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장례식의 꿈을 꿨다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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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다.

누구의 장례식인지는 알 수 없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누군가의 우는 소리, 향냄새. 익숙한 풍경.

그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다. 머리가 멍하다. 슬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리가 무거웠다. 땅속에서 무언가가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듯한 답답한 감각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가 죽은 걸까.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미 수많은 죽음을 겪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최소한의 안타까움, 혹은 체념, 메마른 감상조차 없다. 왜?


“―――아.”

번뜩 눈을 떴다. 단숨에 깨달았다. 꿈이었구나. 그러니 아무 느낌이 안 들었지. 납득하며 몸을 일으키자 이불 위로 투명한 액체가 후두둑 떨어졌다. 살짝 두통이 일었다. 이상하다. 몸은 지극히 건강할 텐데.

컨디션이 별로인가 보네. 애써 가볍게 중얼거린 후 학교에 갈 채비를 마쳤다. 평소보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가만히 있기가 힘들어 밖으로 나섰다. 나무마다 맺힌 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피어날 듯한 따뜻한 봄 아침의 공기가 유독 불쾌하게 폐부를 찔렀다. 아니, 어쩌면 어제와 똑같을지도 모르지만.

숨을 불편하게 하는 공기와는 반대로, 하늘은 더럽게 쾌청했다. 아, 역시 뭔가 기분 나빠. 그렇게 중얼거리는 걸 누군가가 들었다면 말했을 것이다. 만물이 그렇게 보인다면, 역시 사토루의 기분 탓이네.

그렇게 말해줄 사람은 이제 없다. 멋대로 어딘가로 떠나가 버렸다. 그건 스구루의 장례식이었을지도 몰라. 꿈을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해 보았지만 뭔가 개운치 않았다. 하긴, 스구루가 만약 죽었고 그래서 장례식이 열린다 해도, 누구도 울어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기분은 정말 싫은데. 머리를 한 차례 헤집고서 앞을 바라보았을 때,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뭐라도 기분 전환할 것이 필요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우타히메.”

“으아, 고, 고죠.”

놀란 듯 튀어 오른 어깨에, 곧 이어지는 싫은 기색의 목소리. 좋을 이유가 없는데도 어쩐지 안심이 되는 것들.

“이 시간에 웬일이야?”

“보고서 제출. 어제 임무가 밤늦게 끝나서.”

“보고서 내고 나면 뭐하는데?”

“다음 임무에 가야지.”

“헤에, 바쁘구나. 약하면서.”

“시끄러워.”

퉁명스러운 말투로도 묻는 것에 전부 대답해준다. 우타히메와의 이런 대화는 매번 반복하는데도 이상하게 질리지 않았다. 속에 다른 것을 감추고 있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는 편안했다. 그래서 조금, 긴장을 풀어버렸던 걸까.

“하긴 특급 주령은 드물고 송사리들은 넘쳐나니까, 우타히메 같은 2급 주술사도 나름대로 바쁘겠지. 약한 존재끼리 수고가 많아.”

“선배한테 말버릇! 싸움 걸려고 불러 세운 거야? 질린다, 정말. 갈 거니까 비켜.”

아니면 역시 오늘이 나쁜 날이었던 걸까.

“그렇게 히스테리 부리다간 장례식에서 아무도 안 울어줄걸?”

아. 말을 내뱉고, 그것이 다시 귀로 들어와 의미를 전달할 때까지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한 자각조차 없었다. 우타히메가 문득 멈춰섰다. 남의 기분을 살피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았을까? 역시 사과하는 게 좋나? 망설이던 찰나였다.

“하, 쓸데없는 걱정이네요! 내 장례식에 넌 안 와도 되니까 신경 끄시지!”

기세 좋게 외친 고개를 홱 돌리고선 우타히메가 교사를 향해 척척 걸어 나갔다. 뜻밖의 반응에 잠시 멍해 있다가 돌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건강하니 다행이네. 조금은 후련한 발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이상한 꿈이 남긴 기묘한 불쾌함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역시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마음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소식을 들은 것은 하교할 무렵이었다. 쇼코가 급하게 불려 나갈 때만 해도 누가 다친 건지 듣지 못했지만, 아침의 불안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되살아나 저도 모르게 따라나섰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주삿바늘을 몇 개나 꽂고 호흡기에 의해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우타히메의 모습.

