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드림

청사전淸蛇傳

루크피티 동양무협퓨전로맨스코미디 잡탕에유

삼셋 by 삼셋
2
0
0

나무를 대강 깎아 만든 듯한 상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로극은 흐린 눈으로 상 위를 메운 음식들을 보았다. 아무렴 옻칠을 했을 리는 없으나 거의 그에 준할 법한 붉은빛을 띠는 상 위에는 풀어헤쳐진 보자기 속에 담긴 음식들이 한가득이다. 매콤해 보이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고기볶음과 흰자와 노른자를 빈틈없이 섞어 만든 달걀물을 입힌 살코기들, 비싼 사탕 같은 향이 나는 당과. 하나같이 귀해 보이는 음식들이었다. 의심이 머리를 드는 것은 필연이었다. 설마 훔쳐 온 거 아니야?

 "소저. 이게 뭡니까."
 "아아, 보기 드문 음식 같기는 하더라니, 모르시는 겁니까? 육전이라 하더이다. 왼편에 둔 것은 청초육사이고, 당과가 있기에 좀 얻어왔지요."
 "청초육사는 그렇다 치고 육전은 황해도에서 유래한 음식인데 세계 문물 통합이 장난이 아니군요. 왜 키쿠후쿠도 있었는데 못 가져왔다고 하시지."
 "네?"
 "아닙니다."

 그러나 문득 청색 나삼이 사라진 것이 눈에 들어와 극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늘 꼼꼼히 늘어트렸던 귀밑머리도 살짝 떠서 아래의 비늘이 온통 드러나 있었다. 이상하지도 않은 것이, 경공을 써서 날듯 달렸더라도 음식들이 상하지 않게 하려면 그가 자는 동안 꼬박 한나절은 휴식을 않았으리라. 하여간 제딴에는 사람 세상 구경을 하며 이리저리 쏘다니다 문득 기름의 냄새를 맡고, 한두 입을 조심조심 베어물어 보니 진귀한 재료들이 속에 가득이라 이것을 아끼는 인간에게 맛보여 주리라고 신이 났을 광경이 저절로 상상이 되니 기력도 없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신경을 써준 것이 고마워 모양새 빼어난 당과부터 하나 골라 입에 넣어 주고, 로극은 침착하게 다시 사정을 따졌다.

 "명명을 몰라 물은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이처럼 귀한 것들을 어디서 어떻게 흥정해 왔느냐 한 것이지요. 참고로근처의장은사람발걸음으로걸으면산을넘어이틀은걸립니다."
 "음. (이쯤에서 그녀가 눈을 도록 굴렸다.) 외인을 만나서요. 바닷가 근처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잔치를 하는 집이 있어 얻어 왔다는데, 그곳에서 가져온 음식이라 했습니다. 필시 경공을 쓰는 어느 무인이겠지요."
 "아하."
 "어라, 초상집이었나."
 "면전에서 그 둘을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소저."

 로극은 한숨을 쉬었다. 면전에서 한숨을 푹 내쉬는데도 신경은 조금도 쓰지 않고(조금은 써 줘도 좋을 텐데) 빙긋 웃고만 있을 정도로 단단한 심줄을 가진 이 요괴 처자와의 기묘한 동행도 벌써 사흘째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그는 회상을 시작했다.




 탑도인塔图因은 농으로도 상서롭다고 칭할 수 없는 지방이었다.

 우선 위치 선정부터가 그랬다. 황실조차 거의 내버린 영토 최남단, 일대의 지주인 자바는 요괴의 피가 흘러 불로장생한다는 소문이 난 가문의 가장이었는데, 그뿐이라면 좋았겠으나 그는 덕 없기로 강호에 정평이 난 자였다. 지주가 지주의 도리를 모르고 사마외도의 무리를 끌어들여 민생을 착취하는 일에 집중하니 그것이 그의 첫째 책이요, 가장이 가장의 도리를 모르고 인애를 외면하여 친인척들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으니 그것이 그의 둘째 책이었다.

