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연극 첫공에 다녀왔습니다.
CJ토월극장 2024-10-18
한 번 더 다녀오면 좋을텐데 표가 없다…….
<햄릿>은 정말 다양한 변주가 있는 극인데, 이건 거의 변형 없이 정통에 가까운 내용으로 이어갔다. 대사의 변형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지점은 현재 소장하고 있는 햄릿 극본집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예스러운 대사와 비유의 향연이 이어졌으므로 아마 맞을 것 같다. 그 탓에 시대착오적인 어떠한 대사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던 것은 아마 그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던 배우들의 노력이 있었던 때문일 것 같다.
극을 보는 중에는 ‘유령’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극을 다 보고나면 유령의 진실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어하는지다. <햄릿>에서 읽게 되는 유령이란 갈망의 발현이다. 두 파수꾼과 호레이쇼는 선왕의 죽음에 대하여 의혹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고 그러나 선왕을 죽음까지 따르지는 않는다. 햄릿은 그리고 죽음까지 따라가 흙에 파묻혀 썩어버린 말을 듣고, 선왕을 듣지 않기로 했던 어머니는 유령을 보고도 보지 못한다. 햄릿은 듣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유령의 말을 들었고, 이미 의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령이 말해주는 사인을 받아들였으며 그것으로 복수를 행하였다. 그러나 과연 햄릿 본인은 유령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 없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왕 앞에 연극이라는 이름으로 사건을 재현한 것이다.
유령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선왕이 정말로 살해당했든 아니든 복수를 선택하고 행동하기로 한 것은 햄릿 자신의 일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고민했지만 햄릿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아마 그의 의문은 폴로니우스를 실수로 살해한 이후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만 했을 것이다. 그 의문은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인… 관객도 가지고 있던 생각을 그 또한 안했을 리 없다.
다만 이제 멈출 수 없었기 때문에 거대한 죽음의 눈덩어리를 언덕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굴렸던 것이다. 폴로니우스는 자신이 죽였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일련의 죽음은 자신의 탓으로 여겨지겠지. 폴로니우스를 죽이게 된 계기가 아무리 현 왕이라고 해도, 자신이 실행한 살인 이후로는 자신이 기준점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햄릿은 선한 인물이고, 솔직한 인물이다. 그것만은 알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을 것 같다.
정말 신기한 점은 햄릿이 서른도 안 된 어린 청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배우 연기의 힘이겠지.
가장 좋았던 장면은 클로디어스가 거짓된 기도를 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무대 양쪽에서 그림자가 드리우고 무대에 내내 가로로 자리하는 계단이 가려져 직사각형만 남자 거대한 세로줄 하나와 가로줄 여럿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십자가가 겹쳐진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클로디어스는 역십자가의 중심에서 기도를 하고, 햄릿은 십자가의 중심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햄릿은 십자가의 중심에서 감옥 창살처럼 보이는 그림자들, 또는 창날의 나열처럼 보이는 그림자들을 지나서 역십자가로 내려간다. 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내려가듯이 말이다. 그러나 폴로니우스를 죽이지 않은 다음에는 다시 중앙부까지 올라가서 무대 뒷편으로 사라진다.
그러니까 햄릿은 사후에 천국에는 가닿지 못했을 것이다. 햄릿의 주변에는 연옥을 떠도는 사람들 뿐이구나. 사랑하는 아버지는 유령 되어 안식이 없고, 유령이 되어 죽은 사랑하는 오필리어 또한 천국에는 가닿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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