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KAMOTO DAYZ

레종 데트르(上)

Raison d'être

폐허 by 필멸
3
0
0

처음 만나고 몇 개월, 그것은 어느 날엔가 나구모 요이치의 일상에 침투했다. 갑작스러운 호출이 있고 난 며칠 후부터 그것은 본격적으로 나구모가 있는 장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다른 날은 차치해도 임무가 있는 날이면 꼭 그랬다. 그것은 항상 나구모 요이치를 비롯한 ORDER들 보다 훨씬 빨리 현장에 나타나 밑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은 귀찮은 준비가 없어서 좋아했던 것 같지만 그의 마음도 그렇게까지 간단하진 않았다.

나구모 요이치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했다. 사카모토 타로와 시시바가 간단한 소식을 알려줘도 그런 걸 왜 알려주냐는 둥 화제를 돌리거나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게 한 번 두 번 반복되자 시시바는 그에게 다시 코토다마 나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사카모토 타로는 곧잘 나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꼭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게 책임이라고. 싫증이 난 표정으로 한참 듣고 나면 마음 한 켠이 곰팡이 핀 듯 불편했다.

어쨌든 코토다마 나기사는 JCC에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코토다마 신코우의 전속 히트맨이긴 했지만 킬러로서의 자질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JCC에 편입하여 킬러로 훈련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ORDER, 특히 나구모 요이치의 임무가 있는 날엔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것은 듣던 대로 실력이 퍽 괜찮았다. 잘 벼려낸 얇고 긴 외날검을 메인으로 칼집에 있는 작은 칼 한 자루까지 들고 싸우는 이도류를 익힌 검사였다. 체구가 작은 만큼 민첩한데다 그림자로서 기척을 숨기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 위협적인 실력에 비해서 존재감이 옅었다. 게다가 함께 싸우고 있는 사람을 주의깊게 살피기 때문에 전투 양상이 항상 다채롭고 유연하게 변했다. 함께 있는 이를 종복으로서 섬기듯, 그것은 항상 곁에 있는 사람에 맞춰 스타일을 바꾸곤 했다.

무엇보다 그것을 강하게 만드는 건, 고통을 잘 견뎌낸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제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는 것처럼 굴었다. 상대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다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곤 했다. 본격적으로 ORDER의 임무에 차출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코토다마 나기사의 몸에 이제 더는 지울 수 없는 상처들이 새겨지곤 했다. 그리고 그 상처의 대부분은 나구모 요이치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강한 적을 상대하는 특수 조직원 답게 많은 위험이 그들의 임무에는 항상 따르곤 했다. 그리고 코토다마 나기사는 그 사이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작고 견고한 방패였다. 그것은 항상 나구모 요이치를 감싸곤 했다. 당연하게도 일이 끝나면 그것은 너덜너덜해진 채로 비틀거리며 JCC로 돌아가곤 했다. 상태가 괜찮은 날엔 남아서 플로터 일을 자처하고 돌아갔다. 시시바가 상처를 봐주겠다며 구태여 붙잡는다고 해도 항상 사양하곤 혼자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엔 또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나구모 요이치의 앞에 나타났다.

사건은 교토에서 벌어졌다. 차출된 멤버는 시시바와 나구모 요이치, 그리고 코토다마 나기사였다. 그 먼 길을 어떻게 왔는지 ORDER 두 사람이 교토에 내렸을 때 이미 나기사는 쓸 차량을 매수하고 그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신칸센에서 내린 시시바는 멀끔한 검은 차량과 그 옆에 칼집을 등에 메고 서 있는 코토다마 나기사에게 황당한 듯 말을 걸었다.

“…니 면허 있나? 아니제?”

“…….”

그것은 부인의 표시로 고개를 저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구모 요이치는 그것이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언령이라고 하는, 저주와도 같은 특이한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도 그랬다. 전투를 몇 번 지켜보고 함께 했지만서도 실제로 쓰는 걸 보진 못했다.

