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NCP] 유령 (완결)

[해리포터/NCP] 유령 05

유령의 메시지를 따라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으로 향하는 해리와 친구들.

Present Scene 9. 

호그와트행 급행열차는 호그스미드 역에서 정차했다. 해리는 신입생들을 이끌어 호수를 건널 배에 태우는 해그리드를 발견하고 그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해그리드는 해리에게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곧 해리와 두 친구는 세스트랄이 끄는 마차를 타고 호그와트에 도착했다. 연회장엔 이미 신입생 기숙사 배정식과 환영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매년 보지만 볼 때마다 재미있는 기숙사 배정식을 보며 해리는 만찬을 즐겼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취해있다 보니 해리는 유령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연회가 끝난 후 기숙사로 올라간 해리는 짐을 정리하고 창가에 앉아 시리우스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Dear, 시리우스.

대부, 해리에요. 저 호그와트에 도착했어요. 벌써 4학년이네요. 올해엔 대부가 선물한 파이어볼트로 꼭 퀴디치 월드컵에서 우승할게요. 우승컵 받으면 시리우스한테도 꼭 보여줄 테니 응원해줘요. 시리우스, 저번 편지에선 따뜻한 남쪽에 있다던데 지금은 어디에 있어요? 벅빅은 잘 있나요? …」

편지를 써 내려가던 해리는 유령에 대한 얘기를 시리우스에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침입자가 데스 이터나 디멘터라고 생각했을 땐 대부가 걱정할까 봐 얘기하지 못 했는데, 유령인걸 알게 된 지금은 얘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해리는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다가 호그스미드 외출 날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에 가보고 나서 얘기하기로 결정하고 편지를 마저 썼다. 다 쓴 편지를 돌돌 말아 헤드위그의 발에 잘 묶은 후 시리우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며 날려 보냈다. 헤드위그가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바라보다 해리는 창가에서 일어나 침대로 갔다.

호그와트 안이니까 그는 나타나지 않겠지. 그래도 혹시 오지 않을까?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 나한테 바라는 게 있는 거야? 그렇다면 왜 나야? 그리고…, 당신을 어디서 본 걸까? 해리는 곧 잠이 들었다.

 Past Scene 9.

‘이대로 있다간 말포이 가에 밀리고 말 거야….’

응접실에서 오리온 블랙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가던 레귤러스가 응접실을 지나다 그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레귤러스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짝 열린 문틈으로 응접실 안을 살폈다. 오리온은 초조한 듯 안락의자 팔걸이를 가운뎃손가락으로 딱딱 소리 나게 두드리고 있었다. 발부르가 역시 이마에 손을 짚고 미간을 있는 대로 구기고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에 숨어서 지켜보던 레귤러스까지 덩달아 긴장 되었다. 발부르가가 이마에서 손을 떼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브라삭스 말포이는 거의 자기 아들을 바친 거나 다름없더군요. 루시우스는 벌써 ‘그 분’의 최측근 자리에 섰어요. 블랙 가에서도 벨라트릭스가 ‘그 분’의 신임을 얻고 있긴 하지만 그래봤자 벨라는 지금 레스트랭가의 일원이죠. 우리도 뭔가 해야 해요.’

‘역시 그 방법밖엔 없어. 시리우스를 ‘그 분’께 보내야 해.’

오리온의 입에서 시리우스의 이름이 나오자 레귤러스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낼 뻔했다. 간신히 입을 막고 문에서 떨어져 벽에 몸을 기대었다. 레귤러스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대체 시리우스를 어떻게 하려는 거야? ‘그 사람’한테 시리우스를 팔기라도 하려는 거야?

‘하지만 무슨 수로…. 작년 여름에 시리우스가 가출한 이후로 우린 그 녀석 그림자도 보지 못 했어요.’

‘레귤러스를 이용하면 돼. 동생이라면 끔찍이 아끼는 녀석이니 덫을 놓으면 걸려들겠지. 한 번에 잡아들여야 돼. 이번에 실패하면 두 번은 걸려들지 않을 테니. 내 아들이지만 정말 영악한 놈이야.’