 기후도 서민의 고난을 돕는 일은 없었다. 사시사철 건조하여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 땅과 사람을 말려 죽일 기세로 타오르는 태양. 샘조차 생기지 않는 땅이었으나, 그나마 공기를 통해 수신의 축복을 끌어내는 것이 가능하여 농민들은 수신께 기도해 물을 긷고 농사일을 했다. 그마저도 온종일 하여도 시간 부족할 것이 농사인 것을, 하루의 절반은 물을 경작하는 데 낭비하고 있으니 효율이 살지 않아 오는 기근마다 사람이 죽어나는 일이 예사였다. 그렇다면 햇살은 그보다는 자비로웠나? 탑도인의 낮의 태양만큼 무자비한 것이 천하에 단 하나 있다면 밤의 한기였으리라. 낮에 그리도 열렬히 내리쬘 때는 언제고 밤에는 풍토 속으로 온통 숨어 버리는 온기는 야속하다고 일컫기엔 귀여울 정도다. 낮을 이겨 내면 밤이 왔고 밤을 버텨 내면 낮이 왔다.

 마치 땅 전체가 하늘로부터 버림 받은 것 같았다.

 로극 천행자卢克 天行者는 그런 탑도인 지방에서도 한없이 외곽에 가까운 지역의 주민이었다. 재해에 양친을 잃고 일찌감치 탑도인 토박이인 백부 내외의 손에서 길러진 아름다운 소년. 그는 원래는 이 지방 사람이 아니었다는 조모와 생전에 천하 곳곳을 여행했다는 부친, 애초에 풍토가 기름지고 수맥이 풍부한 지역에서 자랐다는 모친의 이야기를 동경하며 자랐다.

 그러나 그는 뭐라 해도 시골 소년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탑도인은 중원에서 너무 멀고 사파들이 가득해 마교의 침략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몇 안 되는 곳이었다. 평민에게도 열린 싸구려 무학 몇을 구해 홀로 독학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진지한 무공과는 담을 쌓은 로극이었다. 마교의 지배를 당하는 지역을 비신도 홀로 외유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백부는 그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했으나 개의치 아니하고 저도 그들처럼 될 수 있도록 백부를 설득하고 말 것이라고 다짐하기를 수 년째, 그런 로극의 희망은 최악의 방식으로 실현되고 말았다. 마교 무공의 치명적 약점이 적힌 비급을 탈취하려는 마교 무리의 침공에 백부 부부가 죽은 것이다.

 '로극.' 오비완烏備完 사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대파로 와라. 너의 아버지는 마교의 침공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막아서다가 돌아가셨단다. 내가 마침 협행 나와 있었던 장소에서 안납금阿纳金의 아들인 네가 있었던 것도 인연. 이를 기연으로 삼아 너를 내 제자로 맞는다 한들 하늘의 이치가 허한 일이니 부끄러울 것이 없겠구나. 나와 함께 가서 마교의 침공을 막고 천마와 암흑마제를 죽여 네 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않겠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자식이 부친을 살해한 이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은 인륜에서 일컫는 오랜 도리. 게다가⋯ 그가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이러한 부조리를 일상처럼 당하고, 겨우 비급 하나, 냉정하게는 그깟 힘이 담겼을 뿐인 종잇조각 몇 장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 버리지 않았는가? 인면을 쓴 그 금수의 무리를 그의 손으로 처단하여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유혹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로극을 기른 부모님이 죽은 장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큰 유혹이었다.

 사특한 땅 탑도인에 대해 말할 때 그가 부연할 수 있는 것은 애정뿐이라고 할 때, 과연 동향의 그 누가 쉬이 믿어 줄 것인가. 허나 누가 뭐라 한들 로극에게 고향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장소에 대한 애착은 그 천수를 알지 못한다. 거무튀튀한 모래에 가까운 흙과 황가의 색을 훔쳐온 듯 우아한 보랏빛으로 지던 석양을 사랑했다. 물을 긷어 나아가던 텃밭과 비가 샜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올려다보았던 지붕, 문을 드나들 때 잘 보이도록 옮겨 심은 들꽃을 사랑했다. 이 땅을 사랑했다. 아름답기는 커녕 볼품없고, 특별히 힘이 있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선하고 무해해지지도 못한 채 어중간하게 고인.

