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heep
[유다+지저스] 루프 날조북 유료 공개
루프하는 유다/무커플링
A5 판/88P/9000원
포스타입 공개물을 글리프에도 백업합니다.
발행 / 2016년 08월 06일
연극 뮤지컬 통합 온리전 [OVERTURE : 텅장의 서곡 Reprise]
저자 / 뮤아넨
>이 책은 실존하는 인물 및 사건들과 일절 연관이 없습니다.
>이 책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기반으로 쓰였지만 회사와는 일절 관계가 없는 비공식 2차 창작물입니다.
>약간 잔혹한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본 글의 저작권은 '뮤아넨'에게 있으므로 어떠한 용도로도 저자의 허락 없이 내용의 전체, 혹은 일부분을 인용·전재·모방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14:21
Black Sheep
D-0
메시아의 수제자가 누구냐 묻는다면 사람들은 이리 말했다.
저마다 자신이 아는 열두 명의 이름을 순서 없이 꺼내 늘어놓고서 그 열두 명의 제자가 늘 그분을 모시며 가까이에서 있노라고.
그렇다면 그 중에서 그분이 가장 아끼시는 제자가 누구냐 묻는다면 다들 하나같이 입을 열어 단 하나의 이름만을 밝혔다.
이스가리옷 유다.
열둘의 수제자 중에서 가롯 유다는 그들의 머리이며 지저스의 가장 지척에서 그분을 보필하며…
그분이 가장 아끼시는 제자라고.
약간 거친 표면위에 제 흔적을 남기며 거침없이 달리던 목탄이 삐끗 미끄러져 길고 짙은 검은 선을 그었다. 길게 쭉 이어진 선은 그 위에 이미 그었던 글자와 엇갈려 작지만 선명한 십자가의 모형을 만들어냈다. 목탄을 쥐고 있던 손의 주인, 유다는 그것을 빨리 지워야함을 알고 있지만 우연히 제 손으로 그려낸 그 모양을 보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 전이 유월절이었다. 유대 최대의 축제. 스승님과 함께 했던 그 만찬의 자리에서 유다의 스승, 지저스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
‘나는 곧 어린양들을 위해 예언에 적힌 대로 죽을 것이다.’
지저스는 마치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듯, 아주 평온한 어조로 말했기에 다른 제자들도 한동안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자는 유다, 본인이었다.
‘어째서 입니까? 어째서 스승님이…!’
‘모든 것은, 예언에 적힌 대로. 나의 제자 유다야…. 이 몸은, 이 나는… 그래야만 한단다.’
‘그러니까 어째서 스승님, 지저스 당신이여야 한단 말입니까! 꼭 피를 흘려 구원을 하셔야 합니까?!’
늘 쉽게 알 수 없는 지저스의 뜻을 말없이 따르던 유다가 그날만큼은 언성을 높이며 스승님과 싸웠다. 지저스의 발언에 놀랐던 다른 제자들은 그때의 유다의 분노에 더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만찬의 끝은 거의 파탄이라 할 만 했고 제 분을 누르지 못해 뛰쳐나갔던 유다를 데려온 이는 베드로였다.
‘스승님이 슬퍼하셨을 거야, 유다.’
‘…….’
‘그때 너 나가고 나서 한참동안 그 문 보시다가 들어가셨는걸.’
한참동안 잘못 그어진 선을 내려다보던 유다는 한숨을 쉬면서 장부와 목탄을 치워버렸다. 이 이상 셈을 하는 건 잡다한 생각만 불러일으키기만 할 게 분명했다. 주머니에 돈 주머니와 물건들을 넣어버린 유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저 멀리서 식사준비를 하던 베드로가 손을 붕붕 흔들었다. 밝은 얼굴로 유다를 부르는 몸짓을 보면 아마도 식사 준비가 다 마쳐진 모양이었다. 유다는 그보다 더 멀리를 보다 시몬이 지저스를 부르는-아마도 식사가 준비 되었다는- 것이 보여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대로 저 너머로 가려던 유다를 잡은 건 베드로였다.