맙소사,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레귤러스는 덜덜 떨리는 몸을 끌어안으며 주저앉았다. 그 때 시리우스를 따라 집을 나갔어야 했나? 하지만 두려웠었다. 레귤러스는 자신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어왔던 블랙가를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이곳이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가장 어둠에 깊숙이 물들어버린 곳이었는데. 레귤러스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자신도 모르게 레귤러스의 목엔 올가미가 걸려있었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레귤러스의 귀에 블랙 가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이 들어왔다. 얄궂게도 오늘은 크리스마스였다. 캐럴 너머로 기억 속 어린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귤러스? 레귤러스! 있으면 대답 좀 해. 레귤러스!]

아직 시리우스와 레귤러스 모두 호그와트에 다니기 전, 어린 형제에게 블랙 가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의 어느 크리스마스 날 시리우스와 블랙 가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모르는 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엄청난 역사를 자랑하는 그리몰드 12번가 저택엔 방이 참 많았는데 레귤러스는 매번 자신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시리우스를 피해 저택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었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창고 같은 방이었는데 레귤러스는 그 속에서 빈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이번에는 시리우스도 절대 날 찾지 못 할 거야. 처음엔 성공적으로 숨었다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상자 안은 좁고 어두웠고 추웠다. 레귤러스는 덜컥 불안해졌다. 시리우스가 날 못 찾으면 어떡하지? 레귤러스는 밖으로 나가려 상자 뚜껑을 위로 밀어보았지만 어째서인지 뚜껑은 굳건히 닫혀있었다. 놀란 레귤러스가 겁에 질려 뚜껑을 두들겼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상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고요한 상자 속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캐럴만이 유일하게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두려움에 엉엉 울던 레귤러스는 어느새 잠이 들었고 캐럴 사이로 어렴풋이 들리는 자신을 찾는 시리우스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레귤러스? 어디 있는 거야? 내가 졌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와도 돼! 레귤러스, 제발 좀 나와!]

시리우스다! 시리우스가 왔어! 레귤러스는 시리우스의 이름을 부르며 상자를 마구 두드렸다. 형! 형! 나 여기 있어! 시리우스! 나 좀 꺼내 줘! 나 너무 무서워!

[레귤러스! 너 여기 어떻게 들어간 거야?]

끼익, 나무 뚜껑을 미는 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위로 빛이 한 줄기 들어왔다. 열린 뚜껑 틈새로 빛과 함께 시리우스의 얼굴이 보였다. 시리우스가 날 찾았어…. 시리우스가 날 구해줬어…. 레귤러스는 안도감과 반가움에 펑펑 눈물을 쏟았다. 시리우스는 레귤러스를 일으켜 상자에서 꺼내주고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미안해, 레귤러스. 내가 너무 늦게 왔지? 울지 마, 레귤러스…. 형이 미안해….]

시리우스…, 시리우스…! 나 너무 무서웠어. 너무 어둡고 추웠는데 혼자여서 더 무서웠어.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절대 널 혼자 두지 않을 거야, 레귤러스.]

그날은 레귤러스가 기억하는 최악의 크리스마스였다. 그런데 이 시간 이후로 최악의 크리스마스는 오늘로 바뀌게 될 것만 같다.

‘하지만 시리우스를 잡는다고 쳐도 그 아이가 순순히 우리 말을 듣겠어요? 분명히 반항할 텐데…. 어떻게 ‘그 분’한테 보낼 수 있겠어요?’

‘그건 걱정 마, 발부르가. 임페리우스 마법을 쓰면 되니까.’

응접실에서 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레귤러스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한테 뭘 하겠다고? 오, 내가 잘 못 들은 걸 거야. 제발….

‘임페리우스를 마법사에게 쓰는 건 불법이잖아요? 걸리면 잡혀가게 될 거예요, 오리온.’

‘발부르가, 제 아무리 마법부라고 한들 블랙가의 당주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마법부 매수하는 건 일도 아니야. 그리고 곧 ‘그 분’의 시대가 오면 용서받지 못 할 저주를 쓰는 게 더 이상 불법이 아니게 될 테니까. 우리는 시대에 조금 앞서가는 것뿐이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리우스를 꼭두각시로 만들어서 ‘그 사람’에게 바치려고 하는 거야. 블랙가의 장남, 차기 당주를 ‘그 사람’ 밑으로 보낸다는 건 엄청난 뇌물이지. 아버지, 어머니, 정말 아들보다 가문의 명예가 더 중요한 건가요?