그것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주위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이거였구나. 너무 큰 고통 앞에서 인간의 감각은 마비된다는 이야기.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으나 단번에 깨달았다. 그 꿈에서처럼, 머리가 멍해지며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을 어쩐지 남의 일을 보듯 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사라졌던 소리가 조금씩 귓가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서 계시면 안 돼요. 누군가의 말에 반사적으로 비켜섰다. 한 걸음을 움직이고 나니 멈춰 있던 감정도 한꺼번에 밀려왔다. 장례식. 그러고 보니 오늘 장례식 꿈을 꿨지…….

“아니야.”

소리 내어 말하자 몇 명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신경 쓰지 않고 세차게 머리를 털었다. 아직 안 죽었어. 살릴 수 있어. 괜찮아. 머릿속으로 그런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 중얼거렸다. 한순간 불안하게 일렁이다 곧 침착하게 커지는 쇼코의 주력과, 그 속에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희미한 생명을 바라보며, 계속.

 


“………….”

“……우타히메?”

“으음…….”

우타히메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비는 시간에 병실에 들러 여전히 자고 있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돌아가기 위해 일어선 때였다.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는데, 정작 눈을 뜨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기다렸다는 듯한 타이밍 때문일지도 몰랐다.

“움직이지 마. 일으켜 줄게.”

내심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침대의 각도를 조정해 비스듬하게 앉힌 후 미지근한 물 한 컵을 떠다 우타히메의 입가로 가져갔다. 우타히메는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팔과 연결된 링거를 흘끗 보고서는 포기하고 주는 물을 받아마셨다. 작게 벌어진 입안으로 흘러 들어간 물을 삼키는 목울대에 손가락을 슬쩍 가져다 대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장례식도 아닌데 울면 어떡해.”

“………….”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내뱉는 그 말을 듣고서야 눈가가 뜨겁다는 걸 자각했다. 그건 둘째치고, 눈 뜨고서 처음 하는 말이 이거라니.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안 우는데? 우타히메, 벌써 노안이 온 거 아냐?”

“목소리는 멀쩡한 거 보니 잘못 본 게 맞나보네.”

힘없는 목소리는 그럼에도 상냥했다. 우타히메는 바보인 게 분명했다. 몇 마디 놀리는 말로 화를 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얌전한 모습은 결국 얄팍한 내숭이지, 하며 승리감을 맛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타히메는 늘 결정적 순간에 모질지 못하다. 그러니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우타히메가 자는 사이에 꽃이 피었어.”

“그렇게나 오래 잤어?!”

“사흘.”

“사흘……. 그래, 뭐, 봄은 빠르니까.”

잠시 시간을 셈해보던 우타히메가 이내 납득했다는 듯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이지 그랬다. 이렇게 있는 사이에도 꽃은 피고, 져갈 것이다.

“우타히메가 퇴원할 즈음엔 다 떨어져 있을지도.”

“바보네. 봄은 내년에도 있고, 여름에도 가을에도 꽃은 피는걸.”

그러니까 괜찮아, 하고, 우타히메는 웃었다. 얼굴을 거의 다 감싸는 붕대와 그 안에서 느껴질 아픔에 형태는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지만, 괴로움에도 굴하지 않기에 빛나는 웃음이었다.

하필 그 날 이상한 꿈을 꿔서, 이상한 말을 해버려서,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하지 못했던 사과를 우타히메가 누워있는 사흘간 길게도 곱씹었다. 우타히메가 일어나면 멋대로 흘러나올 줄 알았는데, 정작 말하고 웃는 우타히메를 보니 이제 와서 미안하다는 말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멋대로 용서해버렸을 게 분명하고. 그래서 다른 말을 하기로 했다.

“내년 봄에는 꽃놀이라도 가자. 쇼코랑, 다른 녀석들도 껴서 다 같이.”

“……응, 재밌겠네.”

내년까지 기다릴 것 없이 지금 너 혼자서 가라고, 아니면 주술사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런 약속은 못 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타히메는 그저 수긍했다. 상처 줄 각오를 마친, 뻔한 상냥함.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장례식은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 하던가. 앞으로도 분명 봄이 오고 꽃이 필 테니까.

그러나 지금은 복잡한 생각을 하는 대신 일단 우타히메를 따라 웃었다. 분명 지금 필요한 것은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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