“유다! 밥, 안 먹을 거야?”
“…나중에 먹을 거다.”
“설마 아직도 스승님이랑 화해 안한 거야?”
“…….”
정곡을 찌르는 베드로의 말에 유다는 그저 입을 다물고 그의 시선을 외면해버렸다. 사실 유다는 지금 이 상황이 어색하기만 했다. 열두 명의 제자 가운데에 지저스를 가장 잘 따르던 이가 누구냐 묻는다면 그건 유다였다. 아버지를 따르는 아들처럼 유다는 그렇게 지저스를 따랐다. 한 번도 지저스에게 혼이 난 적이 없기 때문인지, 자신이 지저스에게 화를 냈다는 것이 놀라서 그런 건지 유다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 당황스럽고 곤란하기만 했다.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시선을 피하는 유다를 보면서 베드로는 작게 혀를 찼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저스를 보좌하던 유다가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이니 오랜만에 모인 다른 형제들도 어색한 분위기에서 스승님과 유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방금 전, 스승님께 말씀드리러 간 시몬도 다른 형제들과 서로 미루다가 가게 된 것이었다. 유다가 심기 불변한 만큼, 스승님도 기도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분위기도 어두워졌다. 아아. 사이에 낀 우리가 잘못이지. 쓴 웃음을 베어 문 베드로는 유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야영장으로 돌아갔다.
“빨리 돌아와라.”
“…알고 있다고.”
퉁명스럽게 답한 유다의 목소리에 베드로는 키득키득 웃었다. 돌아오라는 말. 그건 야영장으로 오라는 것과 스승님과 화해하라는 뜻 두 가지가 모두 담겨있는 말이었다. 이르면 오늘 저녁엔 화해할 수 있겠지. 중대한 일 하나를 해결한 베드로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래 별 일이 없었더라면 그 둘은 저녁을 먹기 전이나 그 직후에 화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 * *
=잡아라! 거짓 선지자 지저스를 잡아라!
분노한 군중이 들이닥쳤다. 평소같이 스승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온 무리인 줄 알았지만 그들의 얼굴이 보일 즘에야 다른 목적을 가진 무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황한 제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예상치 못한 이 상황에 압도되어 굳어버리고 말았다.
=거짓 선지자. 거짓 메시아!
=유다의 왕이라 하는 그를 잡아라!
베드로는 그들의 제일 앞에서 이들을 선동하는 이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스승님을 못마땅하게 보던 대사제의 종. 하지만 그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군중의 파도에서 뻗어진 팔은 지저스의 옷을 잡아 저들의 가운데로 삼켜버렸다. 그 수많은 팔들과 손들! 기적을 바라며 지저스께 다가가던 군중이 경외를 품고 조심스럽게 다가왔었다면 거침없이 뻗어지는 그 팔들은 진득한 악의와 분노를 품고 있었다. 한순간이나마 그 기세에 압도당해버렸던 제자들은 그 군중의 무리에 스승이 삼켜진 뒤에야 그분을 되찾기 위해서 그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제사장에게 선동당한 군중과, 지저스를 따르는 무리의 충돌. 거칠게 다뤄진 지저스는 이미 무리의 뒤쪽으로 끌려 나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어느새 다가온 대사제의 또 다른 종이 그분을 밧줄로 묶어 끌고 갔다.
유다는 언덕 위에서 모든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야영지 뒤쪽에 있는 언덕 너머에서 어떻게 스승님과 화해할지 고민하고, 또 미뤘던 장부정리를 이어나가던 중에 귓가를 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뒷골을 서늘하게 당겨오는 무언가를 담은 그 소란에 유다는 목탄을 집어던지고 언덕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높은 곳에 있던 탓에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군중에게 말 그대로 집어삼켜지는 스승님과, 그 군중에게서 스승님을 찾기 위해 그 큰 군집에 덤벼드는 다른 제자들. 여기저기에서 가볍게나마 피가 비쳤고 점점 상황은 어지럽게 되어갔다. 그 와중에 유다는 저 뒤쪽에서 끌려가는 지저스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거리도 멀었지만 유다는 그분의 의도를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한때는 그분이 말을 하시지 않아도 모든 것을 준비하던 유다였으니까.
