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고양이는 창 너머의 행복을 꿈꾸지 않는다
살얼음판 같은 인생에게도 가끔은 일상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날은 보기 드문 조합으로 동네 오락실을 찾았었다. 말하자면 사카모토 하나가 가게에만 있기 싫다며 투덜거려서인데, 마침 레몬 사워 사탕을 사러 사카모토 가게를 찾은 손님이 있었던 탓에 일행이 많아졌다. 들뜬 채로 밖으로 나선 것은 좋았으나 하늘이 무심하게 내린 비에 일행은 쫓기듯 눈앞에 보이는 오락실로 뛰쳐 들어갔다. 우연히 찾은 곳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일행은 빠르게 각자가 하고 싶은 오락기 앞으로 흩어졌다. 루와 신은 철권 앞으로, 그리고 하나는 레이싱 게임기에 시선이 꽂혔다. 나구모는 하나를 놀아주겠다며 그 옆자리를 꿰찼다. 사카모토는 철권 기기에 나란히 앉아 자웅을 겨루고 있는 두 사람의 뒤에 섰다.
코토다마 나기사는 그 분위기에 좀처럼 낄 수가 없어서 어색하게 유리문 옆에 선 채 일행을 기다렸다. 유리문 근처는 인형 뽑기 기계로 가득했다. 현금이 없기도 했고 딱히 할 마음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갈 곳 없는 시선은 힐긋힐긋 뽑기 기계를 향했다. 벽을 따라 나란히 줄 선 기계 안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유명한 캐릭터 인형과 무슨 만화의 피규어, 이상하게 생긴 동물 인형들, 디지털 악세서리 등이 쌓여 있었다. 쭉 구경하던 시선은 가장 구석에 있는 기계 안에 다른 인형들과 섞여 있는 검은 고양이 인형에 콕 박혔다. 품에 가득 안을 정도로 제법 큰 인형이었는데 동그랗게 뜬 두 눈과 콩알만한 삼각코, 없다시피한 짧은 입이 깜찍했다. 눈구슬 테두리가 하얀 걸 빼면 온통 새카만 고양이 인형이었는데 어쩐지 눈길을 떼기가 어려웠다. 품에 안는다면 기분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했던가.
“나기사~ 인형 갖고 싶어?”
코토다마 나기사는 갑자기 뒤에서 걸려 온 목소리에 드물게 놀랐다. 승부에서 이겼는지 방긋 웃는 채로 다가 온 루는 기계 안에 있는 인형들을 슥 내다봤다. 그것은 타인의 호의를 받는 게 불편해서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아, 갖고 싶다고!”
그러나 일본 수어를 전혀 몰랐던 루는 망설임 없이 손에 든 잔돈을 인형 기계 안으로 집어 넣었다.
루 샤오탕은 인형을 뽑아주고 싶다며 한참을 기계 앞에서 끙끙댔다. 아쉽게 놓치면 신경질적으로 스틱을 흔들기도 하고 기계를 더러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손에 들고 있던 잔돈은 점점 없어졌고, 루는 소란에 다가온 신에게 남은 잔돈을 내놓으라며 고집을 부렸다.
“아 조금만 더 하면 나올 것 같단 말이야~! 철권 졌으니까 소원 들어줘야지!”
“이런 건 다 상술이라고, 나올 리가 없잖아!”
“아빠~ 하나 인형 갖고 싶어.”
“뽑아라. 신. 제일 귀여운 걸로.”
“네! 사카모토 씨!”
사카모토의 한마디에 태도가 돌변한 신은 들고 있던 잔돈을 루가 잡고 있던 기계에 몽땅 넣었다. 한참을 고전한 끝에 신은 하나가 마음에 들어하는 인형을 기어이 뽑아냈다.
“말도 안돼. 바보 신이 뽑다니, 분명 기계가 이상한 거야. 이번엔 사격으로 해!”
그렇게 다들 루가 뛰어 간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 가고 나서, 덩그러니 남겨진 나기사 옆으로 나구모가 다가왔다. 그는 코트 주머니 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슬그머니 곁에 다가와 물었다.
“저 검은 고양이가 갖고 싶은 거야?”
그는 소동을 다 보고 있었는지 나기사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백엔 동전을 하나 꺼냈다. 우선 시험 삼아 한 번 해볼 생각이었다. 커다란 강아지 인형이 뽑혀서 텅 빈 인형기계 바닥에 검은 고양이 인형이 처량하게 누워 있었다. 나구모 요이치는 별로 집중하는 기색도 없이 대충 크레인을 움직여서, 적당한 위치에서 버튼을 눌렀다. 기계팔은 천천히 내려가더니 인형을 덥석 잡고 들어 올렸다. 기계팔이 천장에 닿았을 때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집게가 흔들리며 인형을 떨어트렸는데, 흔들리며 떨어진 탓에 아슬아슬하게 출구로 던져져 그대로 기계 아래로 나왔다.
