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w
리들해리
*축구에 대한 지식 전무함
잠자리에서 일어난 해리는 제집에서의 습관대로 창문을 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좌우로 돌리다가 문득 자신이 누웠던 침대의 옆자리를 바라본다. 자신이 일어나 흐트러진 것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별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창가로 향했다. 하늘을 먼저 쳐다보니 날이 흐리다. 곧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창문을 열자 찬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해리는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몸을 움츠렸다. 눅눅한 공기가 풀 냄새와 섞여 상쾌했다. 찬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방 안을 채웠던 정사의 냄새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해리는 천천히 침대 위에 몸을 뉘고 이불을 덮었다. 고개를 숙이고 제 몸을 바라보자 붉게 물든 상체가 눈에 들어왔다. 창밖에 아무도 없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얼굴을 붉힌다.
해리는 대체 리들이 자신을 왜 이렇게 붙잡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전혀 해리를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해리 또한 그에게 큰 애정이 없었다. 종종 섹스를 원할 때 취향에 맞게 놀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좋았지만, 해리는 이런 관계보다는 연인을 만드는 것을 선호했다. 물론 리들은 은연중에 해리를 연인 취급 하긴 했지만, 해리가 느끼기에 이것은 딱히 연애로 느껴지지 않았다. 리들은 해리에게 너무나 정적이고 비즈니스적으로 굴었고, 평범한 대화나 데이트 또한 없었다. 리들은 밖에서도 해리를 굳이 아는 척 하거나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해리는 왜 리들이 자신에게 고백을 했고, 자신과 주기적으로 섹스를 하며 자신을 옭아매는지 알 수 없었다.
둘의 사이는 중학생 시절부터 이어진다. 동네마다 유명한 아이들이 하나씩 있는데, 해리가 사는 동네에는 두 아이가 가장 유명했다. 날렵한 체형과 빠른 속도로 인해 미드필더 유망주로 알려진 축구부 해리 포터와 수리, 논술 등의 전국대회마다 1등을 놓치지 않는 인재 톰 리들이었다. 둘은 서로의 존재만 알고 지내다가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에 달팽이 장학재단의 호레이스 슬러그혼 회장이 주최하는 우수 장학생 기념식에서 처음 인사를 했다. 슬러그혼 회장의 강요에 의해 인사를 하게 됐지만, 그 이후 칼같이 등 돌려 자신을 피하는 리들 탓에 해리는 어쩌면 그가 재수 없는 부류거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 둘 중 하나라고 확신을 하였다.
3개월이라는 긴 방학이 지나, 해리는 중학교를 졸업한 해리는 동네에서 축구로 유명한 블랙레이크 학교에 입학했다. 축구부 코치와 면담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일찍 갔지만 시간표를 받고도 면담이 길어져 첫 수업에 10분 가량 늦어졌다. 해리는 축구팀 유니폼을 입은 채로 다 열린 가방을 들고 땀을 흘리며 교실 문을 조심히 열었다.
“죄송합니다, 맥고나걸 부인….”
해리는 사과를 하며 문 앞에 섰고, 자신을 바라보는 열댓명의 아이들과 맥고나걸 부인을 마주했다. 맥고나걸 부인은 “네가 해리구나. 빈 자리에 가서 앉으렴. 이미 후치 부인에게 일정은 전달 받아서…” 하며 말했지만, 그 소리는 해리의 머릿속에 전달되지 못했다. 교실 맨 앞 중앙 자리에 앉은 톰 리들이 자신을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그를 처음 마주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를 떠올린 적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이 이전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이상했다. 어떤 환희를 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해리는 애써 그 시선을 피하며 다시 한번 맥고나걸 부인에게 사과를 하고 교실 맨 뒷자리의 빈자리로 몸을 옮겼다.
“네가 그 축구부의 해리 포터니?”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애가 씨익 웃으며 속닥였다. 해리는 고개를 팬서비스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해리에게 관심을 갖는 또래 남자아이들은 많았다. 이 남자애도 그런 부류일 거라 생각하며 해리는 다시 가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형이 블랙레이크 출신인 몬트로즈 맥파이즈의 프레드 위즐리와 조지 위즐리야.”
“뭐? 진짜?”
“반가워. 난 로날드 위즐리야. 잘 부탁해.”
“거기 뒤에, 조용히 하렴.”
