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취하다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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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건, 어떻게 된 상황일까.

테이블 위로 한껏 퍼져있는 고죠를 보고 우타히메는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죠 사토루는 기본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못 마시기 때문이다. 스무 살 이후로 자기 객관화를 완벽히 끝낸 그는 ‘한 모금쯤?’ 하는 객기도 부리지 않으니, 이건 필연적으로 속아 마신 게 되겠다. 아니면 미쳤거나. 어쨌든 전자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줄 정도의 의리는 있었다.

고죠 사토루가 교토의 모 술집에서 뻗어있다는 소식이 왜 자신에게까지 건너왔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반대의, 즉 술 마시고 뻗어버린 우타히메를 고죠가 데리러 오는 상황이 몇 번 있었기에 모른 척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도착을 해도 문제였다. 테이블에 엎어져 움직이지 않는 190cm쯤 되는 장정을 우타히메 혼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토루 씨, 누가 데리러 왔어요.”

“우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는 듣는 건지, 아니 아마 알아듣지 못한 채로 고죠는 낮은 신음과 함께 테이블에 처박힌 머리를 좌우로 왔다 갔다 굴릴 뿐이었다. 우타히메가 다가가 고죠의 어깨를 끌어당겨 보아도 물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이 녀석한테 술 먹였어요?”

말을 내뱉은 순간 움찔거리는 어깨가 몇몇. 이 정도로 술에 약할 줄은 모르긴 했겠지만, 술 마셨다가 큰일 나는 체질이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직업병에 가까운 일갈을 우타히메는 가까스로 참았다. 여기서의 그는 선생님이 아니었으니까.

“고죠, 정신 좀 차려 봐.”

몸을 흔들며 말을 걸자 고개가 천천히 이쪽을 향했다. 반쯤 감긴 눈이 커지더니, 드디어 고죠는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어라아? 우타히메자나―!”

말꼬리를 늘이며 엉겨오는 게 진심으로 조금, 징그러웠다. 그래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우타히메의 어깨를 붙잡고 헤실거리는 고죠의 몸을 받치고서 우타히메는 남겨진 이들에게 고갯짓으로 가볍게 인사했다. 수상하다는 듯한 시선이 달라붙었지만, 무시했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였다. 고죠, 너 호텔 어디 있는지 알아? 별 기대 없이 던진 질문이었는데 의외로 고죠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서는 어디론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역시 걷기가 힘든지 우타히메를 움직이는 지팡이 정도로 생각하고 질질 끌면서.

자기 몸을 못 가누는 사람은 제법 무겁다. 심지어 고죠는 우타히메의 (체감상) 두 배쯤 되는 몸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저녁 공기가 서늘해지긴 했어도 아직 여름에 걸친 날씨였다.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묘하게 익숙한 길이다. 교토에도 제법 오래 살았으니 눈에 익은 길은 많았으나, 여긴…….

“여기!”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고죠가 호기롭게 외쳤다. 순간 우타히메는 고죠를 그대로 내팽개칠 뻔했다.

“네가 우리 집을 어떻게 알아!”

“으응? 그거야… 그…….”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으니 자신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듯,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죠의 고개가 꾸벅꾸벅 떨어졌다. 이러다 잠들기라도 하면 정말로 여기에 버려두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안이었지만, 성정이라는 것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예약한 호텔을 알아내 데려가는 것도 무리였기에, 결국 우타히메는 고죠를 집 안으로 들인다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그래, 남이 어디 사는지 알고 싶어서 알아봤나 보지. 머리가 좋아서 취한 채로도 처음 오는 길을 용케 잘 찾아왔나 보네.

 

“와, 여기 우타히메 향기 나.”

체중을 반쯤 우타히메에게 맡겨놓은 것처럼 굴던 고죠는 우타히메의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직립 보행을 깨우친 인류처럼 성큼성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대고 킁킁거리는 모습이 어쩐지 민망해서 우타히메는 고죠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일단 씻고 있어!”