“오~ 앞에 애들이 돈 많이 넣어서 바로 나왔네.”
그는 그냥 가벼운 요행을 겪은 것처럼 생글 웃으며 나기사에게 인형을 내밀었다. 창 밖으로 볼 때보다도 바짝 다가온 검은 고양이는 생각보다 컸고, 또 포근했다. 코토다마 나기사는 보기 드물게 눈을 빛내며 인형을 품에 안았다. 그 인형이 뭐라고. 처음 보는 상기된 표정이 아파서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처음 본 그 표정을 잊지 않으려고 그는 부던히 애썼다. 마침 또 뭔가 상품을 타냈는지, 일행이 와르르 달려와 기어이 뽑았냐며 나기사 곁으로 모였다. 그것은 처음 겪는 왁자지껄한 일상이 어색해서 수줍은 듯 그저 품 안에 가만히 인형을 꼭 안고 그 속에 얼굴을 살짝 묻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그것은 줄곧 인형을 안고 돌아갔다. 집에 가서도 한참을 빤히 쳐다보다 잘 때도 안고 잤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코토다마 나기사는 그 인형을 안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도 좋았을까. 그는 그냥 나기사가 유별나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인형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받게 된 선물이라는 점이 평범하게 기뻤다. 그리고 그 평범한 기쁨은 그리 멀지 않아 코토다마 나기사를 더 깊게 상처입혔다.
악몽을 꾸는 게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었다. 나구모 요이치를 만난 이래로 코토다마 나기사의 모든 일상은 악몽이었다. 잠깐씩 작은 행복이나 위안이 있기도 했지만 그저 그 뿐이었다. 그런 자그마한 일들은 불행으로 얼룩진 그 인생을 덮어주기엔 턱없이 작았다. 편히 잠드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밤은 나기사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낮잠을 자던 나기사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숨막히는 악몽에서 깨났다. 분명 늦은 오후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깨난 시간은 밤 10시 쯤이었다. 꿈 속에서 목을 졸리던 감각이 여전히 생생해서, 그것은 한참 동안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겨우 뱉으며 상처로 얼룩진 목을 더듬었다. 마음이 심하게 술렁였다. 적막 속에 혼자 남겨진 것이 끔찍했다. 본래 그것은 평범하게 세상이 좋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메이드 소녀였다. 그러나 그 일상은 그를 만난 이후로 영영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 무슨 짓을 해도 도련님은 돌아오지 않아. 살인자로 살 것을 억지로 종용당한 이래로 싫을 정도로 깨달았다.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보다 두려운 것은 주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었던 그것은 주인을 죽인 살인자를 섬기는 모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킬러로서 육성되었다.
천성이 상냥하고 다정했던 소녀에게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생명을 앗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참으로 힘들었지만 표정 하나 까닥이지 않고 많이도 죽였다. 누군가 시켜서. 주인이 그것을 원하기에. 그런 변명을 붙여대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나구모 요이치가 저에게 뱉은 차가운 말이나 과격한 행동은 아무래도 좋았다. 물론 아팠지만 다음 날이 되면 괜찮아졌다. 괜찮지 않게 된 건 그가 돌연 태도를 바꿨을 때였다. 그는 어느 때부턴가 코토다마 나기사의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왔고 전에 없던 다정한 태도로 그것을 대했다. 나기사는 나구모가 저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알았기에 잔인했다. 그는 그것의 안에선 영원히 악인이어야 했다. 그랬는데도. 그것은 마음 놓고 누군가를 미워하지 못할 정도로 상냥했다. 그 뒤로 그가 건네는 작은 호의들이 전에 없을 정도로 커다란 상처로 느껴졌다.
심한 악몽에 시달린 날엔 더욱이 그랬다. 그간 참아온 모든 감정들이 파도처럼 철렁이며 나기사를 덮쳤다. 시선은 문득 품 안에 꾹 안고 잤던 검은 고양이에게 꽂혔다.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형이 어째서 그토록 무섭게 느껴졌을까. 코토다마 나기사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비명을 지르며 협탁에 있는 물건을 바닥으로 던지다가, 서랍에 있는 커다란 칼을 꺼내 인형을 난도질했다. 한 번 찌를 때마다 나구모 요이치의 말과 행동이 떠올랐다. 저게 갖고 싶냐며 인형을 멋지게 뽑곤 품에 안겨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준 손이,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웃었던 그 표정이, 주제도 모르고 거짓된 행복에 눈이 멀었던 날들이. 서슬퍼런 날이 부드러운 천을 찢어내고 안에 있는 하얀 솜들이 내장처럼 넘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앞이 흐려서 어디를 찌르는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인형을 쑤셔낸 탓에 붙잡고 있던 손에도 날이 박혀 피가 흘렀다. 고통에도 아랑곳 않고 그것은 한참을 인형에 화풀이를 했다. 고양이 목이 잘려 떨어지고 사지가 찢겨 바닥이 솜과 인형 털, 실밥으로 너저분해질 때 쯤에야 손이 멈췄다. 인형을 쥐고 있던 손을 찢은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그제서야 그게 아파서, 나기사는 손을 쥔 채로 부들부들 떨며 웅크려 울었다.