둘이 악수를 하는 도중 교실 앞쪽에서 엄격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해리와 론은 동시에 맥고나걸 부인을 바라봤다. 학생들이 모두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리들은 해리가 아닌 해리와 론의 다잡은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와 론은 다급하게 손을 놓고 부인에게 사과했다. 수업은 바로 시작되었고, 해리는 다급하게 책을 꺼냈다.
“안녕, 포터.”
해리는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자신이 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 눈앞에 뻗어져 있는 하얗고 너무나 투명해 핏줄이 울거진 것이 다 보이는 그 커다란 손을 바라봤다. 잠결에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자연스럽게 그 손을 다잡으며 “어, 안.. 안녕.” 하고 반대편 손으로 눈을 비비고 안경을 고쳐 썼다. 해리는 그제야 제 앞의 상대를 바라봤다. 톰 리들이었다.
“오랜만이야.”
리들의 그 말에 우스웠다. 오랜만일게 있나? 너 나 싫어하던 거 아니었니? 해리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그저 미소를 지으며 “그러게. 잘 지냈니?” 라고 되물었다. “그럭저럭.” 그런 어색한 답이 되돌아왔다. 해리는 여전히 리들이 제 손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리들은 그 손을 더 꽉 잡았다.
“저기, 손…”
“너와 이렇게 악수를 하는 게 내가 처음이길 바랐는데.”
“뭐?”
“반가워. 잘 지내보자.”
“어, 어어. 그래. 잘 부탁해.”
해리는 그제야 자신을 놓아주는 손을 째려보고는 제 오른손을 탈탈 털었다. 리들은 환하고 다정해 보이지만 어쩐지 음침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실 뒤편에서 “해리! 나와봐,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 하는 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론의 목소리가 자신을 구해주기라도 하는 동아줄 같아서 신나 하며 “잠깐만!” 하고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리들, 나는 론이 불러서 말이야...”
그러자 리들은 해리의 어깨를 꾹 잡고 누르며 해리가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해리는 당황하며 리들을 쳐다봤고, 리들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어쩐지 불편해 보였다.
“난 톰이야.”
“어, 알아.”
“아는구나.”
“어… 저기, 나 좀 놔줄래?”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아? 나랑 대화하고 있잖아.”
“뭐?”
"너랑 대화가 아직 안 끝났다는 소리야.“
“너 무슨…”
해리가 당황하고 있는 중, 론이 누군가를 끌고 둘 사이로 다가왔다. 론은 미소를 지으며 해리에게 시무스와 딘, 네빌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고는 리들을 보고 “와! 너도 우리 반이야? 너 그 언덕 위에 사는 걔 맞지?” 하고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해리는 바로 시무스, 딘, 네빌과 인사를 했다. 몇 마디 나누고 고개를 돌리자 리들은 자리에 없었다.
해리는 리들과의 첫 만남을 그렇게 기억한다. 뭔가 불쾌하고 어긋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독점하고 싶어 한다는 이미지가 강렬했다. 해리는 론과 아주 잘 맞았고, 이후에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라는 여학생과도 친해지면서 셋이 함께 다니게 됐다. 그러자 톰 리들은 해리가 혼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해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해리로서도 신기한 점은, 리들과 자신이 아주 짧은 연애를 했었다는 점이다. 졸업반이 되기 직전의 여름방학. 리들은 밤늦게 해리의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는 무언가에게 쫓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해리를 붙잡고 애걸복걸했다.
“널 갖고 싶어, 해리.”
해리가 ‘네 것이 되어 줄게.’ 라고 하지 않으면, 리들은 당장에라도 말라 죽을 것 처럼 굴었다. 해리는 아무런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톰 리들을 사랑한 적도 없었거니와, 리들의 말이 ‘널 좋아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유권을 리들에게 넘긴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그것이 ‘사귀자’는 의미를 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해리는 이 어중간한 문장을 머릿속으로 이해하려는 중에 리들에게 키스를 받았다. 그 키스는 해리로서는 첫 키스였다. 축축하고 끈적하고 뜨겁고 야릇한 기분이 해리의 혀 끝에서부터 심장으로 이어져 뇌와 하반신으로 이어졌다. 그 농밀한 기분을 느끼며 헐떡이고 있을 쯤, 리들은 “널… 넌 내가 가질 거야.” 하는 말을 들었다. 해리는 신음인지 답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리들에게 키스를 졸랐다.