레귤러스는 사랑하는 형을 떠올렸다. 레귤러스는 시리우스의 웃는 모습이 좋았다. 시리우스는 가만히 있어도 얼굴을 찡그려도 잘 생겼지만 웃을 때가 가장 멋졌다. 입을 크게 벌리고 시원하게 웃을 때면 레귤러스도 기분이 좋아졌다. 시리우스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절대 묶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 묶이게 되면 시리우스는 가장 매력적인 생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시리우스의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아. 시리우스를 보낼 순 없어. 시리우스가 평생 꼭두각시로 살게 내버려 두진 않을 거야.

[이 거울은 두 개가 짝인데 두 사람이 나눠 갖고 거울을 보며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면 서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화할 수 있어. 제임스랑 몰래 녹턴 앨리에 가서 사왔지. 나 호그와트에 있는 동안 너 혼자 내버려둔 게 신경 쓰여서.]

레귤러스는 품속에서 ‘별의 거울’을 꺼내 손끝으로 살짝 쓸어보았다. 시리우스에게 거울을 받은 이후로 레귤러스는 항상 거울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거울을 품속에 넣고 있으면 시리우스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난 혼자가 아닌 거야. 시리우스랑 항상 연결되어 있어.

[레귤러스, 네가 슬리데린이어도 넌 내 동생이야. 난 항상 네 편이야. 우린 형제니까. 너도 항상 내 편이지?]

나도 항상 네 편이야, 시리우스. 우린 형제니까.

[블랙가에 있는 건 위험해. 내가 아직은 어리고 힘이 없어서 너까지 책임질 순 없지만 내가 졸업하고 준비가 되면 꼭 널 블랙 가에서 꺼내줄게. 진짜야, 맹세할게.]

이건 안 될 것 같아, 시리우스…. 나도 도망치고 싶은데 난 너무 늦은 거 같아. 미안해.

[널 그곳에 버려두지 않을 거야. 너를 혼자 두진 않을 거야, 절대로.]

나도 절대 형을 버리지 않을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겠어.

레귤러스가 일어서서 문을 열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런 등장에 오리온과 발부르가는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 했다. 레귤러스는 오리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 ‘그 분’에겐 제가 가겠어요. 저를 보내주세요. 제가 시리우스 대신 모든 걸 하겠어요. 뭐든지 다요.’

 Present Scene 10. 

호그스미드에 도착한 해리와 두 친구는 복작복작한 스리 브룸스틱스와 허니듀크를 피해 가장 한가한 깃펜 가게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론의 깃펜을 하나 사고 그들은 조심스레 뒷문으로 나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투명망토를 꺼내 썼다. 이제 14살인 세 사람이 망토를 같이 쓰는 건 너무 불편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붐비는 호그스미드에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에 가는 건 투명 망토를 쓰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론, 망토 너무 당기지 마! 더 당기다간 내가 망토에서 벗어나겠어!”

“와, 너무하네! 지금 딱 봐도 헤르미온느 네가 더 많이 덮고 있거든? 난 지금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거 몰라? 나야 말로 더 당기지 않으면 망토 밖으로 빠지겠어!”

“둘 다 그만하고 나한테 바짝 붙어. 확실히 론이 작년보다 키가 많이 커서 -이 말을 하면서 해리는 속이 쓰렸다- 셋이 망토 쓰기가 불편하네. 악! 론, 내 발 밟지 마!”

“미안, 해리. 수그리고 걷다 보니까 잘 안 보였어.”

“둘 다 발 맞춰서 잘 좀 걸어봐!”

세 사람은 엉거주춤 걸으며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으로 올라가는 비탈길로 향했다. 이윽고 그들이 비탈길에 접어들자 저 위로 목적지가 보였다. 해리는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을 바라보며 3개월 전 그 곳에서 대부와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지금도 꿈만 같다. 살아남은 아이 해리 포터는 부모님이 볼드모트에게 살해당한 후 더즐리 가족에게 맡겨져 더부살이를 해왔다. 해리에게 가족이란 아무리 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랬는데. 가족이 생겼다. 나에게 대부가 있을 줄은 몰랐다. 같이 살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시리우스 블랙, 내 대부, 내 가족.

“겨우 다 왔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곳이야.”

“해리, 비밀지도 한 번 더 확인해 봐.”