옷은 혼자서 벗을 수 있을지 걱정되기는 했지만, 매일 하는 행동인 만큼 습관대로 잘 해낸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전에 선반에 있던 다른 것도 쏟은 것 같았지만, 그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슬쩍 탈의실의 문을 열어보니 벗어놓은 옷가지가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대충 주워 정리해 두고서 우타히메는 시계를 보았다. 세탁기를 돌리기엔 이웃집에 미안하지만, 집 근처의 마트는 아직 문을 닫지 않았을 시각.

‘얼마나 일찍 뻗은 거야…….’

술자리가 무르익기도 전에 이렇게 되다니. 주변에 앉은 사람들도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주변에 앉은 사람이 전부 여자였던 것과 ‘사토루 씨’라는 호칭에서 대충 예상은 된다만.

잠시 고민하던 우타히메는 밖으로 나섰다. 마트에서 대강 가장 커 보이는 티셔츠와 바지, 덤으로 속옷도 하나 샀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고 있나 하는 가벼운 회의감과 함께. 그리고 집에 돌아온 우타히메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소리 지르기였다.

“고죠!!”

시야를 가득 채우는 낯선 살 색. 하반신에 수건 하나 두른 채로 쓰러진 고죠 사토루가 그곳에 있었다.

사실 고죠가 알몸인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큰 문제기는 했지만 우타히메가 소리를 지른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 순간 온갖 헤드라인이 우타히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속보] 주술계 최강, 술 마시고 동료 선생(女) 집에서 전라로 사망

 

끔찍하다. 물론 이딴 기사가 날 리는 없지만, 끔찍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다행히 살아 있긴 했다. 하지만, 술 마시고 이런 식으로 엎드려 있다가 토하기라도 하면 호흡 곤란으로 죽는 건 아닐까.

고죠는 사실 몇 모금 마시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므로 토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는 생각은 당황한 우타히메의 이성에서 잠깐 날아가 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런 우타히메가 취한 행동은, 찬물을 떠와 냅다 고죠의 얼굴에 뿌려버리는 것이었다.


 

“아…….”

고죠의 의식이 천천히 부상했다. 몸을 일으켜보니 낯선 곳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술집이었는데. 전혀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입장 상 갈 수밖에 없었던 파티에 대충 얼굴이나 비추고 가려다가, 갑자기 여자들이 모여들고, 그러다가…… 어라. 어디서 우타히메 향 난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죠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세상에, 정말로 우타히메가 눈앞에 있었다. 아아, 남고생 때도 안 꿔본…… 아니, 꿨던가? 아무튼 좋아하는 여자 꿈이라니 웃기네. 만져지려나, 싶어서 고죠는 일어섰다. 어쩐지, 하반신이 시원했다.

“이, 이 미친놈아!!!”

얼굴로 뭐가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인을 맺었다. 꿈에서도 잘 발동하는 무하한 덕에 차분히 받아들 수 있었던 그것은 옷가지였다. 우타히메는 어디론가 도망갔다.

‘꿈이 제법 리얼하네.’

이 한기도 제법 리얼했다. 일단 던져준 옷을 입기로 했다. 불편하긴 해도 못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라진 우타히메를 찾으러 휘적휘적 걸으며 주위를 살피고 있으려니, 부엌 쪽에서 컵 하나를 든 우타히메가 쭈뼛거리며 나타났다.

“고죠……. 이거라도 좀 마셔.”

붉은 액체가 담긴 컵. 숙취엔 토마토 주스, 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긴 하다. 우타히메가 술집에서 뻗었을 때 검색해봤던가.

고죠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우타히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컵을 받아드는 대신 우타히메를 껴안았다. 정확히는 껴안으려 하는 것을 우타히메가 반사적으로 피했다.

“왜 이래,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그런 우타히메의 행위조차 고죠에게는 꿈의 현실성을 높이는 요소일 뿐이었다. 그래, 우타히메라면 이러겠지.

“와, 이 꿈 진짜로 진짜 같아!”

달콤한 신혼의 꿈을 꾸는 고죠와, 이 녀석을 집까지 끌고 와버린 후회로 굳어버린 우타히메. 고죠가 이것이 현실임을 깨닫고 더한 일들을 벌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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