“모두 숲으로 가! 숲으로 들어가! 그리고 약속된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거다!”
유다가 언덕 위에서 크게 소리치자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 야영지 뒤쪽에 있는 숲-이라하기에 그리 우거지지 않았지만 적당한 나무들과 어둠 덕분에 몸을 숨기기 용이한-으로 숨어들었다. 지저스는 옳은 말을 많이 했었다. 또 그것은 충분히 권력자들-특히 율법학자들과 제사장들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것이 많았고 실제로 거스르기도 했다. 지저스를 시기하고 해하려 하는 자들을 피하기 위해서 제자들은 머리를 모아 고민했고 결정한 것이 도망이 용이한 곳에서 야영지를 잡자는 것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에 조금 힘든 장소에 야영지를 잡았지만 이번처럼 위기가 있을 때엔 흩어지는 사슴무리처럼 사방으로 숨었다 미리 정했던 장소에 모였다. …이런 식으로 스승님을 두고 제자들만 흩어지리라고는 그때엔 생각 못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분노했던 군중이 제풀에 지쳐 흩어질 때, 그들을 숨어서 지켜보던 유다는 숲 안쪽에 있는 미리 약속한 장소, 숲의 공터로 갔다. 숨어들었던 제자들은 다친 이들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단 한 사람의 누락자 없이 모두 장소에 있었다. 요한이 제 형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고 다대오와 시몬의 얼굴에는 가는 피딱지가 앉아있었다. 가장 걱정이었던 베드로는 오히려 다른 이의 피를 묻히고 있었다. 누군가의 피가 묻은 단검을 든 채로 볼의 핏자국을 지우던 베드로는 공터에 들어서는 유다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에 다른 제자들의 시선이 유다에게 모였다. 저들이 모일 때까지 스승님이 보이질 않았으니 당연히 마지막으로 오는 그가 스승님을 모시고 왔으리라 생각했기에 그랬지만 그의 등 뒤로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유다! 스승님은?”
“…알다시피, 끌려가셨다.”
“뭐?”
“젠장. 대체 무슨 일이지.”
“…제사장의 종이었어. 군중을 선동하던 사람.”
유다의 말에 웅성거리는 형제들을 조용히 만든 건 베드로의 말이었다. 얼마 전, 아니 상당히 전부터 자신들을 탐탁지 않게 보던 이들이었다. 최근 들어서 조용하다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일을 만들어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 는 아니었지. 귀가 있는 자라면 요즘에 돌고 있는 소문정도는 주워들을 수 있었으니까. 주변에 도는 지저스를 부정하는 소문들. 하지만 그 소문은 그분의 기적 아래에서 스러져버렸다. 소문을 듣고 진위를 판단하러 온 사람들은 그 기적을 직접 목도하고는 환호했다. 지저스 메시아! 유다의 왕이 왔도다! 거짓은 진실 앞에서 짓밟히고 추종자를 만들었다. 스승님을 따르는 무리가 늘어날수록 다른 제자들은 모두 기뻐했지만 유다는 그런 것이 못내 탐탁지 않았다. 스승님의 설교를 귀담아 듣지도 않고 그저 기적에만 집중하면서 눈에 보이는 이적에만 환호하고 그분의 의중을 알아차리지 않은 이들이, 그들이 바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더 세력이 커지거나 과격한 이들이 더 많아진다면 그들이 따른다고 주장하는 스승에게도 해가 미칠 것이 분명했다. 지금 유대의 민족들을 다스리고 있는 로마인들은 그런 불순분자들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으니까. 스승님이 유명해지면 유명해 질수록 불리해지고 위험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스승님이었다. 유다의 불안을 더욱 늘어나는 것을 따라가듯 누군가가 부러 흘린 것이라 짐작되는, 스승님을 겨냥한 로마의 심기를 거스르는 소문도 나돌았다. 시몬이야 그 소문을 기꺼워하며 스승님께 말을 올렸다가 호되게 혼났지만 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제 형,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의 상처를 마저 감싼 마태는 두려운 듯 야고보의 곁에 달라붙었다. 그 말이 시발점 이였는지 나름 침착해보였던 다른 사도들도 천천히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아버지처럼 이끌어주었던 스승님이 저들에게 잡혔다. 다른 형제들의 눈이 자연스럽게 유다와 베드로에게 다가가 붙었다. 스승님이 가장 아끼시는 제자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유다와, 회계로 바쁜 유다를 대신해서 두 번째로 스승님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베드로. 순식간에 몰린 시선에 유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베드로는 멋쩍은 듯 머릴 긁적였다.