돌아왔을 땐 늦은 밤이었다. 이제와서 숨길 것도 없었지만 일하고 난 뒤 피 묻은 모습으로 나타나기가 싫어서 뒷처리를 하고 온 참이었다. 나구모 요이치는 한 손엔 간단한 야식을 든 채로 신발에서 발을 뺐다.
“나기사, 나 왔어~”
그것은 으레 현관까지 나와 나구모 요이치의 가방을 받아주곤 했고 돌아오기 전에 먼저 자는 일도 없었는데 인사에도 대답이 없었다. 거실 불만 어둑하게 켜진 집안이 싸늘하고 고요했다. 그는 무턱대고 불을 키는 대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옅은 거실 불빛이 문틈 새로 침대 위에 웅크려 앉은 코토다마 나기사를 비췄다. 침대 아래엔 매일 안고 있던 고양이 인형이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인형 천은 조각났고 솜엔 핏물이 들었다. 실밥도 너저분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인기척에도 모은 무릎에 처박은 얼굴을 들지 않았다. 무릎을 모으고 있는 손등 살갗이 찢겨 엉망이었다. 침대 밑으로 굴러간 튿어진 눈알이 나구모 요이치를 차갑게 바라본다. 마치 그를 책망하듯이.
“나기사… 손이 왜 그래. 응?”
그는 검은 천쪼가리가 되어버린 인형에 대해선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역시 마음 어딘가가 콕콕 찔려왔지만 그깟 인형 쯤 없어도 그만일 테다. 하지만……. 그는 침대에 걸터 앉아 한 손으로는 그것의 손을 잡고,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는 얼굴을 살짝 들어 올렸다. 힘없이 떨궜던 그 얼굴은 드는대로 쉽게 들려 그 낯을 보였다. 벌겋게 부은 눈이, 뺨에 조금 묻은 붉은 피가, 아무 말도 뱉지 않는 작은 입이 아파서. 그는 그 조그만 몸을 품에 안았다. 등을 토닥이는 다정한 손에 숨이 막혔다. 그것은 눅눅하게 젖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왜 안아주는 거야?”
“싫어?”
싫다고 생각했다. 싫어. 싫다고. 싫어해야 해. 하지만 그것은 나구모 요이치가 없는 혼자만의 밤이 외롭고 서글펐다. 그것의 작은 세계에 그 대신 와줄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기사는 싫다고 말할 수 없는 제 자신이 역겨웠다. 주제도 모르고 행복을 바랐던 게 한없이 부끄럽고 안아 줄 사람 한 명 없는 삶이 초라해서. 문득 옆에 칼을 내려뒀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손을 더듬자 서슬퍼런 날이 닿았다. 그것은 칼 손잡이를 꽉 붙잡고 완전히 무방비한 나구모 요이치의 등을 향해 치켜들었다.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가 낮게 경고한다.
“…놔, 주지 않으면 이걸로… 찌를 거야.”
“응. 나기사가 원하면 그렇게 해.”
똑바로 치켜든 칼이 우뚝 멈췄다. 그것은 나구모 요이치의 품 안에 안긴 채 황망하게 등 너머의 서슬퍼런 칼날을 쳐다봤다. 조금만 용기내면 그를 죽일 수 있어. 몇 번이고 그가 죽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를 죽게 한 것이 코토다마 나기사는 아니었다. 그는 언젠가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에 살해 당하든지, 혹은 시간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리라. 그를 죽이는 제 모습은 어떻게 해도 떠올릴 수 없었다. 단언컨대 소중해서는 아니었다. 기회도 몇 번이나 있었다. 마치 지금처럼. 날붙이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은 결국 칼을 든 손을 힘없이 떨궜다.
“그런 거 못 해…….”
“응… 나기사 상냥하니까.”
차라리 저 인형처럼 찔러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나구모 요이치는 불 꺼진 방 안에서 그것을 안고 있었다. 훌쩍 거리는 소리가 멎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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