어느새 비탈길을 오른 세 친구는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 문 앞에 다다랐다. 해리는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꺼내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오두막집 안과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지도 위엔 세 친구의 이름밖엔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어, 우리밖에.”

“좋아. 그럼 이제 문 연다. 알로호모라!”

낡은 문이 열리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오두막집 내부가 드러났다. 3개월 전 와봤던 곳인데도 세 사람은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저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존재 때문일까,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엔 음산한 기운이 흐르는 듯했다. 해리는 천천히 한 걸음을 안으로 내디뎠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바닥에 해리의 발자국이 찍혔다. 뒤따라 두 친구도 안으로 들어왔고 문을 닫고 나서야 그들은 투명 망토를 벗었다.

오두막집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들은 긴장감에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두막집 내부를 둘러보고만 있었다. 다 떨어진 낡은 소파와 먼지가 수북이 쌓인 테이블, 잿더미만 남아있는 벽난로와 그 위에서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커다란 액자, 그리고 건너편 방문 사이로 보이는 먼지 낀 피아노. 모든 것이 3개월 전 그대로였다. 해리는 이곳에서 시리우스 블랙을 만났던 그날이 생생히 떠올랐다. 저 쪽에서 대부를 처음 만났고 뒤쪽 문에서 루핀 교수님이 들어오셨었지, 뒤이어 스네이프 교수도 갑자기 나타났었고. 해리는 기억을 곱씹어볼수록 대부가 그리워졌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아직도 도망 다니고 있는 시리우스 블랙. 수배된 상황에서도 대자가 보고 싶어 위험을 무릅쓰고 호그와트까지 잠입했던 못 말리는 대부, 내 하나뿐인 가족.

“저기, 둘 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조용하니까 더 무섭잖아.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음, 일단 우리 눈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지? 해리, 넌 뭐 보이는 거 없어?”

먼저 침묵을 깬 건 론이었다. 해리는 생각을 멈추고 헤르미온느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해리 역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안 보여. 유령 모습은커녕 물 자국도 안 보이네. 낮이라서 안 보이는 건가?”

“설마 밤에 여길 다시 와야 한다는 건 아니지? 난 지금도 당장 여기서 나가고 싶어.”

“나도 밤에 다시 오긴 싫은데. 그럼 우린 또 규칙을 어겨야 하고 -“헤르미온느, 이젠 규칙 어기는데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론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셋이서 다시 투명망토를 쓰고 엉거주춤하면서 여기까지 와야 되잖아. 해리, 그 유령이 나타날 징조 같은 거 안 느껴져?”

“글쎄, 딱히 징조 같은 건 안 느껴지는데. 그 유령이 나타날 땐 일단 내가 가위에 눌려야 하고 그런 다음 문에서 노크 소리가 세 번 들려야….”

“노크? 노크하는 유령은 살다 살다 처음 듣네! 유령이면 그냥 벽을 통과할 것이지 뭐 하러 번거롭게 노크를….”

 똑- 똑- 똑-

조용히 울려 퍼지는 노크 소리에 해리와 론은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헤르미온느 역시 깜짝 놀라며 노크 소리가 들린 문을 바라보았다. 오두막집으로 들어오는 문이었다. 세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부들부들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끼이익-

이윽고 문이 열렸고, 문 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Past Scene 10.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레귤러스, 네가 어떻게!!’

미안해, 시리우스. 하지만 형을 위해서야.

‘네가 슬리데린이어도 난 널 믿었는데! 너도 다른 슬리데린 놈들이랑 똑같았구나. 넌…, 너는 다를 줄 알았는데!’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게 나의 최선인 걸….

‘뭐라도 말 좀 해, 레귤러스,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 응? 아버지가 시켜서 그런 거지? 넌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지? 그렇다고 해…, 말하기 힘들면 그냥 고개만 끄덕여도 돼, 응?’

‘아니야. 아버지가 억지로 시킨 거 아니야. 내가 하겠다고 했어.’