 바보 같은 그의 집이었다.

 그는 이제 정말로 탑도인을 견딜 수가 없어졌다. 사람이라면 응당 집과 가족이 있고 귀환했을 때 언제든 맞아줄 타인이 있는 곳을 고향이라고 부른다. 석양에서는 부모님의 피가 흐르고 바윗돌은 부모님의 뼈를 바수어 버린, 이제는 그와의 인연이 정말로 더는 남지 않은 세외의 지역을 고향이라고 부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하겠어요.' 로극은 대답했다. '시대파의 도사가 되어 마교와 싸우겠어요.'

 정말 그랬을까?

 밤이 깊었다. 백부 내외가 돌아가신 지도 며칠이었다. 아니, 몇 시진이었나? 아니면 몇 각? 잘 모르겠다. 화마에 삼켜지는 것만은 간신히 면한 이 집에서, 야심한 시각만 되면 들려오는 구슬픈 노랫소리가 있었다. 혹자는 그것이 귀신의 소리일 것이라고들 했다. 재수가 없어도 유분수지 하필 이 탑도인에서 사파 놈들도 아니고 마교한테 죽었느냐고, 그분들도 황당하여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고 혀를 끌끌 차며 한 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로극에게 그것은 끼릭끼릭 현 튕기는 소리도, 살았든 죽었든 사람의 목에서 흘러나온 소리도 아니었다. 촛불 그림자가 박수를 치고 별빛을 막은 한 겹 장지문의 삐걱임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 노래의 이름은 적막이었다. 마교의 침공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남은 주제에, 마교도를 물리칠 방도도 없는 주제에 오직 그것만이 사무치게 두려웠다. 로극은 입을 앙다물고, 오기껏 사고를 분산시키려 했다.

 그때 그는 정말 도사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던 걸까.

 분명히 시대파의 도사가 되겠다고 했지. 그의 스승을 자처하는 사내가 시대파의 도사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시대파가 어떤 문파인지야 뻔하다. 협의를 위해 나섰다가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더는 제자를 받지 않고 있으며, 살아남은 소수의 제자들이 하나하나 여느 대문파의 장로의 수 배 이상 강한 고수인지라 그나마 명맥을 잇는 것이 허용된 문파.

 똑똑.

 두말할 것도 없다. 현 강호의 상태는 위태로웠다. 마교도는 머릿수와 무공의 성질의 파격성으로 이 대륙을 꽉 채우기는 했으나 완전한 정권 장악에는 다소 실패했다. 그러기에는 대륙이 너무 넓었던 탓이다. 강력한 경공을 지닌 소수의 고수만으로는 전 대륙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우며, 그것은 정사파의 소수 병력이 살아남아 간간히 치고 빠지는 것이 수월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대륙은 이분되어 정사파와 마교가 세력다툼을 크게 하니, 구심점인 시대파는 예외로 친다지만 그 기세가 등등한 문파나 세가, 제후들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더욱 강력한 힘을 위해 일인자인 천마와 이인자인 암흑마제가 폐관에 들어간 지금은 정파가 다시 뭉칠 절호의 기회이자 폭발 직전의 휴식기나 다름없는 셈이다. 거기까지 설명을 들었을 때, 로극은 오비완의 마음을 이해했다. 상황의 타파를 위해서는 강력한 무인이 필요하다. 그들을 죽이고 천하를 구명할 사람이.

 똑똑.