“우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아남는 거야. 스승님은 우리들이 다치길 바라지 않으셨으니까….”
“하지만 스승님은 어쩌고? 스승님은 우릴 아니꼽게 생각하는 제사장들에게 잡혀가셨어. 어쩌면 벌써 고초를 겪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한순간이나마 마주쳤던 눈빛으로 읽어낸 스승님의 의중을 말하는 유다의 말을 가로막은 것은 시몬이었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정신 사납게 쥐었다 놓으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에 사도 몇이 시몬에게 호응해왔다. 눈앞에서 끌려가신 스승님, 되찾아 와야 한다 생각하고 있는 이들. 하지만 허리춤에 달리 단검 하나-거의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온통 무장 하고 있는 제사장들의 부하들, 아니면 병사들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일게 분명했다.
“그래서, 혼자 갈 생각이야? 아무리 네가 열성당원이라 해도-.”
“혼자서라도 갈 거다, 왜! 로마의 병사라고 하더라도 서넛 정도면 나 혼자서라도 충분하니까!”
평소보다도 더 흥분한 시몬은 유다가 붙잡는 팔도 뿌리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빈 공터를 쩌렁쩌렁 울리는 시몬의 목소리에 몇몇은 그것을 실천이라도 하려는 듯 제각기 허리춤과 가슴팍에 있는 단검을 쥐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흉흉한 분위기를 제지한 사람은 늘 이런 다툼과 의견충돌을 말리던 베드로였다.
“자자, 일단 흥분부터 가라앉아. 우리들끼리 이렇게 싸우면 스승님이 좋아하실 거 같아?”
“…….”
“그래도-!”
“시몬.”
“윽, 알았다고….”
베드로는 시몬의 팔을 꽉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평소의 생글생글 웃던 얼굴조차 사라진 베드로의 얼굴은 꽤 무서운 편에 속했다. 무엇보다 차갑게 가라앉아버린 눈동자를 마주한 시몬은 더 이상 언성을 높인다던가 하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달궈졌던 공터의 공기가 조금 가라앉자 유다는 입을 열었다.
“저들은 우리를 찾고 있었어.”
“…뭐?”
“스승님을 잡아간 것 말고 또 왜?”
“그야… 우리는 스승님의 수제자니까. 그리고 귀가 있는 자라면 요즘 돌고 있는 소문 정도는 한번쯤은 들어 봤잖아? ‘선지자 지저스와 그 제자들은… 로마의 지배를 뒤엎고 자유를 선포하리라.’라는. 물론 추종자들의 소망도 반쯤 들어있긴 하지만 이 소문은 우리들과 스승님을 정확하게 겨냥한 소문이야. …이대로는 스승님도, 우리들도 위험하다 생각해서 대책을 미리 마련했어야 했는데….”
곁에 있던 나무 등걸을 주먹 쥔 손으로 한번 내려친 유다는 그대로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에 무언가가 떠오른 요한이 그에게 물었다.
“…설마 그때 그것도 이 소문 때문에?”
“…….”
