이네요.”

 

나단은 해가 떠오르는 순간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알의 시선이 어디에 향해 있는지는, 옆을 돌아보지 않아도 좋았다. 꽃밭은 찬찬히 주홍으로 물들었다. 본래의 색을 영영 저버리지는 않고 슬며시, 빛에 몸을 담그며. 나단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기억해요? 바다에서 일몰을 보여주겠다던 약속. 나는 소대륙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어요. 대대륙 탈환이 끝나도. 그러니까, 나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셈이거든요. 나는 당신에게 주홍의 바다를 보여줄 수는 없었죠. 그래서. 나단은 말을 멈췄다.

 

“이건 약속의 대신이에요.”

 

꽃밭으로는, 하늘로는 비스듬하게 어긋난 채, 비슷한 색이 퍼져갔다. 주홍. 바다의 주홍처럼 강렬한 색은 아니지만, 환한 색.

 

“이것도 예쁜 주홍이죠? 오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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