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idar
총 34개의 포스트
그 해에는 흉년이 들어 농작물도 수확하지 않았다. 하늘은 벼와 이삭 대신 땅 위의 수많은 목숨을 공양될 제물로 거두어 갔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한 것처럼 보였다. 집, 국가, 군대, 의료 시설, 기계, 인간, 희망까지도……. 진흙탕이 된 대지를 어셔는 철퍽거리며 걸었다. 그는 첫 전투에서 소대원의 절반을 잃었다. 두번째 전투에서는 나머지 절반을 잃었다.
우리는 학칙에 따라 사격술과 호신술을 배운다. 중요한 것은 표적을 괴물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가 아니다. 생물이나 동물, 물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념적인 위협으로만 자리한다. 우리의 일은 그것이 존재로 거듭나기 전에 위협을 자르는 것이다. 먼 과거에는 그것을 뱀파이어
나는 버몬트주 스펜스만 마을에서 의용소방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급은 많지 않지만 나 하나는 건사할 만하고, 불길은 무섭지 않다. 가끔 나는 와이오밍에 사는 내 친구 마이클 존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지내냐고 묻고는 한다. 그는 알콜중독이고, 미혼에다가 가족이 없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마이클은 오토메일 정비
바이올리니스트? 고개를 든다. 환부에 붕대를 갈아주던 여자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는다. 손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들 손이 대개 그렇거든요. 봐봐, 활을 잡는 쪽에 굳은 살이 있고…… 여자가 지크의 얼굴을 감싸 올린다. 목이 드러날 때 지크는 취약한 급소 부분이 노출된 것에 대한 본능적인 껄끄러움을 느낀다. 여자가 속삭인다. 여기도.
느낌이 어때? 시온이 묻는다. 창을 투과한 6월 햇빛이 스민다. 어셔는 뙤약볕에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답한다. 잘 모르겠어. 그래? 한…번만 가지고는 잘 모르겠어. 그러자 시온이 웃는다. 이럴 때 보는 시온은 소년 같다. 불신이나 의심 같은 세속적인 개념과 거리가 먼 것 같다. 시온이 눈을 감는다. 그러면 한 번 더 해보자. 이번에
그 커피 마시지 마. 왜입니까? 독이 들었거든. 한 덩이 보기 좋게 자른 레몬 휘낭시에를 집어 먹으며 멜리시아가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머커가 은으로 된 찻숟가락을 커피에 빠뜨려본다. 까맣게 변색되는 숟가락. 정말이군요. 그는 개수대에 커피를 모조리 흘려보낸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있나. 그러니까, 어째서? 내가 개발한 독이니까. 멜리
소녀는 창밖을 보고 있다. 바닥에 붙이고 앉은 두 발은 가느다랗게 떨리는 기차칸의 진동을 느끼고 있다. 그는 간만에 조선으로 향하고 있다.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른다. 저녁 여섯 시의 1등실 식당칸이 숨쉴 틈도 없이 북적댄다. 건너편 식탁의 노부인이 영자 신문을 읽고 있다. 비상구 앞 테이블석에 앉은 프랑스인은 자녀에게 토마토를 먹이고 있다. 연인은 키스를
그의 이름은 애프리콧 피셔다. 물론 가명이다.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은 당시 어머니가 좋아하던 당대 유명 영화배우에서 따온 것으로, 피셔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해 일찍이 그 이름을 버렸다. 50년대 미국 섹스 심벌로 유명하던 영화배우의 윤기나는 검은 머리와 짙푸른 눈동자 같은 것은 그의 푸석푸석한 염색모나 움푹한 광대뼈와 극명한 대비를 그렸다
비……. 비가 내리고 있다. 썩은 나뭇가지 떠다니는 냇가가 범람한다. 운전석에 올라탄 마이어가 트럭의 시동을 건다. 버지니아와 앨버트는 짐칸에 트렁크를 옮긴다.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캐리어를 샀음에도 시신 한 구를 모두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톱을 든 것은 버지니아였다. 제아무리 소음기를 장착한다 한들 총은 이웃에게 들킬 위험이 있다고 그는 강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