모두의 시선이 모였지만 그는 침묵했다. 정확하게 지칭하지 않아도 다들 하나의 사건을 떠올렸다. 파스카의 만찬에서 유다와 지저스가 처음으로 크게 다툰 그 일을. 유다가 가뜩이나 소문에 신경이 잔뜩 날 서있었다면 스승님의 ‘죽음’에 그리 반응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제야 유다의 심정을 알아차린 그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고스란히 받은 유다는 그것이 불편한 듯 시선을 치워내며 이마를 짚었다.
“…지나간 일보다는 지금 닥친 일 부터 먼저 해결하지.”
“아, 그래. 우선 스승님의 구출과-.”
“생존.”
베드로가 ‘스승님의 구출’을 먼저 입에 담아 달아오르려던 열기를 유다가 차가운 말로 끊었다. 당황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을 눈 위에 올린 손으로 가린 유다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스승님은 언제나 우리를 걱정하셨지. 이번에 끌려가시면서 우릴 돌아보며 다치는 자는 생기기 않을까, 무사할 수 있을까… 걱정하셨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생존을 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하지만…! 스승님을 구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야. 군중들은 제풀에 지쳐 흩어졌지만… 아직 제사장들의 수족들은 우릴 찾고 있을 거다. 스승님을 구하기도 전에 그들에게 먼저 잡혀 돌팔매질 당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 싶은 거라면 나도 말리지 않아.”
“…….”
쥐어짜듯 외친 유다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냉정했기에 그분도 그를 진정으로 믿으셨고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사도들이 그를 뻔한 일을 그는 지혜롭게 넘어갔었다. 저 머릿속은 지금 얼마나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늦었지만, 이런 일을 아주 생각 못한 건 아니야…. 대책도 세워놨지만 이미 일은 일어나버렸지.”
“유다….”
한숨을 쉬며 눈앞을 가렸던 손을 내린 유다의 눈은 반쯤 죽어있었다. 멍하니 다른 사도들을 둘러본 그는 결심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품속을 뒤졌다. 그의 손에 끌려나온 가죽 주머니를 뒤집어 털자 장부로 쓰던 파피루스와 목탄, 그리고 돈주머니가 떨어졌다. 그중에 돈주머니만 주워든 유다는 주머니를 열어 남은 돈을 셈했다.
“자금은 나에게 있어. 이걸 나눠줄 테니까 절대로 혼자 다니지 마. 얼굴은 잘 가리고. 혹시 모르지만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곤란할 테니.”
“우리보고 죄인처럼 숨어 다니라는 거냐?”
“로마에서 보자면 우린 죄인이겠지. 감히 반역을 시도하려했던 무리일 테니까.”
“너 이자식이-!”
“지금 소문도 소문이고, 헤롯왕도 예루살렘에 있다고 한다. 즉결처분 받고 싶은 거냐. …스승님을 구하고 싶다면, 일단 살아남아.”
자신의 말에 화를 내는 사도들의 말을 차갑게 끊어낸 유다의 머릿속은 그의 날선 말처럼 차갑지 못했다. 저보다 날뛰는 형제들 덕분에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과 스승님과 아직 화해를 못한 일들이 황야의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그럼 정해진 거지?”
복잡한 생각 가운데에 베드로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고개를 들어 올린 유다에게 어느 정도 입장이 정리되어 갈린 무리가 보였다. 누군가는 걱정 어린 얼굴로 모여 대화를 하고 있었고 몇몇은 긴장한 얼굴로 허리춤의 단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시몬은 후자에 속했다.
“요한과 야고보, 도마는 다른 사람들을 다독여줘. 안드레. 너는 스승님을 따라온 여인들을 부탁한다.”
베드로는 사도들 가운데에 몇몇을 불러 뒤에 남겨진 추종자들을 부탁했다. 스승님의 이적에 이끌려 온 난봉꾼들이 아닌 진심으로 감화되어 스승님을 따라온 과부들과 다른 이들. 대사제의 종이 이끌고 온 군중에 겁에 질려 이미 도망친 이들은 알아서 잘 살아가겠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이들을 돌보고 다독일 이들이 필요했다. 유다는 머릿속으로 그들에게 조금 더 자금을 얹어주었다. 그 외에 다른 형제들에게도 주변의 소문을 모으는 것 등을 부탁한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남은 시몬의 어깨를 두드리며 유다를 돌아봤다.
