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후의 고백을(上)
좋아하는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月乃-지구 최후의 고백을
도쿄는 한 번 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을 되돌리는데 필사적이었다. 도쿄가 통째로 무너져도 사람들은 수도를 새로 정하는 것이 아닌, 모든 지역의 자원을 총동원하여 도쿄를 재건하는데 힘을 썼다. 어쨌든 인간이라고 하는 하잘 것 없는 종은 그 느슨하고 얇은 명을 어떻게든 태워내서 또 다시, 눈부신 도쿄를 세워냈다. 모든 게 이전보단 초라하고 볼품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뭐든 다 없어진 건 아니었다. 예컨대 그 대재앙에서도 살아남은 생명이 몇이나마나, 그 대도시에 존재했다. 나구모 요이치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어서. 그는 한 번 멸망한 도쿄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간이었다. 왜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는지 모든 게 의문 투성이였지만 그는 이러나 저러나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 점이 몹시 괴로웠다.
그에겐 이상한 저주가 걸린 듯 하여, 그 재앙 이후로 그는 칼에 베여도 다치지 않고 병에 걸리거나 늙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몇 십 년. 그는 혹시라도 살아 있을 누군가를 찾아 헤맸지만 나구모 요이치가 아는 중에는 그 뒤로도 살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연이라도 좋으니 세계가 한 번 폭발했던 그 순간에 그가 사랑했던 많은 것들이 도쿄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친구라고 불렀던 세계에 몇 안 되는 사람도, 그 친구가 목숨보다도 아꼈던 가족도, 소중하게 꾸려 온 가게도. 그곳에서 일했던 상냥한 직원들도, 그들의 벗도… 단 한 순간에 재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그들을 흔히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며 동정하곤 했지만 그는 차라리 목숨을 다한 그들이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한 순간에 빼앗긴 채 혼자 남는 것 보다야 훨씬 나아 보였으니까. 그는 재난이 수습되고 나서 한동안은 뒤늦게나마,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장례를 치루고 다녔다. 치루고 다녔다고 한들 제대로 된 장례식은 아니었다. 그땐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은 후였고 몇 년이나 지났기에 얼굴이며 목소리, 누군가는 이름마저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사진이라도 한 장 남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는 한참이고 그 일을 반복했다. 더는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비석에 새길 이름이 더 없게 됐을 때 쯤에야 나구모 요이치는 하나 남은 자리에 코토다마 나기사의 이름을 남길 결심을 했다.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그것과의 마지막 기억은, 제법 평범하고 시시한 것이었다. 그것은 평소처럼 저녁 식사를 차렸고 나구모 요이치는 그걸 남기지 않고 먹었다. 치우는 것 역시 사용인의 입장이었던 나기사의 몫이었고 그는 대신 찬장에 조금 남아 있던 수제 쿠키와 간단한 차를 끓여 재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함께 봤다. 그리고 야식을 배달 시켜 먹고 새로 산 코타츠 안에서 졸고 있는 나기사를 안아 들고 안방 침대에 함께 누웠다. 그는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아서 한참이고 곤히 잠든 그 창백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볼을 콕콕 눌러도 나기사는 드물게 깨나지 못했다. 그것이 이상할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그는 남모르게 웃고 말았다. 어쨌든 그 모든 게 그들에겐 지나치게 평범했다. 해가 뜰 때까지 나구모 요이치는 잠들지 않고 나기사를 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쩐 일인지 조금 오래 잤다. 푹 잠든 걸 깨우기가 미안해서 두고 나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도쿄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 그것은 깨어 있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잠든 채였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대로 영원히 잠들었길 바랐다. 부디 마지막 순간이 아프진 않았길,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어도 몇 번이고 하늘에 빌었다.
그 작은 조각만이 잊히지 않고 남았다. 그것과 보낸 시간은 길었고 분명히 이런저런 추억이 있었겠지만 도쿄가 통째로 날아갔던 만큼 그의 기억의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다. 그는 그 이후의 몇 년을 오로지 그 하루 만으로 살아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만 했다. 그는 이제 더는 죽을 수 없는 몸이 됐고 그 시간을 새롭게 쌓아 줄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 기억이 마지막이라는 건, 그 조각만으로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없었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찰나에 기대어 살아 갈 자신이. 그래서 그는 신을 저주했다.
나구모 요이치의 삶은 영영 끝나지 않을 테지만 그가 사랑했던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그보다도 훨씬 앞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진실로 친애했던 친구도, 증오하고 미워했던 일들도, 사랑했던 사람도. 아무쪼록 작별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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