‘…거짓말. 거짓말이지? 레귤러스가…, 내 동생이 그럴 리가 없어! 제발 솔직히 말해 줘, 레귤러스. 어서 아버지가 시킨 거라고 말해! 데스 이터가 되기 싫다고 말하라고! 그럼 내가 널 데리고 도망칠게. 레귤러스, 나 졸업하면 오러가 되기로 했어. 알파드 삼촌이 날 위해 금을 물려주겠다고도 했어. 내가 널 책임질 수 있어. 그러니까 날 믿고 나한테 와. 널 블랙 가에서 꺼내주겠다고 약속했잖아.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미안해, 형…. 난 블랙가에 남을 거야. 블랙가 당주가 될 거고, 데스 이터가 돼서 ‘그 분’ 밑으로 들어갈 거야.’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시리우스의 충격 받은 얼굴을 보는 건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힘든 일이었다. 시리우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너 정말 진심이야? 네가 선택한 게 그거야? 네 의지로 선택한 거냐고!’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건가, 어린 블랙? 선택도 결과도 모두 네 몫이라는 걸 명심하렴.]

왜 지금 모자의 말이 떠오르는 걸까? 선택도 결과도 모두 내 몫…. 레귤러스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밀어내었다. 시리우스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시리우스를 위해서야…. 레귤러스는 마음을 다잡고 대답했다.

‘내 의지로 선택한 거야. 존중해 줘, 시리우스.’

시리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처음엔 충격에 말이 나오질 않았고 이후엔 배신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왔다. 믿었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믿었었는데! 레귤러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나한테…. 가슴이 저릴 듯이 아팠다. 항상 같이 있을 줄 알았다. 평생 내 옆에 있어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레귤러스는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것도 스스로 선택해서. 시리우스는 분노에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시리우스, 화 많이 난 거 알아. 이해해. 하지만 나도 이해해 주면 안 될까? 내가 데스 이터가 된다고 해서 우리가 형제가 아닌 건 아니잖아?’

레귤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리우스가 흔들리는 레귤러스의 파란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저 눈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이젠 네 눈을 봐도 널 믿질 못 하겠다. 안녕, 레귤러스….

‘아니. 이젠 아니야, 레귤러스. 우리가 형제라는 사실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절대로 예전 같진 못 할 거야. 이젠 더 이상…, 전처럼 널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네가 블랙가에 남아있는 이상 난 널 전처럼 사랑할 수 없어. 난 졸업하면 완전히 블랙 가에서 벗어날 거야. 그럼 너와도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고. …그래. 네 선택을 존중해서 떠나줄게, 레귤러스.’

시리우스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 걸어갔다. 레귤러스는 차마 붙잡지도 손을 뻗지도 못 한 채 멀어지는 시리우스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한 번은 돌아볼 지도 몰라…. 한 번만 돌아봐봐, 시리우스.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했잖아. 절대 날 혼자 두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정말 이렇게 가버리는 거야? 시리우스, 시리우스….

레귤러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혹시 시리우스가 마음이 바뀌어서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날 안아주면서 미안했다고, 절대 날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줄 거야. 블랙가에 남아도, 데스 이터가 되어도 넌 내 동생이라고 날 믿는다고 해줄 거야. 그렇지, 시리우스?

하지만 해가 넘어가고 어두워져도 시리우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레귤러스는 겁이 났다. 이대로 정말 시리우스가 자신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레귤러스는 앞뒤 생각 않고 무작정 그리핀도르 기숙사 입구로 달려갔다. 기억 속 크리스마스에서 상자 안에 갇힌 채로 시리우스를 찾았듯이 미친 듯이 기숙사 문을 두드리며 시리우스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암호를 대지 않으면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는 그리핀도르 기숙사 문지기의 짜증 내는 목소리 뿐이었다. 잠시 동안 문 앞에 서 있던 레귤러스는 이내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선택도 결과도 모두 네 몫이라는 걸 명심하렴.]

그래, 이건 내가 선택한 거야. 하지만 이건 시리우스를 위해서였어. 그리고 난 절대로…, 이런 결과를 바란 게 아니었단 말야….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정말 몰랐어….

레귤러스는 슬리데린 기숙사로 뛰어갔다. 자신의 방에 들어가선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품속에서 ‘별의 거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시리우스의 이름을 불렀다. 시리우스, 시리우스. 시리우스? 시리우스! 시리우스, 시리우스! 시리우스 블랙! 듣고 있잖아! 제발 대답해 줘, 시리우스…. 시리우스….

레귤러스는 밤새도록 거울에 대고 시리우스의 이름을 불렀지만 거울은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 201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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