“그리고 나는 시몬이랑 같이 스승님 구출을 할게.”
“…뭐?”
“시몬은 싸움도 잘 하고, 나도 그렇게 약한 건 아니거든?”
베드로는 씩 웃으며 허리춤의 단검을 들어보였다. 물론 베드로가 약하다는 건 아니었다. 그도 어느 정도 싸움에 능했고 오히려 날뛰는 시몬을 제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다루기 힘든 시몬을 그가 데려간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스승님을 구출하는 데에 두 명은 너무 적었다.
“…둘은 너무 적어. 나도….”
“아니지, 유다. 너는 남아있어야지.”
“…….”
베드로는 부드럽게 웃으며 유다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유다는 이 웃음을 알고 있었다. 늘 웃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부탁을 할 때의 그의 미소. 그가 이런 얼굴을 하면 유다는 한숨을 쉬면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건 때론 자금의 융통이라거나 시장에서의 흥정이라거나 혹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의 양을 조절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부탁들은 베드로를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이들, 특히 대부분은 스승님을 위한 것이어서 유다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그 부탁을 들어줬다. 그렇기에 유다는 그런 미소에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너는 모두를 이끌어 줘야지.”
“…….”
“…부탁이야. 모두를, 부탁해.”
살짝 찌푸려지는 눈썹 아래 휘익 휘어지는 두 눈. 약간은 쓰게 느껴지는 입가. 진심으로 부탁하는 얼굴. 어깨를 묵직하게 눌러오는 무게에 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저마다 행로를 정한 이들이 두, 셋씩 모여 유다에게서 돈을 받아갔고, 유다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모두 흩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각인하려는 듯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그들은 마음에 담긴 긴장을 털어내려는 듯 웃으며 인사를 했다. 하나 둘 사라지는 얼굴들을 마지막까지 전송한 유다는 주변에 아무 바위에 걸터앉았다. 부디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그는 그의 스승이 그랬듯 두 손을 모아 그의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 * *
요한이 죽었다.
공중에 떠서 흔들리는 그의 발을 지켜보던 유다는 망토를 더 깊이 눌러쓰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유다의 입술은 거칠게 부르터있고 눈 밑의 검은 자국은 문신이라 해도 믿을 만큼 짙어져있었다. 무심코 눈 밑을 문지른 유다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울 눈물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눈 밑은 가뭄 든 땅바닥마냥 바싹 말라있었다.
요한은 마지막 사도였다. 스승님을 시작으로 베드로, 시몬…. 당연하겠지만 단 두 사람만으로 지저스를 구출하는 것은 실패해버렸다. 그 둘이 감옥에 침투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병사들이 시몬과 베드로를 붙잡아 가두었고, 본래 스승님과 함께 처형되기로 했던 두 강도들 대신에 십자가형을 당했다. 유다의 왕과 그 제자들! 우습게 내걸린 팻말 아래에 세 사람의 몸을 나란히 공중에 달아둔 채로 제사장들은 웃었다. 무리 중에서 가장 강했던 시몬과 큰 반석이었던 베드로마저 그렇게 죽고 나서 남은 사도들은 모두 두려워했다. 유다는 굳어서 움직이지 않던 그들의 등을 떠밀어 도망치게 하고 뒤를 봐 주면서 모든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얼굴을 숨긴 유다는 소문을 흘리거나 자금을 지원하면서 그들의 도망을 도왔지만, 흩어지고 도망치는 형제들은 모두 붙잡히고 가장 마지막까지 도망치던 요한도 결국 붙잡혀 교수형에 처해버렸다. 갈릴리의 어부였던 그들은 너무 순박했다. 그리고 남을 속일 수 없었다. 그랬기에 몸을 숨기기도 능숙하지 않았고 독이 바싹 오른 제사장들의 사병들이나 로마의 병사들을 피할 수 없었다. 해가 지고 날이 바뀌어도 유다는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움직일 수 없었다.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요한의 몸은 본보기를 위해서 며칠 더 걸어둘 거라며 교수대를 지키던 병사들이 시시덕거리는 말을 흘려들었다. 요한은 저와 함께 처음으로 처형당했던 세 사람의 시체를 받으러 간 형제였다. 스승님의 시신을 천으로 감싸고 십자가에 함께 내린 이였다. 그리고 흩어진 형제들을 대신해서 도망치듯 장례를 치르고 넉넉하게 주머니를 쥐어준 뒤로는 만날 수 없었다. 다른 형제들은 도망치는 와중에도 한두 번 마주칠 수는 있었지만 요한은 정말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유다는 그런 그를 이해했다.