그 이후로 해리는 종종 리들과 키스를 하는 사이가 됐다. 그렇게 키스를 하다 보니 서로의 것을 만져주는 사이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종종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리들은 해리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 해리는 그 소유권에 대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그저 지나쳤다. 리들은 해리의 깊은 곳까지 제 것을 밀어 넣고, 해리의 목덜미를 이로 물면서도 해리를 갖지 못한 것 처럼 굴었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해리가 축구부 합숙 훈련에 들어가면서 흐지부지되었다. 리들은 더 이상 해리를 찾아오지 않았고, 리들에게 큰마음이 없었던 해리는 굳이 리들을 찾지 않았다.
해리 포터는 현재 영국 최고의 미드필더가 되었고, 한때 프레드와 조지가 입단해있던 몬트로즈 맥파이즈에 소속되어 있는지 4년째였다. 최근 국제 친선경기에서 꽤 심각한 무릎 부상을 얻은 해리는 강제적으로 두 달 동안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무릎이 꽤 많이 나아졌다고 판단되었을 때, 해리는 팀에 복귀해 재활치료를 받으라고 전달받았다. 해리가 두 달 만에 팀에 방문했을 때, 팀 닥터는 꽤 흥분한 목소리로 “요즘 우리 팀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 알아요?”라고 물었다.
“아뇨? 팀 소식은 들은 게 없어요.”
“법무팀에 엄청난 미남이 들어왔대요. 해리한테 심하게 태클 걸었던 그 선수 기억하죠?”
“못 잊죠.”
“그 선수는 앞으로 반년 동안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어요.”
“네? 그건 좀…, 잠깐. 그런 게 돼요?”
“그것도 그 법무부 뉴비가 한 일이래요.”
“악의적인 태클이긴 했지만, 친선경기에서 그렇게까지 된다고요?”
“다들 그렇게 말했어요. 심지어 원래 2년이었는데, 그쪽에서 항의해서 반년으로 줄어든 거래요.”
“와우.”
“어떤 사람인지 구경하러 가야겠네.”
“블랙 코치 만나러 가봐요. 그럼 몰래 볼 수 있게 해줄걸요? 블랙 코치 맨날 사고 쳐서 법무부에 자문받으러 가잖아요.”
그 말에 팀 닥터가 킥킥 거리면서 웃었다. 해리는 그와 같이 웃으며 “루핀, 그만 놀려요.” 했다. 루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답했다. 다시 재활치료가 시작되었고, 해리는 여러 테스트를 하며 무릎 상태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낫고 있고, 금방 원래대로 회복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해리는 밝은 표정으로 메디컬 센터를 빠져나왔다.
해리가 블랙 코치, 그러니까 해리의 대부인 시리우스 블랙을 찾아가기 위해 본부 건물로 향하던 중이었다. 멀리서 “포터!”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아주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해리에게는 종종 뜨거운 숨과 짙은 색욕에 젖은 목소리로 해리의 귓가를 울리던 목소리였다. 해리는 인상을 찡그리며 ‘설마, 톰 리들?’이라고 생각했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짙은 회색빛 정장을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한 하얀 피부의 남자는 톰 리들이었다. 해리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포터, 다리는 괜찮아?”
“안녕. 오랜만이다.”
“다리…”
“어? 아, 다리 괜찮아. 팀닥이 금방 나을 거래.”
“다행이다. 걱정했어.”
“너도 우리 팀 팬이구나?”
“아, 나 최근에 너희 팀 법무부에 들어갔어.”
‘으엑, 설마 그 뉴비?’ 해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리들을 바라봤다. 엄청난 미남인 것은 분명했다. 고등학생 때도 잘생긴 외모였는데, 성숙해진 데다가 멀끔하게 꾸며 명품 정장으로 온 몸을 도배하니 빛이 나기까지 했다. 하긴, 잘 사는 집 아들이랬지.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들을 바라봤다. 어린 시절 서로의 성욕을 채워주던 친구를 직장에서 만나다니. 해리는 이 민망한 기분을 어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모르는 척, 모르는 사이로 지내면 안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리들을 마주했다.
“보고 싶었어.”
“어…, 그래? 나도.”
어, 그래? 나도??? 해리는 자신의 답변이 너무나 황당하다 느끼며 상상 속에서 자신의 뒤통수를 때렸다.
“오늘 시간 돼?”
“오늘? 왜?”
해리는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이 서류만 제출하면 퇴근이거든. 오랜만에 만났는데 식사나 하자고.”
“아~ 식사… 좋지. 그래. 어, 근데 나는…”
“일정 없지? 오늘 팀 닥터 만났으면 더 이상 재활치료는 없을 것이고.”
젠장.
