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르스

[나단] 낭떠러지

1기

귤차 by 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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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9 작성(추정)

1.

아무도 없는 곳.

 

 

2.

나단 던스트는 해변을 걷고 있었다. 잠을 설치는 편은 아니었지만 문득 눈이 반짝 뜨였고 망설이지도 않고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행위에는 어떠한 인과도 없었지만, 차라리 인과의 부재로 족했다. 나단은 배를 빠져나와 새벽을 본다. 대대륙의 밤하늘. 하늘은 너무 넓게 펼쳐져 있다. 어느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채. 그늘처럼 늘어서 있던 황량한 건물들. 소대륙에서는 앙상한 공간으로 사람들이 포개져 있었다. 그 틈 없이 끼워 맞춰져 있는 형상에서 몸이 잘 맞물릴 수 있었거나 없었거나, 델 것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숨을 느꼈다. 나단의 몸에는 꼭 그런 기록들이 남겨져 있다. 뺨을 간질이던 부모님의 숨, 한 번은 열에 들떠서, 형, 부르던 테오의 목소리. 그리고 숨처럼 꿈틀거렸던 모든 체온들.

기억을 몸에 두른 몸은, 찬바람에 금세 식혀졌다가도 다시 얼마간은 한기를 잊었다. 그렇게, 쌀쌀한 날은 아니다. 바다는 으레 찬바람이 불어치기 마련이었지만, 나단에게 향하는 바람들은 봄바람처럼 보드랍게 머리카락을 헤집을 뿐이었다. 이따금 볼에 까칠하게 느껴지던 모래 알갱이를 헤아리다가 멈춰 섰을 때에는 한참이나 높은 절벽 위였다. 부유 마법이나 바람으로는 내딛지 않았으니 꾸역꾸역 걸어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미련한 일이었다. 지칠 텐데. 나단은 축 늘어지게 웃으며 찬찬히 앞을 내다보았다. 해변 한구석에 솟아 있는 절벽에서는, 바다가 아득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밤바다는 뜻밖에 밝게 비춰진다. 파도가 하얗게 밀려오는 걸 볼 수 있을 정도로는. 나단은 느리게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벼랑 끝까지.

발은, 한 걸음 더 내디뎌진다.

 

 

3.

이안. 내가, 테오가 죽었을 때 가장 먼저 무슨 생각부터 했을 것 같아요? 그건 슬픔이나 어떤 막막함보다는, 순전한 의문이었어요. 나는 테오가 떨어졌을 순간의 굴곡을 생각했죠. 머리가, 아니면 발이 아래로 향한 채 무너졌을까……. 테오의 몸이 떨어졌을 때의 곡선은, 디디고 서 있던 담에서 옆으로 기울어지고 만 몸은, 몸 곁으로 대응되었을 담 벽과 나란했을까. 터무니없이 휘청거리며 떨어졌을까, 같은. 그 다음은 모든 것이었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상실에 대한 모든 감정. 내가 테오의 몸을 뿌렸던 곳은 어느 바다에 있던 절벽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내 몸은 어떤 선으로 하강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어요. 곧게 내려갔을까, 비틀거리며 볼품없이 안쪽으로 늘어졌을까. 단순한 충동이었고, 정말로 발을 앞으로 내디디지는 않았지만, 나는 가끔 벼랑에서 내려다보았던 파도를 떠올리곤 했어요. 지극히 무감한 상상.

 

 

4.

이안, 내게 무엇이 남았느냐고 물었죠. 테오가 죽고 내게는 미치광이로서의 결말밖에 남지 않았으리라고 당신은 종종 짐작으로 말하더군요. 틀리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살았겠죠, 나도. 당신이 일으켰던 불은 당신이 바랐던 것처럼 화려하지 않아서, 영지에 가장 뜨거운 온도를 씌우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만족했겠죠. 내가 그러할 것처럼. 나는 당신을 이해해요.

 

 

5.

하지만 그때는, 네 불을 사용하지 않았지.

아직 내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참을 수 있었어? 손으로 거머쥘 수도 있었잖아.

나는 내 불이 조금 더 완전하기를 바란 거예요. 엉성하지 않은 모양으로.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랐어?

그것도 맞네요.

알량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동료에 대한 친밀감 같은. 그게 이유가 될 수 있나?

그렇지는 않죠. 나는 일행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을 내 이유로 삼을 수는 없어요. 그건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 같으니까. 내 사유는 온전히 내 안에 고여 있어야만 해요.

그러니까, 네 선택은 네 안에서 비롯된 거였나?

그렇죠? 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그러면.

 

이제는 불을 놓을 수 있어? 나단.

 

6.

환영은 다시 물어온다. 네게 무엇이 남았지? 나단.

 

영지가 불타고, 반역자 이안 데코르의 처형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쯤, 나단은 모래거나 흙이었거나 고르게 정돈되어 있었을 길들을 걸었다. 손안으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은 허공뿐이었고, 나단은 뜻밖에 상심하지는 않는다. 안에서 꺼트려진 불, 내어놓을 수 없는. 나단은 더디지 않게 이해한다. 불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이안,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내게서 가장 환할 수 있는 광경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내게는 불 이외에 무엇도 남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당신이 가늠해냈듯이 기꺼이 불에 타들어갈 거예요. 기록이라든지, 내가 남겨둘 것들은 결국 내 것은 아니겠죠. 내게 마찬가지로 소중한 일이라고 해도, 어쩔 수도 없이. 내 끝은 예정되어 있어요, 당신이 상상했던 그대로. 그러나.

 

 

7.

나는 욕심이 많아서요, 이안. 나단 던스트는 말한다. 추락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나는 이제 바람도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불은, 놓지 않아요. 내가 불을 사용할 수 없었던 순간에도, 불을 정말 영영 일으킬 수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더구나 불이 내게 확신을 줬죠. 음, 확신은 내 멋대로의 감상이어도 괜찮잖아요? 어쨌든, 나는 그걸로 계속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단지 나는 이제, 내게 불 이외에 무엇이 남겨질 수 있을지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내가 그동안 움켜쥐고 있었던 것을 앞으로도 손에서 놓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쯤에서 인사를 하는 게 좋겠네요. 이건 작별 인사예요, 이안.

 

안녕, 나의 환영. 내 불의.

 

 

8.

그래서, 네 마지막은? 환영이 묻는다.

나단 던스트는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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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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