유다는 요한이 내려준,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뼈가 부러진 데 없이 차갑게 굳어버린 스승님의 시신을 안아드는 순간 정말로 끝이라는 것을 이해해버렸다. 머리에서는 그토록 부정하던 진실을 가슴에서부터 이해해버린 그 감정을 쏟아낼 길이 없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그 몸을 갈무리했다. 가장 의지했던 스승님의 죽음을 확인하는 그 순간부터 유다는 속에서부터 무너져 내려갔다. 유다는 무너져가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저스의 제자가 잡혀 사형 당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장소로 나갔다. 다른 형제들은 모르겠지만 유다는 처형당하는 형제와 눈을 마주쳐주고 모든 것을 받아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을 더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라 해도 그 순간을 보지 못한다면 이후에 저가 더 후회할 것을 알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형제들이 죽음의 앞에서 그나마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지는 몰라도 유다는 무너지는 정신들을 억지로 붙들어 매면서 그들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지금, 11번째의 사도가 사형을 당했다.
지저스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 유다 단 한 사람만이 남아버렸다.
그 이후로 어떻게 일이 지나갔는지는 유다는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병사들에게 이끌려 제사장들 앞에 무릎 꿇려 비웃음을 당하고. 형틀에 묶여 채찍질을 당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올라가는 동안 유다는 자신이 겪은 일이 제법 스승님의 것을 닮았다는 걸 겨우 알아차렸다.
지저스와 열두 명의 제자. 그리고 제일 먼저 십자가에서 죽었던 그들의 스승과 도망치고 도망친 끝에 제일 마지막으로 붙잡힌 유다. 로마 제국은 보란 듯이 전시할 생각인 것 같았다. 유대의 땅을 뒤흔들던 무리의 머리를 모두 잡아들였다는 뜻으로 유다의 시체를 높이 들어 온 유대 땅에 선포할 생각인 게 분명했다.
‘우리의 뜻을 거스른다면 모두 붙잡아 죽일 것이다’
억지로 돌아가는 머릿속에서 그런 결론을 내린 유다는 쓰게 웃어버렸다. 지금에 와서 이렇게 잡생각 할 틈이나 있던 건가.
‘지저스…. 지금 당신의 곁으로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었던 방식으로, 당신의 행보가 끝났음을 널리 알리는 지표가 되어버렸습니다….’
한발, 한발. 지저스가 죽었던 그 해골언덕에 올라가는 동안 유다는 조용히 마음속의 스승에게 말을 걸었다.
‘…저는 잘 했던 걸까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꼭 제가 갈 길이 아닌 것 마냥 익숙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형제들의 죽음을 눈에 담으면서, 지저스의 차가운 몸을 품에 안으면서 각오해왔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두려움보다는 후회가 심장을 무겁게 눌러와 더 고통스러웠다. 만일 자신이 제사장들의 생각을 일찌감치 알아차렸었다면 스승님은 살 수 있었을까. 나의 메시아, 지저스. 그 분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까.
언덕에 도착해 십자가에 눕혀지고 손발에 못이 박히는 순간에도 유다는 생각하고 후회했다. 십자가가 세워지고 그 위에서 마지막으로 언덕의 모습을 눈에 담고 어둠에 침잠할 때까지도.
그렇게 유다는 한번,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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