짙은 회색 아우디에 올라탄 해리는 차에서 나는 냄새조차도 톰 리들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리는 운전이 귀찮아 아직 차를 사지 않았고, 팀 경기장 근처에 집을 얻었다. 멀리 나갈 일이 있으면 캡을 탔고, 공식적인 일일 경우에는 팀에서 차를 대여해줬기 때문이다. 새삼 톰 리들이란 인물이 더 멀게 느껴졌다. 해리는 아무런 말 없이 운전을 하는 톰을 힐끔 쳐다봤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애매한 사이로 남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연락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어색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고, 그저 성욕만 채우는 사이었던데다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지면서 마주치지 않는 관계가 됐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고, 약 5년 만에 마주치자마자 바로 밥을 먹으러 간다고? 해리는 이 상황이 어색해서 미칠 것 같았다.
둘은 고급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사람들 사이에서 해리는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앉아있었다. 해리의 유명세에 의해 사람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지만, 해리는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 먹는 싸구려 피자나 파스타와는 달랐다. “아마 네가 좋아할 거야.”라며 리들이 고르는 요리들은 정말 해리의 입맛에 딱 맞았다. 리들이 어떻게 해리의 입맛을 딱 맞췄는지에 대해서 해리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해리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빠르게 이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 치운 후,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해리의 목표였다.
식사를 마친 후에 리들은 제집으로 해리를 초대했다. 해리는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집에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라고 되물었지만, 리들은 “넌 상관 없어.”라고 답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했다. 머릿속으로 ‘혹시 내가 네 것의 일부라서 그런 거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괜히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해리에게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것은 확인해서는 안될 판도라 상자였다. 열었다간 재앙이 불어 닥칠지도 모른다.
해리는 리들의 집에 들어섰고, 리들은 자연스럽게 해리에게 입 맞췄다. 해리는 자신이 이것을 예상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체 톰 리들이라는 인물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저 허락을 받지 않아도 몸을 섞을 수 있는 편한 섹스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우리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귀어오던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 그것도 아니라면 해리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톰의 소유물이었던 걸까? 해리는 톰에 의해 옷이 벗겨지면서 그 생각들을 멈췄다. 의미 없는 일들이다. 해리도 이 관계가 딱히 불편하진 않았다.
톰 리들과 해리 포터에 대한 이런 영양가 없는 긴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해리가 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별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해리는 여전히 리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고, 자신을 원하는 듯하지만 여전히 깊이 있는 관계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어 보이는 리들에게 불편함이 들기까지 했다. 해리는 공인으로서 더 이상 가벼운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고, 리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리들이라는 인물에게 애정이나 소유욕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리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소유욕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해리는 깔끔하게 정리된 리들의 방을 구경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를 정리할 생각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워 입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에서 오직 유일하게 해리가 일어난 자리만이 너저분했다. 해리는 마치 자신이 그의 오점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해리에게 있어서는 되려 톰 리들이라는 존재가 오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쩌면 둘은 전혀 맞지 않는 상대이기 때문일지 몰랐다. 해리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해리는 단 한 번도 리들을 톰이라고 불러본 적 없고, 리들의 집 비밀번호를 알게 된 적도 없으며, 리들에게 애정을 느낀 적도 없었다. 리들이 자신에게 소유욕과 유사한 감정을 갖는 것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 해본 적도 없었다.
해리는 목이 마름에도 톰의 집 냉장고를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고 구겨진 운동화를 그대로 신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현관을 둘러보다가 제 운동화에서 떨어진 흙먼지를 바라본다. 하얀 바닥에 오점 같은 그 먼지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괜히 발로 그걸 구석으로 밀어낸다. 짓이겨진 먼지는 긴 흔적을 남긴다. 해리는 그걸 닦아내길 포기한다. 자신이 남긴 흔적들을 치우는 것은 톰에게 별로 아주 어려울 일도 아닐 것이다.
비가 내릴 줄 알았는데 하늘은 구름이 개고 무지개가 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맑은 날이다. 알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이 들지만 해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Bow: 바보이슈로 인해 이번주 주제가 ‘무지개’ 인 줄 알고 작성된 글입니다(ㅠㅠ젠장).
Rainbow에서 따온 bow로, 제목은 ‘복종하다, 굴복하다’의 의미를 갖습니다. 해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들이 톰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듯 하기 때문에 이렇게 지어졌구요. <비가 내릴 줄 알았는데 날이 맑고 무지개가 떠있다.>는 표현은 톰 리들이라는 인물이 웃어주고 다정하게 굴지만 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다는 것과 유사하게 흘러가는 비유적 표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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