어쨌든 운전은 고스란히 시시바의 몫이 되어서 그는 운전석에 탔다. 나구모 요이치는 일부러 재빨리 조수석에 탔다. 뒤에 함께 타서 껄끄럽게 이동할 바에야 차멀미를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나기사는 두 사람이 먼저 타게 두고 뒷좌석에 탑승했다. 차가 출발했을 때 나기사는 임무 정보가 담긴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안에는 타겟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인쇄되어 있었다. 조수석에 탄 나구모 요이치가 차량에 달린 내비게이션에 임무지 주소를 적으려는 순간, 차 위에서 덜컹이는 소리가 났다. 시시바가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칼을 꺼낸 나기사가 차 천장에 칼을 박아 넣고 있었다. 묵직한 비명소리가 교토 고속도로에 울려 퍼졌다. 차량이 크게 요동치자 나구모 요이치는 재빨리 조수석 문을 열고 나가 다른 차 위로 뛰어 올랐다. 동시에 나기사 역시 타고 있던 차를 떠나 한쪽 남은 검을 들고 얇은 쇠파이프를 운반하는 트럭 짐칸에 탔다. 시시바는 속력을 내서 차를 한참 저 멀리 끌고 갔고 나기사가 남기고 간 외날검을 뽑아서 한 번 더 적이 있는 곳에 박아 넣었다.

“생각보다 무겁구마. 몸도 쪼매난데 보기보다 힘이 센갑네.”

바짝 따라오는 차량에 탄 것 역시 킬러여서 창문을 열고 시시바가 타고 있는 차량으로 총을 쏴댔다. 코토다마 나기사는 적재함 입구를 열고 쇠파이프를 몇 개 걷어 차 추격하는 자동차의 바퀴 쪽으로 굴렸다. 쇠파이프들은 절묘하게 바퀴 사이에 껴서 앞쪽 타이어를 펑크내고 엉망진창으로 차체를 흔들어댔다. 도로 위에서 빙글빙글 돌던 차는 도로 가운데에 있는 로드레일에 거꾸로 처박히고 나서야 멈췄다. 차를 격추시킨 나기사는 적재함을 다시 닫고 크게 도약해서 시시바가 운전 중인 차 위에서 칼에 꽂힌 거구의 남자를 힘껏 발로 찼다. 채인 힘을 이기지 못한 적은 그대로 도로로 굴러 떨어졌다. 멀리서 날아오는 공격은 앞치마 어딘가에서 나온 나이프와 포크를 던져 받아쳤다. 대체로 모든 상황이 괜찮게 굴러갔다. 차체가 고속도로를 지나 국도로 빠질 때까지는.

톨게이트 근방에 매복한 적을 발견한 나기사는 몸을 낮게 숙이고 차 천장에 바짝 붙었다. 거리를 가늠했을 때 조금 몸을 틀면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차 안에 탄 시시바에게 제 칼을 다시 돌려받고 양손에 칼을 한 자루 씩 쥔 채 주의깊게 적이 숨은 북동쪽을 보고 있었다. 코토다마 나기사는 그 짧은 찰나에 커다란 그림자가 움직인 것을 놓치지 않았다. 톨게이트 뒤에 숨어 있던 상대는 1시 방향에서 튀어나와 그대로 시시바가 있는 차 쪽으로 달려들어 오른팔을 휘두를 작정이었다. 궤도를 읽었으니 충분히 피할 수 있었겠지만 몸을 조금 일으킨 순간에 그것은 이미 튀어 오른 적의 시선이 제가 아닌 7시 방향에 있는 나구모 요이치에게 가 있음을 알아챘다. 이대로 몸을 비키면 피할 수 있었겠지만 남서쪽에 있는 나구모가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을 직감한 순간, 그것은 조금 일으킨 몸을 다시 차체에 붙이고 칼 두 자루를 치켜 세운 채 나구모 요이치의 앞을 막아섰다. 칼을 제대로 휘두르기엔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그것은 달려 든 상대 킬러의 특수 개조된 팔에 허리 부근을 직격 당해 멀리 날아갔다. 고속도로 위를 한참 날아서 펜스 뒤쪽에 있는 산에 떨어진 그것은 비탈길을 굴러 어딘가의 진창에 처박혔다. 그것은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바들거리며 일어나 도로 쪽으로 기어갔지만 이미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던 차량 몇 대가 그대로 시야 바깥으로 멀어져 갔다. 코토다마 나기사는 점점 멀어져가는 하얀 차 위에 놀란 표정으로 펜스 너머를 망연히 보고 있는 나구모 요이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닌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져서 눈앞이 캄캄해져가는 차였고 이쪽을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착각했을 뿐인지 이제와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