그러나 한편으로, 본질을 생각해 볼 시간이 생겼을 때, 로극의 마음 한구석에서 생긴 의구심도 있었다. 정말 그것이 전부인가?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무인의 힘이라면 로극도 똑똑히 보았다. 사람을 나무처럼 태우고 나무를 두부처럼 가르던 그들의 힘을. 그것은 정말이지 인상적이고, 권능적이고, 무참하고, 또⋯ 무람했다. 따라서 심마가 들 것처럼 어지러운 마음 한구석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하찮기 짝이 없네, 그 힘이라는 건.

이를 악물고 뇌까리게 되는 것이다. 겨우 무력한 사람 몇을 죽여 놓고 그것이 전부인 마냥 지껄이게 되는 힘.

 협의를 위한 문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니 느는 것은 상처이고 마음을 살라먹으려 애쓰는 것은 원한이라, 그러나 참으로 괴상한 일이다. 도사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무인이 되기 위한 길이었을진대, 어찌하여 그는 냉소와 허무와 혼란한 마음을 벗지 못하나. 어쩌면 그의 어른들을 죽인 것이 그 힘에 대한 광신이었기에. 홀로 서러운 소년을 어찌 달랠 수 있을지, 하늘도 연꽃도 인간도 도무지 알지 못하기에. 근본적으로 로극의 마음이 이토록 망자에 얽매여 미령하기에⋯.

 쾅쾅.

 그쯤에서 그의 생각도 자연스레 멈추었다. 깊은 생각도 천지신명과 주위 환경이 도우셔야 가능한 법이다. 로극은 짜증보다는 경계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 생각한다. 이 시간에 누구지.

 강도인가?(1초)
 아냐 강도라고 해도 이런 평범하다 못해 다 쓰러져 가는 집을 고를 리는 없다.
 그럼 누구지.

 로극은 숨을 삼키며 일어선다. 팔을 뻗어 목검을 움켜쥐었다. 탑도인의 밤은 어둡고 매서웠다. 일평생 그러한 밤에 맞춰 암적응을 마쳐 온 눈으로, 어둠 너머의 사위를 갈라 쏘아본다. 그 속에 도사린 너는 요괴냐 비적이냐. 어느 쪽이든 편히 잠든 이들의 평온을 방해한다면.

 어리둥절해진 것은 다음 순간이다. 방 밖으로 한 걸음 나서자마자 보인 것은 말갛게 빛나는 등불의 자기주장이었다. 세상의 어느 외적도 한밤중의 침입을 준비하며 주변을 온통 환하게 밝히는 빛과 함께 찾아온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어 로극은 혼란스러워졌다.

 다소 허탈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져 맥이 탁 풀린 가운데 문간을 나선 틈에서 보인 것은 그의 또래의 소녀, 아니 겉으로 보기로는 그보다 두어 살이 더 많으니 청년 하나였다. 갓 약관이 된 듯한 나이에, 평균보다 성마르고 싸늘한 이목구비의 생김새를 가졌지만, 표정이 얼핏 화려해 보이는 인상을 죄 망치고 있었다. 어쩐지 몹시 긴장하고 안절부절못하던 여자의 낯빛에서는 때 아닌 풋내가 스쳤다. 불빛을 받아 춤을 추는 안광에서는 황금의 색이 너울거렸다.

 눈을 마주친 것은 그때였다. 황금 따윈 착각이었다는 것처럼 매끄러운 암록暗綠의 동공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무사했구나!"

 실례지만 누구신지, 따위의 말은 그것으로 가로막히고 말았다. 오랜 지기라도 보듯이 무람없는 태도에 로극은 그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저,"
 "아, 소개가 늦었군요. 본인은 백소정帛小晶이라고 합니다. 선친 대의 인연에서 시작하여 이따금 가내가 평안한지를 살피고 있었는데, 지금껏 먼 곳을 떠돌다가 재난의 경보를 이제야 듣고 왔답니다."

 그걸로 설명이 될 리가 없다, 당연하지만.

-

청사전인데 청사 분량 이 모양이어도 괜찮은 것인가... 제목부터 서사까지 백사전 패러디니까 별 수 없음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